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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차가 속도를 줄인다. 나도 따라서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앞쪽을 살펴보니 군인들이 차량의 통행을 막고 있다. 조만간 반대편 차로로 훈련 차량들이 지나갈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차를 길 가장자리 쪽으로 바짝 붙여 세웠다. 조금 있으니 '쿠렁쿠렁' 하는 소리를 앞세우고 장갑차들이 여러 대 지나간다. 그 뒤를 군용 지프차와 의무대 차가 천천히 따라가고, 승용차들도 줄을 지어 뒤따른다. 반대편 차로의 차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로 훈련을 가는 것일까, 아니면 훈련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일까. 행진하는 장갑차의 대열을 보니 아들을 군대에 보내놓고 늘 무사하기를 빌고 있을 엄마들의 마음이 떠올랐다. 나 역시 군인인 아들을 생각하며 시절이 태평하기를 빌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절이 태평하기를 빌었던 엄마의 마음

 조강 한가운데로 군사분계선이 지나갑니다. 날이 좋을 때면 북한의 산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조강 한가운데로 군사분계선이 지나갑니다. 날이 좋을 때면 북한의 산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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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수도권에 속해 있지만 군사분계선과 가까이 있어 최전방이나 매한가지다. 그래서 주둔하는 군인들 역시 꽤 된다. 특히 민통선 안에 있는 동네들은 분단 현실을 일상에서 매일 실감하고 있다. 바닷가에는 철책이 높게 처져있을 뿐만 아니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초소들이 있어 일반인들의 접근 자체를 막고 있다.

여러 해 전에 우리 집에 놀러왔던 고향 친구에게 강화도 북단인 민통선 지역을 구경시켜 준 적이 있다. 그때는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던 때여서 검문 초소에서 일일이 신분증을 제시하고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했다. 특히 강화도에 적을 둔 차가 아닐 경우에는 통과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어서 민통선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 등을 밝혀야 들여보내 주었다. 다행히 양사면 교산리에 아는 분이 있어서 그 댁에 간다고 말하고 나서야 내 인적사항을 옮겨 적고 들여보내 주었다.

차가 막 출발하려는데 내 친구가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친구는 급히 가방을 뒤적이더니 초코렛이며 음료수 등을 꺼내서 검문소의 군인들에게 다가갔다. 군인들은 건네주는 과자와 음료수를 극구 사양했지만 친구의 한 마디에 차마 거절할 수 없었는지 고맙다고 하면서 받았다.

"우리 아들도 군인이에요. 아들 생각이 나서 주는 거니 받으세요."

그 모습을 보니 괜히 가슴이 찡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엄마들에게는 모든 군인들이 다 아들처럼 보인다더니, 친구 역시 그런 마음이 들었던가 보았다.

그때 친구와 함께 가봤던 곳이 바로 연미정이다. 강화읍 월곶리에 있는 '연미정'은 민통선 안에 있어서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군(軍)과 군(郡)이 협의를 하여 검문 초소를 연미정 뒤로 약 100 미터 정도 물리면서 지금은 누구나 다 연미정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강화군관광안내지도'에서 조강을 찍어봤습니다. 경기도와 황해북도, 인천광역시와 황해북도가 조강을 가운데로 해서 나뉘어진 게 보입니다.
 '강화군관광안내지도'에서 조강을 찍어봤습니다. 경기도와 황해북도, 인천광역시와 황해북도가 조강을 가운데로 해서 나뉘어진 게 보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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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정은 옛사람들이 강화 8경으로 꼽았을 정도로 경치가 뛰어나다. 연미정에서 바라보는 달은 특히 더 아름다워서 동네 이름도 달 월(月)자가 들어간 월곶리이다. 또 한강이 두 갈래로 갈라져서 흘러가는 모양새가 꼭 제비 꼬리와 닮았다고 하여 정자의 이름도 연미정(燕尾亭)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하나가 되는 조강

연미정은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높다란 언덕 위에 있다. 그곳에 서서 바라보면 오른쪽으로는 김포시 하성면 보구곶리가 보이고 왼쪽 앞으로는 황해도 개풍군의 들과 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다 한가운데에는 작은 섬도 하나 있다. 사실 바다라고 했지만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곳이니 바다이기도 하고 또 강이기도 한 이곳을 지도에서는 한강으로 표기하고 있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고 합쳐지니 기실 강이기도 하고 또 바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곳에서는 바다라고 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한강 하구라고도 하는 이곳을 강화와 김포 사람들은 '조강(祖江)'이라고 부른다. 강의 양쪽에는 조강리라는 이름의 동네도 있다. 바로 김포시 월곶면의 조강리와 황해도 개풍군의 상조강리와 하조강리라는 동네가 그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조강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하니 옛 사람들도 그렇게 불렀나 보다.

