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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및 민족비하 발언 등으로 거센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청사 별관에 출근하고 있다.
▲ 버티기 들어간 문창극 총리후보자 친일 및 민족비하 발언 등으로 거센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청사 별관에 출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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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그의 과거 글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복지는 부패보다 무섭다'거나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의 사과가 필요 없다'는 등 그의 극단적으로 편향된 시각을 두고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정치계에서도 적지 않은 파문이 일고 있다. 17일엔 친박계인 서청원 의원이 "국민을 위한 길이 무엇인가를 잘 판단해야 된다"라며 사실상 문 후보의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과거 글을 가지고 사과할 의향이 없다'던 문 후보자는 비난 여론이 더욱 거세지자, 결국 지난 15일 '상처를 받으신 분이 있다면 송구스럽다'는 다소 애매한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편향적인 사회인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논란이 일기 10여 년 전인 2002년과 2003년, 이미 문 후보자의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의 신문모니터분과에서 선정한 '이 달의 나쁜 칼럼'으로 수차례 선정된 바 있다.

그 글들을 살펴보면 최근 문제가 되었던 글과 논조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글에서 드러난 그의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단순한 사과로 해결될 '실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불평등 없애야 하지만, 나라가 도울 필요는 없다?

2011년 한 글에서 복지를 '공짜 병'으로 취급했던 문 후보자의 '복지 혐오'는 2003년의 칼럼 <불쌍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나>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골치 아픈(?) 가난한 이웃을 국가에게만 떠맡길 건가'라는 부제목을 단 이 글은 언뜻 보기에 빈곤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글의 서두에서 문 후보자는 극빈층의 불행한 삶이 "도시화의 문제요, 경제적 차별의 문제"라고 말하며 스스로의 삶에 바쁜 현대인들이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음 문단에서 그는 돌연, 그렇기 때문에 국가적 수준의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일은 "가난의 문제를 국가가 다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라며 "골치 아픈 이웃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떠맡길 바라는 것이다"라고 몰아붙인다. 또 "(국가)보조금은 이를 받는 사람들을 마치 니코틴처럼 인이 박이도록 만들고 그 병은 곧 전염된다"는 등 극단적인 비유조차 서슴지 않는다.

개인주의와 양극화가 심각해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생활수준 대로 모여 살게 되고, 때문에 자신과 가까이 있지 않은 극빈층의 현실을 잘 몰라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초반 논리다. 그의 말대로라면 모든 국민에게서 세금을 걷어가는 국가가 빈곤층을 지원하는 일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러나 문 후보자는 그런 사회복지를 경제 파탄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치인이 아닌 '보통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이웃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애매하고 비논리적인 결론을 내놓는다.

당시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신문모니터분과는 이 칼럼을 두고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면서 복지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평했다. 또 "그간 복지나 분배 정책에 대해서 <중앙일보>가 늘 기업과 재벌 같은 경제적 강자의 편에 섰던 것을 감안하면 그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먼저 필요했다"고 평하며 이 글을 '이 달의 나쁜 칼럼'으로 선정했다.

이라크전 반대 시위에 '미국과 북한, 누가 더 나쁜 나라냐?'

친일 및 민족비하 발언 등으로 거센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청사 별관에 출근하고 있다.
▲ 버티기 들어간 문창극 총리후보자 친일 및 민족비하 발언 등으로 거센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청사 별관에 출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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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후보자의 국제정세에 대한 생각도 1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았다. 특히 그는 글 곳곳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을 숨김없이 드러냈는데, 그 중 2003년의 <反戰을 묻는 막내딸에게>라는 칼럼은 그 정도가 심하다.

그는 글 도입부부터 "미국은 상대적으로 평화의 이상을 추구하는 나라였다"며 "제국주의가 창궐했을 당시 강대국 가운데 유일하게 타국의 영토에 욕심을 내지 않는 나라였다"고 말하지만, 미국이 스페인 식민지 대부분을 획득해 점령했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는 개인적 호감을 넘어선 역사의 왜곡이다.

