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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절의 내게 현상금은 낭만적인 단어였다. 만화, 영화 속 멋진 이들에겐 꼭 현상금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쾌걸 조로, 괴도 루팡부터 이름난 해적들과 서부영화 속 무법자들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살아가는 멋진 이들에겐 마치 훈장처럼 현상금이 붙어있었다. 청석골의 임꺽정과 <수호전>에 나오는 양산박 호걸들에도 현상금이 걸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역시'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상금의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그보다 더 시간이 흘러서였다. 아마 어느 책에서 김구 선생에게 60만냥이라는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렸었다는 사실을 읽고 난 뒤였을 것이다. 일제는 김구 선생뿐 아니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 현상금을 내걸어 내부로부터의 분열을 획책했다. 조선조에는 명종 때 임꺽정, 고종 때 전봉준에 현상금이 걸렸다. 어쩌면 현상금이란 죄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를 위협하는 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현대사회에도 현상금은 자주 이용된다. 한국에서는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을 비롯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유병언과 그의 장남에게 현상금이 걸렸다. 미국의 경우에도 사담 후세인과 오사마 빈 라덴에게 현상금을 걸었으며 최근에는 나이지리아에서 300여 명의 여학생을 납치한 보코하람의 지도자에게 현상금이 걸렸다. 이처럼 현상금은 국가 치안시스템으로 잡기 어려운 이들을 민간의 힘을 빌려 잡기 위해 활용된다.

인천지방경찰청의 유병언 수배전단
▲ 현상금 인천지방경찰청의 유병언 수배전단
ⓒ 인천지방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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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상금 제도가 꼭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들과 19세기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목에 현상금이 걸렸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구 선생을 비롯하여 김원봉, 홍범석, 김좌진, 신돌석 등 항일 독립운동의 지도자들에게 상당한 현상금이 걸렸으며 신돌석 장군을 비롯해 적지않은 지도자들이 현상금을 노린 이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그저 태어난 곳에서 살아가기를 원했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지도자들 역시 같은 신세였다. 미국과 멕시코에 끝까지 저항했던 아파치족(族)의 추장 제로니모와 빅토리오에게도 거액의 현상금이 걸렸으며 몇몇 주에서는 이름없는 원주민의 머리에도 현상금을 걸었다.

현상금은 죄가 있는 자에게 물려진다. 그리고 그 죄는 정부로 대표되는 지배체제에 의해 규정되고 선고된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때로 정부는 잘못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오직 체제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죄를 물어왔던 것이다. 임시정부의 지도자들, 독립운동가들, 의적들, 혁명가들. 수많은 의로운 이들이 도망쳐야 했다.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자들이 이들을 고발했기 때문이다. 현상금은 이들의 친구로 하여금 이들을 고발하게 하는 유혹이었고 사냥꾼의 코를 자극하는 짐승의 냄새였으며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쇄이기도 했다. 현상금 제도는 본질적으로 체제의 편에서 체제의 적을 제압하기 위한 제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상금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태그:#현상금, #유병언, #신창원, #오사마 빈 라덴, #사담 후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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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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