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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6·4 지방선거가 치러지던 날, 인도네시아에서는 2014 대선 후보들이 32일간 이어질 공식선거운동 첫날을 맞았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오는 7월 9일 10년간 연임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SBY)정부에 이은 새 정부 리더를 뽑는다.

현재, 자카르타 주지사인 투쟁민주당 대선후보 조코 위도도(조코위)와 그의 부통령 러닝메이트 유숩 칼라(JK)의 지지율은 35~42% 수준. 전 특수부대 사령관 출신 그린드라당 대표 프라보워 수비안토와 러닝메이트인 전 경제조정부 장관 하타 라자사의 지지율(22~28%)을 10%p 이상 앞서고 있다. 하지만 프라보워의 지지율이 점점 오르면서 조코위를 따라잡는 추세다.

인도네시아 2014 대선후보 2일, 프라보워 수비안토와 조코 위도도. 사진은 시사주간지 <템포> 표지
 인도네시아 2014 대선후보 2일, 프라보워 수비안토와 조코 위도도. 사진은 시사주간지 <템포> 표지
ⓒ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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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운동 첫날인 지난 4일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이어진 자카르타 리츠칼튼 호텔 볼룸에서 열린 조코-JK 후보의 경제공약 발표현장을 취재했다.

"지금 인도네시아의 가장 큰 문제는 인프라나 앞서 발표한 경제전문가들이 강조한 것들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정신적 자세다."

'조코위'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조코 후보의 일성은 조용하고 단호했다. 편안한 체크무늬 셔츠나 흰 셔츠를 입고 '블루수칸(불시에 현장을 방문해 시찰한다는 뜻의 자바 속어)'을 다니던 평소 모습과 달리 조코위는 이날 검은 양복과 빨간 넥타이의 말쑥한 정장차림으로 단상에 섰다.

1000여 명의 국내외 사업가와 투자자들을 모아놓고 차기 정부의 경제구상을 발표하는 자리니 성장동력이나 경제모델로 시작할 법했지만 그가 첫 번째로 강조한 것은 교육을 통한 '정신혁명'이었다.

조코위와 JK의 경제공약 발표회 모습
 조코위와 JK의 경제공약 발표회 모습
ⓒ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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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 비중이 80, 인성교육이 20인 현재 인도네시아 교육 패턴을 그 반대로 바꾸겠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예의, 성실성 등을 배워야 한다."

조코위가 정신혁명을 위한 교육개혁을 강조할 때 경제공약 발표 자료가 담긴 슬라이드쇼에는 생산라인의 공장 노동자들과 훈련 중인 군인들의 사진이 등장했다.

중부 자바 솔로시에서 20여 년간 목재와 가구 수출입사업을 하다 정치에 뛰어든 그가 말한 '정신혁명'은 사업가의 관점으로 접근한 '성실하고 훈련된 일꾼 육성'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조코위가 생각하는 노동가능인구가 전체 2억 4000만 인구의 약 68%에 이르는 인도네시아 경제 번영의 전제였다.

30여 분간 이어진 발표에서 조코위가 뒤이어 강조한 부문은 정부의 에너지보조금제도 개혁, 사업등록·허가 기한 단축과 온라인 결재, 운송비용 절감을 위한 육로와 해상 인프라 개발, 식품가 조절을 통한 인플레이션 억제, 일자리 창출 등이다.

"내가 25년간 사업을 하면서 배운 세 가지 핵심은 가격경쟁력, 제품의 품질 그리고 제시간에 운송하는 것인데 이것이 사업의 모든 것이다."

조코위는 경제공약 발표 중간 중간 자신이 사업을 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예로 들며 사업과 투자 환경 개선의지를 강조했다. 사업 등록과 관련 서류절차를 한 달 혹은 세 달까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던 경험, 국내 인프라가 열악해 물류비 때문에 수입제품과 가격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었던 현실 등을 친근한 표현으로 설명했다.

조코위-JK 경제 공약 설명회에 참석한 국내외 사업가와 투자자들의 모습
 조코위-JK 경제 공약 설명회에 참석한 국내외 사업가와 투자자들의 모습
ⓒ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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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는 풍부한 천연자원과 노동력, 활발한 외국인직접투자 덕에 최근 몇 년간 6%를 웃도는 경제성장률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소득격차 심화, 만성적 관료부패, 부실한 인프라 문제와 함께 경상수지 적자 증가에 따른 성장 둔화 우려에 직면해 있다.

