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 아들, 이제는 춥지 않고 따뜻하겠네... 가서 편하게 쉬어."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18년을 어르고 달래며 길러온 아들을 떠나보내는 길, 수천 번도 더 불렀을 애틋한 이름이 적힌 유골함을 뒤따르며, 어머니는 닿을 길 없는 아들에게 건네는 말을 조용히 읊조릴 뿐이었다. 지칠 대로 지쳐 더 이상 울 힘도 없는 유족들 뒤로 교복 입은 학생들이 흐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세월호 사고로 숨진 안산 단원고 2학년 이아무개(18)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12일 오전 찾은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 연화장' 앞 합동 분향소. 4월 16일 세월호 사고 발생 후 지난 12일까지 연화장에서 화장된 단원고 희생자는 총 192명(교사6명, 학생186명)에 달한다.
 12일 오전 찾은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 연화장' 앞 합동 분향소. 4월 16일 세월호 사고 발생 후 지난 12일까지 연화장에서 화장된 단원고 희생자는 총 192명(교사6명, 학생186명)에 달한다.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전날 내린 비로 땅이 촉촉하게 젖은 12일 오전. 먹구름 잔뜩 낀 날씨는 시간이 갈수록 화창해졌지만,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 연화장' 안 분위기는 내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앳되고 말간 얼굴의 상주들이 검은색 상복을 입은 채 돌아다녔고, 단원고 교복을 입고 친구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학생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사고 4일째였던 4월 19일, 고 최혜정 단원고 교사가 처음 화장된 뒤 여기서는 24일째 매일 화장이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사고 발생 후 지난 12일까지 연화장에서 화장된 단원고 희생자는 총 192명(교사6명·학생186명). 241명의 단원고 사망자(교육부 기준) 중 80%가 여기서 마지막 안식을 찾은 셈이다. 지난달 26일에는 학생 19명의 화장이 한꺼번에 이뤄지기도 했다.

못 사줬던 속옷 함께 태워달라던 어머니... 관 껴안고 '미안하다'던 아버지

12일에도 단원고 이OO군과 박OO군 등 3명의 화장이 예정돼 있었다. 이날 9시 40분께 유족과 친지들을 실은 영구차가 연화장 내 승화원(화장시설)에 도착했고, 이어 하얀천이 덮인 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장을 위해 관을 '이동대차'로 운구하자 차분하던 유족들 사이에서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 OO이 어떡해…." 아들 이름을 부르며 우는 어머니 모습에 주변인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12일 오전 찾은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 연화장' 앞의 모습. 이날 오전 유족과 친지들을 실은 영구차가 연화장 내 승화원(화장시설)에서 도착했고, 이어 하안 천이 덮인 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유족들 사이에서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12일 오전 찾은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 연화장' 앞의 모습. 이날 오전 유족과 친지들을 실은 영구차가 연화장 내 승화원(화장시설)에서 도착했고, 이어 하안 천이 덮인 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유족들 사이에서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화장로로 관을 보낸 가족들은 부축을 받아 겨우 분향실로 이동했고, 통유리 너머로 관을 보며 고인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눴다. 이어 짧게 절을 하거나 예배를 드리는 등 망자에 대한 예를 갖췄다. 하얀 천이 덮인 관이 화장로 안쪽으로 사라지자, 분향실 안은 또 다시 흐느낌으로 가득 채워졌다. 한 어머니는 딸과 함께 주저앉아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오열하기도 했다.

부모들의 애끓는 슬픔은 긴급 대기 중이던 봉사자들조차 눈물짓게 했다. 자원봉사자 이미영(44, 수원 영통구 매탄동)씨는, 옅은 미소를 띤 채 찍은 단원고 이아무개(18)군의 영정을 보며 함께 어깨를 들썩였다. 이씨는 "왜 이렇게밖에 될 수 없었는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면서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제 아들도 곧 군대에 가야하는데 이런 나라에 누가 자식을 믿고 맡기겠나"라며 "(아들)능력이 되면 해외서 살았으면 하는 심정"이라 고백했다.     

3주 넘게 화장이 계속되다보니 온갖 가슴 아픈 사연들도 쌓였다. 이창원 연화장 운영팀장은 "지난 3일에는 저와 비슷한 연배의 아버지가 관을 껴안고 '미안하다 아들, 아빠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고 하는데 그 모습이 정말 지켜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집이 가난해 생전에 못 사줬던 새 속옷을 관과 함께 화장해 달라고 부탁한 어머니도, 동생을 차마 보낼 수 없어 울며 화장로까지 직접 따라 들어왔던 누나도 있었다.

