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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얼마 전 한 강연에서 "신촌 동성애 축제는 나라가 망하려는 것" 이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소수자 혹은 이번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그의 빈약한 이해 수준이 보이는 발언이다. 

퀴어문화축제는 1년에 한 번 억압돼 있던 소수자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축제다. 이 축제는 벌써 15회째를 맞았다. 특히 지난 7일 열렸던 퀴어문화축제는 신촌 거리에서 이뤄져 화제가 됐고, 사상 최대 인파가 몰리며 화제가 됐다. 이 행사에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자원활동가들이 참여해 그 모습을 옮겨 보고자 한다. - 기자말

축제 며칠 전부터 신촌역에서는 피켓 등을 동원한 퀴어문화축제 반대 시위가 계속되었다.
▲ 축제 사흘 전 신촌역 1인시위 축제 며칠 전부터 신촌역에서는 피켓 등을 동원한 퀴어문화축제 반대 시위가 계속되었다.
ⓒ 공익인권법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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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퀴어문화축제 몇 주 전부터 신촌역에는 퀴어문화축제에 반대하는 피켓을 든 사람들이 등장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역사 안에서, 날씨가 좋은 날에는 광장에서 이들은 피켓을 펼쳐 들고, 굳은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 이들의 노기 서린 얼굴에선 확신과 결의가 느껴졌다. 이 시점에서 이미, 아니 아마 한참 전부터, 서울 한복판 신촌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의 우여곡절은 예고되어 있었다.

6월 7일, 연휴의 가운데 토요일. 신촌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였다. 후에 '퀴어문화축제 사상 최대 인파'라고 보도될 만큼 많은 인원이었다. 독일·프랑스·미국대사관과 구글 등이 지지를 표하며 부스를 열었고, 연세로를 메운 각종 단체의 부스는 몰려든 사람으로 정신이 없었다.

중앙 무대에서의 공연에 환호는 신촌을 메웠고, 인근 건물마다 창가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평소에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자리였고, 일 년에 단 한 번 있는 이 기회를 다 함께 즐겼다. 이 축제는 그 자리에 모였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한 것보다 큰 호응을 받았다.

신촌 연세로 일대가 퀴어문화축제에 몰린 인파로 메워지고 있다.
▲ 퀴어문화축제 공연 전경 신촌 연세로 일대가 퀴어문화축제에 몰린 인파로 메워지고 있다.
ⓒ 공익인권법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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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렇게 무난하게 행사가 끝날 리 없었다. 사실 행사장에는 각종 보수단체가 먼저 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 이미 집회 신고와 관련해 서대문구청과 밀고 당기기가 있었고, 보수 기독교 단체에서 이 지역에 이중으로 집회 신고를 해놓은 상태였다.

참가자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던 중앙무대 바로 옆 대로에서는 자칭 '청소년 미래발전소' '연세로 건전문화 만들기 본부' 등 여러 가지 단체의 이름을 걸고 집회가 한창이었다. 이들의 표면적인 이유는 '세월호 추모집회'였다. 세월호를 팔아 이들은 퀴어 페스티벌에 대한 혐오 전단을 돌리고, '동성애 반대' 서명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 집회를 명분으로 이들은 원래 퀴어 퍼레이드 행진 경로였던 연세로를 수백 개 의자로 메우고 인간 바리케이드를 만들 수 있었다. 사상 최대의 퀴어 퍼레이드에 대한 사상 최대의 반작용이었다.

행사 내내 '회개'와 '죄악'을 외치는 사람들의 방해가 있었고, 중앙무대 앞에서는 아예 일렬로 서서 동성애 반대 피켓을 흔들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은 깨지지 않았다. 이 아슬아슬한 균형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행사의 메인, 퍼레이드가 시작할 때였다.

연세로를 거쳐 신촌을 한 바퀴 돌 예정이었던 행진은 의자 장벽에 막혀 좁은 길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하지만 행진을 시작한 지 30초, 행렬이 명물거리에 들어서자마자 걸음은 멈추어야 했다. 행렬의 앞을 기독교 및 보수단체에서 가로막은 것이다.

보수단체, 종교단체 등에서 퀴어문화축제의 행진을 막기 위해 길에 누워 있다.
▲ 행진 방해 집회 보수단체, 종교단체 등에서 퀴어문화축제의 행진을 막기 위해 길에 누워 있다.
ⓒ 공익인권법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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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대기하던 경찰들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고, 지나가려는 퍼레이드 측과 막으려는 보수단체의 대치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보수단체 쪽에서는 급기야 길을 내주지 않기 위해 수백 명이 스크럼을 짜고 길에 드러누웠다.

