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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눈물 흘리는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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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발생 34일 만에 흘린 대통령의 눈물…. 제가 보기엔 코미디예요. 진심이었다면 원전 설치식 보겠다고 곧장 UAE로 날아가지 않죠. 팽목항엔 아직 가족을 찾지 못해 날마다 눈물로 지새우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나 단 한마디 말씀이 없으셨죠. UAE를 갈 게 아니라 팽목항으로 가야 했던 것 아닐까요? 추모비 세우고, 국가안전의 날 지정하겠다, 박 대통령은 이제 정리모드로 돌아선 분위기네요."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담화가 발표된 19일 발끈했습니다. 언론이 '대통령 얼굴의 칼자국과 눈물'을 클로즈업 하고 크게 보도하는 것도 상당히 불쾌한 눈치였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채 수습되지도 않았는데 담화에서 눈물 흘린 뒤 곧장 UAE로 떠나는 건 또 무슨 태도냐고 꼬집기도 했지요. 박 대통령 담화가 진행되던 순간 그의 눈물로 잠깐 멈췄던 비판이 SNS를 타고 급속도로 확산되는 분위기입니다.

실제 우리 국민 모두는 19일 발표될 박 대통령의 담화에 무엇이 담길까 굉장히 궁금해 했습니다. 당일 오전 10시 대한민국의 모든 눈과 귀는 청와대로 쏠린 듯 했지요. 국회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채 라디오를 켜 놓은 사람들, 바쁜 아침을 준비하는 주변 커피숍 바리스타들, 빵집 파티쉐들도 전부 라디오 주파수를 박 대통령 목소리에 맞춰두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습니다.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대형 참사에 대해, 이 나라의 대통령은 과연 무슨 대책을 내놓을까 매우 궁금했던 거지요.

실제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해경도 놀랄 만큼 충격적인 조치들을 내놓았습니다. 이번 사고의 초동대응부터 문제가 된 해경에 대해 해체를 하겠다고 선언했지요. 그 밖의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입장도 내놨습니다. 공직유관기관 공무원 임명 배제 등의 공직사회 혁신방안, 청해진해운 특혜 및 민관유착 규명, 국가안전처 신설, 추모비 건립과 국민 안전의 날 지정 등이 그것이지요.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그 내용은 전부 '사후조치'에 해당됩니다. 아직도 실종자들이 바다에 있는데, 전체 사고의 전말을 검찰이 조사하고 있는데, 국정조사도 예고돼 있는데, 굳이 대통령이 나서서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선언한 까닭이 뭘까, 의문이 남았습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선제적 조치에 과연 해경은 어떤 태도로 임할까 궁금했습니다.

눈물은 흘렸지만 뒤로는 가족들 미행?

아니나 다를까 실종자가족들의 걱정이 늘었습니다. 이들은 "해경조직 해체는 정부에 실종자 구조 원칙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이라며 "담화로 해경이 크게 동요하고 수색에 상당한 차질이 생길 게 분명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마지막 한 명의 실종자를 찾을 때까지 해경이 팽목항을 떠나지 않도록 국민들이 도와달라고 호소했습니다. 20일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차원에서 공식 입장 발표를 통해 "실종자 소중히 여기는 대통령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그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달됐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은 어떤가요. 대통령의 담화로 실종자 가족들이 안심하고 위안을 얻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걱정만 더 커진 꼴 아닐까요? 심지어 안산 단원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은 대국민 담화에 대한 가족대책위 입장을 논의하기 위해 팽목항으로 향하던 가족들을 불법 미행하다 적발되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카메라 앞에서는 눈물짓고, 뒤로는 가족들의 뒤를 캐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지요. 이명박 정부 당시 민간인 사찰로 큰 파문을 일으켰던 정부가 또 다시 세월호 참사를 겪은 가족들을 미행하고 사찰했다면 그 자체로 용서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35일째인 20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실종자, 희생자, 생존자 가족 등이 기자회견을 갖고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세월호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정부에서 책임지고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구조에 총력을 기울여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세월호 침몰 사고 35일째인 20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실종자, 희생자, 생존자 가족 등이 기자회견을 갖고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세월호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정부에서 책임지고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구조에 총력을 기울여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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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드러난 공영방송의 언론개입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유은혜 의원이 전날인 18일 "이번 대국민담화에는 반드시 청와대의 KBS 보도개입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박 대통령은 묵살했지요. KBS 기자들이 제작거부를 진행하고,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지만 그 역시 모른 체 했습니다.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입을 통해 제기된 청와대의 언론개입 실태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개그콘서트> '시청률의 제왕' 박 대표를 보고 있는 것인가 착각이 들 정도였지요. 김시곤 전 국장과 길환영 사장이 출연한 이 막장 드라마는 도대체 한국의 공영방송이 수준이 얼마나 처참한지 그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김 전 국장의 주장을 다시 한 번 들어볼까요?

