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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국 관련 강의에서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여러분은 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 가운데 어느 나라 사람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사람들은 나의 의도를 읽지 못해 약간 당황해 한다. 우선 '합리적'이라는 말을 왜, 어떤 의미로 썼는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일반의 인식에서 합리적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사회나 경제 관계에서 예정된 수순대로 진행하면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으로 정의적이란 말과 대척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혈연, 지연, 학연 등이 중시되는 사회일수록 합리적이기보다는 정의적인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럼 중국은 어떠할까. 흔히 중국에 대해 약간 비하하는 말로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말이 있다. 정의롭지 못한 일에는 참으면서 자신에게 손해 되는 일을 못 참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돈을 중시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실제로 중국 사람들은 이익에 관해서는 아주 민감하다. 하지만 그들은 이익이라는 정확한 잣대를 갖고 세상을 대하는 것은 맞다. 그러면 왜 중국인들의 생각에 이런 관념이 깊숙이 자리하게 됐을까.

그 가장 큰 배경은 중국 역사의 끊임없는 전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중국은 고대부터 지배 이념으로 유가를 중시했다. 하지만 유가뿐만 아니라 도가, 불가는 물론이고 법가 등 다양한 사상이 공존했다.

따라서 시대에 따라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이익이라는 가치다. 그래서 중국인들의 삶의 기준은 가장 기본적인 사회 구조인 가족들을 기초로 이익이라는 편리한 측정 수단을 바탕으로 형성됐다.

표면적으로 이익을 말하는 것을 꺼리고, 내부적으로는 혈연, 지연, 학연을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보다 중국 사람들이 훨씬 합리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중국 시장, 합리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

주변 가게들과 싸우지 않고 공생하는 모습이 놀랍다. 사진은 베이징 홍치아오시장의 진주 흥정 모습
▲ 중국인들이 시장에서 흥정하는 모습 주변 가게들과 싸우지 않고 공생하는 모습이 놀랍다. 사진은 베이징 홍치아오시장의 진주 흥정 모습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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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합리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 중국 시장이다. 외국인들을 주로 상대하는 베이징의 시우수이지에(秀水街) 등의 시장은 같은 종류의 가게들이 즐비한 상가다.

가령 지하 1층 매장은 가방, 지갑, 신발 등의 물품을 주로 판다. 이미테이션 물건이 많아 같은 제품을 20위안부터 1000위안 사이로 사고 파는 시장인 만큼 상인들 간에 알력도 상당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가 만난 시장 속 풍경 속에 상인들 간에 알력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그들은 바로 옆 가게 간에도 협업하고 있었다.

가량 같은 제품을 갖고 흥정하다가 바로 옆 가게에 갔을 경우에 적정한 선의 마지노선을 지킨다. 서로 팔려고 출혈경쟁을 할 경우 서로에게 손해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은 자신이 팔지 못하더라도 그 가이드 라인을 지킴으로써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힘으로 인해 동남아의 상권을 장악하고, 세계 곳곳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할 수 있었다.

장사는 비교적 실리가 명확하지만, 일반적인 곳에서는 이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일을 말하기 전에 먼저 친구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010년 11월 필자가 처음 공직에 들어와 만난 첫 중국인은 중국 최대 경제특구인 톈진 빈하이신구의 고위 관료였다. 당시 일하던 새만금경제청을 방문한 이들을 맞아 갑자기 통역을 요청했는데 빈하이신구 측 단장의 말에서 이 말이 나왔다.

맹자는 이익 보다는 의를 중시했던 유가의 대표적 인물이다. 하지만 법가, 불가 등이 공존하면서 이익은 무시할 수 없는 가치가 됐다
▲ 하필 이익을 말하냐고 물었던 맹자의 사당 맹자는 이익 보다는 의를 중시했던 유가의 대표적 인물이다. 하지만 법가, 불가 등이 공존하면서 이익은 무시할 수 없는 가치가 됐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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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 말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우선 맹자가 양혜왕 앞에서 했다는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을 말하십니까. 또한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라는 말이 생각났다. 지극히 유가적인 말로 당대 중국인들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 개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아주 정확한 중국적 사고이기도 하다.

이 만남을 시작으로 빈해신구와 교류를 진행하면서 필자가 느낀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중국인 파트너에게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은 것이다.

