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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점점 포화상태에 다다르는 낡아빠진 전동차, 그리고 점점 늘어나는 교통수요가 서울특별시내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시영버스는 점점 전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신촌, 홍제, 성북에서 사람들을 콩나물 시루 옮기듯 빽빽히 옮기기 시작하였고, 결국 버스개편을 하기에 이른다.

이 버스 개편에서 추가된 30여 노선, 1175대의 11인승 합승택시, 이른바 '봉고뻐스'는 김포비행장, 휘경동, 삼양동을 누비며 승객들의 발이 되었다. 이후 합승택시는 마이크로 버스로, 그리고 수요에 맞추어 점점 대형버스로 교체되어 운행하기 시작했다.

이제 합승택시는 지방에서도 보기 어려워졌을 뿐더러, 국내에서도 구례, 대부도, 신안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만 운행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서울특별시에서는 합승택시 형태의 마을버스의 운행을 1970년대에 공식적으로 중단했고, 2004년까지는 마을버스에 한해 운행했다. 이후 법에 따른 내구연한 10년이 남은 버스는 계속 운행하였으나 2011년을 마지막으로 거의 모든 버스가 폐차되어 예비차로만 존재하는 형태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2014년 현재, 서울 한복판 정릉에 합승택시의 형태로 운행 중인 시내버스가 있다. 삼각산 자락에 위치한 정릉의 어느 산길에 다니는 초록색 봉고, 이 버스가 바로 대진여객이 운행 중인 성북 05번 버스이다.

성북05번 버스의 차고지이자 정류소. 성북2동주민센터
 성북05번 버스의 차고지이자 정류소. 성북2동주민센터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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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2동주민센터 주차장에서 아리랑시장을 거쳐 좁다란 꼬불꼬불 산길을 지나 정수빌라 주차장까지, 단 5개의 정류소를 지나는 성북 05번 버스는 대부분의 서울시내버스가 통과하는 지하철역을 경유하지 않는다.

운행하는 차량은 승합차, 학원차로 주로 쓰이는 12인승 스타렉스. 좁은 버스에서도 교통카드 단말기, 요금함, 영수증 발급기, 심지어는 기사증과 정류소 표지판, 광고까지 달려 있다. 버스를 그대로 승합차에 옮겨놓은 듯하다.

좁은 버스 안에도 있을 것은 다 있다.
 좁은 버스 안에도 있을 것은 다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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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버스는 정릉2동 언덕 지대 주민들을 위해 오후 시간대에 한해 운행한다. 산길이 매우 경사가 높고 미끄러워 기상 상황이 좋지 않을 때에는 특히 위험이 따른다. 첫 차가 오후 2시, 막차는 오후 11시이다.

이 버스는 시민의 안전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밤시간대 여러 범죄의 위험에 노출된 시민들을 위해 '안심귀가 마을버스'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심야시간대에 버스에 탑승한 직후, 기사에게 하차 위치를 말하면 정류소가 아닌 하차 위치에서도 하차가 가능하게 하여 안심귀가를 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안심귀가 마을버스 운행안내(성북 05번에는 하차벨을 누르는 대신 버스기사에게 하차위치를 말하면 된다)
 안심귀가 마을버스 운행안내(성북 05번에는 하차벨을 누르는 대신 버스기사에게 하차위치를 말하면 된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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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버스에는 하차벨이 없고, 직접 기사에게 하차 의사를 표한 뒤에 문을 밀어 승하차해야 하기 때문에 불편은 존재한다. 안내 방송 역시 나오지 않지만, 승하차 위치가 정해져 있고 정류소 역시 매우 적어 큰 불편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한 기사가 고정적으로 운행하는 노선 특성상 도시에서 느끼기 어려운 교통수단의 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서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던 것처럼 보였던 봉고 버스는 50년 전과는 약간 다른 모습으로 시민의 곁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서울이지만 서울답지 않은, 정다운 모습을 초록색 봉고에서 만났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울톡톡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마을버스, #버스, #시내버스, #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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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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