 강화읍 월곶리에서 양사면 인화리까지 민통선 구역입니다. 연미정 근처에도 민통선 검문 초소가 있습니다.
 강화읍 월곶리에서 양사면 인화리까지 민통선 구역입니다. 연미정 근처에도 민통선 검문 초소가 있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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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이 들면 염하를 따라 올라온 바닷물이 힘차게 한강으로 밀려들어간다. 물의 힘이 얼마나 거셌으면 예전 뱃사람들은 밀물 때를 기다렸다가 물살을 타고 한양의 마포나루나 서강 등으로 올라갔을까. 또 썰물이 나면 민물들이 바다로 빨려나간다. 그럴 때 연미정 앞은 마치 소용돌이라도 일어난 양 물들이 이리저리 휩쓸리기도 하고 또 몰려다닌다.

강화지역은 서해를 거쳐 한강으로 진입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삼남 지역과 관서와 해서 지방의 조운선들은 강화 연안을 따라 서울로 올라갔다. 세곡은 한강이 얼어붙기 전에 서울로 운송하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추수가 끝나고 부터 물이 얼기 전까지 강화 앞바다는 배들로 가득 찼다. 연미정 앞 바다는 천 여 척의 배들이 물때를 기다리며 정박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 광경이 실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의 정경을 '심도기행(沁都紀行)'에서는 이렇게 나타내고 있다.

燕尾亭高二水中      연미정 높이 섰네 두 강물 사이에
三南漕路檻前通      삼남지방 조운 길이 난간 앞에 통했었네
浮浮千帆今何在      떠다니던 천 척의 배는 지금 어디 있나,
想是我朝淳古風      생각건대 우리나라 순후한 풍속이었는데.

이 한시는 1906년에 고재형이라는 선비가 강화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쓴 기행 시 중의 '연미조범(燕尾漕帆)'을 옮긴 것이다. 연미조범이란 '연미정 조운선의 돛대'란 뜻으로, 삼남 지방에서 올라오던 조운선들이 돛을 활짝 펴고 연미정 앞을 경유하던 광경을 나타낸 것이다. 

배를 타고 서울을 오갔다

 세곡을 부리고 한강을 거슬러내려오는 조운선입니다. 19세기 후반에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세곡을 부리고 한강을 거슬러내려오는 조운선입니다. 19세기 후반에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 강화역사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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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가 심도기행을 썼던 1906년 당시에는 조운선이 폐지가 되어 볏가마를 실은 천여척의 배들을 볼 수는 없었지만 서울과 강화를 이어주는 뱃길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사람들은 배를 타고도 서울로 오갔다. 지금으로는 잘 상상이 가지 않지만 우리나라가 분단이 되기 전의 한강 하구는 배들이 왕성하게 다니던 큰 물길이었다.

배를 타고 서울로 오갔다니,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한강을 오르내리는 배를 본 적이 없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하지만 그리 먼 옛날의 이야기도 아니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조강과 한강 하구에는 배들이 떠다녔다.

월곶리에서 만난 여든여섯 되시는 한씨 할머니는 예전에는 그렇게 배를 타고 서울로 오갔다며 육십 년도 더 전의 일들을 이야기해 주셨다. 서울로 가는 길은 오로지 육로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우리들로서는 쉬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옛 어른들에게 한강은 또 다른 길이었다.  

그러나 지금 연미정 앞의 바다에는 배 한 척 볼 수 없다. 고적한 물 위로 가끔씩 새들이 날아갈 뿐 인적은 찾아볼 길이 없다. 높다랗게 처져 있는 철책이 강에 접근하는 것조차 막는다. 사람들은 멀리서 바라볼 뿐 감히 철책 근처에 가려고 조차 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금지되어 있다 보니 어느새 우리들의 의식 속에 강도 또 물길도 없어져 버렸다.