나중에 빈해신구를 방문해 최고 책임자들을 만날 때도 그들의 정중하고도 절도있는 행사 모습에서 중국 지도자들의 능력을 실감했다. 또 능력에 따라 젊은 지도자들이 적절한 위치를 부여받고, 그 자리에 맞게 행동하는 것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중국이 빠른 시간에 세계 양대 헤게모니로 성장한 비결에는 아마도 저런 관료들의 태도와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자리를 파하면서 우리 측 참석자들은 그 젊은 책임자가 말했던 '먼저 친구가 되자'는 말을 실감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이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럼 중국인들과의 인연을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까. 앞서 말한 앞선 중국에 인지도가 높은 지도자들은 최근 몇 년 우리나라의 중국 관계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우선 큰 문제가 발생했을 때 흉금을 터놓고 의논할 수 있는 최고위층 지도자간의 교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렇다고 지금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멀리 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비관할 일은 아니다.

1992년 한중국교수교 이후 한중간에는 상하고저에 상관없이 많은 교류가 있어서 정작 필요한 일이 있을 때는 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인물들도 있다. 물론 그들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이 지금으로써는 더 중요하다.

아울러 중국 미래 지도자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중국은 엘리트로 발탁하는 과정도 명확하고,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도 명확하다. 장쩌민 주석시대까지는 우연도 있었지만, 후진타오나 시진핑은 명확한 그 성장 과정을 통해 지도자가 됐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라고 다르지 않다. 차기 최고지도자인 상무위원에 진입하는 사람들은 205명가량인 중앙위원회 위원 중에 있다. 또 다음 중앙위원에 진입하는 인물들 역시 성이나 직할시급 및 주요 경제 특구 지도자 가운데서 발탁된다.

따라서 미래 한중관계를 더 돈독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들과 교류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을 한국에 초청하는 것도 좋지만, 현지를 방문하는 기회들을 늘려 더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도 좋은 사교의 방법이다.

중국과 교류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다양한 의전 문화

이들은 거대한 식탁과 풍성한 음식으로 손님을 접대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 중국에서의 만찬 초대 모습 이들은 거대한 식탁과 풍성한 음식으로 손님을 접대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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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중국인들이 사람 관계에서 기본적으로 지키는 문화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업무적으로 중국과 교류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중국인들의 다양한 의전 문화다.

2012년 봄 업무를 위해 랴오닝에 있는 한 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알루미늄 분야에서 세계 2위 업체인 이 기업 관계자는 물론이고 그 도시의 당서기부터 시장 등을 방문하는데, 그들은 각기 최고의 의전과 이야기가 있는 기념품으로 우리를 환대했다. 특히 건강상의 문제로 술을 못한다는 시장은 우리 측 책임자가 수술했다는 말에 대신해서 술을 '원샷'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표시할 만큼 호의를 보였다. 아울러 기업을 떠날 때는 우리의 전체 방문 여정이 담긴 거대한 사진첩을 선물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사실 이런 의전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익숙지 않다. 또 한국 공공기관이 구조에도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 역시 적잖은 교류로 그런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일에 대한 신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도 있기에 똑같은 방식의 의전이나 보답을 요구하지는 않다. 다만 상대방을 대하는 진심을 읽는 데는 어느 누구나 같다. 중국 속 한국기업은 물론이고, 한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인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중국을 진정한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그런 우리의 안팎을 중국인들도 읽을 수밖에 없다. 이런 수치는 통계나 기사들로도 흔히 나타난다. 중국내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중국 근로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3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이런 기업들은 현지화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었지만 중국의 생리를 잘 모르고 진출해 1년여 만에 많은 적자를 내고 사업을 접었다
▲ 한 한국기업이 베이징 왕푸징에서 중국기업과 합작한 백화점 대기업이었지만 중국의 생리를 잘 모르고 진출해 1년여 만에 많은 적자를 내고 사업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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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이후 우리의 중국 진출은 봇물이 터졌다. 이제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의 진출은 자본력의 한계 때문에 거의 끝나가는 수준이다. 그런데 대기업의 중국 진출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런 기업 안에 향후 10년 20년 후에도 중국인들과 제대로 소통하고, 이익을 나눌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묻고 싶다. 이런 준비가 없이 중국에 간다면 이제 중국 내에서 한국 기업 브랜드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익을 중시하되, 그 과정을 철저히 챙기는 중국인들의 근성은 수천 년 동안 역사를 통해 상인종(商人種)이라 불릴 만큼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 근성에 정확하게 접근하지 못한다면, 5천년 만에 대등한 위치를 누렸던 중국과의 관계는 험로를 걸을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연재기사



태그:#중국, #왕푸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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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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