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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 11일은 2006년부터 정부에서 정한 '입양의 날'이다. 한 가정이 한 아이를 입양해 새로운 가정을 만들자는 취지로 정부에서 제정한 날이다.

그러나 입양의 당사자인 입양인과 싱글맘, 입양인 원가족 등은 지난 2011년부터 이날을 '싱글맘의 날'로 정했다. 그리고 정부에서 입양을 권장하거나 지원하기 보다는 친모(혹은 미혼모)가 낳은 아이를 마음 놓고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그런 사회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2012년에만 우리나라에서 입양 보내진 아동의 92.7%가 미혼모의 자녀다. 반면 서구는 99% 이상, 거의 100%에 가까운 미혼모가 자녀를 입양 보내지 않고 스스로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 미혼모가 서구 미혼모에 비해 특별히 자녀에 대한 책임감이나 애정이 부족해서 그럴까? 그래서 우리나라 미혼모의 92% 이상이 자녀를 입양 보내고, 서구 미혼모는 99% 이상이 자녀를 직접 키우는 것일까? 답은 물론 우리나라 미혼모들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정부, 입양기관, 우리 사회의 잘못된 풍토 때문이다.

첫째는 정부의 책임이다. 정부가 미혼모인 친모가 자녀를 직접 양육하도록 권장하고 지원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입양을 권장하고 지원해 주는 시대착오적인 정부조치에 일차 책임이 있다.

둘째는 사설기업화된 입양 기관의 책임이다. 입양이 필요하다면 사설 입양 기관이 아니라 공공기관인 정부에서 맡아야 한다. 그래야 '입양의 상업화'와 '아동판매'의 부끄러운 관행이 멈출 수 있다.

셋째는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미혼모와 그 자녀에 대해 심한 차별과 편견을 갖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풍토가 문제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녀를 키워나가는 미혼모에게 격려와 존경보다는 멸시와 무시의 시선을 보내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숙하지 못한 사회라는 것이 높은 입양 통계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한 마지 퍼스치드(왼쪽 두 번째)씨.
 가족들과 함께 한 마지 퍼스치드(왼쪽 두 번째)씨.
ⓒ 마지 퍼스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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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싱글맘의 날 기념 인간도서관' 행사가 서울에서 열렸다. 이날 한국 아이를 입양한 미국의 입양 엄마 마지 퍼스치드(Margie Perscheid)씨가 한국의 미혼모, 입양인, 입양인 원가족들 앞에서 미국 입양 엄마로서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퍼스치드씨는 '한국인 입양 미국가정 네트워크'(Korean American Adoptee Adoptive Family Network: KAAN)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퍼스치드씨와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먼저 가족소개를 좀 해 달라?
"20여 년 전 남편 랄프와 한국의 갓난아이 둘을 입양했다. 지금 입양한 아들 폴(25)과 딸 마라(23)는 성장해서 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며 일하고 있다. 아들은 게임산업계에 종사하고 있고 딸은 체육 코치로 조만간 응급구조대원이 될 것이다. 행복한 미국 중산층 가정의 엄마다."

- 한국은 몇 번째 방문했나?
"첫 한국 방문은 지난 1994년이었다, 두 번째는 지난 2001년 가족들과 함께 휴가로 한국을 방문했다. 세 번째는 지난 2006년 '한국인 입양 미국가정 네트워크(KAAN)' 콘퍼런스에 참여하느라 방문했다. 그리고 네 번째인 올해 5월 11일 '싱글맘의 날 기념 인간도서관' 행사에 패널로 참여했다.

"부모와 자녀사이 사랑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 이번 '싱글맘의 날 기념 인간도서관' 행사에 패널로 참가한 감회가 어땠는지?
"그날 미혼모와 입양인들의 여러 사연을 듣고 충격과 감동을 많이 받았다. 그 분들이 걸어오신 험난한 길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나는 미국 입양 엄마로서, 한국 입양인 원부모들의 비극과 이별 때문에 덕을 본 셈이다. 그동안 한국 입양인 원부모들의 고통스런 이야기를 제대로 경청하거나 잘못된 입양 관행을 고치려고 하지 않은 미국 입양 부모를 대표해서 내가 패널로 참여하게 되어서 한국 입양인 원부모님들에게는 면목이 없었다.

발표를 들으면서 한국의 싱글맘들이 정부에서 지원을 거의 못 받거나 전혀 못 받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 것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또 한 여성이 미혼모거나 나이가 어리다고 엄마가 될 자격이나 능력이 없을 것이라고 예견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것인지도 배웠다. 입양으로 딸과 이별한 한국의 친엄마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모와 자녀사이의 사랑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특히 젊은 분들이 많이 참석해서 너무 좋았다. 젊은이들은 항상 사회를 변혁시키는 추진력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날 싱글맘의 날 행사에 참여한 젊은이들은 앞으로 싱글맘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친모가 자녀를 키울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젊은이들이 변혁이 힘이 될 것으로 믿는다.

