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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민주주의 실험실을 찾아가는 현장 탐사기
▲ <국가를 되찾자> 표지 대중 민주주의 실험실을 찾아가는 현장 탐사기
ⓒ 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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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선거의 계절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권력의 민주화와 더 나은 민주주의 정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1인 1표'의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선거는 국민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제도 중 하나다. 투표 행위는 국민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최소한'이다. 투표를 제외한 일상에서 국민은 정치의 주인이 아닌 관객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권력을 끊임없이 나누고 민주화하는 '삶의 정치'가 일상화되지 않는 이상 민주주의는 '투표함'을 뛰어넘을 수 없다. 국민이 소외된 대의 정치는 정치 엘리트에 의한 통치로 변질되고 관료주의를 키우는 숙주가 된다. 형식으로 전락한 민주주의와 공공의 적이 된 관료주의의 해악은 치명적이고 광범위하다. 세월호 사태의 비극이 주는 교훈이다.

민주주의를 대중적 통제와 정치적 평등으로 정의한다면, 실제로 우리는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나아간 게 거의 없는 것 같다. (13쪽)

영국의 사회학자 힐러리 웨인라이트는 <국가를 되찾자>에서 "민주주의와 매일매일의 삶이 이제까지 민주주의의 맥락 속에서는 왜 사실상 점점 더 멀어지고 있을까? 일상생활이 민주적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그는 "우리의 세금을 거두어 쓰며 지배하는 이들을 통제하는데 지금의 대의제는 너무나 취약하다"며 "공적자원을 통제하고 증진시킬 수 있도록 민주주의를 강력하게 만들 방법과 수단을 찾아내야 한다"고 했다.

참여 민주주의가 취약한 대의구조에 도전하고 새로운 힘을 불어 넣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런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웨인라이트는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리, 영국의 이스트맨체스터, 뉴캐슬 등의 사례를 통해 참여 민주주의 방향과 미래 동학을 탐색한다.

저자가 보기에 참여 민주주의가 대의 민주주의 한계를 넘어서는 완결된 해법이자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다만 민주주의가 자본주의 앞에 쉽게 무릎 꿇는 현실에서 참여 민주주의는 민주적 교섭력 강화와 민주적 대항 권력이 작동할 수 있는 발전된 수단을 제공한다. 그 결과 재분배를 촉진할 민중적 압력을 형성함으로써 공공재가 제공되는 과정을 향상시키는 많은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민주주의는 어떤 종결된 설계가 아니라 국가의 안팎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투쟁이다.

포르투알레그리의 실험과 교훈

'참여예산제'(orcamento participatio, PB)로 유명한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리 사례를 보자. 웨인라이트는 "대의 민주주의의 부박함은 정책 실행 속에서 공중과 종사자의 직접 참여를 통해 보완돼야 한다"며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의 매력은 참여와 대의 민주주의를 결합하는 권력 공유의 생생한 실험에 있다"고 했다.

투명성을 원칙으로 하는 PB의 매커니즘은 복잡하면서도 독창적이다. 연례 대중회합에서는 지역 파견자와 예산 평의원이 선출하고 차기 년도 추진 과제의 우선 순위가 선택된다. 선출된 파견자들의 임무는 예산 우선 순위 목록을 제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로 건설, 학교, 건강 증진, 하수 처리, 협동조합을 포함하는 경제발전, 레저와 스포츠 시설 등 다양한 이슈에 관해 사람들의 의사를 묻는다. 이들은 1년 내내 지역의 여러 그룹들을 만나며 문제점을 뽑고, 진전 상황을 살피며, 다음 해 예산을 짤 아이디어를 생산한다.

참여과정의 정부측 기구인 '예산계획위원회'(Gabinete de Planejamento, GAPLAN)는 정부의 시각에서 대중을 상대로 설명하고 설득하지만, 대중의 편에서 정부의 활동을 점검하기도 한다. '지역공동체 관계 조정위원회'(Coordenacao de Relacoes com as Comunidades, CRC)의 조정자들은 다양한 제안을 발전시키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는 이웃공동체 회합을 통해 PB 파견자들을 돕는다. 조정자들은 민중들이 기술적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우선순위들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파견자들이 지역이 다양한 요구를 전체로서 이해할 수 있게 할 책임을 지닌다.

