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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김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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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19 전 남편이 도동에서 미싱 한 대를 사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옷이 잘 팔려 금세 미싱을 약 20대나 들여놓았다. 남대문시장 대도백화점 2층에 직매점을 내어 사업을 활발히 꾸려나갔다. 단체복을 주문받아서 상당한 돈을 벌기도 했다. 단체복 사업은 규모를 크게 해야 했다. 이소선이 보기에는 너무 무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이제 단체복은 너무 규모가 큰 것 같으니 이쯤에서 손을 떼는 게 어떨까요?"

이소선은 남편에게 그동안 생각했던 바를 얘기했다. 그러나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돈이 벌릴 때 한꺼번에 왕창 벌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소선은 남편의 생각을 바꿀 수가 없었다.

4·19가 일어나기 직전 남편은 단체복 생산을 엄청나게 확장시켰다. 그동안 닦아놓은 사업기반을 이용하여 원단을 많이 쌓아두고 있었다. 남편은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거절하지 않고 다 받아들였다.

이때 남편은 사업상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고는 사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마셔야 했다. 사업을 하다 보니 시장에 있는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서 좋지 못한 사람을 사귀고 있었던 모양이다. 남편은 친구와 어울려 엉망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취해서 인사불성인데 그 친구는 남편의 주머니를 뒤져서 돈 받을 증서와 도장을 훔쳐가 버렸다. 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증서와 도장을 찾아보니 없어졌다. 그 친구가 돈을 다 받아 챙겨서 줄행랑을 놓아버린 것이다. 순간의 실수로 많은 돈을 다 날려 버린 일이 벌어졌다.

마치 그 무렵 4·19가 터져서 세상이 혼란스러웠다. 세상이 술렁거리니 도망간 친구를 찾을 수도 없고 장사도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남편은 계속 단체복을 많이 만들어서 납품을 했지만 대금을 받아낼 수가 없었다. 따라서 수급을 할 수가 없으니 원단 값이며 공임 등 지불 해야 할 돈을 지불할 수가 없었다. 반면 갚아야 할 돈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으니 사업이 망해갈 수밖에 없었다. 가지고 있던 재산을 빚잔치에 다 날리고 집 한 칸 없는 빈 털털이가 되어 버렸다.

전상수와 이소선은 너무나 격심한 충격에 삶에 대한 의욕을 완전히 상실했다. 하루 아침에 무기력한 인간이 되어 버렸고 건강은 말할 수 없이 나빠졌다.

이들은 이태원에 있는 남편의 친구 집에 임시거처를 얻어 더부살이를 해야만 했다. 이소선은 밤만 되면 어질어질하고 사람조차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심각한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도대체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이 생명을 이어가기가 이다지도 힘든 일이란 말인가. 살 만하다 싶으면 어느새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신세로 돌변했다. 이소선이 이처럼 정신을 못 차리니 아이들인들 오죽하겠는가. 하는 수 없이 아이들 외할머니가 가끔가다 오셔서 이들을 도와주었다.

태일이와 태삼이는 어느덧 커서 학교에 다닐 때가 되었다. 이들은 근처 남대문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이소선 남편의 친구 집에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한 분이 살고 있었다. 남편 친구의 아버지이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밥도 제 때에 해주지 않고 숫제 굶어죽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소선과 전태일은 이 꼴을 그냥 보고 넘김 수가 없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남의 집에 더부살이하는 처지에 주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나무랄 수도 없고 안타까운 마음은 굴뚝같은데 손을 쓸 만한 처지가 못 되니 답답하기만 했다.

이소선은 보다 못해 태일이를 불러서 할아버지에게 먹을 것을 갖다드렸다. 태일이는 할아버지에 대한 정성이 지극했다. 어찌나 불쌍하게 보았든지,어린 것이 자기 먹을 것을 할아버지에게 드리곤 했다. 주인내외가 고운 눈으로 볼 리가 없었다. 눈에 거슬리는 하루하루가 지나가다 하루는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이소선은 수제비를 끓여서 아이들하고 먹다가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갖다드렸다.

"자기들 먹을 것도 없는 주제에 남 동정하는 거야 뭐야. 꼴 보기 싫으니 당장 우리 집에서 나가줘요. 알았어요?"

주인집 여자가 지켜보고 있었는지 방문을 닫고 나오는 이소선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이 집에서 나갈 형편도 안 됐지만, 갈 데가 있다 해도 주인 여자에게는 대꾸를 할 마음이 안 생겼다. 이소선은 못 들은 척하면서 지나쳐 버렸다.


태그:#이소선,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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