물론 바로 다음 문장에 "미-스페인 전쟁이라는 예외가 있다"고 덧붙여 필리핀, 괌, 쿠바 등 수많은 과거의 미국 식민지들을 간단하게 '예외'로 만들어버렸으니 아주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다.

이어 이 글은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야 하는 당위를 구구절절 설명해 나간다. 국제법과 국제 여론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려던 '이상주의 국가' 미국이 9·11 테러로 인해 전쟁을 불사하는 '현실주의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당연히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라고 이름 붙이던 문 후보자는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몇몇 국가들이 반전 모드를 취하는 것을 두고 '프랑스와 독일인의 데모는 그들 자신의 국가이익과 맞아 떨어진다'고 평한다. 그런 다음 "국력이 중간 정도인 우리나라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라며 "자존심이 상할지 모르나 미국의 질서에 포함되든지, 아니면 저항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리고는 별안간 다음 문단에서 "우리에게는 북한 문제도 있다"며 "반전 데모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다음 북한을 공격할 전쟁 세력이라고 주장하는데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하고 북한으로 화제를 돌린다. "그들이 핵을 만들어 테러국을 지원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스스로 답변한 그는 글 말미에서,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는 미국이 나쁜 사람이냐고 물었던 자신의 막내딸에게 되묻는다. "누가 더 나쁜 나라냐, 미국이냐? 북한이냐?"

미국의 이라크전 개시와 우리나라의 파병에 반대하는 반전 시위에 관한 글이 결국 '미국과 북한 중 누가 더 나쁜가'로 귀결된 것이다. 이는 문 후보자의 편향적인 세계관과 대북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외에도 그는 2009년의 칼럼 <미사일을 이기는 힘>에서 "햇볕정책과 6자회담은 이미 실패했으며, 북한과 같은 반이성적인 집단과의 협상은 무용지물"이라는 일방적인 결론을 내린 바 있고, 2002년 칼럼 <NLL은 자유의 선이다>에서 "(서해 교전 이후) NLL 논란, 우리 어선의 월선 얘기가 왜 친정부 매체에서 나오느냐? 정부는 그 까닭을 알 것이다"는 등 근거 없는 비난을 내보내기도 했다.

"이념 강조하면 다양성에서 멀어진다"더니...

이처럼 문 후보자의 글은 편향적이고 지나치게 주관적이라는 비판을 여러 번 받아 왔다. 그럼에도 꿈쩍하지 않던 그는 진보정당 집권기, '다양성'의 논리를 들며 정권에 보수 세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라고 요구했다.

2003년의 칼럼인 <진정한 다양성>에서 문 후보자는 당시 집권 초기였던 노무현 정부가 획일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다양성은 평등이 아닌 자유에서 나온다"며 "평준화와 평등은 다양성과 반대의 개념"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전교조는 학생들에게 반미니, 반전이니 하는 한 쪽 생각만을 편식하게 한다"고 비판하고, "사회에는 진보 신문과 보수 신문이 모두 있어야 하는데 대통령은 왜 유독 보수 신문만 비판하느냐"며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다른 글에서 본인의 입맛과 맞지 않는 복지 정책 등을 '부패보다 무서운 병'으로 몰아붙이던 모습과는 상반된다.

그는 이 칼럼에서 "이념을 강조하면 다양성과 거리가 멀어진다"며 "이념은 그것이 요구하는 목표를 위해 사회를 재단하려 하기"때문이라고 했다. 국정원 인사를 임명했던 일을 두고도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한다는 겸손만 있었다면 일을 이렇게 처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하며 "이념이 무엇이든 여야가 반대하면 이를 인정하는 것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 말을 현재의 문 후보자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본인이 이념에 매몰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각종 국가 행정을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조율할 수 있을 만큼 객관적이고 냉철한 사람인지를 과거의 글과 함께 돌아보기 바란다. 그리고 지금 야당 의원들과 여당의 일부 의원들까지 문 후보자의 자질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고, 그의 '정면돌파'가 과연 10년 전 글에서 스스로 말했던 '다양성'을 존중하는 길인지 고심해보기 바란다.


태그:#문창극, #총리, #박근혜, #중앙일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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