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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은 올해 <아픈 여자들의 일상:복귀 프로젝트>라는 사업의 일환으로 투병 후 일상에 복귀한 25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한다. 투병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몸과 건강, 건강권에 대한 새로운 담론과 대안을 모색되기를 기대한다. - 기자말

암과 같은 중증질환은 이제 나이든 사람만의 질병이 아니다. 우리는 '한창 일할 나이'라는 40~50대에 암이나 뇌혈관계 질환, 심장질환 등 큰 병을 경험했다는 사람을 드물지 않게 접한다. 2011년 국립 암센터 자료에 따르면 유방암의 경우, 발병률 자체도 꾸준히 늘고 있지만 40대에 발병하는 비율이 35.3%로 가장 높다. 암환자의 의학적 완치율로 여겨지는 5년 생존율은 66%가 넘는다.

일상으로 복귀한 '환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투병과 완치, 일상의 복귀 과정에서 당사자가 실제로 무엇을 경험하는지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투병과 완치, 일상의 복귀 과정에서 당사자가 실제로 무엇을 경험하는지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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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만 해도 곧장 죽음과 연결되었던 치명적인 질병들이 지금은 삶과 조금 가까워진 듯하다. 즉, 중증질환 병력(病歷)을 가지고도 짧지 않은 기간을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아진 셈이다. 그러나 통계는 생사(生死) 여부만을 말해줄 뿐이다. 우리 사회가 그 '삶'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큰 병에 걸린 사람들은 갑자기 '환자'가 되어 사라진다. 투병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발병-진단-치료-완치·죽음'과 관련된 의료의 문제로, 아니면 곁눈질하고 수군거리는 대화의 소재 정도로 다루어진다. 또는 비극적이거나 감동적인 사연으로만 부각된다.

투병과 완치, 일상의 복귀 과정에서 당사자가 실제로 무엇을 경험하는지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투병 당사자가 경험하는 현실은 그 사람의 일상 안에서 연속된다. 하지만 사회가 질병 경험을 재현하는 방식, 여전히 존재하는 환자에 대한 낙인, 건강한 사람만을 기준으로 삼는 노동 환경은 다른 구성원으로 하여금 질병 경험을 일상 바깥의 '사건'으로 인식하게 한다. 어느 날 갑자기 그저 '환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삶의 복잡성과 일상의 구체성이 삭제될 때 그 존재는 타자화 된다. 독자적인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뭉뚱그려진다. 타자화는 그렇게 '우리'와 '저들'을 구분 짓는다. '건강한 사람들의 세계'는 큰 병을 겪는 사람들을 타자화함으로써 유지된다. '아픈 사람들'은 목소리가 아닌 이미지로 나타난다. 죽음과 고통, 비극, 취약함의 이미지다. 그 이미지는 그런 병에 걸리면 일상이 다 무너진다는 듯 두려움과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그 불안을 달래기라도 하듯 대다수 사람들의 귓전을 때리는 말은 건강검진, 건강보조식품, 건강관리, 보험에 대한 것이다.

투병 이후에도 지속되는 일상 그리고 여자

"제가 젊어서 아팠잖아요? 그니까 아프고 난 이후에 사회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앞이 좀 막막했던 거 같아요. 그 이후의 삶. 물론 50%라는 확률이 절망스럽기는 했지만 저는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은 다음에는 뭐 하지?' 그게 되게 막막했어요. 아파서 치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나 동료 상담은 많은데, 그 이후에 사회에 복귀해서 어떤 경험을 하면서 일하는지는 몰랐어요. '일하다가 아팠고, 일하면 안 될 거 같고…'. 온통 그런 얘기만 들렸던 거예요. 일하면서 건강하게 잘 사는 사람에 대한 정보는 거의 안 들어왔었어요." - J(45세/유방암)

"환우모임에 참여하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사는 게 나에게 행복일까. 나는 원래 이기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매일 같이 건강만 생각하고 나만 생각하며 사는 게, 이렇게 80을 산다 한들, 내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그래, 내가 재발을 해서 죽는다 하더라도 원래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하며 살아야 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 - K(44세/유방암)

중증질환을 겪은 사람들도 당연히 '일상'을 살아간다. 병의 완치만이 아닌 다른 삶의 목표와 지향을 갖고 살아갈 것이다. 여전히 생계를 꾸려가야 하고, 생활인으로서의 구체적인 노동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환자라는 정체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경험들, 즉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가족구성원으로서, 시민으로서 복합적으로 겪는 일상과 고민이 있을 것이다. '발병과 완치'의 서사로 다 담을 수 없는 일상의 이야기가 무수히 존재할 것이다.

근로기준법으로 병가를 낼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있지만, 조직 내 문화가 아픈 사람, 약자에 대한 배려를 해주고 지켜내려고 하는 의지가 있지 않으면 떨어져 나가는 거죠. '너 없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런 말에 저는 '알았어, 내가 밥 살게' 이러고 넘어갔지만, 사실 애 낳고 오는 사람들한테 '너 출산휴가 동안 우리 힘들었다.' 이런 얘기 쉽게 하잖아요. 근데 그게 비난하는 게 아니라면, '그래, 나때문에 네가 힘들었을 수 있다, 다만 너도 언젠가 그런 일을 겪을 때 내가 너를 받침해 줄 거야. 이건 나만 받는 혜택이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야'라는 인식이 되면, 약간 투덜거리더라도 밥도 사고 이렇게 넘어가지 않을까요? - M(43세/난소암)

그 이야기는 건강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해 주기도 한다. 병을 겪은 사람들의 노동권은 보장되고 있을까? 주 40시간 거뜬히 일할 수 있는 사람들만 '사회생활'의 권리가 있다고 가정하는 조직 문화 속에서 투병 당사자의 경험은 다른 신체적 약자들의 경험과 만난다.

