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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언론이 권력자의 탈선된 사생활을 보도하려 할 때 필요한 덕목은 무엇보다 용기다. <조선일보> 편집국은 그런 용기를 보여줬다."

지난 3월 '2014 한국신문상'은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 의혹을 보도한 <조선일보>에게 돌아갔다. 당시 심사위원장은 위와 같은 선정 이유를 밝혔다. 10일 오후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된 문창극 전 <중앙일보> 대기자가 그 장본인이다. <조선일보>의 용기를 청와대의 용기로 바꿔보자면 이 정도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의 적폐와 무능을 숨기려고 할 때 필요한 덕목은 무엇보다 (업무 적합성보다, 통합보다 낙마 안정성을 고려하여 편협한 인사를 발탁하는) 용기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은 그런 용기를 보여줬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라고들 한다. 어떤 이들에게 펜은 '자신에게 기필코 되돌아 오는 (칼 꽂힌) 부메랑'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 통합의 한 축이 되어야 할 국무총리 후보자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펜 때문이다.

2012년 말까지, '문창극 대기자' 시절의 칼럼들은 일방향으로 칼을 들이대기에 바빴다. 한편으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들을 칭송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 언론인 출신 인사가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책임총리제가 무색하게도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일각에서 '"안대희 정도면 낙마시키지 말고 좋게 갔어야지"라는 듯한 청와대의 인사'라는 자조 섞인 성토가 나온다. 우선 그의 주옥(?)같은 칼 꽂힌 펜의 족적은 대략 이 정도다.  

와병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 비수 꽂은 문창극

신임 국무총리에 지명된 문창극(전 중앙일보 주필) 후보자가 1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기자회견을 앞두고 웃는 모습으로 들어서고 있다.
▲ '총리지명' 웃는 문창극 신임 국무총리에 지명된 문창극(전 중앙일보 주필) 후보자가 1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기자회견을 앞두고 웃는 모습으로 들어서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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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는 너무 늦었다. 사경을 헤매는 당사자에게 이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짧은 시간 내에 밝혀질 문제도 아니다. 바로 얼마 전 우리는 한 명의 대통령을 불명예스럽게 떠나보냈다. 나라의 명예를 위해서도 더 이상 불행한 대통령은 없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런 제기된 의혹들을 그대로 덮어 두기로 할 것인가.

바로 이 점이 안타까운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므로 장례의 격도 생각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해결점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이제 전적으로 가족 손에 달렸다고 본다. 그가 이루어 놓은 업적에 버금갈 수 있는 깨끗한 마무리가 있어야겠다. 그가 늘 외쳤던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나라'를 위해서 말이다." (2009년 7월 4일 <중앙일보> 문창극 칼럼 '마지막 남은 일' 중에서)

당시 문창극 대기자는 과거 <월간조선>의 기사 몇 건과 일부 인사들 발언 등을 근거로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자금 조성과 재산 해외 도피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DJ측 최경환 비서관은 <중앙일보>에 "<중앙일보>와 문 대기자에게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내용의 반박글을 실었다. 잘 알려진 대로, 김대중 대통령은 칼럼과 반박이 이어진 한 달여 뒤인 8월 18일 서거했다.

'장례의 격' 운운하면서도 <월간조선>의 얼토당토않은 의혹을 바탕으로 와병 중인 전직 대통령에게 비수를 꽂았던 '대기자 문창극'.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직후 국민들이 비탄에 빠져있던 2009년 5월 26일엔 이런 글도 남겼다. 무수한 '노무현 비판' 칼럼 중에서 이 글은 백미(?)에 해당한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과거 칼럼 '이승만과 노무현'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과거 칼럼 '이승만과 노무현'
ⓒ 중앙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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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모든 것을 덮는다고 하지만 그의 죽음은 자연인과 공인의 성격으로 나누어 판단해야 한다. 자연인으로서 가슴 아프고 안타깝지만 공인으로서 그의 행동은 적절치 못했다. 그 점이 그의 장례절차나 사후 문제에도 반영되어야 했다. 검찰의 처리도 문제다. 그가 큰 범죄자인 양 몰아붙이다가 그가 죽자마자 "모든 수사는 종결된다"고 했다. - (문창극 칼럼 '공인의 죽음')

"반미 대통령이 이렇게 돌아선 것도 우리나라의 행운"

'1948년 충북 청주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75년 <중앙일보> 입사 후 워싱턴특파원, 정치부장, 논설실장, 논설주간, 주필, 대기자 역임. 2004년 제8회 한국언론대상 논설, 해설부문상, 2005년 삼성언론상 논평· 비평부문상, 2009년 장지연상 언론부문상 등을 수상. 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초빙교수.'

