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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수업 시간!
 그리스어 수업 시간!
ⓒ John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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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벼락치기에 너무나도 익숙한 학생이었다. 시험이 끝나는 그 순간부터 "홀라리햐~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오늘은 구름이 예뻐서, 오늘은 그냥!"이라는 다양한 핑계로 다음 시험이 돌아오기 전까지 즐거운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다시 시험기간이 되면 "그래! 나의 본분은 학생! 밤새워 공부하겠어!"라고 하면서 에너지 음료수를 마셔대고 뜬 눈으로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며 공부했다. 그것도 공부라고 시험이 끝나고 나면 나름 뿌듯해 했다. 옳은 방법은 아니지만, 이것이 내 공부 방식이었고 적지 않은 학생에게 익숙한 공부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습이 없으면 토론도 없다

하지만 벼락치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대학이 있다. 바로 세인트 존스 대학이다. 왜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을까?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세인트 존스에는 시험이 없기 때문이다. 시험이 없다니. 매 학기 중간, 기말시험을 봐야 하는 대학생에겐 이 무슨 행복한 이야기인가? 하지만 무작정 부러워 할 일이 아니다. 세인트존스 대학에는 벼락치기의 고통은 없을지라도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지리한 장마'의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장마의 고통은 무엇인가? 이를 알기 위해선 우선 두 가지 다른 수업 방식 즉, '강의식 수업'과 '토론식 수업'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강의는 강의, 토론은 토론 아닌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다른 두 가지 수업 방식은 학생에게 여러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첫 번째는 '학생들의 수업 준비', 두 번째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역할' 그리고 최종적으로 '학생들의 배움'에 있어서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순서대로 살펴보자. 먼저 '학생들의 수업 준비'에 있어서 강의식 수업은 나를 포함해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강의, 주입식 수업을 들으며 자란 많은 학생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준비? 안 한다! (하하)" 

사실 강의식 수업은 예습이 완전히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예습을 해 놓으면 안 하고 온 친구들보다 머리 회전이 빨라 더 깊이 있는 질문을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 요즘에는 선행학습을 많이 한다. 하지만, 만약 하지 않고 수업에 간다고 해도 더 앞서지 못할 뿐이지 배우는 데 큰 지장이 없다. 수업을 듣고 난 후에 스스로 공부하면서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게 강의식 공부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토론식 수업 준비는 어떨까? 토론 수업에선, 예습이 필수다.

"필수고 필수고 필수다(중요하니 반복!)."

예습이 없으면 수업도 없다. 토론에도 많은 종류가 있지만,  중·고등학교 때 수행평가로 한 번씩은 해 본 찬반 토론 같은 경우를 생각해 봐도 이 예는 쉽게 알 수 있다. 주제에 대해 찬성·반대로 나뉘어서 그에 대한 정보들을 읽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와야지 토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혹 토론 수업임에도 준비를 안 해도 되는 때가 있다. 내 경우는 세인트 존스에서의 4학년 랭귀지 수업이 그랬다. 포크너, 버지니아 울프 등의 책을 읽었는데, 책의 일정 부분을 수업 시간에 같이 읽고 드는 느낌들을 즉석에서 이야기 하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됐었다. 미리 읽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더 생생한 아이디어, 표현들이 나올 수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튜터(교수)께서는 학생들이 일부러 예습하지 않고 오길 바라셨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특별한 경우이고, 보통은 토론 수업을 하기 위해선 예습이 필수다. 따라서 강의 수업에서 준비를 안 해가는 것을, 사용법을 모르는 군인이 총을 가지고 전쟁터로 나가서 현장에서 사용법을 배우고 총을 쏴 보기 시작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토론 수업 준비를 안 해가는 것은, 군인이 총도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총도 없이 전쟁터로 나간 군인은 어떻게 될까? 아니면 총이 있긴 하지만, 사용법은 모른 채 전쟁터로 나간 군인은 어떻게 될까? 그게 바로 두 번째 차이점, '수업시간에 학생들의 역할'에서 보인다.

총을 들고 탭댄스를 춘다?

