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계에서 유일한 존재이다. 인간은 모두 다른 특성을 가진 개체로 살아가며, 심지어 쌍둥이조차 어느 지점에서는 구분 가능한 차이점을 드러낸다. 누구도 완벽하게 같은 존재를 만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모습과 성격이 다양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만약, 어느날 갑자기 나와 똑같은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 키도 생김새도 매우 비슷해서 거울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자신과 닮은 인물 말이다. 거기다 목소리와 표정, 말투까지도 닮아 있다면 상당히 무섭지 않을까.

어딘가 섬뜩한 부분이 짙은 이 소재는 과거 출간되었던 소설 <도플갱어>의 설정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쓴 것으로도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글을 원작으로 드니 빌뇌브 감독은 영화 <에너미>를 통해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펼쳐낸다.

도플갱어, '또 다른 나'와의 조우

 영화 <에너미>의 한 장면. 자신과 똑같이 닮은 사람을 발견한 아담과 앤소니는 불안과 혼란에 휩싸인다.

영화 <에너미>의 한 장면. 자신과 똑같이 닮은 사람을 발견한 아담과 앤소니는 불안과 혼란에 휩싸인다. ⓒ (주)누리픽쳐스


주인공 아담(제이크 질렌할)은 어느 대학의 역사학 교수로 일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안정된 직장과 아름다운 애인, 자신만의 근사한 아파트를 가진 아담은 언뜻 보기에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아가는 듯하다. 그러나 정작 그는 늘 공허함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일상의 어느 부분에 채울 수 없는 여백이 자리잡은 듯한 고통에 밤을 지새우고, 이유 모를 외로움에 시달린다. 영화 속에서 희뿌연 안개가 가득 깔린 도심의 풍경은 스스로도 고민의 근원을 모르는 아담의 심리 상태를 대변하고 있다.

무료함을 달래고자 아담은 동료교수의 추천으로 지나간 영화를 대여해서 집에서 시청한다. 그날 밤 악몽을 꾸다 잠에서 깬 그는 영화에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DVD를 다시 재생한다. 그리고 화면 안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서 있는 장면을 발견한다. 엔딩 크레딧 자막을 훑어보고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끝에 그는 무명배우 앤소니(제이크 질렌할)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에 이끌려 아담은 앤소니가 사는 곳을 수소문해 전화를 걸고 만나자고 말을 전달한다. 앤소니는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끼다가 임신 중인 아내 헬렌(사라 고든)이 그의 불륜을 의심하자 오해를 풀기 위해 아담을 만날 약속을 잡는다. 표면적으로는 만남의 이유가 '불륜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지만 사실 앤소니도 아담에 대한 이상한 이끌림을 느끼며 혼란스러워 한다.

자석처럼 서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불안함은 더 커져만 가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각자의 욕망은 상대방을 조여드는 것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빠져드는 아담과 앤소니, 과연 '도플갱어 도시괴담'처럼 둘 중 한 사람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한 편의 훌륭한 스릴러, 돋보이는 1인 2역

 영화 <에너미>의 한 장면. 앤소니(제이크 질렌할)는 자신과 닮은 아담의 애인인 메리(멜라니 로랑)를 노린다.

영화 <에너미>의 한 장면. 앤소니(제이크 질렌할)는 자신과 닮은 아담의 애인인 메리(멜라니 로랑)를 노린다. ⓒ (주)누리픽쳐스


영화 <에너미>는 초반부터 끝까지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를 전반적인 배경으로 깔아놓는다. 그 덕분에 중반부 두 남자의 만남 이후의 아찔함이 한층 고조되는 효과를 낳는다. 낮게 깔리는 영화음악과 잘 짜여진 줄거리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유지되도록 돕는다. 어느 것 하나 힘을 잃지 않고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것은 감독의 연출력과 조율능력을 높게 평가할 만하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1인 2역을 훌륭히 소화해낸 배우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력이다. 성격이 상반된 아담과 앤소니 역할을 모두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그를 보면, 마치 얼굴이 닮은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 같다. 이는 <러브 앤 드럭스> <소스 코드>와 <프리즈너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색다른 캐릭터를 끊임없이 연기하며 연기 내공을 쌓은 결과로 보인다. 표현할 수 있는 인물과 장르의 스펙트럼을 넓혀 온 제이크 질렌할의 매력이 이 영화로 새삼 다시 드러난 셈이다.

