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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월 9일 중국 무장어선과의 교전 과정에서 2명의 전사자와 3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해경 경비정 701정의 목포 귀환을 보도한 1960년 1월 13일자 <동아일보> 기사.
 1960년 1월 9일 중국 무장어선과의 교전 과정에서 2명의 전사자와 3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해경 경비정 701정의 목포 귀환을 보도한 1960년 1월 13일자 <동아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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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2월 23일 정부는 대통령령 제844호에 의거, 해군이 맡아오던 해안경비 업무를 내무부 치안국으로 이관했다. 이날 부산 해군 부두에서 열린 해양경찰대 창설식에서 그동안 해군이 사용했던 소해정 6척이 내무부로 넘어왔다. 230톤급 경비정 견우호는 해경이 처음 보유했던 6척의 함정 중 한 척이다.

1955년 12월 25일 새벽 4시 5분께, 흑산도 남쪽 해상에서 중국어선 10여척이 어로작업중인 것을 견우호가 발견했다. 이 곳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선포했던 '평화선' 안쪽이었다.  중국 어선단에 접근한 견우호는 그 중 1척에 정지명령을 내리고 경비대원 4명이 어선에 승선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당시 중국 어선들은 무장을 하고 있었다. 나포작업이 진행 되는 동안 중국 어선들과 견우호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견우호가 중국어선단과 공방을 벌이는 동안 경비대원 4명이 타고 있던 중국 어선은 쏜살같이 뺑소니쳐 버렸다. 이렇게 중국으로 끌려간 우리 경비대원들이 억류에서 풀려나 귀환한 것은 무려 12년이나 지난 후였다.

1960년 1월 9일에는 평화선을 경비 중이던 해경 701정이 2척의 중국 무장어선과 교전을 벌여 2명의 해경대원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당시 중국 어선에는 기관포까지 실려 있었다. 1963년 8월 27일에는 평화선 안에서 조업 중인 일본 어선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우리 해경대원이 일본 어민들에게 잡혀서 구타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처음 해경이 보유했던 경비정들은 일본 해군이 패전 후 버리고 간 배를 우리 해군이 사용하다가 폐선 직전에 넘겨준 것이었다. 무장수준은 중국 어선보다 못하고, 속도는 일본 어선에 휠씬 못 미치는 낡은 배를 타고 해경은 바다를 지켰다.

내무부 치안국 해양경찰대로 출범한 이래 상공부 해무청 해양경비대, 다시 내무부 치안국 해양경찰대를 거쳐 지난 1996년 해양수산부 산하 외청으로 독립하는 등 소속도 수시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해경은 바다로 나갔다. 

해경의 임무도 창설 초기에는 해양경비, 어로 보호 기능에 국한됐지만 이후 해상범죄 수사, 해상교통 안전, 수상레저, 해양오염 방지 등으로 업무 영역이 크게 확대됐다. 현재는 해양경찰청 산하 동해·서해·남해·제주 등 4개 지방해양경찰청, 17개 해양경찰서, 여수 해양경찰교육원, 부산 정비창이 설치돼 있다.

존폐의 기로에 선 해경

'세월호 침몰사건' 나흘째인 4월 19일 오전 전남 진도군 진도체육관에서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왼쪽 두번째)이 더딘 수중 구조작업에 대해 실종자 가족들에게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 고개숙인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세월호 침몰사건' 나흘째인 4월 19일 오전 전남 진도군 진도체육관에서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왼쪽 두번째)이 더딘 수중 구조작업에 대해 실종자 가족들에게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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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24일 해양경찰 창설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 해양경찰 60년 역사는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지켜온 등대의 역할을 해왔다"고 치하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 대한민국이 바다를 통해 국가 번영의 길을 열어가기 위해서는 해양주권의 확립이 중요하다"면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모든 도서와 대륙붕, 그리고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우리의 주권을 훼손하는 어떠한 도전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로부터 채 8개월도 되지 않아 해경은 존폐에 기로에 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에서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다"면서 "수사·정보 기능을 경찰청으로 넘기고 해양 구조·구난과 해양경비 분야를 신설하는 국가안전처로 넘길 것"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침몰과정에서 해경이 보여준 구조난맥상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결국 해경 해체라는 극약처방을 가져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해경의 업무를 경찰청과 국가안전처로 이원화하는 것을 두고는 우려의 목소리들도 적지 않다.

