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눈앞에 둔 드라마 <정도전>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눈앞에 둔 드라마 <정도전> ⓒ KBS


지난 25일 방송된 KBS 1TV 대하드라마 <정도전>(연출 강병택·이재훈, 극본 정현민)에서 끝내 고려 왕조가 무너졌다.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이 폐위되면서 500년 역사를 가진 고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고려의 멸망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결국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이 결정적이었다. 그럼 거꾸로 이성계가 만약 위화도회군을 감행하지 않았다면 고려가 어떻게 되었을지 가정해볼 수 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추측은 해볼 수 있다.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지 않고 그대로 철령 이북 땅을 공격했다면 고려는 전시 상태로 돌입했을 것인데, 전쟁의 결과에 따라 고려의 운명이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고려가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고려의 상대가 당시 최강국이었던 명나라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명나라는 북위와의 전쟁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고 주변 이민족들이 여전히 건재했기 때문에 철령 이북 땅에서 벌어질 전쟁에 '올인'할 상황은 되지 못하였다.

당시 북벌을 주도했던 최영은 이 점에 착안했던 것이다. 이성계가 최영의 의도에 따라 이 점을 노렸다면 전쟁은 예상보다 빨리 끝낼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전투보다는 외교를 통한 해결점을 찾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았던 당시 정국이었다.

결국 고려로서는 작은 희생만 치르고 철령 이북 수복이라는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고려는 영토와 인구, 자원 등을 얻어 국력에 한층 보탬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500년 이상 존속되며 주변 나라의 정세에 따라 더 큰 나라로 성장해 동북아시아의 리더가 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고려는 태조 왕건이 훈요십조를 통해 북벌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이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고려 말기의 국력이었다. 드라마 <정도전>을 보면 귀족들은 사치와 향락을 일삼고 백성들을 먹을 것이 없어 쓰레기통을 뒤지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고려가 정말 그 정도의 상황이었다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해도 그는 일시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공민왕 때처럼 영토를 수복했다가 도로 내주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외적의 침입과 내란 등으로 나라가 패망의 위기에 놓였을 수도 있다.

고려가 전쟁에서 패했다면?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지 않고 진격을 했다가 명나라에 패했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자칫하면 고려는 어렵게 준비한 군대가 몰살됨은 물론 이성계, 조민수 등의 맹장도 모조리 잃었을 수도 있다.

설사 주요 장수들이 살아남았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패전의 책임이 씌워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려에는 늙은 최영만이 남게 된다. 주변 나라들이 역습으로 쳐들어왔을 때 과연 막아낼 수 있었을 지가 의문시된다. 어렵게 외적의 침입을 막아냈다고 할지라도 고려는 본의 아니게 황제국에서 제후국으로 격하되는 수모를 겪게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아쉬움이 남은 것은 고려의 국력 수준이다. <정도전>에서 고려가 북벌에 동원한 병력은 5만 정도였다. 그 수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고려보다 수백 년 먼저 존속했던 고구려의 경우 외세와 싸울 때 보통 10만 이상의 병력이 동원되었다. 그런 점에서 중세 국가인 고려가 고대 국가인 고구려보다도 병력이 적었다는 것은 국력 수준이 한참 떨어졌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위화도회군과 별개 문제인 이성계의 반 독립적 상태

이성계의 입장에서 보면 위화도회군을 하지 않았다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전쟁터에서 죽거나 돌아와서도 패전의 멍에를 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계에게 위화도회군은 불가피한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성계가 두 차례나 회군을 허가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그가 정말로 역심을 품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혁명을 위한 절차였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고려 말기의 경제 수준과 백성들의 민심이 정말 어느 정도였느냐가 역사를 가정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성계는 위화도회군과 상관없이 반 독립적인 상태로 상당수 영토와 사병을 데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사실상 고려 동북면의 독립 군벌이었고, 사병집단 가별초는 사실상 그의 백성이었다. 이성계가 왕이 될 준비를 자발적으로 했는지, 아니면 드라마에서처럼 등 떠밀려했는지를 떠나서라도 그에게는 역성혁명의 대업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고려는 한 나라로서 그런 이성계를 완벽히 통제하지 못했다. 이인임이 유일하게 이성계를 우려했을 뿐 다른 이들도 그런 이성계를 경계하기는커녕 오히려 협력하였다. 우리가 고려의 충신이라고 아는 정몽주도 위화도회군에 찬동하였고, 폐가입진의 명분으로 우왕과 창왕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화도회군을 안했다면 역사가 일부 달라졌을지는 모르나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이성계가 고려를 장악하는 것을 온전히 막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고려에는 이성계에 대항할만한 힘을 지닌 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고려 왕실은 물론이고 그에게 힘겹게나마 대항했던 이들도 모두 힘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이성계가 오랜 시간동안 대권을 잡기 위해 정도전 등을 영입하여 준비한 태스크포스 팀의 계획이 치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오히려 위화도회군은 그런 계획에 날개를 달아준 고려의 자충수였을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sky_fund/220011211078)에도 게재하였습니다.
정도전 이성계 위화도회군 정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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