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레피센트>의 한 장면.

영화 <말레피센트>의 한 장면. ⓒ 소니픽쳐스릴리징월트디즈니스튜디오스코리아


원작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비틀어 마녀 말레피센트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영화 <말레피센트>는 로버트 스트롬버그의 감독 데뷔작이다.

데뷔작치고는 상당한 완성도와 힘 있는 전개를 보여준다. 또 말레피센트가 사는 요정들의 숲인 무어스를 묘사한 영화 미술은 <아바타>의 판도라 행성을 볼 때 느꼈던 미적 쾌감을 선사한다. 그도 그럴 것이, 로버트 스트롬버그는 <아바타>에서 미술을 맡았던 이력이 있다. 영화 곳곳에서 <아바타>의 인장을 발견하는 것이 놀라울 일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말레피센트>를 만든 제작진에는 동화를 실사화한 영화에 헌신했던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우선 감독 로버트 스트롬버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에서 미술을 담당했다. 이번 영화의 각본을 맡은 린다 울버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각본가이기도 했다. 또 프로듀서인 조 로스(Joe Roth)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의 제작자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기존의 동화 이야기를 해체 후 재주조하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영화화의 길을 택한 작품들이다. <말레피센트>도 악당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파격을 감행했다.

이렇듯 제작진의 면모와 주제의식을 형성하는 기법 등을 살펴볼 때, <말레피센트>는 그간 동화 기반 영화에 대한 할리우드의 역량과 노하우가 집적된 꽤나 괜찮은 결과물이다. 영화 외관의 세련됨과 더불어 안젤리나 졸리를 원톱으로 내세운 플롯은 굵고 진한 감정선을 그리며 관객들의 호흡을 매혹적으로 휘감는다.

사랑을 보고 싶은 열망을 저주에 담은 말레피센트

주인공 말레피센트(안젤리나 졸리 분)는 원래 무어스의 수호 요정이었다. 커다란 날개로 창공을 활주하고 마법을 쓰며 악한 인간 군대로부터 숲을 지켰다. 강하면서도 선한 인물이었다. 모든 게 틀어진 건 사랑과 배신 때문이었다. 그녀의 연인이었던 스테판(샬토 코플리 분)은 왕이 되고픈 야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말레피센트의 날개를 잘라내 인간 왕국에 바친다.

지독한 배신에 몸서리친 말레피센트는 갓 태어난 스테판의 딸 오로라 공주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16세가 되는 날, 날카로운 물레 바늘에 찔려 깊은 잠에 빠질 것이다. 이 저주를 풀 수 있는 것은 진실한 사랑의 키스뿐이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원작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결정적 장면이다.

말레피센트가 저주를 풀 수 있는 조건으로 진실한 사랑을 걸어 놓은 것은, 그녀 스스로 진실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풀 수 없는 저주를 내린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진정한 사랑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길 바라는 무의식적 열망이 저주에 녹아 오로라에게 투사된 셈이기도 하다.

영화는 말레피센트의 어린 시절과 포개지는 오로라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데, 이는 이 둘을 등치시키는 '말레피센트 = 오로라'라는 스토리상의 공식이 작동하고 있음을 추론케 한다. 따라서 오로라의 저주가 풀린다면, 말레피센트 또한 사랑을 잃고 배신당해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할 수 있다.

실상 먼저 저주에 걸린 것은 말레피센트이고, 그녀가 저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오로라의 저주가 풀려야 하는 것이다. 과연 오로라의 진짜 사랑은 누구일까? 누가 이 배신과 상처의 저주받은 질곡을 깨고 모든 관계를 회복시킬까? 스크린에서 확인해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 블로그 ( http://blog.naver.com/pellicks513 )에도 실렸습니다.
말레피센트 안젤리나 졸리 잠자는 숲속의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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