구조와 구난 같은 해상안전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 같은 일들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동안 해경이 수행해온 경비·치안·수사·방제·구조 업무를 이원화하는 것은 '코스트 가드'(해안 경비) 기능에 대한 몰이해가 빚어낸 결과라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의 언급대로라면 구조·구난 전문 조직인 국가안전처가 해상 경비를 목적으로 무장 함정까지 운용한다는 것인데, 이런 조직은 국제적으로도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이은방 한국해양대 교수(해양경찰학)는 "지금 발표된 내용만 가지고는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다"면서도 "박 대통령이 해체라고 했지만, 해양경찰의 기능과 역할을 아예 없앤다는 것은 아니고 재탄생시킨다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리 해양경찰과 미국, 일본의 코스트 가드는 공통적으로 해상안전 확보, 해상보안, 해양환경 관리, 해상 교통안전 관리, 유사시 국방 업무 보조 등 5가지 고유 업무를 해왔다"면서 "이런 코스트 가드 기능은 어떤 형태로든 일원화되어야 통합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이러한 기능은 국가가 존속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며 "어떤 조직이 전통이나 문화를 정립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한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해경 해체, 공론화 과정 없는 일방적 발표

19일 오전 서울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이 TV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19일 오전 서울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이 TV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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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경찰청 차장을 지낸 이은부 해양레저안전협회 회장은 "해경 경비함정 한 척이 바다에서의 경찰청, 소방방재청, 관세청, 환경부, 농수산부(어선 지도), 국방 업무 보조, 독도 및 이어도 감시 및 수호, 중국 어선 감시 및 적발, 나포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평소 해군 함정이 10척 운용될 때 해경 함정이 100척이 출동하는 이유도 그만큼 업무가 많아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비함정 한 척이 수행하는 업무를 어떻게 쪼갤 것인가, 만약 쪼깬다면 경비함정이 지금보다 5~6배는 늘어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수사·정보 기능을 경찰청으로 넘긴다는데 이런 기능 없이는 독도도 지킬 수 없다, 관련 정보가 있어야 경비함을 출동시킬 것 아닌가"고 반문했다.

해경 해체 방침이 공청회나 토론회 같은 어떠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 담화를 통해 공식화 되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유대운 의원은 "국가안전처 신설이 즉흥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육상 안전은 소방방재청이, 해상 안전은 해경이 전권을 가지고 나머지 부서들은 인력과 예산을 지원해 주는 형식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애써 재난·재해 상황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부인하고 있는 것의 연장선상에서 '해경 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라는 결론으로 귀결되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즉 '청와대는 전통적 안보 위기 상황에 대한 컨트롤타워 역할만 맡고 있다'는 청와대의 논리가 진화한 결과가 해경 해체를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여전히 문제 해결의 관건은 중대 재난 발생시 청와대의 컨트롤타워 역할에 달려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던 류희인 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은  "중대재난 발생 시 대통령은 방관자나 참관자가 아니라 책임과 지휘 당사자"라며 "국가안전처의 단순 보고만으로 상황판단과 필요한 조치·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청와대 조직 내에 업무를 보좌할 조직·기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 전 사무처장은 또 "지금 조직개편을 얘기하는 건 성급하다"면서 "지금은 사고수습과 조사, 사고의 직간접 원인과 요인을 찾는 게 우선인데 대통령이 숙성되지 않은 안을 제시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태그:#해양경찰, #해경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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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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