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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세계를 지배하다>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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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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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 세계를 지배하다>(시대의 창 펴냄)는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적을지도 모를 책이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식량의 기본인 '종자'를 둘러싼 전쟁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텃밭을 얻은 어머니는 밭 가득 참깨를 심었다. 참깨는 잘 자랐고, 어머니의 기대는 커졌다. 그러나 어머니는 참깨 한 톨도 얻지 못했다. 농사를 잘못 지었어도 한 줌이라도 얻을 수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한 줌은커녕 한 톨도 얻지 못했으니, 어머니에게는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런데 이 귀신이 곡할 노릇을 나도 겪었다. 아버님이 마당의 텃밭에 호박 몇 포기를 심어줬는데, 꽃은 무성하게 피었으나 호박은 단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 늦가을까지 잎만 무성했던 것이다.

"종자 기업들은 아시아에 진출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벼의 1세대 잡종개발에 주력해왔다. 벼 종자는 본래 이듬해 다시 파종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농민이 해마다 종자를 사도록 만들기 위해서 각종 기술 개발에 몰두했다. 마침내 기업들은 식물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할 수 있게 됐고, DNA를 선택적으로 설계해서 수확물이 종자로써 다시 싹을 틔울 수 없도록 만들었다. 터미네이터 기술의 개발이다.

터미네이터 종자는 수확을 마치면 파괴되도록 유전적으로 조작돼 있다. 벼 종자에 새로 삽입된 유전자가 씨앗이 여물기 전에 스스로 독소를 배출해 배아가 파괴되도록 고안된 것이다. 기업이 판매하는 1세대 종자는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지만, 수확된 2세대는 종자로써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능력이 아예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 트레이터 기술(기자 주 : 아래 박스기사 참고)이라는 것도 개발됐다."(<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중에서)

'트레이터 기술'? 그게 뭔가요
트레이터 기술이란 1990년대 말 유전공학 기업들이 개발한 '형질 특이적 유전자 사용 제한 기술'로, 식물의 번식력만이 아니라 유전적인 특징까지 마음대로 조작하는 것을 말한다.

특정 유전자와 연결되는 촉진자를 식물 세포에 주입해 특정물질을 쓸 때만 촉진자가 활성화하도록 하는, 화학적 물질을 이용해 식물의 생장을 통제하는 기술인 것이다.

예를 들면, 몬산토와 신젠토가 판매하는 종자는 그 기업들이 판매하는 화학물질을 사용해야만 해충이나 돌림병 같은 병해에 강하다. 이런지라 이들 종자를 받아들인 농민은 화학적 물질(농약 등)까지 함께 사야만 한다. 초국적 종자 기업들은 이 기술을 이용해 농민들이 종자와 화학물질을 동시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참고로 초국적 종자 기업들은 농산물 수집과 유통 등에도 관여함으로써, 특정 종자만 심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당연히 소속회사의 종자를 요구한다. 초국적 종자회사들은 이런 방법으로 현재 세계를 장악해 가고 있다(책 속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
나와 어머니는 옛날처럼 씨앗을 받아뒀다가 심으면 되는 것으로 알고 기다렸다가 황당한 일을 당한 것이었다.

우리는 초국적 종자 기업들이 '수확물이 종자로써 다시 싹을 틔울 수 없도록 만든' 슈퍼종자'(터미네이터 종자, 트레이터 기술 등으로 만든 종자)를 심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아버님은 동네 어느 집 호박이 유독 탐스럽게 열려 씨앗을 얻어 심은 것이었다. 싹을 틔우고 꽃은 피우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종자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 종자가 기형 종자인 것을 몰랐다.

어디 참깨와 호박에만 이런 일이 생기겠는가. 종자를 주제로 한 책 <내 손으로 받는 우리 종자>와 <토종곡식>에 의하면 우리가 오늘날 심어 가꾸는 작물 중에는 나와 어머니가 실체를 경험한 참깨·호박 같은 게 거의 대부분이라고 한다. 수확량이 많다거나 병충해에 강하다는 초국적 종자 기업들의 홍보에 속아 이제까지 심어오던 토종 종자들을 버리고 선뜻 선택한 그런 종자들 말이다.

농가가 초국적기업에 내는 특허사용료... 이 정도일 줄이야

현재 청양고추 종자는 몬산토의 소유로 등록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되고 재배되던 청양고추 종자는 이제 중국의 산둥성에서 채종돼 국내 농민들에게 팔린다.
 현재 청양고추 종자는 몬산토의 소유로 등록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되고 재배되던 청양고추 종자는 이제 중국의 산둥성에서 채종돼 국내 농민들에게 팔린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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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농촌진흥청이 우리나라에서 재배돼는 재래종 작물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관찰했다. 이에 따르면 고추·수수·기장 등은 더 이상 재래종이 재배되지 않았고, 조사한 작물 중 평균 26%만이 재래종이었다고 한다. 책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는 "우리나라에서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 재배돼온 종자의 74%를 잃어버린 셈"이라고 진단한다.

