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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요제프 괴벨스(1897~1945)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국민 계몽 선전부 장관이었다. 그가 한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라는 말은 유명하다. 괴벨스는 총통인 히틀러의 명령을 받아 여론 조작을 위해 라디오 방송을 마음대로 주무른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믿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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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평소 '철의 여인'이니 '얼음 공주'니 하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 박 대통령으로선 이례적으로 보이는 눈물이었다.

하지만 많은 이가 박 대통령의 눈물을 비판했다. 진정성을 읽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박근혜 눈물 랩타임 분석'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인터넷에 널리 퍼지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타이머로 분석해 '연출'이었음을 강조하는 취지의 동영상이었다.

박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면서 한참 동안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솔직히 기이해 보였던 게 사실이다. 눈물을 흘리면 눈이 시려진다. 그때 사람들은 눈을 깜박거린다. 그것이 물리적으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눈자위를 찍어 누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많은 이가 '악어의 눈물'이라고 비판한 이유다.

'박근혜 눈물 마케팅'이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박 대통령의 '눈물'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락세를 이어가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세로 돌아섰다는 언론 분석이 나왔다. 세월호 참사 후 최악의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고 있던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눈물을 선거전에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박근혜 눈물 마케팅'이다.

박 대통령의 눈물이 처음부터 저절로 위력을 발휘하게 된 건 아니다. 무엇보다도 박 대통령의 눈물을 널리 알리기 위한 적극적인 시도가 있었다. 청와대가 지난달 20일 청와대 홈페이지 '활짝 청와대 이야기'에 '세월호...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5분 분량의 동영상이 대표적이다. 세월호 침몰 직후부터 최근 담화까지 박 대통령의 행보를 담았다고 한다.

지금은 삭제된 그 동영상은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은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관련 영상 논란과 관련해 "동영상을 제작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리고, 새누리당은 이를 다운받아 선거에 활용하라는 지침을 버젓이 내리는 것은 청와대가 관권선거의 총사령탑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논란 속에서도 박 대통령의 '눈물'의 위력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박근혜 눈물 마케팅'은 그 범위를 점점 넓혀가기 시작했다. 지난 1일 새누리당의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모인 서울역에서 정진석 충남도지사 후보는 이번 선거를 '박근혜 버리기' 대 '박근혜 구하기'의 싸움으로 규정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 모인 새누리당 후보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힘과 기회를 한번 주시라"며 읍소하기도 했다.

지금 새누리당은 눈물을 흘리는 대통령 사진 옆에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펼침막을 곳곳에 내걸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은 선거에 중립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대통령의 '눈물'을 선거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관권선거 시비가 붙는 건 당연하다. 새누리당이 대통령의 눈물 장면을 편집한 동영상을 제공해 선거에 적극 활용하라는 지침을 전국 시·도당에 내려보낸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비판받을 만하다.

정말 믿기 어려운 것이 돼버린 '박근혜의 눈물'

6.4지방선거 유세 마지막날인 3일 오전 부산역 앞 광장에서 열린 서병수 새누리당 부산시장 후보 유세에 나선 선거 운동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사진 포스터와 서 후보 사진 포스터를 함께 들고 있다.
 6.4지방선거 유세 마지막날인 3일 오전 부산역 앞 광장에서 열린 서병수 새누리당 부산시장 후보 유세에 나선 선거 운동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사진 포스터와 서 후보 사진 포스터를 함께 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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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는 박 대통령이 흘린 눈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들이 조금 못마땅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드러난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난맥상을 모르는 바 아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를 향해 분노와 질타를 쏟아내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흘리는 눈물까지 조롱과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눈물은 감정의 자연스러운 발로라고 여겨서다.