조강은 강화도의 북쪽과 황해도의 남쪽 사이를 흐른다. 강을 사이에 두고 개성직할시와 인천광역시 강화군이 마주보고 있다. 빤히 보이는 곳이니 먼 거리도 아니다. 불과 3~4 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 어찌 보면 이웃이나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곳은 채 2킬로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다 하니 강가에서 소리쳐 부르면 답을 할 것 같다.

 연미정 앞은 비무장지대 중립지역입니다.
 연미정 앞은 비무장지대 중립지역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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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까운 곳인데도 반백년 이상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 세월이 하도 오래 되다보니 이제는 존재조차도 희미해져 버렸다.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곳인데도 천리만리 먼 곳인 양 생각을 한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선 때문이다.

조강의 한가운데를 따라 군사분계선이 그어져 있다. 그 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비무장지대인 중립지역이 설정되었고 조강은 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과 북이 교류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차지하지도 못하는 빈 곳이 바로 조강이다. 그런 세월이 벌써 육십 년도 더 넘었다.

조강 어름은 한국전쟁 이후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역이 되었다. 그러니 어찌 배가 다닐 수 있을 것이며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었을가. 천여 척의 배들이 오가던 물길은 육십 년 이상 끊어졌다. 앞으로도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니 조강이 내려다보이는 연미정에 서면 풍경을 즐기는 감상보다는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 앞에서 비통한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은 당연한 소치이리라.

밤이 돼서야 비로서 깨어나는 조강

조강은 밤이 되어야 비로소 깨어난다. 모든 것이 어둠 속에 묻힐 때 조강은 환하게 불을 밝히며 사방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강을 따라 서있는 탐조등에 불이 켜진다. 불빛은 강을 향해 있다. 주황색 불빛이 환한 조강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안개라도 낀 날이면 강은 마치 꿈을 꾸기라도 하는 양 아련하게 빛난다. 그런 날에 밤을 새며 경계를 서는 초병들은 어떤 마음이 들까. 혹시 향수에 젖어 들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것마저도 조강은 허락하지를 않을 것 같다. 소리를 지르면 들릴 듯한 가까운 거리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적이 있는데 어찌 감상에 젖을 수 있겠는가. 초병들은 밤새 강물을 바라보며 시대와 불화하는 우리의 현실을 속 깊이 느끼고 있지는 않을까. 

 연미정의 낮은 이렇게 평화롭습니다.
 연미정의 낮은 이렇게 평화롭습니다.
ⓒ 박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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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좋은 한낮에 연미정에 올랐다가 아래에 있는 군부대 마당을 내려다봤다. 강물도 부대도 조용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빨랫줄에 널어놓은 옷이 바람에 너풀거릴 뿐 사방은 고요했다. 노란 햇살만이 군부대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연미정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을 생각하며 찻길로 내려오니 검문 초소 앞에 서있던 군인들이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경례를 착 올리는 모습이 보인다. 이웃 동네의 어른인 듯한 아저씨도 웃으면서 답례를 한다. 삼엄한 듯한 군 검문초소에 인정이 배어있는 듯해서 흐뭇했다.

오가는 차량을 검문하면서 종일 서있자면 갑갑한 마음이 들 지 모른다. 봄은 바야흐로 무르익어 여름으로 가는데, 하고 싶은 것들을 뒤로 미룬 채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자니 얼마나 힘들까. 내 아들 같기도 하고 또 조카 같기도 한 군인들에게 뭐라도 하나 건네주고 싶다. 그래서 가방을 뒤적거려 봤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요즘 군대는 아쉬운 게 없을 정도로 잘 갖춰져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뭐라도 하나 주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이 아니겠는가.

스무 살 남짓의 청년들이 국가와 영토를 지키고 있다. 그들의 청춘을 담보로 해서 우리는 일상의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강을 바라보며 청년들은 모슨 생각을 할까. 반백년이 넘도록 숱한 젊은이들의 청춘이 저 조강과 함께 흘러갔다. 그러나 오늘도 조강은 말없이 흐를 뿐 대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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