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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돌아 온지 이십 일이 조금 지났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3개월간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 후로 어머니께 매일 전화를 하고 있다. 오늘도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아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동네 분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 했다.

"엄마가 웬일이래. 외출을 다 하시고..."
"놀랄 일이 생겼거든. 생각해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너 놀라지마. 니가 좋아하는 민수네(가명) 아주머니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
"노인들 사이에 무슨 왕따야 왕따가. 무슨 일인데 그러는 거야?"

그 사건의 발단은 지방 선거였다. 지방 선거가 있기 5일 전, 그 마을에 찾아온 어떤 사람이 무엇인가를 건넸다. 그것을 받은 사람은 다음 날 받은 물건을 들고 경찰서로 달려갔다고 한다.

'xxx 후보자가 나에게 현금을 건넸다'며 신고

돈봉투(자료사진).
 돈봉투(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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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권자가 금품을 받았다며 경찰에 신고한 일로 동네가 갑자기 떠들썩해졌다고 했다. 더 놀라운 일은 며칠 후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야야, 누가 돈 줬단다."
"그게 무슨 말이고? 돈을 주다이."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면 그 이야기가 오고 갔다. 신고가 들어간 오후에 그 이야기는 순식간에 온 동네에 퍼졌다.

"돈 받은 사람이 누군데? 한데 그 훌륭 받은 사람(표준말로 훌륭한 사람)이 우리 같은 사람한테 머하러 돈을 주노. 그거 헛소문 아이가."
"뭔소리 하는교. 그 이야기 모르는 사람이 없디더. 소문에 그 돈 받은 사람이 민수네 사위라 카든데. "
"그래, 그 놈은 돈 받아놓고 와 신고를 하고 지랄이고. 처음부터 받지를 말아야지."
"그러게 말이다. 한데 훌륭 받은 사람이 머가 아쉽다고 그런 사람한테 돈을 주노 말이다. 그 집 사우가 뭐 대단타고."

마을 아주머니들의 말을 정리하면 이러하다.

선거에 출마할 정도면 훌륭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자기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일개 동민인 민수네 사위에게 돈을 줄 리가 없다. 그러므로 그 일은 사실이 아니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을 신고한다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며, 소문대로 그 사람을 비방하기 위한 것이고, 돈을 건넸다는 사실은 거짓이다.

그 일이 여기서 끝이 났다면 진위 여부는 가려질 것이고 마을은 다시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여러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그 소문이 온 마을에 퍼지자 아주머니들이 민수네를 찾아갔다.

"언니요. 언니 사우는 머하러 그런 짓을 했다 닌교."
"그게 무슨 말이고? 와? 우리 사우가 우쨌다고?"
"경찰서 가서 돈 백 만원 받았 따꼬 신고 했담써. 몰랐는교."
"당연한 거 아이가. 길가다 보먼 천 같은 거에 글씨 써났데. 돈을 주지도 받지도 말자고."
"그게 뭐 잘한 일이라고 사우 역성을 드노. 그게 사실이 아일수도 있다고 카던데. 진짜 받은 거 맞다 카드나? 니 사우 술 먹고 헛소리 한 거 아이가."
"그랄지도 모르것네. 사우가 술을 자주 마신다 카드마. 술 먹고 헛소리 한 거 아이가. 확실한교? 마 높은 사람들이 하는 대로 가마이 있으모 알아서 다 잘 할 낀데 동네 시끄럽구러. 이 상황에도 사우 역성을 들고 싶은교."
"그래, 니 사우 잘한 거 하나도 없다. 그게 사실이모 경찰에서 가마이 있었겠나. 벌써 조사를 했겠지. 아무 말이 없는 거 보이 사우가 잘못한건 갑다. 우짤라꼬 그란 일을 벌리가꼬."

민수네 아주머니는 놀라서 두 눈만 크게 뜨고 연신 마른 침만 삼켰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사위의 행동은 옳았다. CCTV라는 증거가 확실하게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이다. 그 증거면 사위의 행동이 옳았다는 것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놓고 옳은 행동이 아니었다고 말하며 사실이 아니라는 말들을 하고 다녔다.

민수네 사위를 동네에서 몰아내야 한다?

이 일로 아주머니는 사람들에게 사위를 잘못 두었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마을 산책을 다니지 않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 주민들 사이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라는데 민수네 사우를 동네에서 몰아내야 한다데."
"그게 무슨 말인교? 사우를 와?"
"그 일 때문 아이가. 거 돈 받았따꼬 신고한 일 말이다. 그 일로 사람들이 동네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난리란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내도 모르겠지만서도 훌륭받은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몰았다고 주위 사람들이 동네를 떠나라고 찾아와서 소리친다네."
"하머는 돈을 준 게 아닌가 보네."
"한데. 돈을 준 게 아이고 그 사람이 돈을 흘렸다 카데. 그리고 사우가 원래 알코올 중독자라 카데. 그 일로 술 처먹고 그란 일이라드마."
"그 사우 매일 배타고 바다를 나가서 술 마실 시간이 없을 낀데. 뱃사람들이야 원래 술을 마이 마시기는 한다마는..."

그 일로 민수네 아주머니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어울리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그녀를 따돌린 것이다. 괜히 불미스런 일과 관련된 사람과 어울리면 자신들에게도 불이익이 올 것을 염려한 탓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을에 소문이 퍼지기를 아주머니의 사위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일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민수네 아주머니는 거의 매일 우리 집으로 놀러 오셨다. 하지만 이 일로 주위 사람들이 그 분과 만나는 것을 꺼렸고 그 분위기를 알아챈 아주머니도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가 어떻게 형성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옳은 일을 한 사람이 내몰린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런 일로 한 가족, 한 노인이 받았을 상처는 누가 치유를 해 줄 것인가.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던 정은 온데간데없고, 항상 미소를 짓던 노인은 알코올 중독자 사위를 둔 가까이 하기에 꺼려지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는 눈이 두 개인 사람이 눈이 하나인 사람들 사이에 가면 눈이 두 개인 사람이 비정상인이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전해들은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그 지역 신문을 살펴보았다. 한 지역 신문 사이트에서 그 사건의 원인이 되었던 'xxx 후보자 부정 선거'에 대한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일의 진행 상황이 궁금해서 그 기사를 쓴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아~ 참..."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 소리에서 답답함이 묻어났다.

"그 사실을 알고도 그랬으니.. 우리 군민들이 참 그렇습니다. 아마도 선거를 한 번 더 치러야 하지 않을까요. 검찰 수사도 며칠 내로 시작된다고 하니...."


태그:#선거, #후보자, #돈, #왕따, #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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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경의로움에 고개를 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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