하지만 그것은 순진한 나의 착각이었던 것 같다. 예의 '랩타임 분석' 영상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다. 청와대가 올린 홍보 동영상이 논란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가장 결정적은 것은 새누리당의 '박근혜 눈물 마케팅'이었다. "대통령 주연, 청와대 연출, 새누리당 배급의 이 애물단지 동영상 활용작전"이라는, 새정치연합 김정현 부대변인의 지난달 25일 논평이 전혀 과장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 박 대통령의 '눈물'은 이제 정말 믿기 어려운 것이 돼버렸다. 대통령의 '눈물'을 선거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는 집권 여당의 행태도 행태거니와 그 진정성을 무색하게 하는 대통령의 행보 때문이다.

지난 1일 박 대통령은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있는 명성교회로 갔다. 이 교회 담임인 김삼환 목사가 주도하여 개최한 '세월호 참사 위로와 회복을 위한 한국교회연합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명성교회는 김 담임목사가 지난 5월 11일 설교에서 "하나님이 공연히 이렇게 (세월호를-기자 주) 침몰시킨 게 아니다. 나라를 침몰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그래도 안 되니, 이 어린 학생들 이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라고 발언해 논란이 된 곳이기도 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이날 기도회에서 "지금 세월호 사고로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준 유병언 일가가 법망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 국민들을 기만하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며 "과거에 이미 없어졌어야 할 기업이 회생절차를 악용해 되살아나서 탐욕스럽게 이익을 추구하다가 많은 국민의 희생을 가져왔는데 더 이상 이런 것이 방치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유병언 일가에게로 돌리려는 물타기 발언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지금 토끼몰이 하듯 펼쳐지고 있는 유병언 검거 작전이 정부와 검찰, 경찰의 삼각공조 체제 아래서 치밀하게 '연출'된 상황이라는 세간의 '음모론'이 결코 음모론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국민들에게 상처를 준 유병언 일가"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서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정부로부터 유병언 일가로 돌리게 하려는 의도가 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과 대통령, 과연 누구의 눈물 닦아줘야 할까

6.4지방선거 유세 마지막날인 3일 오전 부산역 앞 광장에서 열린 서병수 새누리당 부산시장 후보 유세에 나선 선거 운동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사진 포스터와 서 후보 사진 포스터를 함께 들고  있다.
 6.4지방선거 유세 마지막날인 3일 오전 부산역 앞 광장에서 열린 서병수 새누리당 부산시장 후보 유세에 나선 선거 운동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사진 포스터와 서 후보 사진 포스터를 함께 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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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자 <경향신문> 4면에는 서로 대비되는 흥미로운 사진 두 장이 실렸다. 한쪽에는 새누리당 서청원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김포공항에서 '도와주십시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1인 유세'를 하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다른 한쪽에는 정의당 천호선 선거대책위원장이 2일 부산 개금골목시장에서 '대통령이 국민을 도와야지요. 표를 구걸하는 집단은 처음 봅니라'란 팻말을 들고 '1인 유세'를 하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과 대통령 모두 눈물을 흘렸다. 생때 같은 수백 명의 목숨을 단 하나도 구하지 못한 우리 사회 시스템의 진짜 '실력'에 국민과 대통령 모두 경악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국민과 대통령의 분노의 시선이 향하는 대상은 서로 달랐다. 많은 국민이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공감할 줄 모르는 대통령과 정부에 분노했다. 대통령은 그 자신과 정부보다는 세월호 이준석 선장이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등에게 더 많은 책임을 돌리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표적인 보수언론의 한 논설위원이 박 대통령의 눈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눈물 흘리는 사람이 아니라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대통령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고 본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대통령이 좀 더 인간적이지는 않겠는가. 물론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 눈물에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 박 대통령의 눈물은 어땠을까.

내일(4일)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이다. 투표를 통해 우리가 진심으로 도울 대상은 국민일까 대통령일까. 국민과 대통령의 눈물 중 우리는 과연 누구의 눈물을 닦아줘야 할까. 세월호 참사 이후의 대한민국의 미래가 내일 선거 결과에 달려 있다고 말하면 지나칠까.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y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박근혜 눈물 마케팅,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세월호 참사, #국민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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