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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립성에 대한 미국 FCC의 결정을 전한 <미디어잇> 기사
 망중립성에 대한 미국 FCC의 결정을 전한 <미디어잇> 기사
ⓒ 미디어잇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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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적차량을 단속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도로 훼손 때문이다. 톨게이트 비용은 일반 적재 차량과 동일하게 부담하면서 도로에 부담을 주는 정도는 크게 다르다. 고속도로를 운영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미울 수밖에 없다. 당연히 과적 차량의 도로 이용료는 높게 책정하고 싶어한다.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도로는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이제 다르게 생각해보자. 과적차량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도로를 운영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이미 충분히 예상하고 있고 해마다 도로 유지 보수 예산에 반영한다. 톨게이트 요금을 결정할 때 과적으로 인한 도로 훼손 정도를 감안하여 요금을 결정한다.

즉, 도로를 이용하고 있는 모든 차량이 이미 나누어 부담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 과적 차량에 대해 특별 요금을 책정, 부과한다면 부당한 요금 징수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별도의 요금 부가 시스템이 허용된다면 결국 도로 운영회사의 권한이 커질 수밖에 없고 최종적으로 그 피해는 일반 시민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 두 의견은 서로 나름대로 타당한 근거들이 있다. 그리고 중요한 사회적 이슈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도로는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일부이고 모든 경제 활동, 사회 활동의 기본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이런 중요한 논쟁이 가상공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가상공간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정보를 주고받는다. 정보의 수도 많아지고 정보의 물리적 품질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동영상의 경우 SD에서 HD, UHD로 계속 발전한다. 당연히 네트(net, 망)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유무선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증설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계속 필요하다. 추가로 필요한 이 돈은 누가 지불해야 되는가? 이 논쟁을 망중립성(net neutrality) 논쟁이라고 한다.

다시 불거진 미국 내 망중립성 논쟁

망중립성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나라마다 사안마다 결론이 다르게 나오고 있고 한 번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다시 번복될 수 있다. 중요한 사안이라 국가가 개입하기도 한다. 최근 망중립성 관련 미국 FCC(연방통신위원회)의 결정과 이에 관련 반응을 살펴 보자. 인터넷 신문 <미디어잇> 5월 16일 자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미 FCC(연방통신위원회)가 15일(현지시간) 새로운 '망중립성' 원칙을 전격 통과시켰지만 반대 의견이 워낙 많아 후폭풍이 거세게 일 전망이다. (줄임) 새로 통과된 망중립성 원칙은 톰 휠러 위원장이 제안한 것으로 AT&T, 버라이즌, 컴캐스트 등 광대역 회선 제공 사업자들이 특정 콘텐츠 사업자들의 접속 속도를 느리게 하거나 접속을 차단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별도의 프리미엄 요금을 지불하는 콘텐츠 사업자에게 '빠른 회선(Fast Lane)'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일종의 급행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

얼핏 기사를 읽어 보면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모든 차량에 대해 차별을 하지 않고 단지 급행료를 내는 차량에 한해 빠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망차별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정 차량을 빨리 보내기 위해서는 다른 차량의 양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전용차선을 만들면 전용차선을 이용 못하는 차량의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콘텐츠 제공업자들의 반발이 이어질 것이다. 이어지는 기사를 보자.    

이 같은 FCC의 새로운 망중립성 원칙에 대해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콘텐츠 제공사업자들은 FCC가 망중립성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격렬하게 반대해왔다. 150여 인터넷 업체들은 FCC에 공개서한을 발송, '망차별'을 전제로 한 새 망중립성 원칙은 인터넷에 대한 큰 위협이 될 것이라며 '약한 망중립성 원칙'에 대해 재고할 것을 촉구했다

망 사업자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업체가 반대하고 나섰다. 시민사회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망중립성 원칙이 크게 훼손됐다는 것이다. FCC의 이 결정이 바로 입법화되는 것은 아니다. 60일간의 시민 설득 과정, 반대 단체들과의 의견 조율 과정 등이 남아 있어 최종 결과는 예단하기 힘들다. 그 사이 망중립성을 둘러싼 논쟁이 양측 진영에서 치열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보이스톡과 삼성스마트TV 어플이 낳은 국내 '망중립성' 논란