100% 토론인 세미나 수업
▲ 세미나 수업 100% 토론인 세미나 수업
ⓒ St.John's Col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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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강의식 수업부터 살펴보자. 강의 수업은 준비하고 가지 않아도 우선 괜찮다고 했다. 어쨌든 총은 모든 군인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총만 가지고 간다면 전쟁터에 나가서 총 사용법을 배우고, 총을 쏴 보기 시작하면 된다. 여기서 총은 교과서라고 할 수 있겠다. 교과서만 가지고 수업에 간다면 교과서 내용을 함께 배우고 그 후에는 스스로 더 파고들면 된다. 이게 강의 수업에서 학생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토론식 수업은 어떤가? 토론 수업에선 우선 총 사용법을 스스로 익히고 전쟁터에 와야만 한다. 총 사용법을 가르쳐 주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오자마자 전쟁이 시작된다. 이미 총 사용법을 익히고 온 학생이라면 자기를 죽이려는 적군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사용법을 어떻게 스스로 익히고 오지? 그걸 배우려고 수업에 가는 건데'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용법에는 '정답'이 없다는 게 또 토론 수업의 핵심이다. 또다시 예시를 보자.

강의 수업에서는 대장이 총 쏘는 법을 가르쳐준다.  <1. 총알을 장전한다 2. 목표물을 조준한다 3. 방아쇠를 당긴다> 그러면 학생들은 그 방법을 배우고 그 방법을 연습한다. 하지만 토론 수업에서는 스스로 사용법을 익히고 오기 때문에 <1. 총을 들고 탭댄스를 춘다 2. 추다가 삘이 오면 방아쇠를 당긴다> 같은 엉뚱한 방법들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서 온다.

전쟁터에서 이들이 하는 일은 자기 방법대로 우선 총을 쏴 보는 거다. 그리고 각자가 연구해 온 방법을 살펴보면서 다른 사람의 방법을 물어보기도 하고, 따라 해 보기도 하고 내 방법을 더 발전시키기도 한다. 도중에 대장이 "야~ 탭댄스는 너무 무의미해!"라고 말하면 탭댄스를 추는 과정을 빼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자기 마음이다. 적군만 죽일 수 있으면 어떤 방법으로 총을 쏘든 괜찮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마지막 단계 '학생들의 배움'이 달라지는 것이다. 강의식 수업을 들은 학생은 모두 총 쏘는 3단계 정석을 배웠다. 모두 같은 정보를 배웠기 때문에 학생들은 그 정보를 제대로 익혔는지 시험을 보게 된다. 하지만 토론식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각자 다양한 자신만의 방법으로 총 쏘는 법을 배우게 된다. 학생들은 시험을 볼 수가 없다.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각자가 생각하고 수업시간에 발전시킨 것이 자신만의 정답이 되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는 지리한 장마의 고통

지금까지 강의와 토론이라는 두 가지 방식의 수업이 학생들의 공부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봤다.

개인마다 자신의 성향에 따라 더 맞는 공부법이 있을 수는 있지만, 강의와 토론 중 어떤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둘 다 장단점이 있고 배우게 되는 것이 달라질 뿐이지 두 방식에서 각자 다른 배움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100% 토론 수업인 세인트 존스에 온다면 어쨌든 간에 적극적으로 질문해야 한다. 자신의 질문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책을 읽고 "그렇구나~ 좋은 책이었어"하고 넘어가거나 줄거리를 정리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런가?", "이건 왜 이럴까?", "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까?"하는 의문을 끊임없이 가져야 하고 그 자신만의 생각을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배움이 시작된다. 그렇기에 세인트 존스에서 학생들은 수업 전에 스스로 공부하고, 질문을 가지고 와야 한다.

수업 시간에 학생이 어떻게 토론에 참여하는지를 보면서 튜터(교수)들은 학생을 평가한다. 그런 이유로 세인트 존스에는 시험을 위한 '벼락치기의 고통' 대신, 매 수업을 충실히 준비해 가서 매 수업시간에 잘 임해야 하는, '끝나지 않는 지리한 장마의 고통'이있는 것이다.

