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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사고 현장에 가지 않고 리포트를 만들었고 매 맞는 것이 두려워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지 않고 기사를 썼다."

KBS 막내 기자들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왜곡된 자사의 취재보도 시스템을 더는 눈뜨고 볼 수 없었던지 비판을 넘어 통렬히 반성하는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한창 의욕이 넘치며 군기가 가득 들어 있을 신입 기자들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KBS 38기·39기·40기 40여명을 대표한 기자 10명이 쓴 반성문 중에는 "KBS 기자는 '기레기'(기자+쓰레기)로 전락했다"고 솔직히 표현한 대목이 가슴 아프다. 기자를 기레기로 전락시킨 방송사를 위해 시청료를 매월 꼬박꼬박 낸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부끄럽고, 유족들에게는 더욱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다른 한편으론 기라성 같은 방송사 선배들을 향해 "가장 우수하고 풍부한 인력과 장비를 갖춘 공영방송으로서 정부 발표를 검증하고 비판하라고 국민으로부터 그 풍요로운 자원을 받은 것 아닌가?"라며 일갈한 후배 기자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대통령의 현장 방문 당시 혼란스러움과 분노를 다루지 않고 대신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한 데 대한 자괴도 쏟아냈다고 하니 MB정부시절 느닷없는 친정권인사의 잇단 공영방송사 낙하산 사장체제 이후 '국민의 방송'이 그간 안팎으로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만시지탄이기는 하지만 사필귀정으로 보인다.

재난 주관 방송사, 참사기간에 신뢰 얻지 못한 이유

KBS 내부에서 자사의 세월호 침몰 사고 보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KBS는 지난달 18일 오후 4시 30분경 자막과 앵커의 발언을 통해 "구조당국이 선내 엉켜 있는 시신을 다수 발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KBS 내부에서 자사의 세월호 침몰 사고 보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KBS는 지난달 18일 오후 4시 30분경 자막과 앵커의 발언을 통해 "구조당국이 선내 엉켜 있는 시신을 다수 발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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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참사가 발생한 지 4주째가 돼가고 있지만 국가 재난 주관 방송사의 보도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KBS는 사고 초기부터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발표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다 오보까지 냈다. 좋지 않은 모습만 보이니, 국민 신뢰도 얻을 수 없었다. 게다가 온 국민들이 깊은 슬픔에 빠져 애도를 표하고 있는 마당에, KBS 보도국 간부는 상식 이하의 발언과 고압적 태도로 유가족을 두 번, 세 번 울렸다. 이 정도면, '사회의 공기'보다는 '사회의 패악'을 떠올리게 만든다.

얼마나 상처가 컸으면 유족들이 8일 저녁부터 9일 새벽까지 KBS 본관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KBS 보도국장이 회식 자리에서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며 항의시위를 펼쳤을까.

국가적 재난인 세월호 침몰 참사로 온 국민이 비통에 젖어 있는 순간에 대한민국 최고의 공영방송사, 그것도 재난 주관 방송사에서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김시곤 KBS 보도국장은 9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참사는 안전불감증에 의한 사고였다,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킬 수 있는 뉴스 시리즈물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했다"며 "교통사고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워야 한다는 발언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미 유족들의 가슴에는 큰 멍이 든 상태였다.   

더욱이 8일 저녁, 유가족들이 4시간이 넘게 면담을 요구하며 항의를 했지만 KBS는 묵묵부답,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해 비난을 자초했다. 인재가 빚은 대형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는데도 KBS는 안팎으로 희귀한 뉴스들을 생산해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국면 전환용 물타기 프레임 또 활용 '빈축'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가져온 영정사진을 품은 채 9일 새벽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 영정사진 품고 청와대 향하는 유족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가져온 영정사진을 품은 채 9일 새벽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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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참사 앞에서 허술한 재난구조 시스템들을 하나 둘 선보이기라도 하듯, 정부와 해경 등 재난관리 당국은 초기부터 허둥댔고, 결국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꽃다운 아이들이 차디찬 바닷속에 갇히게 만들었다. 이러한 위급한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고 사고원인을 냉철히 분석하며 대안을 제시해야 할 재난 주관 방송사가 권력의 눈치를 살피거나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한 물 타기 프레임을 습관적으로 활용해 더 큰 빈축을 사고 있다.

낯선 진도 팽목항에서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온 자식을 껴안고 통곡하는 부모들,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애타게 울부짖고 있는 유족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국민의 방송 KBS는 당국이 내미는 숫자만 받아 적으며 언론 흉내만 냈다. 이게 바로 패악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심지어 KBS는 박근혜 대통령 방문 당시 분노와 울음을 토해내며 항의하는 유족들의 모습을 방송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장면과 육성은 감춘 채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된 고고한 대통령의 모습만을 내보냈다. 온 국민이 심연 속으로 사라진 유령 같은 세월호 속에서 이어지는 비참한 주검의 행렬을 바라보며 연일 실망을 넘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는데도 권력의 눈치를 살피다니... 사회의 공기가 아닌 흉기가 따로 없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KBS 기자들이 반성문에 "욕을 듣고 맞는 것도 참을 수 있다, 다만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가 부끄럽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라며 "10kg이 넘는 무게를 어깨에 메고 견디는 이유는 우리가 사실을 기록하고 전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고 썼을까. 막내 기자들의 주장대로 KBS는 재난 주관 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뉴스를 통해 잘못 전달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한다.