이들의 옆에서는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동성애 반대'를 외쳤고, 드러누운 사람들은 <애국가>를 부그러나 "대한민국"을 외쳤다. 이 보기 드문 희·비극은 4시간을 가까이 이어졌다. 1만여 명이 넘었던 퀴어문화축제 측 인원은 눈에 띄게 줄었고, 퍼레이드에 사용될 예정이었던 퍼레이드카 대부분은 대여 시간이 지나 반납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안내 속에 한밤중 행진은 이뤄질 수 있었다. 온종일 대치 끝에 얻은 20분간의 행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 하나돼 즐거워했다.

기나긴 대치 끝에 퀴어 퍼레이드는 밤중에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이루어져야 했다.
▲ 밤중에 시작된 행진 기나긴 대치 끝에 퀴어 퍼레이드는 밤중에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이루어져야 했다.
ⓒ 공익인권법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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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눈물도, 분노도, 즐거움도 많았다. 성소수자들에게 주어진 1년 중 단 하루조차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이 괴물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청소년들, 청년들, 부모님들이었다는 것이 절망적이었다. 그럼에도 행진이 끝나고 다 함께 외쳤다.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이 날은 결국 절망으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 날을 함께한 다른 자원활동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날을 되새기며 글을 마친다.

우여곡절 끝에 행진을 끝내고 감격한 참가자들이 끌어안고 있다.
▲ 감격한 참가자 우여곡절 끝에 행진을 끝내고 감격한 참가자들이 끌어안고 있다.
ⓒ 공익인권법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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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 '혐오할 자유'라는 것
한지수(공감 19기 자원활동가)

"그들이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즐기는 축제. 이번 축제를 즐기기 전까지 내가 퀴어문화축제에 대해 갖고 있었던 생각이다. 나는 '그들'의 축제에 내가 가도 될까 하는 의문 때문에 그동안 축제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올해 축제에 참여하고 내 생각은 바뀌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촌 거리를 메웠고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환호성이 열기를 고조시켰다. 퀴어문화축제는 '그들'의 축제가 아니라 '우리'의 축제였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일부 반대세력들이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길을 막고 퍼레이드를 방해했다. 형식적인 해산방송 두세 차례 이후 고립된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짓밟고 연행해가던 경찰들은 그날 오지 않았다. 허락된 그 날 하루조차도 혐오 앞에 무기력해지려 하자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쏟아지는 혐오와 맹목적인 비난 속에, 축제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결국 사랑이 혐오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내며 퍼레이드까지 무사히 마쳤다. 행렬이 신촌을 통과할 때 터져 나온 그 환호성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퀴어문화축제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채 몇 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퀴어문화축제는 나의 인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15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그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나처럼 그들의 축제를 무심하게 지나치던 사람, 혐오로 가득 찬 목소리로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은 세상을 살아내고 있었다. 내 모습을 반성하고 돌아보며,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는 말을 가슴 속에 새길 수 있었던 좋은 하루였다."

김다흰(공감 19기 자원활동가)

"나는 성 소수자인 친구에게서 '벽장'이라는 표현을 처음 배웠다. 행여나 정체성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나날들. 자신의 고민이나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시간들. 때문에 많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생활을 벽장 안의 삶이라고 얘기한다.

성 소수자에게 퀴어문화축제의 의미는 각별하다. 일 년에 딱 한 번 주어지는 벽장 밖 세상. 성 소수자와 그들의 고민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울 시내를 행진하고, 공연을 즐기고, 웃고 떠드는 시간이 어떻게 소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하루를 위해 많은 이들이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다.

50여 명의 사람들이 무지개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선지 15년, 퀴어문화축제는 1만여 명이 참여하는 행사가 되었다. 그런데 이 1만여 명의 하루를 위해 시간표를 짜고, 장소를 선정하고, 사용 허가를 받고, 장비를 대여하고, 실무를 기획하는 사람들은 겨우 열댓 명이 넘을까 말까다. 기획단원들은 생업이나 학업에 종사하는 와중에 시간을 쪼개고, 후원금을 내가며 축제를 준비한다. 활동비를 받는 사람은 상근하는 사무국장 한 명뿐이다. 누군가에게 벽장 밖 하루를 건네기 위해 일 년 내내 많은 것들을 떠안는 그들이 정말 고맙다."

