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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강인규입니다. 이른바 '민주화 세대'에 속하는 사람으로, 외국 대학에서 언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느덧 마흔이 훌쩍 넘어, 늘어나는 뱃살과 흰머리를 걱정하는 나이가 됐습니다. 그나마 백발이 자라는 속도보다 머리가 빠지는 속도가 빨라, 전체적으로 흰 머리가 빨리 늘지 않는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제가 이 편지를 드리기로 마음먹은 것은, 6.4 지방선거 때문입니다. 혹시 대선이나 총선만큼 중요한 선거가 아니라고 믿는 분이 있다면, 터무니없는 오해라는 말씀부터 드려야겠습니다. 지방선거는 여러분들이 몸담고 사는 곳의 '진짜 일꾼'을 뽑는,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선거입니다.

실제로 대선이나 총선에서는 아예 논의되지 않거나 빈 구호에 지나지 않았던 굵직한 정책들이 지방자치 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에 의해 실현된 사례가 많습니다.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학생인권조례', '생활임금'만 봐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무상급식이나 출산지원처럼 단 하나의 지방자치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된 정책도 한둘이 아닙니다.

서울지역대학생교육대책위 소속 학생들이 지난 1월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대통령의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과 대학재정의 투명한 심사의결을 위해 민주적 등록금심의위원회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지역대학생교육대책위 소속 학생들이 지난 1월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대통령의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과 대학재정의 투명한 심사의결을 위해 민주적 등록금심의위원회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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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립대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이 부임한 뒤 단 보름 만에 500만 원에 가까웠던 등록금을 절반으로 낮춘 일까지 있었습니다. 올해로 3년째 절반 등록금제를 시행하고 있는 그 학교와 지역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지난 2월 한국방송(KBS) 보도에 따르면, 그 학교에 다니던 한 학생은 3개나 하던 아르바이트를 모두 그만 두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과차석을 차지해 장학금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반값 등록금의 선효과는 단지 학생 개인의 혜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책이 시행된 이후 학자금 대출자는 매년 크게 줄고 있고, 학생들은 여분으로 얻은 시간과 금전적 여유를 지역주민에게 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앞의 뉴스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폰 교육이나 중고등학생 과외 등 지역 주민들을 위한 학생들의 봉사활동은 배 이상 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반값 등록금 혜택을 입은 또 다른 학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혜택을 많이 받았으니까 사회에 돌려드리자는 생각이고요. 봉사 자체가 기쁜 일이어서 하게 됐습니다."

나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중앙정치'의 경우,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이나 이념적 갈등으로 참신한 정책을 도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지방자치는 이 일을 비교적 수월하게 해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유권자가 관심을 갖고 선거에 참여할 때만 가능한 일이겠지요.

한국사회는 이런 몰골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모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한국사회가 이런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겉보기에는 훨씬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웠지요.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정반대였습니다. 저는 대학에 입학했던 날을 잊지 못합니다. 교정 곳곳에 최루탄 파편과 깨진 병이 널려있고, 나무와 나무,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는 험한 구호 쓰인 현수막이 절규하듯 나부꼈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벽의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빽빽이 붙어 있던 대자보였습니다. 그때 보며 제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이랬습니다.

"내가 빨갱이 학교에 들어왔구나."

왜 학교에서 저런 이상한 글들을 떼지 않고 내버려 두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보낼 4년이 끔찍했습니다. 그 후 20여년이 흘러, 저는 대학에서 그때 제 나이뻘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학생과 교수, 한국과 미국을 두루 경험한 탓에, 저는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한국은 과거보다 훨씬 끔찍한 곳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학교에서 대자보를 떼지 않은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대자보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도 아니었고 (자학성향이 아닌 한 그 글을 견디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글자체나 배치의 미학적 가치를 인정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대자보에 손을 댔다가는 난리가 날 것이기 때문이었지요. 학교가 학생들을 무서워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었던 것이지요.

제가 졸업할 때까지도 캠퍼스의 '알싸한' 최루탄 기운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학생활은 생각만큼 끔찍하지 않았습니다. 등록금은 쌌고, 모두가 하나 이상의 취미 동호회에 가입했으며, (저 빼고) 누구나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저는 '모범생'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친구 꾐에 빠져 기말고사를 빼먹고 놀러갔다가 졸업 때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그 친구는 지금까지 제게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졸업 후 별 문제 없이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마지막 학기에 취업 원서를 딱 두 개 냈고, 그중 하나에 취직이 되어 졸업한 뒤 바로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예상하실 수 있듯) 학교성적은 시원찮았고, '해외연수'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으며, 그 흔한 토익이나 토플 시험조차 치른 일이 없었습니다. 내세울 '스펙' 같은 게 없었던 건 당연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당시에는 그런 말조차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공무원은 따분하다는 이유로 인기가 없었고, 지금 대다수의 대기업이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직능적성검사' 같은 것도 생소한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취직했고, 마음에 안 들면 그만 두고 다른 곳에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저 역시 회사를 한 해 다니다 그만 두고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제 평생 가장 잘 한 결정이었습니다만, 지금처럼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였다면 직장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을 겁니다.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자랑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런 사회가 가능하다는 점을 말씀 드리려는 것입니다. 짧은 과거에 이런 사회가 존재했다면, 짧은 미래에도 이런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통은 여러분 탓이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 48일째인 2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하는 종이 매달려 있다.
▲ '바람으로 오소서' 세월호 참사 48일째인 2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하는 종이 매달려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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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그 어린 영혼들이 마음껏 놀아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는 점입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경쟁의 지옥 속에서 잠시 해방될 생각에 들떠 있던 그들을 삼킨 것은, 어른이 파 놓은 탐욕, 비윤리, 책임회피의 지옥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가슴 아픈 사실은, 지금 살아있는 여러분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올해 공개된 통계자료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게 있습니다. 하나는 한국인이 평균 71.1세까지 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은퇴 후 가장 오래 일한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청년고용률이 1997~8년 금융위기 때보다도 낮은 30%대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죽도록 일하다 죽게 될 것이며 한심하게도 그런 일거리조차 찾기 어렵다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머리 터지게 서로 경쟁하다가 사회로 나와, 저임금에 불안정한 직장을 평생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삶을 마감하는 것, 이것이 통계가 말해주는 여러분들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통계수치는 우리가 어떻게 죽게 될지도 대체로 짐작하게 해 줍니다.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1위 모두가 자살입니다. 40대와 50대는 암이 1위고, 2위가 자살입니다. 이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진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많은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헤아려보셨으면 합니다. 적성과 무관하게 강요되는 공부, 천문학적 등록금, 취업의 어려움, 상상하기 어려운 집 마련, 꿈과 여유가 없는 삶, 연애의 어려움... 이 가운데 전적으로 개인 탓으로 돌릴 문제가 있을까요?