웨인라이트는 "GAPLAN이 PB의 기술적 엔진이라면 CRC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연료공급 시스템"(120쪽)이라고 요약했다. 해마다 열리는 '민중총회'에서는 지난해의 지출을 설명하고 차기 년도 예산에 관련해 파견자들이 작업할 쟁점을 제기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회합이 열리는 동안 참가자들은 저항할 기회, 다양한 필요를 조사하고 해법을 제안할 기회를 얻는다. 포르투알레그리 사람들 중 85% 이상이 PB에 관해 알고 있으며 지지하고 있다.

참여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주장 중 하나는 참여 민주주의가 민중들의 창조성이 드러나는 대중적 행동의 폭발적 계기들로 구성돼 대개 단명하게 되며, 그런 창조성은 정부의 지속가능한 시스템의 지반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르투알레그리나 상투안드레 같은 도시에서 PB는 지속성을 지닌 제도들의 창출을 이끌었고, 시민들에게 민주주의의 전통적인 형태를 통해 성취할 수 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권력을 안겼다. PB가 만든 여러 제도에 참여하는 대중은 해마다 늘어났고, 이런 민주주의의 확장은 부의 재분배를 포함해 시 자체에 물질적 이익을 가져다줬다. 중간 계급 유권자들은 이런 상황이 시 전체에 이익이 된다고 인식했다. (134~135쪽)

PB는 불평등을 다루며 부를 재분배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브라질의 상투안드레 시장인 세우수 다니에우는 "재정이 권력이라 생각했고 예산의 개방은 권력의 공유를 근할 가장 좋은 시험대였다"고 PB로 나아가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전직 고위공무원 에두아르두 우지그는 "정부에서 일할 때 끊임없이 직접적인 민중의 압력 아래에 있다고 느꼈다"며 "이런 압력 덕분에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됐다"고 말했다. 1989년 이후 지방 예산을 정밀 분석한 결과 PB가 집권한 지역의 평균 소득이 낮을 수록 1인당 공공 투자 규모는 더 커졌다.

지방자치 20년과 참여 민주주의

PB를 둘러싸고 성장한 시민권력은 권력을 기꺼이 공유하려고 하는 공적 제도들에 달려 있다. 상당한 공적, 곧 국가의 자원이 이용되지 않는다면 지속적 수준의 참여도 시민권력의 대중적 지반도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런 조건이 제대로 갖춰지게 만든 권력의 새로운 자원은 자체적인 생명력과 동학을 지니게 되며 포르투알레그리의 지방정부가 존중하고 지원한 게 바로 이것이다. (136쪽)

한국의 지방자치는 정치의 주인인 민중이 '부재 상태'라는 점에서 여전히 낙제점이다. 오죽하면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니라 '풀뿌리 보수주의'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주민소환제와 주민투표제, 주민참여예산제도 같은 제도는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아직 시작 단계이거나 유명무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지방정부가 지역 주민을 대변하기 보다는 지역 토호와 결탁하고 중앙 정부의 위임을 받아 주민들의 머리위에 군림하는 '2차 권력'으로 기능하는 한 풀뿌리 민주주의는 한발짝도 진전될 수 없다.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시민 권력 성장의 배경에는 이를 조직하고 지원한 지방정부와 정당(브라질노동자당, PT)이 있었다. 참여 민주주의를 누리려면 참여 민주주의를 반영하는 정당과 정부가 있어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강화를 목적으로 도입된 지방자치제도가 본연의 역할을 다한다면 더 나은 사회, 더 좋은 민주주의를 가져올 수 있다. '권력의 공유' 없이는 참여 민주주의도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 http://blog.yes24.com/xfile340 에도 게재했습니다.
<국가를 되찾자> / 이매진 / 힐러리 웨인라이트 / 20,000원



국가를 되찾자 - 대중 민주주의의 실험실을 찾아가는 현장 탐사기

힐러리 웨인라이트 지음, 김현우 옮김, 이매진(2014)


태그:#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 #대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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