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도 그림
▲ 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도 그림
ⓒ 김봉준

관련사진보기


당시 부산에는 전쟁통이라 피난민들이 밀려들어 집집마다 사람들로 꽉꽉 들어찼었다. 피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장사를 했다. 돈 될 만하다 싶으면 무슨 일에든지 뛰어드는 판이었다. 어디를 가도 장사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아이들이 집밖에 나가면 보는 것이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팔면서 흥정하는 풍경이었다.

태일이는 사람들이 장사하는 것을 매일 보더니 스스로 해보고 싶은 눈치를 내비쳤다. 하루는 아버지의 양복을 둘러메고 나가려고 했다. 5살밖에 안 되는 꼬마가 어른의 양복을 들고 나가려니, 양복이 땅에 질질 끌리기만 하고 제대로 들 수가 없다. 그래서 양복은 포기하고 넥타이를 두 개 어깨에 얹어놓더니 밖으로 달려 나갔다.

"넥타이 사세요! 넥타이 사세요!"

태일이는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놀리면서 넥타이를 사라고 사람들한테 외친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넥타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태일이의 물건 파는 모습만 한참 쳐다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넥타이의 품질은 신경도 쓰지 않고 기특하다는 말을 해주면서 태일이의 손에 돈을 쥐어주었다. 태일이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돈을 손에 쥐고 집으로 들어왔다. 태일이는 자기가 물건을 팔았다고 신이 나서 떠벌렸다. 이소선은 태일이의 손에 쥔 돈을 건네받으면서 걱정이 앞섰다.

'애가 뭐가 되려고 이런 수선을 다 피우고 그런다지.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라지만 이제 겨우 5살밖에 안 된 어린애가 이럴 수가 있나.'

이소선은 걱정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일단 넥타이를 산 사람에게 돈을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막상 밖에 나가니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넥타이를 산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소선은 태일이를 붙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다시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주의를 주었는데도 집안에 있는 양말까지 가지고 나가더니 팔아 버렸다. 돈을 가지고 와서는 제딴에는 아무도 모르게 숨긴다고 그랬는지 독 안에 넣어두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보니 돈이 있는 독에는 사람들이 얼씬도 못하게 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무슨 조치를 취하든지 해야지, 어린애가 저래서야…'

"태일아, 피난민 아저씨들이 장사를 한다고 너도 그래서 되나. 엄마가 한 번 못하게 하면 하지 말아야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천상, 네가 자꾸 그러면 저 아저씨들을 우리 집에서 나가라고 해야겠다."

그때는 형편이 나아져서 피난민들한테 방을 빌려주기도 했다.

이소선의 말을 들은 태일이의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엄마는 나빠. 우리도 전에 집이 없어서 얼마나 고생했나. 앞으로는 절대로 무엇을 팔러 안 나갈 테니, 저 아저씨들 그대로 우리 집에 살게 내버려 둬."

태일이가 엄마를 빤히 쳐다본다. 엄마는 그 눈을 들여다보았다. 불쌍한 사람에 대한 동정을 바라는 마음이 가득담겨 있었다.

"그래, 우리 태일이 참 착하다. 이제부터 그런 짓 안하면 아저씨들 그냥 살게 둘게."

이소선은 태일이를 안심시켜 가면서 어린 것한테 다짐을 받았다.

태일이의 피난민들에 대한 동정은 놀랄 만했다. 자기가 먹을 밥을 피난민 아이들에게 가져다 주는가 하면,엄마가 집에 없을 때는 쌀을 볶아서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아마 밥은 할 수가 없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하루는 이소선이 밖에서 일을 보고 돌아와 보니 아이가 옷을 벗은 채 방안에 가만히 있었다.

"너 옷은 어쩌고 그렇게 홀랑 벗고 있나?"

태일이에게 물은 다음 마당을 내다보니 남의 아이가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닌가.

"엄마, 개똥이가 옷이 없어서 내 옷을 줬다. 나는 아버지 옷을 잘 잘라서 나한테 맞게 만들어주면 되잖아."

이소선은 그렇게 말하는 태일이를 한참이나 쳐다봤다. 심하게 야단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계속 그렇게 하라는 말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기특한 놈이로구나. 그래 제 것을 움켜잡고 남한테는 하나도 안 주려고 하는 것보다 무엇이든지 남을 도와주려고 하니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이소선은 아이에게 옷을 입히며 생각했다.

'앞으로 크면 훌륭한 사람이 되겠지 어떻게 해서라도 훌륭하게 만들어야지.'

이소선은 태일이의 앙상한 가슴을 만지며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아이들과 정신없이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소선은 셋째를 낳았다. 딸이다. 이름을 순옥이라고 지었다. 아이를 낳았지만 팔자 좋게 쉴 수가 없는 처지였다. 이소선은 갓난아기를 방에 눕혀놓고 바로 남편을 도우러 일을 나갔다.

저녁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니 아기를 윗목 구석에 반듯하게 눕혀 놓았다. 이소선은 태일이에게 왜 아기를 윗목에 눕혀 놓았는지를 물었다. 그 대답이 걸작이다.

"엄마, 아기를 복판에 눕혀 두면 저 애들(피난민 아이들)이 윗목에 가서 누워 자야 하잖아. 우리는 우리 집이니까 아무 데서나 자도 되잖아. 그래서 순옥이를 윗목에 눕혔어."

이소선은 태일이의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으랴.

"그래, 우리 태일이 말이 맞다. 그러나 어린 아기를 찬 데 눕혀서는 안 된다."

이소선은 아기를 보듬어 안으며 태일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태그:#이소선, #전태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