"사장은 BH, 청와대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제게 회사를 그만 두라고 했다. 잠시 3개월만 쉬면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회유를 했다. 그러면서 이걸 거역하면 자기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고, 이건 대통령의 뜻이라고까지 말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중략) 길환영 사장이 대통령을 모시는 원칙이 있었다. 대통령 관련 뉴스는 러닝타임 20분 내로 소화하라는 원칙이 있었다. 정치부장도 고민하고 순방 때마다 몸살을 앓았다. 이른바 꼭지 늘리기 고민이지."

왜 사람들이 KBS를 '청영(청와대)방송'이라 비판하는지 여실히 알 수 있는 폭로였습니다. 19일 밤 KBS <뉴스9>은 파행됐습니다. 19분짜리 뉴스로 편집됐고, 뒤이어 <스파이 돌고래> 다큐멘터리가 방영됐습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공공연히 진행된 정권의 방송장악 그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났음에도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치미 떼는 분위기입니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요?

대국민담화에서 '청영방송' 문제는 왜 뺐나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새노조 조합원들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 모여 청와대의 KBS 보도와 인사 개입 등을 규탄하며 길환영 KBS 사장의 출근 저지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새노조는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길환영 사장의 신임 투표 결과 노조원 1224명 중 1,081명(97.9%)가 길 사장을 불신임했다"고 밝혔다.
▲ 길환영 사장 출근저지에 나선 KBS 새노조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새노조 조합원들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 모여 청와대의 KBS 보도와 인사 개입 등을 규탄하며 길환영 KBS 사장의 출근 저지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새노조는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길환영 사장의 신임 투표 결과 노조원 1224명 중 1,081명(97.9%)가 길 사장을 불신임했다"고 밝혔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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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덧붙여 박 대통령은 이번 세월호 해법에서 최소한 책임을 물었어야 할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재난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말해 국민적 공분을 샀습니다. 사고 당시 박 대통령은 김 실장을 통해 관련 보고를 받았고, 청와대가 그 사실을 입증하는 보도자료까지 냈음에도 그는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식으로 피해갔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김 실장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었습니다.

유 의원은 "혹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이제 끝났다고 보는 게 아닐까"라며 "팽목항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전혀 공감하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했습니다.

무엇보다 유 의원은 "진상규명이 절실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밝혔으니 과연 해경이 남은 실종자 수색에 얼마나 열정을 다할지 의문"이라며 "정말 담아야 할 내용은 쏙 뺀 담화였다"고 힐난했습니다.

그는 "박 대통령의 이번 대국민 담화에는 반드시 4가지가 포함됐어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첫째 실종자 가족들에 대한 대책, 둘째 청와대 개편, 셋째 내각 개편, 넷째 KBS 등 언론문제에 대한 입장 등이라고 꼽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담화에서 해경을 해체하고 기존의 안행부와 해수부의 권한을 대폭 축소해 국가안전처로 이관한다는 일방적인 내용을  선제적으로 치고 나왔다고 비판했습니다.

유 의원은 "안산에 추모비 건립한다고 자식 잃은 엄마들의 상처가 치유될까요"라며 "팽목항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애끓는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진정성 없는 눈물은 이제 그만 뒀으면 좋겠다"고 일갈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태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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