사고 이틀째인 지난달 17일 방송된 KBS 2TV <굿모닝 대한민국>에서 현장 소식을 전하던 도중 주변에 있던 사람의 욕설이 여과 없이 보도된 것, 세월호 침몰 참사 사흘째인 지난달 18일 <뉴스특보>에서 자막과 앵커 멘트를 통해 '선내 엉켜 있는 시신을 다수 발견했다' 오보를 내보낸 것, 지난달 30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대국민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유가족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 소식은 보도하지 않은 채 대통령의 발언만을 비중 있게 내보낸 것, 보도국장이 온당치 못한 발언을 한 것 등은 KBS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확산시킨 불씨들이다.

여당, KBS 수신료 인상안 '날치기 상정'

세월호 희생자와 교통사고 사망자를 비교하는 발언으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격하게 항의하는 등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발언 당사자로 알려진 김시곤 KBS보도국장이 9일 오후 여의도 KBS신관 국제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실제발언이 왜곡되었다고 반박했다. 또한 김 국장은 회견에서  "혼신의 힘을 기울였으나 보도국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고 밝혔다.
▲ '사퇴' 표명한 김시곤 KBS보도국장 세월호 희생자와 교통사고 사망자를 비교하는 발언으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격하게 항의하는 등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발언 당사자로 알려진 김시곤 KBS보도국장이 9일 오후 여의도 KBS신관 국제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실제발언이 왜곡되었다고 반박했다. 또한 김 국장은 회견에서 "혼신의 힘을 기울였으나 보도국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고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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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업자득의 결과다. 취재 현장에서 욕설을 듣거나 쫓겨나고 심지어 조롱을 당하는 KBS 기자의 모습이 인터넷에 돌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런 내막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선교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또 총대를 멨다. 그는 8일 KBS 수신료 인상안을 '날치기 상정'했다. KBS 수신료 인상안 처리에 반대하며 야당 의원들이 불참했음에도 개회를 강행해 약 25분 만에 KBS 수신료 인상안 단독 상정 등 절차를 속전속결로 끝마쳤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KBS 수신료 인상안 처리 필요성을 묻는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KBS가 자구 노력과 회계 분리, 공적 책임 강화 조치를 취한다면 수신료 인상에 대해 국민도 충분히 인정할 것"이라고 답변했다고 하니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도대체 왜 이 시점에서 시청료를 올려주려는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KBS 수신료 인상안은 지난해 12월 10일 KBS 임시이사회에서 여당 추천 이사만 참석한 가운데 현행 2500원을 4000원으로 인상하는 안건이 처리된 후 올 2월 방송통신위원회가 가결한데 이어 국회 승인을 앞두고 있다. 준조세와도 같은 시청료를 절반가량이나 인상하려 들다니, 정령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일까?

세월호 실종자 수습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 재난 주관 방송인 KBS가 왜곡보도와 적절치 못한 간부의 언행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마당에, 정부와 여당이 앞장서 시청료를 인상시켜주려는 것은 깊은 수렁에 빠진 'KBS 구하기'에 나선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뜩이나 박근혜 정부 들어서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가 계속 하락하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한국 언론자유, 이명박-박근혜정부 가장 낮은 수준 '추락'

국제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가 지난 1일(현지시간) 발표한 '2014 언론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언론자유지수 32점으로 조사 대상 197개 국가 중 68위에 그쳤다. 지난해 64위(점수는 31점)보다 4계단 하락한 수치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11년 5월 '부분적 언론자유국(PARTLY FREE)'으로 강등된 이후 줄곧 '언론자유국(FREE)' 등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42위)과 타이완(47위)이 언론자유국에 포함된 것과는 달리 한국은 남아프리카(69위), 헝가리(71위), 세르비아와 몽골, 말리, 홍콩(공동 74위), 인도와 엘살바도르(78위) 크로아티아(83위) 등과 함께 '부분적 언론자유국'에 속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한국의 언론자유가 이처럼 추락한 데는 그만한 이유들이 있다. 특히 "권위주의 정부나 정치환경이 극단화된 국가들을 중심으로 정부에서 뉴스 내용을 통제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프리덤하우스의 분석을 대통령과 여당은 새겨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시국에 KBS 시청료 인상을 거론하다니, 지금  제정신인가? 지금은 국민적 재난을 제대로 수습하고 향후 재발방지대책부터 함께 내놓을 때다. KBS는 재난 주관 방송사로서 역할을 다하고 국민의 신뢰부터 얻는 게 급선무다.


태그:#KBS, #시청료, #국가재난주관방송, #여당, #방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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