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파로

래퍼 파로 ⓒ 마피아레코드


|오마이스타 ■취재/이언혁 기자| 가요계에서 가수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음악에 대한 열정도 중요하지만, 인복과 운 또한 따라줘야 한다. 의욕만 앞섰다가는 누군가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하고, 노래와 콘셉트 모두 뛰어나지만 빛을 못 볼 수도 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래퍼로 활동하던 파로(Pharoh, 본명 윤석준)는 전자였다. 2번의 사기를 당한 그는 스스로 회사를 차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해 왔다.

지난 2013년, 그는 사정이 어려워져서 회사를 폐업 처리했다. 이후 세 군데의 연예 기획사에서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메이저에서 데뷔하자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파로는 그 중 DJ KOO(디제이 쿠), 와썹 등이 속한 마피아레코드를 선택했다. 음악 스타일도 확 바뀌었다. 바닥을 뚫고 들어갈 것처럼 어두운 힙합을 했던 그는 세상 밖으로 나와 사랑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랩할 때 제일 행복하다는 것, 군대 가서야 알았다"      

 래퍼 파로

ⓒ 마피아레코드


그동안 활동하던 윤대장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파로로 다시 태어난 그는 최근 <오마이스타>와 만나 "모두 바꾸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고집해온 색깔을 버리고 대중적으로 다가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파로는 "늘 (듣기에) 거슬리는 음악을 만들었다"면서 "현실적으로 힘든 것을 치유하기 위해 곡을 썼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무엇이 그렇게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일까.

"중학교 2학년 때 '1주일 동안 학교에 안 나와도 된다'는 것에 끌려 서울시 랩 대회에 나갔다가 예선에서 탈락했다. 이후 세화고등학교에 진학해 힙합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처음 공연하면서 내 심장 소리를 들었다. 분명히 랩을 하고 있는데 귀에는 음악 소리가 안 들리는 경험을 했다. 그 뒤 또래 친구들이 그렇듯이 대학에 갔고, 군대에 가서야 '내가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랩하던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등학교 후배인 래퍼 그레이(Gray)는 마음을 다잡은 파로에게 연습용 CD 100장을 만들어줬다. 군대에서부터 미친 듯이 랩 연습을 했던 파로는 이후 길거리 공연을 하다가 '한중일 힙합밴드'를 만든다는 한 기획사에 둥지를 틀었다. 이 프로젝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산됐지만, 이들을 관리하던 직원은 이들이 하루에 한 곡 이상씩을 만들면 그 곡을 아무 말 없이 팔곤 했다. 다음에 들어간 회사에서는 "데모 CD를 보내달라"고 해놓고 그대로 음원을 발표하기도 했다.

'계약공포증' 있는 파로..."듣기 편한 음악이 가장 힘들어"   

 래퍼 파로

ⓒ 마피아레코드


이런 경험은 파로에게 후유증으로 남았다. 계약공포증을 안겨준 것. 서류에 사인할 때 손이 떨린다는 그는 "이번에는 계약서도 쓰고 꼼꼼하게 확인했다"면서 "지금 이 기회를 잡지 않으면 앞으로가 없을 것 같았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내려고 준비했던 음반은 메이저 데뷔 앨범이 되었다. EP에 담긴 'It's been'에는 울랄라세션 김명훈이 목소리를 더했고, 레드락과 와썹의 나나는 'Domperii'에 참여했다.

"이번엔 모던 힙합을 한다. 듣기 편한 힙합이다. 막상 작업해보니까 듣기 편하게 만드는 게 제일 힘들더라. 보이기만 예쁘게 디자인하는 줄 알았는데 재질도 따지고 박음질도 꼼꼼해야 하더라. 나는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디자인에 색깔만 입혀놓은 것 같은 음악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집을 버리고, 많은 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비오는 날, 직접 만든 CD 200장을 들고 홍대 공연장과 방송국을 누비며 서러움에 울컥했던 그는 이제 음악에만 집중할 계획이다. 음원차트 10위 안에 드는 게 목표라고. 파로는 "그동안 내 안에 뭔가 채워지지 않은 게 있었다면, 이제는 마음을 활짝 열고 대중에게 다가갈 계획"이라면서 "자극적인 게 아니라 듣기 좋은 음악,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음악을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파로 IT'S BEEN 김명훈 울랄라세션 DOMPER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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