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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한숨이 끊이질 않았다. 그럼에도 유경근씨는 말을 이어갔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딸 예은이를 잃었지만 그는 단원고 유가족대책위에서 활동하며 눈물을 참고 있다. 또 깊은 슬픔을 견뎌가며 희망을 말하고 있다. 30일 <오마이뉴스> 특별생방송 '세월호 참사 15일째 - 국민은 말한다'에서 이뤄진 이 인터뷰는 유경근씨가 스스로 희망이 되어가는 기록이자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인터뷰 진행은 오연호 대표기자가 맡았다. [편집자말]
▲ 예은이 아빠 유경근씨 "사과? 박 대통령이 정말 진심이었다면..."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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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사고로 가장 큰 아픔을 겪고 있는 유가족 중 한 분을 모셨다. 고 유예은 학생의 아버지 유경근씨를 스튜디오로 모셨습니다.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한숨)"

- 다시 한 번 시청자 여러분과 함께, 독자여러분과 함께 유예은 학생의 명복을 빕니다. 지금 단원고 유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이기도 하시지요? 마음의 상처도 깊으시고 또 유가족 대표로서 바쁜 일정을 하고 계시는데 스튜디오까지 모시게 되어 죄송합니다. 이번 사건을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그리고 국민들에게 이번 사건의 진상을 사실대로 알리기 위해서, 저희도 몇 번 망설이다가 모시게 되었는데요,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페이스북에 공개한 사진을 보니까 예은이는 참 예쁘던데요,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하아…(고개 숙임)…. 죄송합니다. 음, 하아… 뭐라고 한 마디로 얘기할 수가 없네요. 우리 예은이…. (한숨) 태어날 때도 좀 약하게 태어나서….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좀 작게 태어나서 큰 아이는 집으로 왔지만 예은이는 병원 인큐베이터에 일주일 동안 있었어요. 처음 낳은 아이라 어찌할 줄 모르고 왔다갔다 쫓아다녔던 기억도 나네요.

어렸을 때는 겁도 많고 많이 약했는데, 그래도 당찬 모습이 있었습니다. 자라면서 자기 주관이 뚜렷해지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선 불평불만 없이 스스로 찾아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고요. 처음에는 '어떻게 하나 보자' 했는데, 1년, 2년이 지나니까 내 딸이지만 아빠 엄마한테 감동을 주더라고요. 자기 꿈을 위해 어린 나이에도 열심히 노력하는… 그런 딸이었습니다."

- 수학여행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예은이와 대화한 것은 어떤 것이었나요?
"수학여행 갈 때 제가 태워다 줬습니다. 책가방하고 여행 가방을 갖고 갔는데 차에 박스가 여러 개 있더라고요. 당연히 아이 짐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릴 때 그 박스도 내려 달라고 했어요. 아이들과 분담해서 먹을 과자 사간다고. '여기서 사야 싸게 사지'하며 아이들끼리 조금씩 나눠서 샀다고 했어요. 종이 상자랑 여행 가방 내려주고 책가방 메고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와' 한 뒤 아이들하고 깔깔 거리며 올라가는 모습 보고 헤어진 게 마지막이었죠."

- 수학여행 떠나서는 전화로 어떤 연락을 주고 받았던가요?
"제가 (15일) 저녁 때 문자를 보냈어요. '잘 가고 있니?'라고. 친구들하고 놀고 있으니까 금방 답이 안 오더라고요. 한참 뒤에 '잘 가고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 사고 소식은 어디서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후.... 16일 아침에 사고 소식은 9시 30분 지나서 들었습니다. 그때 집에 있었습니다. 방에 있는데 갑자기 집사람이 (얼굴이) 사색이 돼 뛰어오더라고요. 얘기를 듣고 곧바로 (딸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가 됐습니다. 근데 자꾸 끊어졌어요. 도저히 안 되겠어서 문자 메시지를 보냈죠.

통화할 때 '어떻게 됐냐'고 물었더니 '배가 기울었는데 방송에선 가만히 있고 빨리 구명조끼 입으라고 해서 입고 대기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마침 그 시간에 텔레비전을 보니까 '전원구조'라고 나와서 '별 것 아니구나, 큰 배니까 (빨리) 조치 취했구나.' 생각했죠. 많은 아빠들이 똑같은 얘기합니다. '그때 왜 나오라고 안 했을까.' 모두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예은이에게) '선생님이 같이 계시니 말씀 잘 듣고, 방송 지시 잘 따라서 안전하게 나오라'고 하는 순간 통화가 끊어졌어요. 문자를 보냈더니 답이 왔어요. '지금 해군이 우리 구조하러 왔어요. 곧 구조되어서 나갈게요.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또 한 번 더 '우리 층 구조하고 있어서 순서 기다리고 있어요'란 문자가 왔어요. 그걸 받자마자 답장을 보냈는데 그 문자부터……. (고개 숙임)"

- 예은이가 차가운 몸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진도 팽목항과 체육관에서 초초하게 기다리셨을 텐데, 정부와 해경의 구조과정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어떤 걸 느낀 게 아니고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내 아이는 저기서 지금 살려달라며 친구들과 부둥켜안고 울고 있을 텐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너무나 무력감 느꼈습니다.

