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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김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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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천막을 비워주니 당장 갈 곳이 없었다. 그나마 생활의 보금자리로 든든하게 여기고 살아온 든든한 천막촌이 아니었던가. 이곳을 차마 떠날 수 없었다.

이소선은 천막을 비워주고 땅 바닥에 주저앉아 시름에 잠겼다. 이웃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이곳에서 살아보라고 한다. 천막과 천막 사이에는 빈고랑 같은 공간이 있었다. 이소선은 거기에 비닐을 깔았다. 옷가지를 이불삼아 덮고 그 비닐바닥에 누웠다. 어린애 셋을 데리고 이슬이나 피하는 정도였다.

이소선은 자리에 누워 태일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태일아,너 천막을 비워주자고 하더니 이렇게 웅크리고 자는 것 좋으니?"

"그래 좋아. 엄마가 항상 말했잖아. 남에게 빚지거나 신세지고 사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편하지 뭐."

태일이는 한 치의 구김살도 없이 대답했다.

이소선은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린것이 잠자리가 불편하다느니 이런 데서 어떻게 잘 수가 있느냐고 투정이라도 부린다면 얼마나 딱한 노릇인가. 그럴수록 이소선은 부모로서 의무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침울해 했다. 어린것이 부모한테 불평이라도 한다면, 비록 내 자식들이지만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그 어린것들한테 무슨 말로 변명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소선은 비닐을 깔고 자는 생활 속에서도 팥죽장사를 계속했다. 그것마저 못 하면 당장 굶어죽을 판이었다. 한데서 솥을 걸고 네 식구 밥해 먹기도 힘든 판인데 팥죽장사까지 하려니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남편은 아예 식구들을 버린 듯 찾아오지도 않았다. 네 식구가 비닐천막 밑에 쪼그리고 앉아 비를 피하고 있었다. 태일이가 비를 쳐다보더니 무심코 입을 열었다.

"나는 앞으로 높은 사람이 될 끼다. 그래가꼬 집 없는 사람들에게 억수로 많이 집을 지어줘야지."

이소선은 그 말을 듣고 내심 기뻤다. 그렇게 되기를 늘 바라고 있었지만 태일이의 생각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 태일아 니가 언제 커서 높은 사람이 되겠냐. 이렇게 가난하게 살면서 어떻게 높은 사람이 된단 맡이냐?"

태일이는 막힘이 없이 대답한다.

"엄마가 늘 말했잖아. 우리도 언젠가는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참고 견디면서 정직하게 살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했잖아."

태일이는 엄마를 쳐다보더니 오히려 나무라는 투다. 엄마는 태일이의 말을 들으면서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말을 하지 않았으면 정말로 이소선은 실망했을 것이다. 태일이 한테 늘 그런 식으로 타일러왔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해왔지 않았던가.

"그래,우리 태일이는 참 착하고 똑똑해."

이소선은 어린 아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비는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점심을 먹는데 빗물이 비닐천막 끝에 매달려 뱅글뱅글 돌더니 똑 하고 떨어졌다. 태일이가 밥숟가락을 빗방울에 갖다 대더니 빗물을 맛있게 먹었다.

"너 밥 먹다가 그게 뭐하는거냐?"

이소선은 수저를 들다가 물었다.

"난,이렇게 하는 게 재밌어."

태일이는 물방울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귀엽게 웃었다.

'저 애가 왜 저린 장난을 치는 걸까. 정말 어린애니까 재미있어서 그러는 것일까?,

태일이는 나이는 어리지만 빗물을 받아먹을 정도로 어리광을 피우거나 장난꾸러기가 아니었다.

'우리가 이렇게 천막 아래에서 살아서 그럴까? 고생하는 이 엄마를 위해 일부러 즐거운 표정을 짓고, 슬픔보다는 기쁘게 살려고 저런 장난을 하는구나.'

태일이는 엄마한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자기가 알아서 재롱을 피우는 어른 아닌 어른이 다 돼 있었다. 전쟁과 가난이 어린애를 조숙하게 한 것이다.

어느 이발소 앞에서의 일이다. 어떤 남자가 돈을 떨어뜨리고 자전거를 타고 그냥 가버렸다. 태일이는 달려가서 그 돈을 주웠다. 돈을 주워들고 주인에게 돌려주려 했지만 자전거는 이미 멀리 사라져버렸다. 마침 그때 이발소에서 나오던 어른이 태일이를 보고 돈을 빼앗으려고 했다.

"아저씨 돈이 아니예요. 내가 가지고 있다가 그 주인이 다시 오면 돌려주겠어요. 왜 남의 돈을 뺏으려고 해요?"

태일이는 아등바등 거렸지만 그 어른한테 돈을 빼앗기고 말았다. 태일이는 그길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이발소까지 함께 갔다. 이발소 주인을 만나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 돈을 받아달라고 사정사정했다.

"돈을 잃어버린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는 내가 가지고 있어야 돼요. 내가 주운 돈을 빼앗아 간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에요. 내가 주운 돈을 빼앗아 간 아저씨는 분명히 돌려주지 않고 그냥 가지려고 하는거란 말이에요."

태일이는 돈을 빼앗은 그 어른이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간 것을 두고 말 히는 것이었다.

함께 간 아주머니하고 이발소 주인도 나서서 기어코 그 돈을 다시 찾아 왔다. 태일이는 어릴 때부터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굽히지 않고 자기 뜻을 이루고야 마는 성미였다.

천막촌에 철거명령이 떨어졌다. 천막조차도 없는 이소선네 식구들은 부담 없이 미아리 공동묘지 근방으로 갔다.

이무렵 남편은 남대문시장에서 제품공장 일을 나갔다. 이소선네 식구들은 미아리 공동묘지 근처에서 8개월을 살았다. 어찌된 판인지 가진 것도 없는 가난한 동네에 강도가 많아서 도저히 마음 놓고 지낼 수가 없었다. 이들 집에도 어느 날 밤 강도가 들이 닥쳐 보잘 것 없는 가진 것을 다 빼앗겼다. 그래서 다시 거처를 옮겼다. 이번에는 도동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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