오경민(공감 19기 자원활동가)

"신촌역에 가까워지면서부터 신이 났다. 나의 첫 퀴어문화축제! 이전에 가본 친구들의 경험담을 들어서 매우 기대됐다. 다양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 자신을 드러내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행진하는, 내가 경험한 것 중에 가장 '축제다운 축제'일 것 같았다. 신촌역에 내렸다. 사람이 아주 많았고, 공연은 신 났고,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동성애를 반대한다며 팻말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축제를 즐겼다. 큰 즐거움의 흐름에 장애가 되지 않을 정도의 훼방인 것 같았고, 마음 한편에서 화가 나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많은 사람 속에서 사소해 보이는 그들의 방해가 우습기도 했다.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나서야 작은 움직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200명 이상 되는 사람들이 스크럼을 짜고 누워서 퍼레이드 행렬을 가로막았다. 지나가게 해달라는 부탁에도, 비키라는 외침에도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세 시간가량을 기다렸다. 길이 막혀 그 자리에 자리를 깔고 앉아야 했다. 답답하고 화가 났다. 나에게는 이 세 시간이 처음이었지만 내 친구들은 이런 단절과 막막함을 살면서 얼마나 많이 마주해 왔을까?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마주할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먹먹해졌다.

'혐오할 자유'라는 말이 나는 무섭다. 1년에 한 번 있는, 정당한 집회 신고도 되어있는, 모두가 즐거워야 할 축제에서 행렬을 막아서고 "동성애는 죄악", "동성애자들을 불태워야 한다"라는 팻말을 드는 것, "너희들은 병에 걸렸다."고 말하는 것이 '혐오할 자유'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졌다. 나의 눈에는 오히려 그들이 혐오라는 전염병에 걸린 것 같았다.

이후에 다른 경로로 진행된 퍼레이드는 아주 재밌었다. 이렇게 쉽고 즐겁게 끝날 수 있는 걸. 내년에는 이런 일 없이 좀 더 즐겁고 원활하게 행사가 진행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자주 이 축제에 참여할 것 같다. 일 년 동안 모두 잘 지내다 만나요."

박선희(공감 19기 자원활동가)

"처음 퀴어문화축제에서 일상과 다른, 익숙지 않은 풍경을 보았다. 자신의 애인과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 하루, 축제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을 일상에 스며들게 한다면, 각자에게 자연스럽고 편한 삶을, 두려워하지 않고 드러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이 세계를 상상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것, 내가 세상에 느꼈던 이질감, 낯섦을 경험하게 하는 것, 그것이 퀴어문화축제이지 않을까?

그 날 하루는 두 눈 똑바로 뜨고 보았으면 한다. 당신들이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더 많은 상상력이 자극되기를 바란다. 기존에 정해진 틀에 맞추기엔 우린 모두 특별한 사람들이니까.

자신의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그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사는 이들이 누구보다도 더 부끄러워야 할 사람들이다. 내년엔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보았으면 한다. 우리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권준희(공감 19기 자원활동가)

"나는 어렸을 적 선교원을 다녔고, 10년 남짓한 시간을 교회에 다녔다. 지금은 그 시간이 과거형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전도상도 여러 번 받았으니 꽤나 신실했던 사람으로 간주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내게 성경과 신의 이름을 빌어 퀴어퍼레이드를 방해하던 사람들의 모습은 큰 아픔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유난히 올해 두드러진 반대 움직임들을 바라보며, 이전까지는 그들이 성 소수자들을 그저 무시해버리면 됐지만, 이제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커밍아웃과 성공적인 이슈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이번 반대 움직임을 볼 수 있지 않겠냐는 자위도 해봤다. 하지만 혐오를 외치는 이들의 몸부림 앞에 존재를 부정당해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이런 생각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병이 난 당신들을 고쳐주기 위함이라고 외치는 그들에 맞서 우리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부르고, 외국인 여성들은 그들이 드러누운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거침없이 키스를 나눴다. 퍼레이드를 막아선 1차 저지선의 한 아저씨와 낮부터 이번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 사이를 밀치며 '동성애 반대'를 외치던 한 아주머니는 주변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외쳤던 "사랑해" 소리에 끝내 웃으며 자리를 일어섰다.

나는 더는 신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교회에서 배울 수 있었던,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라는 사랑의 가치는 굳게 믿는다. 그렇다, 실로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Love conquers Hate.'"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블로그http://withgonggam.tistory.com/1426 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이 기사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19기 자원활동가 이한재가 쓴 글입니다.



태그:#퀴어문화축제, #퀴어페스티벌, #공익인권법재단, #성소수자, #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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