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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세상네트워크 빈곤층건강권사업단에서는 <오마이뉴스>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건강권에 대한 실태를 살펴보는 '가난한 사람들도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다'라는 주제로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편집자말]
세월호 사건으로 이제는 거의 잊혀져가고 있는 '세 모녀 동반자살 사건(지난 2월 26일 서울시 송파구의 한 단독주택 지하방에 발생)'은 우리 사회의 복지사각지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크게 불러 일으켰다. 이 사건 이후 보건복지부는 복지사각지대 발굴 및 지원을 위한 일제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정작 '세 모녀' 사례를 검토한 일부 전문가들과 현장 실무자들의 의견은 세 모녀가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였다 하더라도 현재의 제도로는 적절한 도움을 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세 모녀가 도움 요청했더라면 비극 막을 수 있었을까

송파세모녀 죽음의 책임을 묻는다. 민생보위기자회견
 송파세모녀 죽음의 책임을 묻는다. 민생보위기자회견
ⓒ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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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TV 등 여러 다양한 언론매체에 보도되었던 내용을 종합해보면, 세 모녀 사건의 시작은 적어도 10여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 12년 전 방광암으로 사망한 두 딸의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인해 수입이 중단되자 빚이 생겼다. 게다가 가장인 아버지가 암에 걸려 치료비 등의 이유로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로 인해 두 딸은 신용불량자가 되고, 가족들은 단독주택 지하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후 어머니가 생계 활동에 나서 두 딸과 함께 생계를 꾸리게 되었는데, 큰 딸의 건강도 좋지 않은 등 딸들의 경제 활동도 여의치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식당에서 일을 하던 어머니가 넘어지면서 팔을 다쳐 생계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후 월세와 생활비를 부담하기 어렵게 되자 그나마 단란했던 가족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한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는 노령, 질병, 산업재해, 실직 등 사회구성원이 공통적으로 겪을 수 있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우리도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 및 의료급여,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의 사회보험과 공적부조를 통해 위험에 처한 사회구성원에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의 보장성 수준은 여전히 미흡하다.

세 모녀 사건에서 이런 가정을 해보자. 만약 아버지의 암 치료비로 인한 과중한 부담이 없었더라면? 암에 걸린 아버지가 생계활동이 어려워도 또는 어머니가 팔을 다쳐 생계활동이 중단되어도 다시 생계활동이 가능해질 때까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생활비를 지원할 수 있었다면? 그렇다면 세 모녀의 안타까운 일은 일어나지 않지 않았을까.

사회보장제도가 더 발달한 나라에서는 치료비로 인한 과중한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잘 갖추어져 있고, 건강문제로 인해 생계활동이 중단되는 경우에 대비해 상병수당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산업재해보상보험(일명 산재보험)에는 상병수당이 있지만 국민건강보험에는 상병수당이 없다. 그러다보니 이들 세 모녀 사건과 같이 흔히 발생할 수 있는 건강문제와 그로 인한 생계중단은, 이미 빈곤에 내몰린 이들을 벼랑끝으로 내몰아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게 만든다.

제도 개선이 없는 한, 세 모녀 사건과 같이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은 시간과 지역을 달리하여 지속적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건강보험 적용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사람들, 의료 필요는 높아

2012년 건강보험 보장률은 62.5%로 OECD 평균 80%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는 소득에 관계없이 의료비의 약 40%를 개인이 직접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생계가 어려워 건강보험료를 장기간 체납하는 이들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2012년 말 기준 건강보험료를 6개월 이상 장기체납한 세대는 157만 세대. 체납세대 대부분은 생계형 체납세대로, 이들 중 172만 명이 체납 후에도 진료를 계속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료 필요가 높은 이들로 추정된다.

현재 공단에서는 장기간 보험료를 체납하여도 병원이용을 할 수 있도록 보험혜택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 또 치료가 필요할 때 체납된 보험료의 일부를 내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건강이 악화될 때까지 필요한 의료를 이용하지 않아 의료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물론 치료의 결과도 좋지 않은 사례가 발생하는 것이다. 체납을 해도 계속 진료를 받는 이들도 있지만 진료를 받을 때 발생하는 비용 및 체납에 대한 부담으로 스스로 진료받기를 꺼리는 이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2012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에 의하면, 19세 이상 성인 중 경제적 이유로 치료받지 못한(미치료율) 사람이 남녀 각각 1.8%, 4.6%이다. 건강보험 체납자를 대상으로 조사하였다면 이보다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생계가 어려워 보험료를 체납하는 이들이 적절한 치료를 이용하거나 사회보장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해 건강은 물론 생계 또한 더 악화될 수 있는 사각지대가 대규모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올 7월 1일이 되면 장기체납자에 대한 급여제한을 엄격하게 적용할 예정이다. 물론 진료 전에 완납하거나 진료 사실 통지 후 2개월 내 완납할 경우 건강보험 적용을 사후에라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보험료를 완납해도 과중한 의료비 부담은 또 다른 문제이다.

세 모녀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여러 불행이 동시에 또는 연이어 찾아와도 우리들이 기댈 수 있는 보다 건강한 사회보장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가난한 이들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도' 건강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가 더 건강한 사회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장애인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듯이.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충남대학교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실장입니다.



태그:#세모녀, #빈곤층, #의료급여, #건강권, #기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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