해양경찰, 해양수산부 등 담당자들에게 수차례 사정하고, 부탁하고, 읍소했습니다. '제발 지금 들어가서 구해달라'고. 그때마다 '현재 구조작업 진행 중이다, 열심히 하고 있으니 기다려주십시오'란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그 말만 있고 소식이 없어요.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면 (아이들이) 살았든 죽었든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소식 없어요.

'(구조) 하고 있는 거 맞냐, 정말 하고 있느냐' 해도 '맞다'고만 하고. 제가 사고 현장에 16일 오후 2시 도착했는데도 밤 9시, 10시까지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라 '안 되겠다, 정말 구조작업을 하고 있는지 확인을 하러 우리가 나가자, 만일 안 하고 있다면 우리가 들어가서 구하자' 했어요. 그래서 늦은 시각에 배를 요청해서 (침몰지점으로) 나갔습니다."

- 오늘 예은이 삼우제날이었다고….
"네…. 지금 치르고 오는 길입니다."

- 같이 희생된 아이들이 많아서 정작 친구들은 많이 오지 못했겠네요.
"하아…. (자꾸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임, 한숨을 내신 뒤) 이 말씀을 좀 드려야겠는데요. 제가 진도에 내려가고 나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잘 하지도 않았고, 그때 사실 제정신이 아니었는데요. '이 답답한 현실을 알리면, 우리만 울부짖는 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함께 외쳐주면 조금 더 구조작업이 빨라지지 않을까?' 그것 때문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토요일(19일) 저녁 때는 부모들이 남아있던 희망을 어쩔 수 없이 놓았습니다. 배가 다시 뒤집어졌죠. 가라앉기 시작하고, 그러다 못해 거꾸로 침몰했던 배가 옆으로 누워버리고 바다에 가라앉았습니다. '아, 희망이 없겠다...' 그때부터는 우리 예은이랑 친구들, 억울하고 영문도 모르고 가는데 페이스북 등으로 알리면 덜 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장례기간에 저는 예은이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영정도 마찬가지고, 예은이 사진을 여러 장 재생시킬 수 있도록 해놨는데 그걸 도저히 못 보겠더라고요.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고… 아빠가 평소에 너희들을 끝까지 책임진다고 했는데 아무 것도 못해서, 제대로 못해서…. 조문객들 오시면 인사해야 해서 (분향소 안으로) 들어갔지만 (영정 사진이 보이지 않도록) 돌아서 있었고, 조문객 없을 때는 나와 있고 그랬습니다."

- 어제 유가족 대책위원회가 '사고의 진상규명, 정부의 적극적인 구조' 등 크게 4가지 요구사항을 정리하셨습니다. 세 번째가 '제 자식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무능한 저희 유가족에게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정부와 관계기관에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였는데 어떤 심경을 담고 있는 것인가요.
"예은이 장례를 치르는 동안 많은 분들이 제 손을 잡고 같이 울면서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아…  그렇게 인사를 해주셨고요. 후… 한두 분이 말씀하실 때는 그냥 공감해주시고 같이 슬퍼해주신다고 받아들였는데, 페이스북에서나 직접 오신 분들 모두 다 미안하다고 울면서 안아주셨습니다.

그 마음이 감사하고 저도 마찬가지로 미안한데…. 정말 미안해야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미안하단 말 안 하거든요. 정말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해야 할 사람이 정말 많은데, 아직 그 누구도 얘기하는 걸 듣지 못했습니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 그 사람들이 먼저 미안하다고 해야지. 왜 선량하게 자기 맡은 바 위치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던 대다수 국민 여러분들이, 이웃들이 그래야하는가.' 그래서 정부와 관계기관을 두고 말했습니다.

누구 말대로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근데 사고가 난 이후에 충분히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시간과 조건이 됐음에도, 어떤 이유에선지 모든 귀중한 시간들을 다 흘려보냈어요. 또 (구조작업 등을) 재촉하는 학부모들에게는 '내 권한 아니다, 나는 결정 못 한다'며 시간 버렸습니다. 구조작업을 하지도 않으면서 거짓말하고. 이거는 글쎄요, 정말 말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됐을까, 나도 그걸 방조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어서 너무나 답답했고요. 이 아이들의 희생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그 원인과 책임을 따져 물어야만, 아이들이 원 없이 하늘나라에서 즐겁게 뛰어놀 수 있을 것 같아요."