카카오톡 보이스톡 논란 관련 이용자 중심 망중립성 토론회에 이어 통신사업자들이 중심이 된 통신산업 비전 토론회가 2012년 6월 22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카카오톡 보이스톡 논란 관련 이용자 중심 망중립성 토론회에 이어 통신사업자들이 중심이 된 통신산업 비전 토론회가 2012년 6월 22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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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논쟁은 국내에서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가입자를 갖고 있는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을 운영하는 회사가 2012년 6월 4일 트위터를 통해 카카오톡의 모바일인터넷전화(mVoIP) 서비스인 카카오톡 무료통화 보이스톡 국내 베타서비스 개시를 알리자 이동통신사들에 비상이 걸렸다. 글자 그대로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무료통화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무료통화 어플을 받는 데 따로 돈을 지불할 필요도 없다.

만약 이 베타서비스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이제 사람들은 그동안 이동통신사에 지불하던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음성통화 서비스로 발생하는 매출 비중이 높은 국내 이동통신사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불과 2년 밖에 안 된 신생 기업이 국내 3대 이동통신사들에게 선전포고 한 것이다. 이미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확산으로 문자메시지(SMS)로 인한 수익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카카오톡 보이스까지 확산된다면 이동통신사로서는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전자신문>의 다음 기사를 보자.

(2013년 5월) 19일 KT 관계자는 "KT 무선 음성통화 매출이 지난 2010년 6조2000억 원 안팎에서 2012년에는 5조2000억 원으로 2년 사이 1조 원이나 줄었다"고 말했다. 무선 음성통화 매출은 휴대폰 서비스에서 문자메시지․데이터 서비스 매출을 제외하고 순수 통화로 발생하는 매출을 의미한다.

문자, 이메일 서비스 등으로 음성 통화가 줄어들고 있고 결과적으로 음성통화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상태에서 무료통화 서비스가 가능해진다면 매출 감소 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KT를 힘들게 만드는 기업들은 모바일 서비스 업체 말고도 많이 있다. 2012년 2월 망사업자 KT가 삼성전자 스마트TV의 애플리케이션 인터넷 접속을 차단했다. 삼성의 스마트TV가 데이터 폭증을 유발했기 때문에 인터넷 망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고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더 이상 서비스가 곤란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KT는 일종의 무임승차론을 내세워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라고 주장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TV를 팔기 위해서는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이 있어야 하고, 그 어플리케이션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망의 안정성이 필수적이다. 또 일반 컴퓨터의 디스플레이와 달리 스마트TV는 고해상도를 지원할 수 있어 UHD급의 콘텐츠가 유통될 수밖에 없다. 결국 부담은 KT가 지게 되고 돈은 삼성전자가 벌게 된다는 것이 KT에서 주장하는 무임승차론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망중립성을 내세워 스마트TV에 대해서만 차별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통신망의 부하가 증가하고 있고 같은 이통사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KT가 삼성전자 스마트TV의 애플리케이션 인터넷 접속을 차단한 것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삼성 때문에 KT 이용자가 불편을 겪고 그로 인해 경쟁사로 고객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면 KT의 이러한 조치는 설득력이 있다. 물리적 통신망의 한계는 분명하고, 통신망을 타고 가상공간을 유영하는 콘텐츠는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망의 소유와 운용은 이동통신사들의 영역이다. 실제로 이동통신사들은 매년 많은 돈을 투자해서 통신망을 신설, 보수하여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만약 이동통신사들의 영업이익이 줄어들어 통신망에 대한 투자가 적어지고 망의 확충이 안 되거나 관리가 소홀해진다면 그 피해는 최종 소비자에게 갈 수밖에 없다.

막대한 규모의 자금이 들어가는 통신망 사업의 성격상 즉각적으로 대체하기도 힘들고 문제가 생겼을 경우 쉽게 복원되기도 힘들다. 국가 주요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카카오톡의 무료 음성통화 서비스나 삼성전자의 스마트TV는 이동통신사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통신망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동통신사들은 자신들의 통신망을 '무료'로 이용하면서 자사의 영업이익을 현저히 감소시키는 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일견 합리적인 주장으로 보인다.