취업? 여러분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산업구조의 재편 때문이지만, 이는 결코 자연적 현상도 아니고, 불가피한 일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조업의 소멸입니다. 한국 정부는 제조업을 '철지난' 산업으로 치부하면서 기업의 생산공장 이전을 관망하거나 부추기는 한편, 금융과 의료 등의 서비스업을 '미래의 산업'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저질러왔습니다. 제조업에 대한 무지와 노동을 천시하는 전통이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뉴욕타임스>가 '아이폰경제'라는 제목으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생산직 1000개를 만들 때 관리직, 기술연구직, 물류직 등 모두 5700개 이상의 직업이 창출되지만, 1000명의 의료직은 고작 700명의 추가일자리를 만들어 낼 뿐입니다. 그 때문에 오바마 취임 이후 미국은 제조업 되살리기에 안간힘을 쏟았고, 그 결과 수만 개의 생산직을 되찾아 경제회복의 토대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2012년에는 경제성장률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년의 6.8%에서 9.1%로 뛰어올라 모든 산업분야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습니다. 반면 서비스업의 비율은 2.7%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토마스 게이건은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에서, 제조업이 저임금국으로 옮겨갈 때 나타나는 경쟁력 저하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삼성과 엘지 등이 겪고 있는 경쟁력 약화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무분별한 아웃소싱을 꼽습니다. 이들은 제조업 부진을 의료산업 등으로 만회하고자 하는데, 이는 한국의 공공의료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연애는 어떨까요? 국가가 국민의 기본적 생계를 책임질 때 연애성공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초생계가 보장된다면 재력이나 직업, 지위 대신 개인의 매력과 인품을 보고 사귈 수 있으니까요. 사실, 연애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연애가 가능합니다. 상대의 개성과 인격보다 조건을 먼저 따지는 걸 '연애'나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연애문제를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이번 선거에서 '생활임금'을 정책을 눈여겨 볼 만합니다.

'노력하면 된다'는 거짓말에 속지 마십시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 마련된 소공동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시민이 투표함에 봉인 된 투표지를 투입하고 있다.
▲ 소중한 한표 '투표 완료'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 마련된 소공동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시민이 투표함에 봉인 된 투표지를 투입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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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선배라는 사람들 가운데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믿지 마십시오. 알면서 하는 거짓말 아니면, 여러분 실정을 모르는 한심한 소리입니다. 한국사회는 노력하는 자가 절망하고, 노력하지 않는 특권층이 모든 걸 독식하는 세상이 된지 오래입니다. 특히 '힐링'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경계하십시오. '치유'가 필요한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사회이며, 여러분은 치유의 객체가 아닌 주체입니다.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여러분들을 서로 적이 되어 싸우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함께 이 공동체를 끌어갈 벗이며 동지이지 적이 아닙니다. '경쟁교육'은 오래 전 실효성을 잃은 낡은 이데올로기일 뿐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쟁이 얼마나 사회를 비윤리적으로 만들고 세계경제를 황폐화시켰는지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일었습니다. 예컨대 부도덕한 기업의 상징이 된 에너지 회사 엔론은 경쟁이 개인과 조직을 어떻게 타락시키는지를 생생히 보여주었습니다.

엔론의 경영주는 '돈'과 '생존경쟁'이 유일한 동기부여 수단이라고 믿었으며, 매년 직원들을 평가해 무조건 10%씩 해고했습니다. 그 결과, 직원들은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인위적으로 정전사태를 만들어 자사의 주가를 올리는 짓까지 서슴지 않게 되었지요. 정전이 전기 호흡기에 의존해 살아가는 환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뻔히 알면서도 말이지요. 세월호 사태는 한국사회 전체가 '엔론화'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가치는 협업, 공감, 공동체주의입니다.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으로 여러분들을 희생시켜 온 기성세대에 반기를 드셔야 합니다. 그게 여러분을 살리고, 나라를 구하는 길입니다. 결코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순응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주범 중 하나는 젊은 세대라는 '새 포도주'를 계속 '헌 부대'에 담으려는 시대착오적 정치권력입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이후 과거로의 퇴행이 심해졌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열정과 창의적 재능을 담을 새로운 사고와 정책이 필요한데, 이 구세력은 '새 부대'는커녕, 오래 전 터져 질질 새는 낡은 부대를 강요하고 있으니까요.

더 나은 미래, 더 나은 사회는 가능합니다. 그건 이미 경험한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꿈꿀 때 실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협력하고 연대해야 합니다. 이것은 정치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서로 적으로 만들어 싸우게 만든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이 나설 때, 저도 온 힘을 다해 돕겠습니다. 여러분의 미래가 곧 저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미래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태그:#지방선거, #세월호,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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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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