전체적으로 머리로는 많이 배웠고 가슴으로는 많이 아팠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고 있는 한국의 싱글맘들에게 머리가 숙여졌다. 해외 입양은 그 나라 여성의 인권, 아동복지, 빈곤문제에 대한 정부 정책과 밀접히 관련된 것이라고 믿는다."

- 이번에 한국 입양인들과 싱글맘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그동안 많은 입양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그들과 일체감을 느꼈다. 그러나 특별히 이번 싱글맘의 날에 만난 입양인들은 무척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많았고 그들의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태도에 감동을 많이 받았다.

한국의 친모들을 만났을 때 내 마음은 아주 복잡했다. 그 분들은 나를 따스하게 환영해 주셨다. 하지만 사실 나 같은 미국 입양 부모들은 한국 친부모들과 자녀들이 이별하여 평생 떨어져서 살도록 만든 장본인들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한국 친모들을 만났을 때 부끄러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기분이 좀 묘했다.

하여간 한국 여성들이 미혼모로서도 훌륭한 엄마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발표자 중에 자녀를 키우고 있는 이혼한 엄마와 싱글맘들이 있었는데 어머니로서 분명한 철학과 방향을 보여주어서 참 인상적이었다.

어느 시대나 불의에 맞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많은 입양인들과 미혼모들이 용감하게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에 맞서는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입양을 고려하고 있는 미혼모들이 이 싱글맘의 날 행사에 많이 참석했으면 도움이 많이 되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하여간 한국 미혼모 중에 성공하는 분들이 많이 생겨야 한다. 그러면 한국 정부의 해외 입양 정책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싱글맘과 아이가 함께 살도록 지원해야"

가족들과 함께 한 마지 퍼스치드(왼쪽)씨.
 가족들과 함께 한 마지 퍼스치드(왼쪽)씨.
ⓒ 마지 퍼스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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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입양모 입장에서 한국의 싱글맘과 입양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한국 싱글맘들과 아이들 사이의 뼈아픈 이별 때문에 결국 내가 한국 아이들을 입양할 수 있는 혜택을 입었다. 미국의 여러 입양 부모들도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죄책감 때문인지 다수의 미국 입양 부모들은 입양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둔다. 미국 입양 부모들은 자기에게 혜택을 준 아이를 입양하게 해준 입양 제도에 맞서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을 꺼려 한다. 심지어는 해외 입양 제도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 대한 비판이 자신과 다른 미국 입양 가족을 배반하는 행위라고 여긴다.

그동안 한국의 싱글맘과 입양인들은 한국에서도 미혼모가 아이와 이별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입법 활동, 캠페인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이제 그런 여러분들의 노력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의 싱글맘과 입양인들의 노력으로 인해 이제 미국 등 다른 입양 아동 수령 국가들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의 여러분들이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버리거나 아동 기록을 위조하는 것을 비판하고, 법을 바꾸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의 싱글맘과 입양인들이 일구고자 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많이 생겨나는 그 날이 곧 오기를 희망한다. 싱글맘으로부터 아이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싱글맘과 아이가 함께 살도록 지원할 때만이 한국 정부가 보편적 인도주의를 실현한 국가로 세계에서 인정받을 것이다. 부모들이 가난해서 혹은 사회적 편견으로 부모 노릇을 못하고 아이들과 이별해야 하는 야만적인 일은 이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 만약 그런 일이 한국에서 또 일어난다면 문명 사회의 수치라고 생각한다."

- 미국 입양 부모들도 해외 입양이 문제인 것을 알지만, 자신이 해외 입양으로 혜택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해외 입양의 문제를 외면한다고 보는가?
"그런 면이 있다. 해외 입양으로 인해 초래되는 감정적 갈등과 번민 때문에, 입양 부모들 중엔 오늘날의 잘못된 해외 입양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 입양 부모들은 이제라도 공개적으로 해외 입양의 문제를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특히 미국에서 입양 부모들은 오랫동안 해외 입양을 둘러싼 여러 담론과 문제제기에 주도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미국 입양 부모들은 그동안 해외 입양 관행과 관련법을 현재의 어중간한 상태로까지 이끈 입양 기관, 정치인들, 기독교 단체들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그래서 내가 올해 싱글맘의 날 행사에 참석했던 것은 이러한 잘못된 침묵을 깰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 입양 부모이자 입양 공동체의 적극적인 회원으로서 침묵을 지키는 대다수의 미국 입양 부모들이 침묵을 깨트리는 대열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내가 입양한 아이들 기록 위조... 충격 받았다"