"저희끼리는 '정말 주치의가 수술했을까?' 이런 얘기도 했었어요. 얼굴을 못 보니까. 저를 수술했다는 의사는 워낙 바쁘니까 수술 끝나면 오는데, 인턴들이 와서 단추 열어놓고 대기하고 있으면 지나가면서 가슴 꾹꾹 눌러보고 '괜찮아요?' 하고 가면 끝이에요. 말도 못 붙여요. 물어보지도 못 하고. 그럼 인턴한테 물어보죠. 근데 인턴은 모르고. 그래서 답답하죠. 환자들은 굉장히 심각한 상태인데 그분들은 일상이니까." - D(53세/유방암)

"저희처럼 대학병원에 찾아가는 사람들은 뭐 아시다시피 한 30초? 1분? 이 정도 만나요, 의사들. 그러고 특진비는 그대로 내는 거고. 기본적으로 의사 면담시간이 워낙 짧고, 바빠 하니까. 한 의사가 진료실을 두 개로 나눠요. 가운데 문을 놔둬서. 제가 들어가면 레지던트가 옷을 끌러서 누워있으라고 하고 차트 다 정리해 놔요. 그럼 그때 의사가 딱 들어와서 검사하고 한두 마디 말하고. 한두 마디 하는 동안 옆에 방에서 또 그런 식으로 다른 환자를 준비시키고. - K(44세/유방암) 

많은 남성들이 정서적 돌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서툴거나 그러한 돌봄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많은 남성들이 정서적 돌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서툴거나 그러한 돌봄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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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암세포만 제거해주면 되는 걸까? 의료 현장에서 의료인을 신뢰하고 단지 '몸'이 아닌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으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남편한테 암이라고 얘기했더니 자기가 더 시무룩하고. 저쪽 방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말도 안 하는 거예요. 나중에는, 화낸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얼굴 굉장히 안 좋고, 일주일 동안 밥도 제대로 안 먹고. 그러면서 나는 울고불고할 새도 없었어요. 그냥 애들 키우고, 얘기 좀 하려 하면 남편은 그냥 방에 들어가고. 속상했죠." - A(45세/갑상선암)

"병원 생활하면서 느꼈는데, 보니까 친정엄마 없는 젊은 여성들이 있더라고요. 40대 주부들도 남편이 와서 간병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다 여자가 와 있어. 남자 병동 가면 다 딸이 와서, 아내든, 엄마든 누군가 와서 붙어있지. 이 땅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진짜 아픈 순간에도 최악이야. 맘 놓고 편할 수고 없고, 집에 중고등학교 자녀 둔 엄마들은 얼마나 불쌍한데. 애들 걱정하고, 남편 걱정하고. 그러고 있더라고요." - M(43세/난소암)

성 역할 분리는 여전히 공고하다. 경제적 부양을 책임지는 것은 남성의 역할로, 집안일과 정서적 돌봄은 여성의 역할로 여겨진다. 많은 남성들이 정서적 돌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서툴거나 그러한 돌봄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여성이 아픈 경우 정서적 돌봄을 받지 못하고 가족 간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한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통해 투병 중인 사람에 대한 정서적 돌봄과 가족 내 역할 분담에 대한 노하우를 얻을 수도 있다.

아픈 여성들 25명의 이야기를 찾아서

"아픈 사람은 질병을 이야기로 만듦으로써 운명을 경험으로 전환시킨다. 자신의 몸을 타인들로부터 분리시키는 질환이 이야기 속에서는 서로 공유하는 취약함을 통해 육체들을 연결시키는 고통의 공통분모가 된다." - 아서 프랭크, <몸의 증언>

아서 프랭크는 질병을 경험한 사람들을 '목격자'로 표현했다. 즉, 경험을 이야기로 재구성함으로써 투병 중 자신이 목격한 것을 '증언'하는 사람들이다. 중증질환을 겪어낸 여성들의 솔직한 '증언'들을 듣고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모든 경험이 귀중하다. 민우회 여성건강팀에서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지금도 투병과 일상 복귀의 경험을 이야기해줄 여성들을 모집하고 있다.

'취약함'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강자'로 남기 위해 모두가 아등바등하는 사회다. 취약한 위치에서 경험하는 구체적 현실을 외면한다면, 계속해서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릴 것이다. 취약한 이들이 겪는 많은 문제가 개인의 책임으로만 남을 것이다. 아픈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서로 다른 몸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몸의 취약성을 지극히 '보편적'인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를 더욱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꼭 만나고 싶습니다
인터뷰이를 기다립니다. 대상은 중증질환을 겪어내고 일상에 복귀한 3~50대 여성(서울․경기 거주)들로, 6월 중 1회 면접 인터뷰를 진행하며, 인터뷰이에게는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 인터뷰는 익명이 보장되며, 인터뷰 결과는 본 사업과 관련된 활동에 활용됩니다.
참가 신청 및 문의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02-737-5763 womensbody@womenlink.or.kr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입니다.



태그:#아픈 여성, #여성 건강,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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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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