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왕 정조 스스로 역린을 뽑고 구태와 결합한 왕.

▲ 비운의 왕 정조 스스로 역린을 뽑고 구태와 결합한 왕. ⓒ 롯데엔터테인먼트(주)


역린

용, 그 상상의 동물이 가지고 있는 위험요소. 역린이란 용의 비늘 중에서 모든 비늘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목 주위에 나 있는 비늘을 말하는데 이것을 건드리면 누구를 막론하고,  반드시 공격한다고 한다.

영화는 매우 짧은 시간(하루)을 거의 분 단위로 나누어서 관객에게 보여주면서 사이사이에 많은 이야기를 꿰어 전체적인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데 사실은 그 사이의 이야기가 너무 가지를 많이 뻗어서 오히려 전체적인 맥이 조금씩 흐트러지는 면도 없지 않았다.

중용 23장

정조(현빈 분)는 조선 왕조에서 가장 개혁적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개혁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조부이자 선왕이었던 영조의 존재와 그의 아버지였던 사도세자의 죽음이다.

왕의 아들마저도 죽음으로 내몰 수 있었던 조선조의 당쟁은 다름 아닌 명분 싸움이었다. 명분은 각자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함인데, 그 도리를 지킬 것인가 혹은 지키지 않을 것인가를 두고 거의 300년을 서로 죽이고 죽이는 처절한 전쟁을 벌였다.

의로운 민초 한 때 살수로서의 삶을 살았으나 이제는 중용 23장 내용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상책 갑수.

▲ 의로운 민초 한 때 살수로서의 삶을 살았으나 이제는 중용 23장 내용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상책 갑수. ⓒ 롯데엔터테인먼트(주)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영조는 탕평책을 통해 그 고리를 끊으려 했으나 그 과정에서 자신의 아들을 잃게 되었고 그 아들의 아들은 조부의 뜻과 아비의 죽음을 가슴에 안고 왕이 되었으니 그에게 당파를 넘는 생각, 즉 지긋지긋한 명분 싸움으로부터의 탈피(개혁)는 선택이 아니라 당연함이었을 것이다.

상책 갑수(정재영 분)가 나직하게 말하는 중용 23장은 확실히 무서운 말이다. 권력을 쥐고 있던 당시의 노론들에게 이 말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말이자 실행할 수 없는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다.

특히 "唯天下至誠 爲能化"(오직 천하에 지극히 성실함이 있어야 능히 변화할 수 있다). 당시의 성실하지 못한, 즉 마음을 다해 백성과 왕을 섬기지 않고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도 서슴지 않고 벌이는 권력자들에게,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성실함으로 돌이키라는 정조의 이야기는 왕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다.

시퍼런 당파의 서슬을 뚫고 이제 막 왕이 된 정조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순간 권신들은 왕을 바꾸기로 마음먹는다. 같은 하늘을 이고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아버린 것이다.

슬기로운 민초 세답방 나인 월혜.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슬기로운 민초

▲ 슬기로운 민초 세답방 나인 월혜.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슬기로운 민초 ⓒ 롯데엔터테인먼트(주)


그러한 권력자들이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실행에 옮겼으나 그들이 미처 계산에 넣지 못했던 것은 '민초(민중)의 힘'이었다.

우리는 영화 전체를 통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때는 노론(권력자들)의 연락책이었지만 어린 복빙(유은미 분)이를 진실된 마음으로 대하고 결국 왕을 살리는 근거를 제공하는 세답방 나인 월혜(정은채 분)의 모습에서 당시 권력자들과 그 주구들이 백성에 대해 가졌던 비인간적 태도와 그들이 아무리 밟고 또 밟아도 민초들의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밝은 생각을 없앨 수 없음을 느낀다.

또 살수의 삶을 살다가 정조의 인간됨에 감화된 상책의 모습은 민초들이 결코 어리석지 않음과 동시에 시대 변화의 가장 앞자리에서 자신을 불사르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구선복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이자 역겨운 인물이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일 때 뒤주위에 술을 부은, 정조 입장에서 보면 만고의 역적이자 철천지원수다. 그도 모자라 이제는 정조를 군사력으로 압박한다. 그리고 느물거린다. 정조는 이 사람을 어찌할지 고민하다가 끌어안기로 한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 군사력의 실세다. 뿐만 아니라 정순왕후를 배경으로 노론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니 구선복(송영창분)을 끌어안지 않고서는 이 난리를 평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사건 뒤에도  정조는 이 구선복을 두고 꽤 고심한다. 실록에 의하면 그는 관직에 올랐다가 삭탈관직을 여러 차례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정조의 고민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구태와 결합했으니 정조가 개혁을 완수할 수는 없었을 것이며 두고두고 이들에게 발목이 잡혀 마침내 정조는 독살의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이 사건 당시 정조가 시해 당하고 더 빨리 조선이 망하였으면 어찌되었을까?  더 빨리 외세에게 농간을 당했더라면 우리가 더 빨리 정신을 차리고 이제는 모든 구태를 벗어버리고 제법 당당한 선진국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역사에는 가정이 없는 것을!
 
장치

왕과 그가 거처하는 존영각, 그리고 왕이 움직이는 모든 동선의 배경은 흑백영화처럼 모노톤으로 느껴졌다. 즉, 검은 색과 흰색으로만 표현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흔한 왕의 붉은 곤룡포도 없고 여기 저기 존재하는 화려한 색감은 일부러 한 단계 낮춰서 편집한 듯 보였는데 이것이 감독의 의도였다면 이 부분은 매우 성공한 시도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정조라는 인물이 가진 복잡함과 즉위년간의 혼란스러움이 이런 회색의 화면에서 오히려 매우 증폭되어져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특히 전투장면에서 낭자한 피가 거의 검은 색에 가깝게 묘사되어진 것은 오히려 처절함을 더욱 생생하게 하였다.

정순왕후(한지민 분)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약한 구석이 있다. 인물의 묘사와 배우의 모습에서 역모를 배후조종하는 거악의 모습을 연상해내기는 매우 어려웠다. 다만 그녀의 행동에서는 돼먹지 못한 대비정도의 느낌만 받을 뿐이었다. 연기자의 역량 부족이거나 아니면 감독의 연출에 문제가 있었겠지만 이야기의 한 축이 너무 기울어지는 느낌 때문에 영화의 긴장도는 매우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광백(조재현 분)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분량은 매우 짧았으나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그가 죽기 전 한 대사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내내 머리에 남아 기분을 찜찜하게 했다.

'나 하나 죽인다고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을까?'   

역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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