- 본인이 입양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해외 입양에 대해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었나?
"지난 2001년까지 나는 우리 부부가 입양한 한국아이들에 대한 기록이 100% 사실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난 2001년 우리 입양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 위조되었다는 것을 발견했고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입양할 당시 기록에는 한국 아이 엄마가 미혼모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밝혀진 것은 우리 아이 친모가 한국에서 혼인한 상태였고 다른 형제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제적 어려움으로 친모가 양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당시 한국 정부가 어려운 가정에 지원을 해주었더라면 한 가족이 생이별하는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그동안 무조건 신뢰하던 입양 기관이 입양을 쉽게 보내기 위해 아동의 소중한 기록을 거침없이 위조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또 처음에 나는 입양이 아기와 싱글맘을 위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 싱글맘과 입양인들의 이야기를 이런 저런 기회에 들으면서 입양에 대한 내 생각은 바뀌었다. 나는 한때 입양이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한 어머니들과 아이들 그리고 나 같은 불임여성들 모두를 위한 해결책이라 믿어왔다. 또한 미국인 입장에서 내가 미혼모와 그 아기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한국 문화에 관여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전히 이와 같은 생각을 입양 부모와 심지어는 일부 입양인들로부터 듣고 있다.

나는 한때 싱글맘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나 입양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의 태도를 바꿀 힘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지금 세계는 좁아졌다. 정보화 시대의 덕분으로 우리는 모두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엄마와 아기가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사는 것은 어느 문화에서나 받아들여야 할 보편적인 인도주의라고 생각한다."

- 미국 입양 부모 입장에서 한국정부가 해외 입양과 관련하여 어떤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나?
"한국 정부는 한국 아이들이 우선적으로는 친가족, 다음은 친척들로부터 양육을 받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그 후에 차선책으로 국내 입양을 추진하고 마지막으로 아주 부득이한 경우에만 해외 입양을 보내도록 하는 신중한 원칙과 그 이행이 필요하다.

너무나 오랫동안 나를 포함한 미국의 입양 부모들은 해외 입양이 정당하기 때문에 해외 입양을 많이 하고 이를 장려할 권리를 주장해 왔다. 입양 기관에서 임신 중인 싱글맘에게 입양이야말로 최선책이라고 늘 홍보하고 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미국 입양 부모들도 그러한 고정관념으로 그동안 늘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또 한국 정부는 이제는 입양에 관한 대화와 정책 발전에 대한 조정 권한을, 입양 기관들이 아니라, 여태껏 소외되어 왔던 입양 당사자인 입양인과 그 친부모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
"한국에서 돌아온 후 이번 '싱글맘의 날'에서 겪은 내 경험을 90세가 되신 내 미국 어머니에게 말씀 드렸다. 어머니는 내가 입양한 한국 아이들, 손주들을 무척 사랑하시지만 해외입양이 우리 아이들과 한국 가족들에게 평생 지워질 수 없는 큰 상처가 된다는 것에 공감하셨다.

어머니는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까지 미국의 대경제공황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내셔서 가난과 빈곤이 무엇인지 안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당시에 가난한 가족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많은 부모들이 자녀 양육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미국 정부의 빈곤층에 대한 복지 지원이 없었다면 다수 미국 가정이 붕괴되었을 것이라고도 하셨다. 지금 한국의 복지 수준이 1930년대 미국보다 못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싱글맘의 날에서 만난 한국의 많은 싱글맘들이 한국 정부와 사회의 도움으로 생활고를 이기고 사랑하는 자녀와 헤어지지 않고 함께 꿈을 키우며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마지 퍼스치드씨는 한국에서 태어난 갓난아이를 입양하여 키운 두 자녀의 입양모이다. 그녀는 워싱턴 한국 입양 공동체의 입양 부모들과 입양인들에게 정보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도움을 주는 메트로 DC 코리아 포커스의 공동창립자이자 회장이며 KAAN공동체의 활동회원이다.

자신의 입양 경험을 블로그 'Third Mom'을 통해 알렸으며 현재는 'Adoption Paradigm Shift'에 기고하고 있다. 마지씨는 독일과 ESOL에서 영어를 가르쳤으며, 1980년 중반부터 기술 프로젝트 및 프로그램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그녀의 가족은 워싱턴 교외와 로스엔젤레스에 살고 있다.


태그:#마지 퍼스치드, #입양, #김성수, #미국, #싱글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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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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