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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읽은 책 <예일대 교수 아빠에게 배우는 경제 이야기>에 대한 서평 기사(관련 기사 보기)를 썼는데 누군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이런 걸 책이라고 추천하나?'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꼭 읽으라고 추천한 건 아니었다. 내가 쓴 글을 읽어볼 수 있다면 읽어보고, 책까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읽어보라는 뜻에서 글을 썼다. 보잘 것 없는 배움이지만, 조금이라도 나눠보고자 쓴 글인데 내 글을 보고 기분까지 상한 것 같아서 정말 미안했다.

그래서 최대한 '소개해도 기분 상하지 않을 책'을 읽고 서평을 쓰려고 노력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와 같이 <오마이뉴스>를 즐겨보는 이들 모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언감생심

책을 읽고 난 후.
▲ 책 <나는 시민기자다> 책을 읽고 난 후.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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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민기자다>를 읽은 이유는 이렇다. 나는 요즘 주제 넘은 생각에 빠져 있다. 나이 스물여덟에 언론사 입사의 꿈을 꾸고 있다. 그 전에는 그림과 사진을 찍으며 현대미술의 거장이 되고자 했던, 도가 지나친 꿈을 꿨다.

그러다 상처를 입고 좌절하던 중에 새로운 희망과 꿈을 품었다. 근데 그게 하필 그 어렵다는 '언론고시'였다. 그나마 미술계라는 바다에서 거북이가 됐던 내게 지상으로 올라와 다시 토끼와 경쟁하겠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이 시점에서 스스로 이런 질문을 가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왜 하필 직업기자여야만 하는가' '무한경쟁의 한국사회에서 내가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고민 속에서 책 <나는 시민기자다>를 펼쳤다.

책의 생김새와 속내 살피기

'시민기자란 무엇인가?' '시민기자가 쓴 기사' '시민기자의 글쓰기 노하우' 이런 이야기를 빼곡히 묶어놨다. 12명의 블루칩 시민기자들이 쓴 글이라 그런지 글 자체로도 흥미롭다. 사연 있는 기사들을 소개할 때면 그 기사를 검색해서 찾아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이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책 한 권을 덤으로 더 읽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덤으로 읽은 것은 그들이 쓴 기사뿐만 아니다. 이 책 안에 소개된 그들의 책만 해도 10여 권이나 된다. 그중에서 김용국 시민기자(법원 공무원)의 <생활법률 상식사전>은 꼭 한 번 읽어볼 생각이다. SNS에서 그와 만난 어느 변호사가 기사를 애독한다면서 "정말 읽기 쉽습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법률 리포터입니다, 기자님한테 많이 배웁니다"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궁금해서 읽어보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시민기자란?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아무래도 '시민기자 란 무엇인가'이다. 소개된 시민기자들마다 저마다의 정의가 있다.

'이장님의 확성기다.'(김혜원), '의병이다.'(송성영), '언론의 오래된 미래다.'(이희동), '프리랜서다.'(강인규), '아마추어 정신이다.'(전대원), '시민기자다.'(이종필),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이다.'(김용국), '자유로운 언론 게릴라다.'(김종성), '다윗이다.'(최병성), '밥이다.'(신정임), '하선이다.'(윤찬영), '타이어다.'(양형석)

참, 각자의 개성에 따라서 다양하게 정의를 내려놨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정의는 강인규 시민기자가 비유한 정의다. 그는 시민기자를 '프리랜서'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시민이 아마추어를 뜻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시민기자는 직업기자를 어설프게 흉내내는 사람이 아니라, 직업기자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기자다. 삶의 현장에서 얻은 구체적인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발언을 하기 때문이다."(본문 108쪽)

KBS나 MBC는 정권을 통해 인사가 나기 쉽고, 종종 정권의 하수인 역할도 톡톡히 한다는 비판을 받곤한다. 이번 KBS 김시곤 보도국장이 사임하며 "KBS 사장은 언론 중립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을 지닌 인사가 돼야 한다, 언론에 대한 어떠한 가치관과 신념도 없이 권력의 눈치만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 온 길환영 사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라고 말해 큰 파장을 낳았다.

그런데 이 파장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백운기 신임 보도국장을 청와대에서 면접을 봤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었다. 세월호 참사보도를 통해 KBS 언론보도의 편향성과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났음에도 이렇게 쉽게 국민은 뜬 눈으로 조롱당한다.

언론은 또다시 조작되고 편향된다. 정권뿐만 아니라 자본의 힘에도 쉽게 좌지우지 흔들린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직업기자들은 정부나 기업의 이해관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묶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시민기자들은 기업의 눈치를 안보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기업(오마이뉴스)으로부터 잘릴 일이 없으니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을 과감하게 발언한다. 시민기자의 가장 큰 강점인 것이다.

하지만 시민기자에게도 약점은 있다. 그건 바로 독자들이다. 도움이 되는 글과 안 되는 글을 칼처럼 가려낸다. 소통에 목말라 시작한 글쓰기였다. 시민기자들은 독자로부터 사랑받기 위한 글을 안 쓸 수 없다. 그들은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을 철저히 검열하며 부단히 노력한다.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

이 책을 읽으면서 후회스러운 일이 하나 있었다. '왜 일찍 오마이뉴스에 관심을 두지 않았는가'였다. 오마이뉴스가 창간된 시점부터 계속해서 독자로서 참관하고 있었다면 세상을 바꿔가는 영화의 주인공은 못되더라도 엑스트라는 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말이다. 과한 평이라고 일부는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표 아줌마' 김혜원 시민기자가 쓴 이 기사를 보고난 뒤에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나무꾼과 선녀처럼 살고 싶었어요(2005년 10월 31일 기사)

김혜원 시민기자가 쓴 기사다. 한 편의 기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뜨뜻해지는 기사였다.