올해로 14년째 접어드는 수원연화장은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2010년 천안함 희생자들을 화장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재린 연화장 소장은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학생들을 연이어 화장한 적은 처음"이라며 "제발 이런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13일 현재, 세월호 사고로 여전히 29명의 실종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다음에도 내 형으로 태어나줘"... '영원한 열여덟'으로 남은 아이들

평택 서호추모공원(납골당)에 안치된 단원고 학생들은 총 77명(12일 기준). 납골당 1층에는 단원고 학생들을 위한 추모분향소가 따로 마련돼 있다. 그곳에는 고인의 친구와 친척들이 남긴 메시지들이 가득했다.
 평택 서호추모공원(납골당)에 안치된 단원고 학생들은 총 77명(12일 기준). 납골당 1층에는 단원고 학생들을 위한 추모분향소가 따로 마련돼 있다. 그곳에는 고인의 친구와 친척들이 남긴 메시지들이 가득했다.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평택 서호추모공원(납골당)에 안치된 단원고 학생들은 총 77명(12일 기준). 납골당 1층에는 단원고 학생들을 위한 추모분향소가 따로 마련돼 있다.
 평택 서호추모공원(납골당)에 안치된 단원고 학생들은 총 77명(12일 기준). 납골당 1층에는 단원고 학생들을 위한 추모분향소가 따로 마련돼 있다.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약 2시간의 화장 절차 후 유골함에 담긴 이군의 유해는 수원연화장에서 차로 약 50분 거리인 평택 서호추모공원(납골당)에 안치됐다. 산자락에 위치해 조용하고 공기 좋은 납골당이었다.

단원고 학생 유해 77위가 안장된 이곳 납골당 1층에는 단원고 학생들을 위한 추모분향소가 따로 마련돼 있다. 분향소 뒤쪽 벽면에는 고인의 단짝친구와 이성친구, 친척들이 남긴 메시지들로 가득했다. 삐뚤빼뚤한 글씨와 그림으로 "형 누나 희망의 줄을 놓지 마, 내가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라 쓴 쪽지도 있었다.

1층과 2층에 각각 위치한 단원고 학생들의 봉안단에는 고인을 향한 친구·가족들의 절절한 그리움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봉안단 안에는 유골함과 함께 고인의 명찰과 단란한 가족사진, 시계와 향수 등이 들어있었다.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가수의 앨범을 넣어놓거나 선수의 사인이 담긴 야구공을 넣어놓기도 했다. 유리 앞에는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고 즐거웠다", "형, 다음 생에도 내 형으로 태어나줘" 등 가족들이 쓴 쪽지가 붙어있었다.

5월 8일 어버이날에 다녀간 듯, 카네이션이 대신 놓인 봉안단도 있었다. 세월호 가족 대책위 대표 김병권(52)씨의 딸 김빛나라양, 대변인 유경근(46)씨의 딸 유예은양 등 친한 친구 8명의 유골이 모여 있는 납골당 152호의 얘기다. 친구들과 나란히 놓인 김아무개양의 봉안단에는 "내 딸, 천국에서 만나자"란 쪽지 위로 예쁘게 핀 분홍색 카네이션이 붙어있었다.

친한 친구 8명의 유골이 모여 있는 납골당 152호에는, 아기자기한 사진과 쪽지 위로 예쁘게 핀 분홍색 카네이션들이 붙어있었다.
 친한 친구 8명의 유골이 모여 있는 납골당 152호에는, 아기자기한 사진과 쪽지 위로 예쁘게 핀 분홍색 카네이션들이 붙어있었다.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오마이뉴스에 기사가 실렸던 강아무개군이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었다. 강군의 봉안단에는 강군이 환히 웃는 모습을 그린 그림과 함께 '영원한 열여덟 강OO'이라 써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오마이뉴스에 기사가 실렸던 강아무개군이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었다. 강군의 봉안단에는 강군이 환히 웃는 모습을 그린 그림과 함께 '영원한 열여덟 강OO'이라 써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봉안함 유리를 닦던 청소아주머니 박아무개(58)씨는 "처음에는 유리를 닦다 우연히 쪽지를 읽곤 했었는데, 읽다보니 자꾸 눈물이 나서 청소를 못 하겠더라"며 "이제는 일부러 (쪽지를) 보지 않고 청소를 한다"고 말했다.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이웃주민들의 수천여 장의 편지와 쪽지가 가게 앞에 붙었던 단원고 강아무개군도 이곳에서 잠들었다. 강군의 봉안단에는 강군이 환히 웃는 모습을 그린 그림과 함께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 단원고 명찰 등이 담겨있었다. 그림 옆에는 '영원한 열여덟 강OO'이라 쓰여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관련기사: 'OO군은 끝내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부모의 품을 떠나 '영원한 열여덟' 살로 남은 단원고 아이들. 이들은 2014년 대한민국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오전 "그동안 많은 의견을 수렴했고 조만간 대국민담화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국민 담화에는 국가재난안전마스터플랜,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 방안 등이 담길 예정이다.

그러나 사고 첫날 사망한 임아무개군(18)에게 그의 아버지가 남긴 한마디가, '안전하지 못한 대한민국'을 낱낱이 드러낸 세월호 참사를 뼈아프게 지적하고 있다. 

"아들, 다시는 못난 아빠 아들하지 말고, 혹 다시 태어나더라도 대한민국에서는 태어나지마! -무능한 아빠가."


태그:#세월호 침몰사고, #수원연화장, #서호추모공원, #안산 단원고, #단원고 학생
댓글1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