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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에 사는 시각장애 1급인 A씨는 지난 토요일 오후에 귀가하다 황당한 일을 당했다. 서울 신림동 호림박물관에서 안내견을 데리고 나와 시내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버스 기사가 승차를 제지했다.

"앞문 계단으로 올라가 버스 카드를 찍으려는데... 갑자기 기사님이 "어디서 개를 데리고 타려고 해~ 당장 내려!"라고 윽박지르더라고요."

A씨는 "동행한 개는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는 안내견임을 알렸는데도 버스 기사는 '그런 거 난 몰라. 다 필요 없어. 당장 내려'라며 승차를 제지했다"고 주장했다.

영화 <블라인드>에서 시각장애인 주인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안내견의 모습.
 영화 <블라인드>에서 시각장애인 주인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안내견의 모습.
ⓒ 영화 <블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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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 보조견을 승차 거부할 수 없음을 설명했는데도 버스 기사는 A씨를 끌어내리고자 유리문을 열고 나왔다. A씨에 따르면 버스기사는, 버스카드를 찍으려는 A씨의 손을 밀치며 "벌금? 필요 없어. 벌금 낼게. 당장 내려. 벌금 낼 테니까 내려"라고 말했다고 한다.

버스를 못 타면 집에 갈 수 없는 A씨는 기사와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하다고 판단해 다른 승객에게 "제가 시각장애인인데요. 제 보조견과 함께 승차해도 될까요?"라고 묻고 승객들의 동의를 받고서야 겨우 승차했다. 

A씨는 "내가 자리에 앉은 뒤에도 기사는 '개 데리고 타려면 묶어서 박스에 담아서 타. 박스에 담아서 타란 말이야'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주장했다.

당시 A씨와 동행한 안내견은 시각장애인 안내견 표시 조끼와 대한민국 보건복지부장관이 승인한 장애인 보조견 보조표식을 착용하고 있었다.

장애인복지법 제40조3항에서는 "누구든지 보조견표지를 붙인 장애인 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공공장소, 숙박시설 및 식품접객업소 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출입하려는 때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동법제90조3항에서는 제40조제3항을 위반하여 보조견표지를 붙인 장애인 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 장애인 보조견 훈련자 또는 장애인 보조견 훈련 관련 자원봉사자의 출입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한 자에게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한 두 번도 아니고 대중교통 이용 시마다 수난

A씨의 수난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6월 15일)도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해야 했다. A씨는 일을 보기 위해 오전 10시께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서울 신림으로 향하는 9번 시내버스(삼영운수 소속)을 타기 위해 기다렸다.

A씨와 그의 아버지는 안내견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다른 사람들이 모두 탈 때까지 기다리며 정류장에서 대기했다. 그런데 A씨가 타려는 순간에 갑자기 버스 문이 닫혔다.  곁에 있던 아버지가 손을 흔들고 달려가면서 버스 앞문을 두들기고 버스 앞을 가로막고서야 버스는 멈췄다. 그러고도 버스 문은 한동안 열리지 않았다. 문을 두드린 뒤에야 겨우 버스에 탔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에요. 전 일주일에 2, 3회 정도 같은 회사 버스를 이용하는데 대략 2번에 한 번 꼴로 뭔가 한 마디씩 들으며 버스에 타요. 이번 일은 평소보다 조금 더 심한 정도... 이렇게 한 번씩 승차거부를 당할 때마다 사회 약자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와 소외감, 위축감, 정신적 피해로 다가 오는 지 몰라요."

A씨의 하소연이다.

이런 안내견 승차거부에 대해 회사측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운전기사에게 확인한 결과 처음에는 안내견인 줄 모르고 그랬다더라"라며 "나중에 '박스에 넣어서 타라'고 한 것은 일반적인 동물을 데리고 탈 경우 박스에 넣어서 이동토록 하는 것이 생각나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영운수 쪽은 회사 차원에서 재발방지를 위해 기사에게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기사를 상대로 '향후 안내견 등 장애인보조견을 승차거부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안양시, "과태료 부과는 당장 어렵다"

안내견 등 장애인보조견들이 출입을 제지당할 때마다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보여왔고, 가해자를 비판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A씨는 사건 후 삼영운수 인터넷 게시판에 부당한 승차 거부를 호소했고, 경기도청, 안양시청,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민원을 제기했다. A씨는 자신의 SNS와 인터넷 게시판 등에도 부당함을 호소했다. 네티즌의 반응은 뜨거웠다. 페이스북 공유 200회가 넘었고, A씨가 글을 올린 어느 게시판글 조회수는 3만 건을 넘었다.

16일과 17일 양일 간 삼영운수 홈페이지(http://sbcitybus.com)가 접속폭주로 마비되기도 했다. 삼영운수 쪽도 공식적인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해결된 것일까?

당사자인 A씨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가해자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물론 버스회사는 관할 시청인 안양시에게 '주의' 공문을 받았고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직원 교육을 실시하라는 권고는 받았지만, 실질적인 행정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안양시청 장애인복지과의 담당자는 "현재는 사건 정황만 있는 관계로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 과태료 부과가 어려울 듯하다"며 "대중교통을 담당하는 교통행정과와 함께 관내 모든 버스를 포함한 대중교통회사에 대하여 직원들의 교육지도를 요구하는 한편 향후 재발 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음을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안내견이 출입을 거부당할 때마다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관심은 뜨겁다. 그러면서도 원천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는 왜일까. A씨는 사회적 무관심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A씨가 모욕적인 승차거부를 당할 때 버스 안 많은 승객 중 자신을 도와주거나 기사에게 항의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참 슬펐습니다. 혼자 거인을 상대로 싸우는 어린아이의 기분이라 할까요? 대중의 침묵에 가슴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 무관심에 도전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비록 작은 도전이라도요. 거인을 상대로 던지는 작은 어린아이의 외침이라도 이런 목소리를 내서 무관심한 사회의 시선을 조금이나마 약자 쪽으로 향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A씨가 이번 사건을 인터넷 등을 통해 알리려 한 이유이다.

"우리는 늘 버스를 기다리며 '기사가 승차를 거부하면 어떡하나, 호통을 치면 어떡하나' 죄 지은 사람마냥 미리 걱정부터 합니다. 그만큼 승차거부, 출입거부는 안내견과 그 파트너에게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그 탓에 저는 마음에 굳은살이 박혔습니다. 이번 사건 또한 그저 흔한 일로 치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고만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좀 덜 아프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친구들, 후배들 덜 다쳤으면 좋겠습니다.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A씨처럼 안내견을 동반하는 시각장애인이 앞으로 시내버스를 탈 때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에 탈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태그:#안내견, #시각장애인, #시내버스, #탑승거부, #삼영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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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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