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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인재(人災)다.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다.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대통령도 그중 하나다. 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다. 대통령의 책임은 명백하다. 비판이나 경우에 따라 사퇴 요구를 받을 수도 있다. 진정성을 의심 받긴 했으나, 사과까지 했지 않은가.

교사들 몇몇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했다. 대통령직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실제 대통령 자리를 내놓으라는 말이었을까. 그럴 수도 있었겠으나 현실을 무시하지 말자. 그것은 아마도 세월호 사고에 대한 정부와 대통령의 책임을 물은 것이 아니었을까. 날선 비판의 한 형식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대통령이 두 번 사과했지만... 왜 민심은 냉랭한가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58년 봉축 법요식에서 축사에 앞서 합장으로 인사를 하고 있다.
▲ 합장하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58년 봉축 법요식에서 축사에 앞서 합장으로 인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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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 교사에 대한 징계 움직임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 보도(5월 6일자 기사; "나는 공무원이기 전에 엄마고 사람입니다")에 따르면, 대구 지역의 한 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 비판 글을 올렸다가 사실문답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해당 교육청인 대구시교육청 산하 동부교육지원청 장학사는 해당 교사가 대통령 비판글을 올렸다는 민원이 들어와서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 품위 유지'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한다. 사실문답서는 징계를 위한 사전절차 중 하나라고 한다.

전교조 울산지부장 권정오 교사는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사태의 유일한 답은 박근혜의 사퇴다"라는 글을 올렸다. 앞선 23일에는 박 대통령의 하야를 청원하는 서명운동이 진행되는 다음 아고라 게시판 글을 공유했다고 한다.

그러자 울산시교육청은 권 교사에게 지난달 28일과 지난 2일 두 차례에 걸쳐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에 당신의 페이스북 글을 고발하는 민원이 올라왔다"고 전화 연락을 했다고 한다. 권 교사는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굳이 나한테 전화를 한 것은 '조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공무원 품위 유지 위반이라니 기가 막힌다. 가까스로 구조된 학생들이 바닥에 앉아 있는 모습을 배경으로, 높은 분들이나 앉는 고풍스러운 팔걸이 의자에 앉아 라면을 먹는 교육부장관은 교양과 품위를 유지했는가. 세월호 사고 희생자 빈소가 마련된 안산의 한 장례식장에서 상심과 절망에 빠진 유가족들에게 다가가 '교육부 장관님 오십니다'라고 귓속말을 전했다는 교육부 장관 수행 공무원은 마땅히 지켜야 할 품위를 제대로 지켰는가.

최고위 선출직 공무원인 박 대통령의 품위는 어떠한가. 대통령이라는 지위나 위치에서 갖춰야 하는 품성이나 교양은 각별해야 한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보다 국민을 우선시하는 철저한 공복 의식,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로서 어떤 일이 터졌을 때 먼저 사과하고 책임을 지는 태도 등이 그것이다.

다행히(!?) 박 대통령은 사과했다. 문제는 그것이 유체이탈 화법에 실려 있었다는 점이다. 사고에 대한 무한 책임을 져야 하면서도 자신과 무관하다는 듯이 말했다. 국무회의 자리에서 참모들을 앞에 둔 간접 사과였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14일 만이었다. 모든 게 부적절해 보였다. 내용과 형식, 시기 등의 차원에서 문제 투성이라는 비판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불기 2558년 석가탄신일인 6일, 박 대통령은 두 번째 사과를 했다.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물욕에 눈이 어두워 마땅히 지켜야 할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그런 불의를 묵인해준 무책임한 행동들이 결국은 살생의 업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은 정점에 이른 듯하다. 최근 박 대통령은 규제 개혁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왔다. 그는 규제를 '암 덩어리'에 빗대기까지 했다. '국민 안전'을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워 출범했으면서도 규제 완화에 총력을 기울인 인상이 짙다는 비판이 일었다.

정부의 규제 완화 드라이브가 각종 안전규제의 빗장을 푼 사례는 부지기수다. <한겨레> 보도(4월 23일자 기사: 정부 규제완화 드라이브, 안전규제도 우수수 풀었다)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이 운영하는 '규제정보포털'의 '규제개선' 과제 850여건 중 안전 관련 과제가 119개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는 기존 규제보다 강화하거나 규제 방식을 대체하는 법령도 있지만, 규제 자체를 완화하는 내용이 다수 들어 있다고 한다.