이 기사는, 결혼한 지 7년이 됐지만 그때까지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여 필리핀으로 돌아가 암 투병을 해야만 했던 아멜리아 그리고 그 남편과 두 아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담은 기사다.

이 기사를 쓰고 아줌마 기자 김혜원씨는 방송사나 신문사, 하다못해 해당 동사무소 사회복지과 직원이라도 기사를 보아주길 간절히 바랐다고 한다. 헌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기사가 나간 지 20시간 만에 '좋은 기사 독자원고료 주기'를 통한 모금액이 1700만 원을 넘긴 것이다. 기사는 '만 원의 기적을 일구어내자'라는 캠페인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리하여 김혜원 시민기자는 '시민기자 특파원' 자격으로 필리핀으로 날아가 아멜리아를 취재하고, 함께 귀국하여 국내의 한 병원에서 무료로 수술까지 따내게 되었다. 또한 이 장면이 KBS, SBS, EBS 등 공중파 방송에도 보도가 됐다. 대한민국 아줌마 만세 합창을 부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뿐만 아니라 송성영 시민기자 농부 아저씨의 기사 아내가 또 빚내서 '사고'를 쳤습니다(2010년 9월 17일)는 집 앞에 '기적의 도서관'을 하나 만들 수 있었으며, 이희동 시민기자 회사원의 애 생기고 받은 돈, 쓰지는 못한다고?(2011년 11월 27일)를 통해 정부의 '고운맘 카드 정책'이 바뀌기도 했다. 최병성 시민기자 목사의 4대강 고발하는 기사들은 4대강의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골라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수두룩하다.

글은 이렇게 써봐, 글쓰기 레시피

이 책이 주는 선물은 아무래도 다양한 '글쓰기 노하우'란 레시피들이다. 선배 시민기자들이 어떻게 글을 썼는지 그들의 노하우가 잘 정리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 이용하여 나만의 맛있는 글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중 맛보기로 강인규 시민기자의 글쓰기 노하우를 여기에 옮겨 본다.

그는 '어려운 글은 게으른 글'이라고 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읽어야 기사다. 그래서 쉽게 써야만 하는 것이 기사인데 기사를 쉽게 쓰기란, 이 책에 소개된 모든 기자들이 중요하다 여기면서 가장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강인규 시민기자는 말한다.

"쉽게 쓰기 위해선 우선 잘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폭넓은 자료를 찾아 읽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료를 비판적으로 소화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때 정보와 지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여러 정보를 비교하고 판단한 뒤 이해한 바를 자신의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정보는 비로소 지식이 된다. (중략) 최대한 쉬운 일상어로 바꾸고, 불가피하게 어려운 용어를 써야 할 때는 뜻을 풀어서 쓰는 습관이 필요하다. 외국어나 한자어는 최대한 피하는 게 좋다."(본문 111~112쪽)

그 외에도 독자를 끌어들이려면 '시의성 있는 소재' 선택, '상식을 문제 삼는 기사'를 써서 사회 변화에 힘을 보탬과 동시에 글을 차별화 할 수 있으며, '서두'를 짧고 감각적이고 효과적이게 쓸 수 있다면 좋다고 조언한다.

마지막으로 글을 다 읽을 수 있도록 글 속에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해하기 쉽게 '로봇 물고기'를 통해 4대강 사업을 비판한 글을 사례로 보여준다(관련기사 : MB 정부는 이 세 가지를 망가뜨렸다, 2011년 5월 27일 기사). 비유를 통해 희극적인 상상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글이다. 이러한 비유와 글쓰기 기술을 익히려고 노력한다면, 나도 훌륭한 글을 요리하는 요리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설사 로봇 물고기가 다른 고기들의 환대 속에서 4대강을 누빈다고 하자. 이들이 오염 상황을 경고하는 신호를 보낸다 치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로봇 물고기 눈에서 광선이 나와 댐과 보를 폭파해 자연상태로 되돌리기라도 하는가? 강의 오염은 장기적이고 누진적인 결과다. 강의 수질을 되살리는 작업은 수영장에서 뜰채로 장난감을 건져내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본문 114쪽)

토끼와 거북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바다에서 경쟁을 하던 거북이가 지상으로 올라와 토끼와 경쟁하여 이기는 뾰족한 방법은 알 수 없었다. 대신 이것만은 얻어가는 것 같다. 그건 바로 '자신감'이다.

자신감은 어디서 얻을 수 있었나? 그들의 놀라운 글쓰기 기술을 전수 받아서가 아니다. 그보다 책에 소개된 그들이 쓴 기사를 찾아보면서 알게된 사실 하나, 그들은 누구보다도 끊임없이 글을 써왔다는 점이다.

그들 또한 뛰는 재주가 뛰어난 토끼가 아니었다. 처음은 그들도 미숙했다. 매주 빠짐없이 기사를 써왔으며 7~8년이 넘은 지금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기사를 쓰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들 모두가 거북이었다. 자신의 느릿한 걸음걸이를 통해 보게 되는 세계를 세상과 소통하려고 했다는 점이 내게 자신감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시민기자는 거북이다'라고 정의하고 싶다. 미친 성장주의과 경쟁주의에 지친 우리 모두, 거북이의 자존감을 되찾고자 한다면 이 책을 보라. 그리고 거북이의 반격을 기대하시라. 언젠가 시민기자들이 언론계를 평정할 그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시민기자다 -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12명의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

김혜원 외 11명 지음, 오마이북(2013)


태그:#나는 시민기자다, #오마이북, #서평,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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