대선을 앞두고 인도네시아 정부 지출의 최대 20%를 차지하는 에너지보조금 축소 여부가 인도네시아 유권자는 물론 외국인 투자자의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다. 1967년부터 시행된 에너지보조금제도는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 저소득층이 싼 값에 석유 등 생활 필수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소득수준이 증가하면서 저소득층보다는 중산층 이상이 에너지보조금 혜택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메가와티 정부(2001~2004)와 SBY정부(2004~2014) 내내 예산적자와 경상수지 적자 해소를 위해 에너지보조금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생활물가 상승 타격을 우려해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맞섰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에너지보조금 축소는 첫 번째 과제로, 빨리 단행할수록 경제운용부담이 줄어들지만 대중적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큰 '정치적 숙제'인 셈이다.

조코위가 이날 발표에서 제시한 해법은 석유에 집중된 에너지 소비를 석탄이나 가스로 전환해 석유소비 보조금 규모를 줄이는 방식이다.

"아주 간단한 문제다. 나는 새로운 사람이고 석유자본에 이권이 없기 때문에 이런 개혁이 가능하다."

'조코위식 경제 해법'을 듣던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내내 웃음 띤 얼굴의 인도네시아인들과 달리 외국인 참석자들은 웃음기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동시통역 헤드폰을 이용해 조코위의 이야기를 들었다.

SBY 정부의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을 지낸 인도네시아 원로 경제학자 라덴 파르데데는 "사실 조코위나 프라보워 후보 양쪽 경제 공약을 모두 읽어봐도 정책기조나 제도개혁 내용이 분명하지 않다"면서 "발표 내용도 두루뭉술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결국 공약내용이 아니라 인물 선호도에 따라 차기 대통령이 선택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소속 경제학자 파우지 이츠산 역시 어떤 정당도 확고한 경제정책 추진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봤다. 그는 조코위가 친서민 이미지로 유명하지만 복지의 중요성을 아는 시장친화형 리더라고 요약했다. 이츠산은 "조코위가 하는 말들을 들어 보면 미국 공화주의자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날 조코위의 경제공약을 접한 시민들의 평가는 후보 선호도에 따라 갈렸다. 조코위를 지지하는 이들은 '이해하기 쉬웠다'는 반응을, 조코위와 경쟁하는 대선후보 프라보워를 지지하는 이들은 '사업가, 투자자들을 위한 내용이지 일반 대중을 위한 것은 없다'는 반응이었다.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조코위-JK 후보의 발표를 본 아구스, 아띡씨 등은 "내용이 머리에 쉽게 들어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 아디 크리스완또씨는 "조코위가 강조한 새로운 개혁 등을 어떤 방향으로 실행할 것인지, 어떻게 가능한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조코위-JK에 맞서는 프라보워-하타 후보측은 아직 대중적 경제공약 발표회를 열지 않았다.

대신 프라보워-하타 후보가 지난 5월 20일 대선 후보등록과 함께 선거관리위원회(KPU)에 제출한 13쪽 분량의 공약집 '인도네시아를 구하기 위한 의제와 프로그램'에 따르면, 이들 후보는 부의 공평한 분배, 자국민이 혜택을 보는 자원개발, 자족적 경제 건설, 자유무역협정과 2015아세안(ASEAN.동남아시아연합)경제공동체 등 지역경제블록에 따른 충격 흡수, 인프라.섬유.전자 산업 등 노동집약 산업 부흥을 통한 신규 일자리 2백만개 창출 등을 경제공약 전면에 내세웠다.

프라보워-하타 측은 현 인도네시아 경제의 '정치적 숙제'인 에너지보조금제도에 대해 공약집에서 직접 언급을 피하면서도 조코위와 비슷한 에너지 수입 축소와 석탄, 가스 우선 사용 등의 안을 내놨다.

이날 조코위가 발표한 경제 공약들은 프라보워 측 공약과 함께 오는 15일로 예정된 두 번째 대선후보 TV토론(경제.복지)을 통해 약 1억 9천만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게 된다.

2014 인도네시아 대선후보자 TV토론회 모습
 2014 인도네시아 대선후보자 TV토론회 모습
ⓒ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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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인도네시아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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