한쪽으로는 안전규제를 풀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안전규정 위반을 탓하는 모순어법은 이해하기 어렵다. '불의를 묵인해준 무책임한 행동들'을 가능하게 한 사회 시스템에 대통령의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그 모든 문제의 원인이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말한다. 그런 박 대통령이 최고위 공무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과에는 교양이 필요없다

품위는 사회생활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적 관념의 일종이다. 시시로 변하는 사회 조건의 영향을 받는다. 시대·역사적으로 불변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말이다. 사전에서는 품위를 사회 성원들이 각각의 지위나 위치에 따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품성과 교양의 정도로 풀이하고 있다. 자의적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다. 품위를 따지기 위해서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상식에 기댈 수밖에 없다. 품위는 품성이나 교양의 정도로 풀이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반대편 감정인 부끄러움에 대한 자각의 정도로 품위를 판단할 수도 있겠다.

보통 사람들의 상식은 무엇인가. 평범한 우리는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바란다. 그가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책임부터 돌아보기를 원한다. 희생자 가족이 무릎을 꿇었을 때, 그 앞에 함께 무릎을 꿇고 앉아 진심 어린 위로와 격려를 해 주기를 바란다.

무슨 고도의 품성이나 교양이 필요한 일들이 아니다. 살아 있는 자의 죄의식이나 국정 최고 책임자의 책임 의식 따위는 필요 없다. 그저 최소한의 공감 능력만 있으면 된다.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은 그렇지 못했다. 사과는 떠밀리듯이, 정치적 계산을 통해 이루어진 인상이 짙다. 그가 전했다는 위로와 격려는 격한 분노와 저항,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무릎을 꿇은 희생자 가족 앞에 선(!) 대통령의 모습이 그 모든 것을 상징한다.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에서 수치심을 자기통제의 영구기관으로 명명했다. 그는 자기통제의 영구기관인 수치심을 배우는 학습 과정을 '문명화'로 규정했다. 엘리아스의 논법에 따르면, 문명인은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이다. 문명화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은 수치심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그것이 문명화한 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품위는 누가 강요한다고 해서 지켜지지 않는다. 사회가 문명화하고, 사람들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아는 문명인이 되면 품위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된다. 대통령이나 장관과 같은 고위 공직자, 또는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도덕과 품성, 교양이 중요해지는 배경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불법적인 논문 표절과 위장 전입을 저지르고도 장관 벼슬을 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전임 이명박 정부는 '고소영-강부자 정권'으로 역사에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위장 전입과 병역 면제, 투기, 탈세가 고위공직자의 4대 필수과목이 되었을 정도다. 윤창중·윤진숙으로 이어지는 박근혜 정부의 인사 난맥상은 재론의 여지조차 없다. 박근혜 내각에서 위장 전입은 사과할거리도 되지 못한 것 같다.

금융 공공기관을 장악한 '모피아' 문제는 역사가 오래되었다. 세월호 참사 후에는 해수부 관료들이 중심이 된 '해피아'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다. 모피아나 해피아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인 '관피아'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정부 고위 관료들이 산하 공공기관에 재진입하는 회전문 인사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지정한 38개 방만경영 중점관리 대상 기관장 38명 가운데 18명(47.4%)이 '관료 출신 낙하산'이었다고 한다. 6일 민주·한국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를 통해 확인한 결과라고 한다.

이런 회전문·낙하산 인사를 관례와 관행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폐해가 너무나도 심각하다. 사회 전체의 공정성 시스템을 교란하는 데 이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 관피아가 도덕적인 부끄러움을 전혀 모른 채 지낸다는 건 더 큰 문제겠지만 말이다.

교사나 공무원의 품위는 중요하다. 문제는 어떤 품위인가이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교사는 과연 공무원으로서의 품위를 위반했는가. 그렇다 치자. 그런데 이것 때문에 사실문답서를 받으면서 징계 과정을 펼쳐 놓는 교육청은 품위를 지켰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통령 심기 경호에 몰두하는 듯하는 그들이 문명인의 부끄러움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문답서를 통해 조사를 받은 예의 대구 교사는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무원이기 전에 엄마고 사람이다. 법보다 위에 있는 것이 인륜이다"라고 적었다고 한다. 울산의 권 교사는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나는 교사이기에 앞서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고 표현의 자유가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마땅한 말들을 굳이 들어야 하는 우리 사회의 품위를 우울하게 떠올려 보는 밤이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세월호 참사, #교사 품위 유지 위반, #박근혜 대통령, #서남수 교육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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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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