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의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공주>는 4월17일 개봉했다

<한공주>는 4월17일 개봉했다 ⓒ 무비꼴라쥬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이 '집단 우울증'에 빠졌다.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컸다. 온 국민이 애타게 '기적'을 염원했지만 한 달이 넘도록 단 한 명의 아이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도 16명의 실종자들이 차가운 진도 앞 바다에 갇혀 있다.

단 한 명의 실종자도 구조하지 못하는(혹은 안 하는) 국가의 무기력(혹은 부재)은 국민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대한민국은 비탄과 분노에 잠겼다. "이건 나라도 아니다"라는 탄식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대통령은 세 차례나 사과를 하고 눈물을 흘리며 해경 해체라는 나름의 강수(?)를 던졌지만 희생자 가족과 국민들의 분노는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주말마다 전국 수십 개 도시에서 수만 개의 촛불들이 분노한 국민들의 눈동자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먹통이다.

영화 <한공주>는 어떤 면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떠오르게 한다.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사회의 무책임한 어른들에 의해 희생당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공주>는 당시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밀양 여중생 성폭행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성폭행사건 이후 피해자가 겪었던 끔찍한 상황들을 상당 부분 사실에 가깝게 묘사하고 있다.

노래하는 공주, 무엇을 잘못했나

영화는 한공주(천우희 분)가 원래 학교에서 교장과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수도권의 한 사립여학교로 전학하면서 시작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강제 전학을 가게 된 공주는 담임선생님의 어머니 조여사(이영란 분)의 집에 임시로 묵게 된다. 조여사는 뭔가 숨기는 듯한 공주가 못마땅하지만 공주의 사려 깊은 행동에 이내 호감을 갖고 결국 함께 살게 된다.

전학 이후 공주는 수영부터 배운다. 그녀는 친구에게 물에 빠져도 죽지 않기 위해서 수영을 배운다고 말한다(이 농담 같은 대사에는 의미심장한 복선이 깔려 있다). 어느 날 같은 학교의 아카펠라 동아리 회원인 은희(정인선 분)는 수영장 샤워실에서 홀로 노래를 부르는 공주를 우연히 발견한다. 공주의 노래에 매료된 은희는 정신적 충격 때문에 타인과 거리를 두려는 공주를 설득해 동아리에 가입시킨다.

다른 동아리 친구들도 공주의 노래 실력에 감탄하고 그녀의 노래가 담긴 동영상을 기획사에 보낸다. 기획사에서 오디션을 하고 싶다는 연락이 오고 공주와 친구들은 한껏 기대에 부푼다. 공주는 노래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 즈음 공주를 성폭행한 가해자의 부모들이 학교로 몰려오고 그녀의 끔찍한 비밀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후 학교도, 담임선생님도, 친구들도, 조여사도 모두 공주를 외면한다. 공주는 다시 홀로 버려지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한공주>는 한마디로 섬뜩하다. 끔찍하거나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은 아니다. 충격적인 장면은 비교적 우회적으로 묘사되는 집단성폭행 장면 정도다. 하지만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끔찍하다. 공주가 겪은 끔찍한 체험들은 모두 실제이기 때문이다. 이수진 감독은 무참히 짓밟힌 채 홀로 버려진 한공주를 통해 흉측하게 일그러진 한국 사회의 민낯을 서늘하게 드러낸다.

공주는 성폭행사건 이전부터 이미 버려져 있었다. 그녀의 부모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 공주를 이용하고 버려둔다.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는 합의금에 눈이 멀어 반강제로 합의서에 도장을 찍게 할 정도로 파렴치하다. 누구도 위험에 빠진 공주를 도와주지 않는다. 공주는 전화로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아버지가 경찰인 가해자 중 한 아이가 공주의 전화를 빼앗아 별일 아니라고 무마하자 경찰은 아무렇지도 않게 공주의 신고를 무시한다. 그리고 공주는 고립무원 상태에서 집단성폭행을 당한다.

 은희는 우연히 듣게된 공주의 노래에 매료되어 공주와 가까워진다.

은희는 우연히 듣게된 공주의 노래에 매료되어 공주와 가까워진다. ⓒ 무비꼴라쥬


가해자 부모들의 이기적인 행태는 역겨워서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특히 우연히 집단성폭행장면을 목격한 가해학생의 아버지(그는 공주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편의점의 사장이었다)가 공주를 그대로 둔 채 자신의 아이만 데리고 비겁하게 현장을 벗어는 장면은 당혹감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는 사건 이후에도 계속 공주에게 전화를 걸어 합의를 종용한다.

공주를 궁지로 몬 것은 성폭행사건이 아니다. 물론 성폭행사건은 그녀에게 심각한 신체적, 육체적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주는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그녀가 수영을 배우는 것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후에도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오직 자기 자식을 위해 수치심도 모르고 학교로 찾아와 공주를 괴롭히는 가해자의 부모들, 그저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경찰과 선생들,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올까봐 공주를 외면하는 비겁한 주변인물들은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떠오르게 한다. 공주는 어른들에게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라고 말하지만 비정한 사회의 시선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욕망이 지배하는 사악한 사회는 가해자들이 아니라 피해자를 응징했다.

<한공주>는 근래에 보기 드문 한국 영화의 수작이다. 감히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한공주>는 개봉 전부터 평단과 관객의 주목을 받았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도빌 아시아영화제, 프리부르 국제영화제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모두 8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한공주>는 수상의 이유를 스스로 입증한다. 이수진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천우희(한공주 역)의 눈부신 연기가 어우러져 서늘하면서 따뜻한 독특한 시선의 사실주의 영화가 탄생했다.