문 후보자의 이력이다. 사실 문 후보자의 펜은 일관성으로 승부했다. 철저한 우파 혹은 극우였고, 당연히 이승만, 박정희의 열혈 팬이었으며 시장주의,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였다. 그랬던 그가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드물게 환호(?)를 보낸 사안이 있었으니, 바로 한미FTA 체결 문제였다. 그에 의하면, 노무현이 한미FTA를 추진한 것은 심지어 "대한민국의 행운"이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반미적이던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를 성사시켰다. 반공주의자 닉슨 대통령이 미·중 수교를 했던 것과 비슷하다. 역설이며 기적이다. 노 대통령의 과거 행적으로 보면 이해가 안 간다. 코드인사로 임기 내내 욕을 먹던 그가 이 사안을 놓고는 오히려 자기 진영을 배반했다.

정치인이 자기 정파를 떠난다는 것은 죽음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정파를 벗어나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사람을 우리는 국가적 지도자(Statesman)라고 부른다. 결정적인 시기에 전혀 그렇지 않을 법한 대통령이 이런 결심을 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가 복 있는 나라라는 증거다." - (<복 있는 나라>, 2007년 4월 22일자)

"이제는 보수진영에서 노 대통령을 밀어 주어야 한다. 그를 믿어야 한다. 한나라당도 눈치 그만 보고 이 사안만큼은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이념 때문이 아니라 이 나라가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반미 대통령이 이렇게 돌아선 것도 우리나라의 행운이다." - (<이승만과 노무현>, 2006년 04월 18일자 칼럼)

문창극은 제2의 윤창중?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칼럼 '박근혜 현상'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칼럼 '박근혜 현상'
ⓒ 중앙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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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후보자에게 이승만은 가장 자주적인 대통령이었고,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었으며, 박근혜는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이 찾아왔던 2011년부터 현직 대통령을 넘어선 살아있는 권력이었다. 그의 칼럼들은 그런 애정을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해왔다.

"한·미관계사에서 가장 자주적이었던 인물은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이 나라 좌파들은 그를 친미분자, 미국 앞잡이로 매도하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미국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들었고, 미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얻어낸 인물은 바로 그였다."

"우리는 해방 후 어렵고 복잡한 중에도 다행히 좋은 틀을 만들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했으면 우리는 지금 공산화되어 북한 처지가 됐을 것이다. (중략) 박정희 대통령 역시 좋은 틀을 짜려고 노력했다. 그 틀 덕분에, 그때 쌓아놓은 산맥 덕분에 우리가 이 정도 살고 있다."

총리후보 지명 이후 화제가 되고 있는 칼럼 '박근혜 현상'은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 상황 하에서 '박근혜의 미래 권력'을 주목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면서 당시 당직을 맡고 있지 않으나 권력이 쏠렸던 '자연인 박근혜'에게 전하는 주문과도 같았다.

"휘장 속에서 걸어나오라"며 자기 의견을 천명하라고 촉구하는 동시에 "현재의 일들은 현재의 권력에 맡기고 미래는 그때의 권력에 맡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라며 박근혜를 좇는 여당 정치인과 언론들을 엄중히 질타했다.

"이 나라에서는 요즘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뽑지도 않았고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았는데 권력이 한쪽으로 몰려가고 있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지 않고 오히려 그런 현상을 부추기기까지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박근혜 현상이다."

박근혜 인사는 여전히 '불통'

JTBC <정관용 라이브>의 진행자 정관용은 10일 오후 문창극 후보자에게 "그간 날카로운 칼럼을 썼으니 대통령에게 할말 하는 총리가 되어주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극히 일방적이고 균형과는 거리가 먼 칼럼으로 칼을 휘둘러온 문 후보자가 과연 대통령에게도 예의 그 날카로움을 유지할 수 있을까.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문창극 총리후보? 제2의 윤창중 될 것 같아 참으로 두렵습니다"라며 우려를 나타낸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언론인 출신 국무총리 후보자는 극히 이례적이다. 청와대의 여당의 인선 배경 설명처럼, 문 후보자가 과연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었던 책임총리제란 이름에 걸맞게 정부부처와 공직자들을 관리하고 조율할 수 있을까. 더욱이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척결을 비롯한 개혁과 통합을 정국 기조로 '국가개조론'을 내세운 시점에서 말이다.

 신임 국무총리에 지명된 문창극 후보자가 1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신임 국무총리에 지명된 문창극 후보자가 1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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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후보자는 또 용산참사의 책임자인 당시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두둔하며 <김석기를 살려야 한다>거나 무상급식을 겨냥해 <공짜 점심은 싫다>는 칼럼을 등으로 편향된 현실감각을 보여 준 바 있다. 김기춘 실장과 함께 박정희재단 이사진으로 활동했었던 이력도 '균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문 후보자 지명은 6·4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한시름 놓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이 "앞으로도 변화는 없다"라는 선전포고처럼 해석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YTN 출신 윤두현 신임 홍보수석, 안기부 2차장 출신이자 전 주일대사였던 이병기 신임 국정원장 내정자 역시 이런 기조에 충실한 인사다.

'전관예우' 안대희가 낙마한 자리에 '보수 언론인' 문창극 후보자를 앉히려는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여전히 '불통'이다.


태그:#문창극,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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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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