'사고하는 방법의 차이' 극복하기가...

생각을, 질문을 제한하지 말라
▲ 숫자란 무엇인가? 생각을, 질문을 제한하지 말라
ⓒ 조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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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에서 난 나름 엉뚱한 학생의 축에 속했다. 시험에 안 나올 것들만 궁금해 하며 공부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이별한 님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는 현대시이다"라는 정보(지식)를 선생님으로부터 듣는다(1단계). 그리고 나서 (2단계) 이해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질문들을 하고, (예, 어떤 종류의 시들이 현대시인가?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는 구절은 어떤 구절이 있는가?) 답을 찾아낸 후, (3단계) 배움을 얻는다.

이게 보통강의 수업을 통해 배움을 얻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2단계에서 정답과는 관련이 없는 필요 없는 질문들을 많이 했었다. 예를 들면 "현대시라는 분류는 누가 만들었나?", "영원한 사랑에서 영원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떤 것이 영원할 수 있나?"라는 질문들이 그것이다.

그러다 보니 헛된 것(시험에는 안 나올 것)들만 공부하고 있게 됐고 시험 기간에 내 개인적으로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뭔가 배운 것 같은데 내 시험 점수는 내가 배운 것이 하나도 없는 학생임을 보여주었다.

하여튼 그런 성격이었기 때문에 사실 난 토론 수업에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내 성격과는 관계없이 나는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오며 강의식 수업만 들어왔기에 주어진 정보를 이해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공부에 익숙해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토론 형식의 수업은 정말 도전이었고, 한참을 패닉 상태로 갈팡질팡하며 보냈다.

처음에는 내가 영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줄 알았다가 나중엔 소심한 성격 탓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니 꼭 그것만이 내가 수업 때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위에 설명했던 수업 방식의 차이에 따른 '수업 준비 과정'부터 수업시간에 보여지는 '학생들의 태도의 차이', '배움의 차이'까지 모든 과정이 다 달랐던 것이 제일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나는 강의 수업에 가는 학생의 스타일로 공부해서 토론 수업에 가 있었던 것이다. 스타일뿐만 아니라 이 모든 차이점의 기반인 '사고하는 방법의 차이'를 극복하는 게 제일 큰 어려움이었다.

예전 기사 중에 잠깐 언급했지만 나는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왔고, 세인트 존스라는 고전 원서를 토론으로 공부하는 학교를 발견해 이곳에서 4년을 보냈다. 이제 곧 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 학교의 지원을 받아 짧은 과정이지만, 뉴욕에서 영화 제작 프로그램을 듣게 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빡빡한 과정이라 글 쓸 시간이 없다는 건 개인적인 핑계다. 잠깐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간 후 다시 세인트존스 대학에 관한 나머지 글 십여 개를 더 올릴 예정이다.

지금까지 올린 글들은 대부분이 세인트 존스대학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수업 내용이나 학부 과정에 관한 설명)였다. 다음 글들에서는 토론과는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 학생으로서 토론공부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 외국인 학생으로서 고전 원서들을 읽느라 어려웠던 점, 영어는 또 얼마나 어려웠는지, 하지만 어떤 즐거움들이 있었고 어떤 것들을 배웠는지에 대해서 조금 더 개인적일 수 있지만 재미있는 기사들을 쓰고 싶은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사실 나는 3주 전인 5월 24일에 졸업했다. 지금은 뉴욕의 뉴욕필름아카데미에서 영화 제작 4주 단기 코스를 듣고 있다. (졸업하고 이사를 와 뉴욕에 자리를 잡고 프로그램을 시작하기까지 좀 바빴다는 핑계로 기사 쓰기가 또 다시 지연됐는데 정말 죄송하단 말씀을 드리면서…) <오마이뉴스>에 세인트존스 대학에 관한 기사를 20부작 정도 연재할 예정이지만, 한 달쯤 잠깐 쉴 생각이다.

개인 카페 (http://cafe.naver.com/nagnegil)에도 연재중입니다.



태그:#세인트 존스 대학, #고전 공부, #ST.JOHN'S COLLEGE, #토론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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