두 남자의 물고 물리는 관계도 영화감상의 묘미다. 앤소니가 먼저 아담의 애인인 메리(멜라니 로랑)를 탐내면서, 서로 잘 지낼 수도 있을 것 같던 닮은 꼴 두 남자의 특별한 관계는 붕괴하기 시작한다. "우리 쌍둥이 아닐까"라고 말할 정도로 공통점이 많은 그들은 각자의 아내와 애인도 미처 누가 누군지 알아채지 못한다는 점을 발견하는데, 관계의 양상이 급변하는 계기도 바로 이 지점이다.

한 명이 다른 이의 여자를 가지려는 욕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며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배우이기에 연기에 능하면서도 다혈질에 막무가내인 앤소니는 아담의 소심한 성격을 약점 삼아 강압적인 요구를 한다. 불안과 혼란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던 아담은 결국 앤소니를 막지 못하고 각자의 삶을 염탐하던 둘은 뒤바뀐 상황에 놓인다.

욕망 앞에 쉽게 '적'이 되는 타인

 영화 <에너미>의 포스터.

영화 <에너미>의 포스터. ⓒ (주)누리픽쳐스

누구나 때로 일탈을 꿈꾼다. 그 이유는 우리가 '욕망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존의 것을 유지하고 싶은 '안정 추구'와는 별개로, 갖지 못한 무언가를 욕심내는 마음에 자신의 삶 바깥에 '이상향'을 그려보곤 하는 것이다. 욕망이 꿈틀대는 순간 비교가 시작되고, 비교를 위해 잣대를 들이대면 심리적으로 '남의 떡'이 더 커보이게 된다. 이런 사고방식은 동기부여의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심한 경우에는 타락을 부추기는 위험한 늪과도 같다.

영화 <에너미>의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행동이 정확히 그러하다. 누구보다도 공유할 공통된 관심사와 닮은 면이 많던 두 사람이건만, 내면의 욕망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순간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버린 아담과 앤소니의 모습 말이다. '또 다른 자아'와도 같던 둘은, 영화의 제목처럼 욕망 앞에서 쉽게 '적'이 되어 버리는 타인에 불과했다. 그리고 둘의 관계는 곧 많은 욕망이 간단히 정당화되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이자 그 사회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현실을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과도 같다.

영화 중간에 곳곳에서 등장하는 CG처리된 초대형 거미는 곧 인간 내면의 추악한 심리, 더러운 욕망을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거미가 나타나는 장면 전후의 상황을 살펴보면 이러한 해석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등장인물이 결혼한 유부남인데도 다른 여자를 탐하고, 욕구를 채우고자 신분을 위장하는 모습은 모두 추한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은가. 모든 욕망이 부패했다거나 죄악인 것은 아니지만, 윤리와 법의 경계를 넘어선 앤소니의 행동은 거대한 거미의 기괴한 모습이 가져다 주는 것처럼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한 편의 훌륭한 스릴러인 <에너미>는 일상화되어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욕망을 대상화함으로써 이를 돌아보게 만든다. '도플갱어' 괴담이 그렇듯이 이 영화는 욕망의 충돌을 보여주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용돌이를 지긋이 응시한다. 영화의 초반, '혼돈은 아직 풀리지 않은 질서일 뿐이다(Chaos is order as yet undeciphered)'라던 문장이 공포의 여운과 함께 남아서 한참을 맴돈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에만 관대하면서, 타인의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혐오스럽게 생각하지는 않는가? 영화 <에너미>가 제목과 비유로 던지는 물음과 더불어 소름끼치는 상상을 통해 관객의 공포심을 자극한다. 무심히 발걸음을 옮기던 어느 거리에서, 당신이 가진 어떤 것을 탐하는 또 다른 당신을 마주칠 수 있다고. 추악함을 숨긴 채 당신의 얼굴을 한 도플갱어가 일상 가까이에 숨어서 거미처럼 소리없이 당신에게 다가올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욕망의 추종자가 타인이 아닌 당신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당장, 두려움을 삼키고 거울을 들여다 볼 일이다.

에너미 도플갱어 제이크 질렌할 멜라니 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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