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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폭력묘사가 실제적인 영화를 좋아한다. 화면 가득 피가 튀고, 신체의 절단면이나 으스러진 살들이 보이는 영화들을 즐겨본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쩜 저런 잔혹한 행위를 가할 수 있는지 눈을 의심하게 하는 영화도, 상상도 못할 잔악한 폭력들이 자세히 묘사된 장면이 있는 영화도 거리낌 없이 본다.

그러면서 잔인한 영화를 보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현실의 참혹한 고통에 눈을 돌려 외면하는 사람이라고 내심 비웃었다. 특히 여성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활동가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그들이 영화에서 가짜로 묘사된 폭력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눈을 돌리면서 어떻게 영화보다 더 가혹한 현실의 폭력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나는 내가 경찰과 용역의 가혹한 폭력, 가족들의 서글픈 헤어짐, 지친 노동자의 자살, 삶의 터전을 빼앗긴 할아버지의 분신, 이 모든 참혹한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현장의 활동가는 못 되지만 그들을 잊지 않고 응원하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작은 힘을 보태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코오롱, 콜트콜텍, 재능교육... 무력감이 찾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신문, 잡지, 인터넷, SNS에서 쌍용자동차 투쟁, 제주도 강정마을 투쟁, 밀양 송전탑 투쟁 등 여전히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이상 보지 않는 내 모습을 느꼈다. 사실 피로했다. 세상엔 너무나 많은 부조리와 억울함과 탄압과 저항이 있었다. 이들 모두를 다 알기는 하드코어 영화도 즐겨 보는 내 멘탈도 감당하지 못했다.

어떤 사안이 있으면 수박 겉핥기 식으로 대략의 윤곽만 알면서도 다 알고 있다고, 이제 충분하다며 어물쩍 넘어갔다. 코오롱이든, 콜트콜텍이든, 재능교육이든 다 똑같지 않느냐며, 비정규직이 뭐가 문제인지 다 알고 있다고, 그러므로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외면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더 심한 무력감이 찾아왔다. 수많은 투쟁들을 제대로 알기도 어렵고 힘든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노동자가 마음껏 일하며 그 노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 받는 세상이 올까? 혼자서 스쳐 지나가듯 기사의 큰 활자만 눈으로 훑어 보았기에 금방 질렸고, 피곤함을 느끼며 외면했다. 나 홀로 어줍잖은 단편적인 정보들을 가지고 머리 속으로만 생각했기에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무력감을 느꼈다.

 <섬과 섬을 잇다> 책표지
 <섬과 섬을 잇다> 책표지
ⓒ 한겨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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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밀양 송전탑, 재능교육, 콜트콜텍, 제주 강정마을, 현대차 비정규직, 그리고 코오롱. 이 책 <섬과 섬을 잇다>에 나온 일터와 삶의 터전을 지켜내려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그들의 삶, 노동, 우애, 부당한 차별, 싸움, 헌신, 희생, 외로움, 고통, 탄압, 죽음, 상처, 절망, 희망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곳이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들을 읽을 때마다 잔혹한 영화를 볼 때는 느끼지 못한 감동을 받았다. 비록 글 속에서지만, 나는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어느 정도 피로감과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싸우고 있는 해고자들, 노동자들, 주민들만 섬이 아니다. 나 같은 소시민들도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하고, 무한 경쟁의 체제 속에서 고립되기도 한다.

섬과 섬을 잇는다는 말은 싸우고 있는 사람들끼리만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잇는다는 뜻이다. 비록 내가 직접적으로 싸우고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과 이어지는 가느다란 끈을 잡았다고 느꼈다.

7군데의 싸움 이야기

이 책에는 7군데의 싸움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중에는 내가 더 많이 아는 현장도 있고, 잘 모르는 현장도 있다. 책을 읽으며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사실들은 정말 빙산의 일각일 뿐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성과 상식이 설정한 한계를 코웃음 치며, 인권과 법률도 무시한 채, 참으로 다양한 방법들로 일하는 사람들을 짓밟는 이야기들을 읽으면 내 빈곤한 상상력을 탓하게 된다.

거대한 자본과 국가의 힘 앞에서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 하겠지만 사람의 권리가, 또 목숨이 한낱 몇 푼의 이익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수많은 일들을 보면 가능성을 따지기 전에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단지 그들의 힘겨운 나날들을 읽기만 했는데도 그렇다.

책에서는 각각의 현장 이야기들을 본격적으로 펼치기에 앞서 현장의 모습을 그린 만화들이 분위기를 전달한다. 그리고 이어서 기록 노동자들이 차분하게 투쟁의 역사를, 지금도 계속되는 싸움과 희생과 연대를 충실히 알려 준다.

권력과 자본이 가진 막대한 힘과 싸우는 사람들이 완벽할 수 없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타협할 수도 있다. 인격적으로 완벽한 지도자가 가혹한 탄압에 맞서 강철 같은 대오를 이끄는 투쟁은 대기업이 말하는 '또 하나의 가족' 같은 광고처럼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네이버 웹툰 '송곳'에서 나온 대사가 가슴에 와 닿는다.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란 말이오."

약자의 시시함마저 그들의 중요한 일부로 인정하기란 체면과 남의 눈이 중요한 한국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이런 사실들을 그냥 덮어두고 지나치지 않았다.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잘 알아야 한다

2014년 6월 11일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 강제 철거 후 여경들이 웃으며 찍은 사진이 12일 공개되었다. 이 사진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그 여경들은 단지 평생을 살아온 땅에서 평화롭게 농사를 지으며 살고자 하는, 죄 없고 힘 없는 밀양 할매들을 강제로 끌어내리고 그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는 일을 했다. 비록 말단 경찰로서 상부의 명령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부상자를 호송하는 옆에서 그렇게 환하게 웃고 승리의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어야만 했냐고 묻고 싶다.

2차 대전 때,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상부의 명령이라며 아무런 죄의식 없이 유대인들을 학살하던 독일인들이 떠올랐다. 나치와 저 여경들의 공감 결여 능력이 다르지 않다. 도대체 왜 이런 모습들이 보일까? 무한 경쟁이 지배하는 사회, 더 강한 탐욕이 이기는 세상에서는 남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해야만 성공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점점 괴물이 되어간다.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서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문제를 공론화 해서 해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앎이 피상적이면 계속되는 소식과 기사가 우리를 피로하게 만들어 남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질 수 없다. 자세히 알수록 오히려 피로감이 덜해진다. 단지 읽기만으로도 고립으로부터 벗어나 가느다란 연대의 실마리를 얻어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른 이웃의 싸움들이 나올 것이다. 더불어 섬과 섬을 잇는 이야기들도 계속 나오리라. 더 이상 극한 투쟁과 눈물 겨운 슬픔과 생명의 끊어짐이 기록된 섬과 섬을 잇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나는 질리지 않고 읽을 것이다.

 <섬과 섬을 잇다> 북콘서트 포스터
 <섬과 섬을 잇다> 북콘서트 포스터
ⓒ 섬섬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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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섬을 잇다 - 여전히 싸우고 있는 우리 이웃 이야기

하종강 외 지음, 한겨레출판(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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