"현재 청양고추 종자는 몬산토의 소유로 등록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되고 재배되던 청양고추 종자는 이제 중국의 산둥성에서 채종돼 국내 농민들에게 팔린다. 몬산토를 비롯한 초국적 종자 기업들의 소유로 전락한 우리 종자들이 국내 종자 시장을 장악하고, 소비자들의 밥상에 오르고 있다.

2012년 국내기업인 동부팜한농이 몬산토 코리아가 갖고 있던 삼복꿀수박, 불암배추, 관동무 등 채소 종자 300여 품종에 대한 특허권을 인수했지만, 채소 시장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고추, 토마토, 파프리카, 시금치 등은 여전히 몬산토의 권리로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국내 농민들이 외국 기업에 지불하는 특허 사용료 비용은 2005년 183억여 원, 2010년 218억여 원에 달했다. 그런데 2012년부터 이후 10년간 특허사용료 지급액은 797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롭게 특허 사용료를 지급해야 하는 6개 품목[기자 주 : 딸기, 감귤, 나무딸기, 블루베리, 양앵두, 해조류(김·미역·다시마 등)] 등 6개 품목에 대한 특허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중에서)

이 책은 KBS스페셜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를 만든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방송이 나간 뒤 자료들을 조금 더 보충해 책을 펴냈다고 한다. 이 책의 머리말에는 '방송 당시인 2011년 2월 마지막 일요일 방송 직후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인터넷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아마 위에 인용한 책 내용도 독자들을 놀라게 할 것 같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이 30%도 안 될 정도로 턱없이 낮다는 것, 우리의 토종 종자들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 그리고 1980년대 초에 개발된 청양고추마저 이미 몬산토 소유라는 사실이 말이다. 제주도에서 오랫동안 '효자나무'로 불렸던 감귤도,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주로 먹는다는 김·미역·다시마 같은 해조류에도 로열티를 물어야만 한다는 사실은 더욱 당황스럽다.

'종자산업 육성'의 실효성은?

몬산토 CI
 몬산토 CI
ⓒ 몬산토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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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일은 어떻게 일어난 걸까.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 종자회사들이 몬산토와 같은 초국적 종자 기업들에게 매각된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다.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는 세미니스(현재 몬산토에 합병)에, 서울종묘는 노바티스(현 신젠타), 청원종묘는 사카타에 매각됐다.

이는 곧 기업들이 보유한 종자들이 고스란히 초국적 기업의 소유가 된다는 의미다. 국내 종자 기업이 매각되면서 초국적 기업은 1300억~1500억 원에 이르는 국내 채소 종자 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했다.

이렇게 우리는 '종자를 잃어 버린 나라'가 됐다. 책은 우리처럼 종자를 잃어 버린 나라들의 농업 현실과 초국적 종자 기업들의 종자 무기화 전략들과 실태, 초국적 기업들에 의해 만들어진 GMO 작물(유전자변형작물)이나 터미네이터 종자들의 진실과 인류에 끼치는 영향(폐해), 종자 주권의 필요성 등 종자를 둘러싼 그 치열한 싸움과 현실을 다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농림식품부는 2012년부터 10년 동안 총 8149억 원을 투자해 2020년까지 종자에 관한 역량을 강화하고 2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겠다는 '골든시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종자산업 육성을 통해 종자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 실효성은 의심스럽다. 10년 동안 투입되는 8149억 원이라는 예산은 실제 초국적 종자기업 몬산토의 1년 치 연구비보다 적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의 계획은 토종 종자를 보존, 복원하는 일은 도외시하고 주로 GMO 관련 기술을 지원하는데 집중돼 있다. 골든시드프로젝트 추진 자체가 GMO의 국내 상업 재배를 추진하기 위한 대국민 홍보 구실을 하고 있다."(<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중에서)

인문 교양서인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생명을 위협받는 충격과 답답함에 휩싸였다. '종자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책 4부 제목이 섬뜩하게 와 닿았다. 두 눈 뜨고 우리의 종자들을 잃어 버렸음에, 그리하여 우리의 식량이나 먹거리를 초국적 종자 회사들이 쥐고 있다는, 좀 비약하면 우리의 생명을 그들이 쥐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말이다.

식량이 위협받는다면 발전된 경제와 문화가 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런 위기의식에 동감해 가급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이야기에 관심 뒀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행이다.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도 누구나 선뜻 접근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딱딱한 주제인데,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책을 펴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KBS 스페셜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제작팀) / 시대의창 / 2014-05-15 / 1만6800원)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 종자는 누가 소유하는가

KBS 스페셜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제작팀 지음, 정현덕 기획, 장경호 엮, 시대의창(2014)


태그:#종자, #종자전쟁, #몬산토, #터미네이터 종자, #트레이터 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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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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