통신망에 대한 이견... "공공재로 인정해야" vs. "시장에 따라야"

2012년 6월 13일 오전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본사앞에서 열린 '통신재벌의 이용자 선택권 침해와 망중립성 위반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보이스톡' '페이스타임' 규제 및 차단을 규탄하고 있다.
 2012년 6월 13일 오전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본사앞에서 열린 '통신재벌의 이용자 선택권 침해와 망중립성 위반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보이스톡' '페이스타임' 규제 및 차단을 규탄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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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립성 논쟁은 이동통신사와 모바일 서비스사의 갈등을 넘어서서 사실상 통신망을 사용하는 모든 주체들이 관여되어 있는 주요한 사회 문제다. 통신망을 사용하지 않는 기업이나 개인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요 관심사가 되어 있다.

망중립성 문제는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동시에 논쟁이 되고 있는 뜨거운 이슈다. 다른 분야와 다르게 정보통신 산업의 발전은 전 세계가 비교적 평등하게 전개되고 있고, 네트워크의 속성상 탈국가, 탈경계적인 측면이 있어 일국의 정책이나 규제만으로는 효과를 발휘하기 힘든 면도 있다. 이제 구체적으로 망중립성 주요 쟁점에 대한 양측의 주장을 정리해보자.

망중립성을 찬성하는 진영은 이동통신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가 다 포함된다. 구체적으로 인터넷서비스업체, 모바일 서비스 업체, 콘텐츠업체, 시민사회단체, 대부분의 일반 사용자 등이 해당된다. 당연히 이들은 망의 중립성 즉 통신망의 공공성을 주장한다. 공공성의 전제는 누구라도 차별 없이 사용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사회적으로 타당하게 여겨지는 적절한 요금만 지불한다면 통신망은 아무 때라도 사용 가능해야 한다.

만약 이동통신사가 어떤 이유에서건 '자의적'인 판단으로 특정기업이나 특정인의 망사용을 제한한다면 망의 중립성은 훼손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최종 소비자의 선택권은 무시되고 이동통신사의 판단에 따라 서비스의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 생태계는 모두가 참여해서 만들어놓은 것인데 그 중 일부인 망 사업자가 전체 생태계의 기본 질서를 흩뜨려놓은 결과가 된다.

망의 중립성에 반대하는 진영은 주로 이동통신사다. 그리고 네트워크 장비업체 등이 이동통신사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이 진영의 논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통신망 성격의 공공적 측면은 이해하지만 물리적 통신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투자를 해야 되고 투자하는 기업에게는 적절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투자 대비 비용 지출이 크다면 통신망의 적절한 유지 보수는 힘들게 된다. 결국 그 피해는 모두에게 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통신망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기업은 그에 적절한 사용 요금을 별도로 내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망 사업자도 기본적으로 시장 매커니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망중립성, 단지 시장의 문제로 볼 수 없는 이유

망중립성 논쟁은 일견 망의 트랙픽 증가에 따른 추가 부담을 누가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2013년 유럽 최초로 망중립성 법안이 발효된 네덜란드에서 법안 성립에 주요 역할을 했던 시민운동가 매티스 반 베르겐은 국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네트워크층과 콘텐츠층의 분리를 민주주의의 권력 분립원칙과 동일시했다. 사법과 행정이 나누어져 서로 일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처럼, 둘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택은 최종 소비자가 한다. 둘은 소비자를 위해, 마치 사법과 행정이 국민을 위한 봉사기관인 것처럼 서로 간섭하지 말고 고유 영역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미국의 망중립성 원칙이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것에 비하여 네덜란드의 망중립성 법률은 인권적 관점에서 만들어졌다. 경제 논리와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 이런 시각은 결국 이동통신사 진영의 대항 논리를 무색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망중립성의 문제는 단지 업체들만의 갈등이 아니다. 경제적 형평성의 문제이기도 하고 인권과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당연히 논쟁의 최종 도착지가 불투명할 수도 있다. 계속 사회적 토론을 거쳐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태그:#망중립성, #정보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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