영화보다 더 끔직한 현실

<한공주>의 실제 사건은 어떻게 됐을까? 영화도 충분히 끔찍하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2004년 당시 15살이었던 피해학생(이하 가명 한공주)은 울산에서 아버지, 두 동생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한공주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어머니는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해 2003년 1월 이혼했다. 이혼 이후 아버지의 폭력은 공주에게 옮겨갔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공주는 인터넷 채팅을 통해 밀양 지역 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박아무개(당시 18세)군을 알게 됐다. 2004년 1월경 박군은 공주를 밀양으로 꾀어내 쇠파이프 등으로 때린 뒤 여인숙으로 납치하고 고등학교 선후배 12명과 함께 그녀를 집단성폭행 했다. 이후 1년 동안 7~10명씩 짝을 이뤄 여관, 놀이터, 자취방, 테니스장 등에서 공주를 무참히 유린했다.

가해자들은 공주가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성폭행 장면을 휴대전화와 캠코더 등으로 촬영하고 인터넷에 사진과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그들은 실제로 성폭행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했다). 심지어 일부 가해자는 성폭행하면서 성기구까지 사용하는 엽기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공주의 여동생과 사촌언니까지 수 차례 유인해 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았다.

공주는 두려움에 떨면서 1년여 동안 성적 학대를 당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모에게 모든 것을 말하게 되었고 이모는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렸다. 어머니는 2004년 11월 25일 사건을 112에 신고했다. 가족들은 공주의 신분을 철저하게 보호해달라고 경찰에 수 차례 요구했다. 신고를 받은 울산 남부경찰서도 '비공개'를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경찰은 신고 접수 12일째인 12월 6일 밀양, 창원, 울산 등지에서 가해 학생 44명을 일제히 검거했다. 경찰은 피해자 가족과의 약속을 무시하고 검거 이후 언론에 보도자료를 냈다. 공주의 어머니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찰은 마치 한 건 한 것처럼 언론에 모두 공개하고 말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공주는 어른들에게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라고 말하지만 비정한 사회의 시선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공주는 어른들에게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라고 말하지만 비정한 사회의 시선은 전혀 그렇지 않다. ⓒ 무비꼴라쥬


경찰은 여경에게 조사받게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남성 경찰관이 조사를 맡았다. 담당 경찰관은 조사과정에서 피해 학생들에게 "니네들이 꼬리치며 좋아서 찾아간 것이 아니냐", "내가 밀양이 고향인데 밀양 물 다 흐려놓았다"고 말했다. 심지어 가해학생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공주가 직접 범인을 지목하도록 했다.

경찰관들은 노래방에 가서 도우미 여성을 불러놓고 공주의 실명을 거론하며 "누구와 닮았네", "밥맛 떨어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동석했던 도우미 여성이 피해자 가족에게 알리면서 공개됐다. 수사 과장에서 인권침해로 8명의 경찰관이 징계를 받았지만 1년 후에 모두 복직했다.

경찰 수사 직후 공주는 여동생과 함께 서울로 전학했다. 경찰의 부주의로 신상이 노출돼 도저히 그 지역에서는 살 수가 없었다. 2005년 1월 서울로 이사한 공주는 변호사 등의 도움으로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심리치료를 받았다. 공주는 한 달 정도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짧은 기간 동안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퇴원 이후 공주는 지하철로 뛰어들겠다며 수 차례 자살시도를 했다. 결국 어머니는 그녀를 폐쇄 병동에 입원시켰다.

이때 친권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가 공주를 찾아와 퇴원시키고 가해자들과 합의할 것을 강권했다. 법률적 지식이 없었던 공주는 피의자 가족과 합의하고 선처를 바란다는 탄원서까지 써줬다. 아버지는 합의금으로 5천만 원을 받았다. 그는 1500만 원으로 울산 외곽에 전셋방을 구하고 나머지는 친척들과 나눠 가졌다. 공주는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 사건 이후... 한공주는 어떻게 됐을까

탄원서 덕에 가해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검찰은 성폭행 직접으로 가담한 44명 중 단 10명만 기소했다. 나머지 34명 중 20명은 소년부에 송치했고, 13명에 대해서는 합의했거나 고소장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소권이 없다"며 풀어줬다. 2005년 4월 울산지법은 기소된 10명에 대해서도 소년부 송치 결정을 내렸다. 피의자들은 보호 관찰 처분 등을 받고 재판은 마무리됐다. 44명 중 단 한 명도 전과 기록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현재 가해자들은 대학을 다니거나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공주는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10여 곳의 학교를 전전하다가 간신히 전학을 할 수 있었지만 영화에서처럼 가해자의 부모가 전학한 학교로 찾아와 소년원에 있는 아들을 위해 탄원서를 써달라고 요구하면서 그녀의 과거가 드러나고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다.

학교를 그만둔 이후 그녀는 컴퓨터에 매달려 PC방을 전전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때 스트레스에 의한 폭식으로 체중이 엄청나게 불어난 적도 있었다. 그녀는 고정적인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 등으로 불안한 생활을 힘겹게 이어갔다. 현재 공주의 상황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녀는 이제 20대 중반이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때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청춘은 전혀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대한민국의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의 광풍 속에서 흉측하게 일그러진 대한민국의 끔찍한 민낯과 직면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결코 어느 날 갑자기 우연하게 발생한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천민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종착점이다.

한국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면 비극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밀양성폭행사건 당시에도 한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지만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었다. 이제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머지않아 또 다른 한공주, 또 다른 세월호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한공주 천우희 이수진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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