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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고 자란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있는 박연묵 선생은 근무현황, 학생명부, 학생들 글모음, 가계부 등 교사의 일상을 생생하게 남겨둬 ‘기록의 달인’으로 유명하다. 그 진귀한 기록들은 결국 당신에게 맡겨진 아이들을 마음 다해 사랑한 흔적들이다.
 어릴 적 나고 자란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있는 박연묵 선생은 근무현황, 학생명부, 학생들 글모음, 가계부 등 교사의 일상을 생생하게 남겨둬 ‘기록의 달인’으로 유명하다. 그 진귀한 기록들은 결국 당신에게 맡겨진 아이들을 마음 다해 사랑한 흔적들이다.
ⓒ 심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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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이 되면 내가 현장에 있을 적에 그 제자들한테 사랑을 좀 더 베풀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떠오르제. 후회 되고 가슴 아프지. 좀 더 다독거려줄 걸 그랬다 싶으지. 그네들이나 내나 이 세상에 없다 해도 나와 그네들은 끝까지 스승과 제자라."

오래된 스승은 미안함 가득한 눈으로 그 시절을 회상했다.

31년 동안 초등학교 교직에 있으면서 제자들과의 하루하루를 빼곡하게 기록해 둔 선생의 올해 나이는 여든 하나. 그가 학교에서 보낸 삼십여년은 가르친 아이들 중 누구도 낙오자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온 '기도의 시간'이기도 했다.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13일 오후 박연묵교육박물관에서 마주한 박연묵 선생은 "함께 한 시간들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은 삶의 기본"이라며 '제자들의 방'을 열어 보여줬다.

그의 교사 인생이 빠짐없이 담긴 각종 '기록'들은 여러 방송매체에 소개됨은 물론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장이 직접 방문해 감사패를 수여하기도 했다. 1949년 부터 써온 일기는 4년 전 열린 국제기록 문화제에서 대한민국 기록물 전시관에 김구 선생 등 걸출한 역사 인물들의 일기와 함께 전시되기도 했다.

선생은 "난 제자들과의 인연을 귀하게 여겨.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나고 그 시간들이 곧 추억이 되는 기야"라며 방 벽에 붙여둔 '사랑, 인연, 추억' 여섯 글자를 가리켰다. 요즘 너무도 흔한 저 단어들이 허망한 관념이 아니라 선생의 살과 가슴에 '기록'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현재 교육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도 신기루처럼 희미한 '해결 방안' 대신 맑고 또렷하게 대답했다.

"학교 폭력이 문제지. 근데 우리 인류가 존재하는 한, 학교가 존재하는 한 근절 될 수 없어. 그건 우리 인간사회에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뿌리 뽑힐 수는 없단 거야. 그네들이 기성세대들을 보고 있거든. 폭력이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애들은 한 명도 없어. 알고도 한다고. 어른들도 하니까. 지금 사회가 그리 돼 있어. 모든 것이 더 거칠어져 가. 그대가 팔십이 돼도 지금하고 똑같은 고민을 할 거야. 아마 더 심해지겠지."

선생은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더 힘을 주고는 "그렇다고 대책이 없다면서 방치를 하란 말이 아냐.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라는 거야"라며 다시 주제를 '사랑'으로 옮겼다.

"지금 아이들은 사랑이 결핍 돼 있거 든. 집에 와서 혼자 잠긴 문을 여는 어린 아이들한테는 엄마의 빈자리가 있다고. 그 공백을 교사가 채워줘야 돼. 지식을 주입하거나 팔 생각 말고 최대한 사랑을 가꿔줘."

그렇게 선생이 평생의 과제로 삼은 '아이 사랑'은 퇴임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그 열매가 맺혀 있다.

사진 속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1968년 선생이 첫 교편을 잡았던 낙도의 어느 초등학교 제자들도 여전히 연락이 닿고 찾아온다.

후배 교사들, 이제 막 발령을 받은 새내기 교사들도 선생의 집에 들러 '금싸라기 같은 조언' 한 마디 씩을 듣고 간다.

"자의건 타의건 교사의 길을 택했다면 돈, 명예 딱 집어치우고 오로지 자기한테 맡겨진 제자들에게 사랑만 가르쳐주면 돼. 그러면 첫째, 아이들이 인정해준다고. 스승의 날이라고 감사 받는 것도 너무 일러. 우리가 성급하게 자꾸 평가 받아서 뭐 좋은 거 하고 싶어 하는데 고맙다는 말 듣는 거, 평가 받는 거는 나중에 받 아도 돼. 지탄 받을 일 없이 꾸준히 최선을 다하면 세월이 칭찬을 들고 와."

노사(老師)의 훈계는 따끔하고 청량했다. 그가 평생을 통해 이제야 얻은 깨달음도 전해 줬다.

"내가 팔십을 살아본 께 그렇더라. 항상 좋고 항상 나쁜 건 아니더라고. 50이 좋으면 50은 안 좋아.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높은 산이 있으면 깊은 바다가 있어. 반드시 그래. 이게 자연이야. 순응해 살아가는 거라. 그러다 나중에 남김없이 날아가는 거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사천 5월 15일자 종이신문과 인터넷신문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스승의 날, #사천시 용현면 신복리, #박연묵교육박물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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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사천시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그리고 도시 구석구석에서 이웃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지요. 오마이뉴스와 동무하며 걷고 싶습니다. 힘이 됩니다. :) Community Journalism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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