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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22일째인 7일 오전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 옆 운동장에 대기하고 있던 군용수송헬기로 수습된 희생자의 관이 옮겨지고 있다.
▲ 세월호 희생자 269명...실종 35명 세월호 참사 22일째인 7일 오전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 옆 운동장에 대기하고 있던 군용수송헬기로 수습된 희생자의 관이 옮겨지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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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다시 절망이 분노로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진도항 주변을 맴돌아도, 진도실내체육관 주위를 서성거려도 나의 이런 행위들이 저 바다에서 유명을 달리한 사랑하는 학생들과 우리 국민들의 죽음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진도체육관과 함께 있는 공설운동장에는 시신을 운구하기 위한  헬기 여섯 대가 정렬되어있습니다. 금방이라도 이륙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친 채. 처음 며칠은 그것조차도 우왕좌왕하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체계가 잡혀가는 모습입니다.

날마다 이착륙을 하던 헬기들이 어제 오늘은 땅에 붙어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저 먼 바다에서는 인양되는 시신이 한 구도 없는 모양입니다. 이것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는 또 절망합니다. 어제 오늘이 소조기라서 시신이라도 찾기를 바라는 유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분노 이상의 이글거림, 이게 무엇일까요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분노, 아니 분노 이상의 이글거리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그래도 이런 심정이 유가족만 할까 하고 애써 마음을 누릅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유가족들에게 기운이라도 남아 있었습니다. 구급차의 경적이 울리고 공설운동장은 일순 긴장을 합니다.

이별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달려온 운동장에는 이미 헬기가 시동을 걸어놓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시신이 헬기 옆에 멈추면 공설운동장의 무거운 침묵을 깨우는 가족들의 오열이 운동장 안에 가득합니다.

몇 날 며칠을 실내 체육관에서 함께 고통을 나누며 지내왔던 몇 사람들의 배웅과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헬기가 이륙합니다. 헬기의 프로펠러가 회전 속도를 더하면 가족들의 오열은 그 소음에 묻힙니다. 대신 운동장 주변의 은사시나무들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들은 이제 진도를 떠나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아왔던 안산을 비롯한 고향으로 기수를 돌립니다. 헬기가 이륙한 빈 공간에는 다시 슬픔으로 빛이 바랜 적막이 운동장을 감쌉니다. 이것을 바라보던 사람들도 돌덩이처럼 무거운 침묵을 등에 지고 발길을 돌립니다.

이런 모습을 수십 번 바라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말을 잃게 됩니다. 아, 말을 잃는다는 것이 이렇게도 쓰이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유가족들에게 더 울 수 있는 눈물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탈진해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유족들은 울음소리마저 내뱉지 못하고 떠납니다. 가슴이 더 미어집니다.

조금씩 조금씩 진도실내체육관이 비워집니다. 간절하게 살아서 돌아오기를 바랐던 유족들은 이제 싸늘한 주검을 한구씩 가슴에 얹고 떠나갔습니다. 희망이 사라진 이곳에는 시신이라도 가족의 품에 돌아오는 것이 소원입니다. 주검을 기다리는 이런 기막힌 소원이 세상에 또 있겠습니까? 길에는 차들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국민들의 관심도 조금씩 옅어집니다. 아직도 29명이 저 찬 바다 속에 있는데,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들인데.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남아있었을 때는 간절히 그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바랐을 것인데 그 희망도 없는 지금은 이제 무엇을 기다립니까. 책임자 처벌? 잘못된 제도와 관행의 개선? 이게 다 무슨 개뿔같은 소리랍디까.

잘 곳이 부족해서 오죽하면 우리 집에서도 몇 분의 봉사자들을 재웠습니다. 밤추위에 떠는 봉사자들을 보다 못해 집에 가서 두꺼운 옷을 있는대로 꺼내다가 입히기도 했습니다. 우리 고장에는 쓰레기 소각장이 한 곳 있는데 여기도 어렵답니다. 며칠을 소각하고 소각로를 식힌 뒤 정비를 해야하는데 두 배로 불어난 쓰레기를 처리하자면 그럴 겨를이 없답니다. 월급을 받고 봉사하는 것이 공무원이지만 유독 우리 고장 공무원들은 눈이 퀭해졌습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처리하고 다시 현장을 찾거나 맡은 임무를 위해 구호물품 있는 곳으로, 진도항으로, 실내체육관으로 향하는 그들의 발걸음도 무거워집니다. 더구나 생업을 포기하고 바다에서 실종자들의 유류품들을 찾거나 유실된 시신을 찾아 종일 바다를 헤매다가 돌아오면 오염되어 있는 바닷가 바위를 닦으러 나서는 섬 지역의 주민들은 절로 탄식입니다. 톳도 많이 자랐는데 올 수확은 포기해야 한답니다. 미역은 포자가 붙지 않는답니다. 그래도 그들은 누구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섬 사람들, 단 하나의 바람이라면...

어버이날인 8일 오전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뜨지 못한 전남 진도군 팽목항 등댓길에 "보고싶다 아들, 엄마도 카네이션 달아줘야지... 너무 보고싶다"라고 적은 노란리본이 말없이 나부끼고 있다
▲ "카네이션 달아줘야지" 팽목에서 맞은 어버이날 어버이날인 8일 오전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뜨지 못한 전남 진도군 팽목항 등댓길에 "보고싶다 아들, 엄마도 카네이션 달아줘야지... 너무 보고싶다"라고 적은 노란리본이 말없이 나부끼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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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바람이라면 "죄송한데요, 잠수할 때 여력이 조금이나 있으면 기관실 연료 코크를 좀 잠가주세요"입니다. 기관실에서 근무하는 선원들도 조타실 근처에까지 올라와서 탈출했다고 하니 제 살기에 바쁜 그런 엉터리같은 선원들이 연료 코크를 잠갔겠습니까. 연료통에서 계속 올라오는 기름이 바위를 닦는다고 해결이 되겠어요? 엊그제 서울에 사는 향우들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고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바라만 보는 그들의 심정은 또 어떻겠습니까. 함께 고통을 나눠져야 하는데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는 그들의 심정을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모금활동 계획을 세웠답니다. 팽목에 위령탑이라도 세워서 가신 많은 분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떻겠느냐고요. 여기를 고향으로 둔 인연 때문이지요. 이제 구체적으로 그런 계획도 세울 요량입니다. 또 씻김굿 한 판이라도 벌여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과 죽은 자들의 영혼도 씻길 계획도 세워두었습니다.

여러 잡음들이 들립니다. 누가 웃었네, 누가 무슨 방을 썼네, 누가 무슨 차를 탔네, 구호품이 어쨌네, 그러나 그런 잡음들은 저 찬 바다에서 죽어간 많은 희생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죽은 자들은 말이 없고 단지 살아있는 사람들의 추악함만 남아있습니다, 치욕입니다. 저를 비롯한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치욕입니다. 아마 먼저 간 사람들은 저 하늘에서, 이 땅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치욕이라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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