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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김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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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갈 것인가. 식당을 나왔지만 마음 내키는 곳이 없다. 할 수 없었다.

'태일이에게 한 말도 있고 하니 상률이네 집을 찾아가기로 하자.'

이소선은 버스 안에서도 하혈을 하였다. 의자에 앉아 등받이를 꼭 붙들고 참아냈다.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양쪽 바짓가랑이에 피가 엉겨 붙어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걸음을 옮긴 때마다 격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상률이네 집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에 실려 갔다. 병원 의사는 생명이 위독했었다며, 여지껏 뭐하고 이런 상태까지 되도록 방치했냐고 이소선에게 화를 냈다. 이소선은 의사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피 주사를 맞고 병원에서 누워 있었다.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걸음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회복되었다. 식당에서 받아온 돈 만 원은 병원비로 다 날려버렸다.

이 무렵 큰 아들 전태일은 서울에 올라와 남대문 시장 주변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상률이 어머니를 통해 무허가 하숙집에 방을 얻어 지냈다. 하숙집 물을 길어다 주고 밥을 얻어먹으며 살았다. 구두통을 둘메고 남대문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돈을 벌어 하숙비를 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일이는 동생 태삼이를 만났다. 태삼이는 엄마와 형을 찾아 상경했으나 갈 곳이 없어서 시장 근처의 동냥하는 거지패들에게 끼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행히 구두를 닦고 있는 태일이를 만나게 되었다.

천만다행으로 만나게 된 아들을 끌어 안고 이소선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이들도 함께 울었다. 그러나 이들은 마냥 울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눈물을 거두고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이들 앞에 놓여 있는 모진 세파를 이겨나가야 한다.

태삼이는 태일이를 대신해서 하숙집의 물을 길어주고 밥 문제를 해결했다. 태삼이는 물지게를 지고 언덕길을 낑낑거리며 기어올랐다. 기우뚱거리며 물지게를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고 있는 어린 태삼이를 보는 어미 가슴은 미어지고 눈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그래,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살자.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생활기반을 마련해 보자.'

이소선은 어린 나이에 생고생을 하고 있는 지식들을 보면서 반드시 살아나가리라 결심을 다졌다.

'우리가 살 수 있으려면 적어도 5년은 죽을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서 돈을 벌 수가 있단 말인가. 나쁜 짓을 해서 돈을 벌지 않는다면 우리 처지에 5년 정도는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무허가 하숙집이라고 해도 태일이와 태삼이가 함께 살기란 어려운 형편이었다. 물을 길어다주면서 겨우 밥이나 얻어먹는 처지였는데, 주인이 두 명을 다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온갖 잔심부름을 다 해주다 어쩌다 잘못하면 매까지 얻어맞아야 하는 비참한 생활이었다. 태삼이는 그대로 하숙집에 머물기로 하고,태일이는 이소선이 살고 있는 상률이네 집으로 들어오기로 했다.

이소선은 상률이네 집에 와서 그 집 식구들의 도움으로 단칸방에서라도 지낼 수가 있있다. 단칸방에서 그 가족들 틈에 끼어 살다 보니 미안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건강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이소선은 단칸방에서 나오기로 했다. 상률이네 식구들만으로도 단칸방은 비좁았다. 그런데 태일이까지 왔으니 그 방에서 머물 수가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이소선은 마루 밑바닥께 잠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마루 밑에 가마니를 깔고 태일이와 잘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아이고, 태일이 엄마, 그게 무슨 짓이에요? 그러지 말고 방에 들어와서 자요. 어차피 사는 게 다 그 모양인데, 어렵더라도 함께 지내야지요."

상률이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이소선을 붙들고 성화였다. 이소선은 비좁은 방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잘 수는 없다고 한사코 거절했다. 이소선은 그들의 성화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낮에는 밖에서 일하다 해가 져도 일찍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상률이네 기족들이 보기만 하면 방에 들어와서 자라고 성화를 부리기 때문이었다. 이소선은 태일이를 데리고 남산 중턱으로 올라갔다. 산에서 태일이와 온갖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정쯤 되어서 집에 돌아왔다. 집 근처에 오면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걸어서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이른 봄. 밤바람이 찼다. 가마니를 깔았다지만 땅에서 올라오는 찬기운은 참기가 어려웠다. 어미는 옷을 벗어서 태일이를 덮어 주었다. 태일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잠에 빠져 있다가 눈을 뜨면 어느새 태일이의 윗옷이 어미의 어깨를 덮고 있었다. 어미는 잠든 태일이를 어둠 속에서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아주 낮은 소리로 말했다.

'태일아, 사람이란 잘 살 때도 있고 못살 때도 있는 법이다. 어쩌다 가난하다고 해서 나쁜 마음을 먹으면 절대로 안 된다. 진실되게 살려고 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살려고 했다면 우리가 이 고생을 뭐 하러 하겠니, 그리고 힘들어도 앞으로 5년간만 억척같이 노력하면 안 될 게 뭐가 있겠냐.'

어미는 잠든 아들의 어깨에 그 옷을 다시 끌어다 덮어주었다.

태일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 일자리를 개척해 나갈 결심을 했다. 일자리를 많이 알아보더니 평화시장을 지나치다가 '직공 모집' 광고를 보고 미싱보조로 들어갔다. 태일이는 이소선이 말한 5년간의 개획에 동의했다. 하지만 5년은 너무 길다는 것이다.

우선 순덕이가 문제였다. 태일이는 대구에서 엄마를 찾아 서울로 올 때 순덕이를 업고 왔다. 그러나 서울에 온 태일이는 신문팔이를 하면서 길거리를 방황했다. 이때 어린 순덕이가 굶주림과 질병으로 시달리는 것을 보고 이러다가는 둘다 죽게 생겼다고 판단해 순덕이를 아동보호소에 맡겼다. 태일이는 순덕이 때문에 무척 괴로웠다.

"어머니, 내가 순덕이를 속이다시피해서 차에 태워 보낸 것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데려오고 싶어요. 하지만 우리 처지가 그럴 수도 없으니 제가 죄를 지은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어요. 어서 빨리 돈을 벌어서 순덕이를 데려와 함께 살 날을 앞당겨야지요."

이소선은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지만 태일이의 말을 듣고 더 이상 쉴 수가 없었다.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일자리를 구한다는 게 쉽지가 않았다. 여러 군데 알아보니 의정부에서 식모를 살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의정부 양공주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일이었다. 양공주들이 사는 곳이니 하는 일이 못마땅하더라도 건강이 좋지 못한 이소선으로서는 해볼 만한 일자리였다. 더구나 월급이 많다는 애기에 구미가 더 당겼다. 그 일자리를 소개해준 사람이 연락을 하더니 금세 미군 지프차가 달려왔다. 이소선은 막상 데리러 온 미군을 보니 일할 맛이 싹 가셨다.

'아무리 돈도 좋지만 내가 이 고생을 하면서 이날까지 살아왔는데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양공주들의 시중이나 들어서야 말이 안 되지. 아무리 어렵게 살아도 그럴 수는 없다. 더구나 자식들을 올바르게 키우고 싶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애들이 부끄러워하는 일은 절대로 할 수가 없지.'

이소선은 깊은 생각 끝에 그를 데리러 온 미군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거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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