- 어제(29일) 박근혜 대통령에서 국무회의석상에서 사과를 했는데, 유족들은 공식사과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청와대 대변인은 오늘 이 일을 두고 '유감'이라고 했는데요.
"사과를 해야 할 사람과 받을 사람이 있잖아요? 사과를 받을 사람이 못 받아들인다면, 그건 사과가 아닌 거죠. 물론 어제 제가 (대통령 사과는 사과가 아니라는) 강경한 표현을 쓸 정도로 당시 좀 울컥하고 흥분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과는 말로만 끝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을 사과했는지를 명백히 짚어줘야죠. 또 그랬다면 이후에 재발되지 않거나 (문제점들이) 개선되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사과는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 앞에 와서 머리 숙이고 무릎 꿇고 빌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줄기차게 주장해오고, 팽목항과 체육관에서 말해왔던 것은 '행동을 보여달라'였습니다. 근데 모든 분들이 말만 하고, 요구하면 도망가고, (찾으면) 보이지 않고. 그곳에 상주하며 가족들과 의논해야 할 분들인데도요. 가족들이 매일 한 일은, 도대체 이 얘기를 누구한테 해야 할지 몰라서 (정부 관계자들을) 쫓아다닌 것이었어요. 그게 3일 동안 지속됐습니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사과한 게 정말 진심이었다면, 어제 합동분향소에 그렇게 오시면 안됐습니다.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대통령이 온 걸 몰랐습니다. 제가 9시 5분쯤 도착해서, 거의 같은 시간에 그곳에 있었는데도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 대통령이 온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다면 이야기가 돌텐데, 유가족 대표는 물론이고 다른 부모님끼리도 한번도 '대통령이 왔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어요. 저는 분향 사실을 몇 시간 뒤에야 알았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움직일 때는 신변 안전 문제 등이 있어서 동선을 알리지 않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충분히 공감하고요. 그러나 정말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마음을 얻어야 하는 장소인데 그렇게 왔다는 것은…. 또 방문 후에도 그 자리에 유가족 대표들이 있다는 사실을 청와대에서 분명히 알고 있었을 텐데… (청와대 쪽은) 알고 있었어요. 별도의 협조 요청이 왔으니까. 청와대에 계신 어떤 분이 대표랑 이야기 하고 싶다고 했다는 것을 9시 30분쯤 들었습니다. '대통령이 왔다 가는데 못 뵈고 가서 미안하다'고 전하는 등 무언가 성의 있는 조치를 해줬다면 이해할 텐데 그런 게 없었습니다."

- 분향소를 찾은 박 대통령이 '유족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을 위로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거기 (분향할 때) 동행한 할머니는 누군지도 모르고요. 항의한 유가족들은 우연히 마주쳤을 테고, 그 할머니는 저는 유가족이 아니라 일반 조문객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언론에는 '유족으로 보이는' 이라고 나와서 그날 오후에 찾아봤어요. 가족 중에 누군지, 연락 주고받은 사람은 있는지. 근데 아무도 아는 분이 없더라고요. 저는 오늘 '일반 조문객이 확실하다'는 연락을 따로 받았습니다."

- 그럼 유족 대표 쪽이랑은 사전 연락이나 교감도 없었고….
"이렇게 얘기하면 어떤 분들은 '유족 대표가 무슨 감투를 썼냐, 대통령이 와서 보고를 해야 하는 거냐'라고 비꼬실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저희한테) 와서 머리 숙이고 무릎 꿇으라는 얘기가 아니거든요. 최소한의 성의만 보여주면… 우리들은 어쨌든 대통령한테, 정부한테 기대야 하잖아요."

- 어쨌든 청와대에선 사과를 했다고 하고, 유족들은 부족했다고 하는데, 어떤 방식이면 좋겠습니까.
"글쎄요. 저는 그 방법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방법이든 가족들이 (그 모습을) 보고 '대통령께서 정말 가슴 아프게, 진심으로 사과한 것 같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면 뭐든 안 되겠습니까?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제라도, 아직까지 나오지 못한 우리 아이들을 하루 빨리 좀 꺼내올 수 있는 시급하고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해주는 일입니다. 그러한 것들도 또 하나의 방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현장 취재기자도 그렇고, 아까 진도 현장에서 누구한테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그런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

- 어제는 기자들에게 한 학생이 찍은 동영상을 공개하셨습니다. 저희도 그렇고 가족들이 이 영상을 보는 일도 무척 고통스러웠을 텐데… 이것을 모든 국민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결정하기 참 어려웠을 듯합니다.
"(한숨) 사실 유가족들 사이에서도 공개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아이들 모습이 그대로 다 드러날 텐데 가슴이 아파서 어떻게 보냐고요. 한 어머니는 아프신 아이 할머니가 충격을 받을까봐 아직 얘기를 못했다더라고요. 분향소에 사진을 걸어놓긴 했지만 이름을 빼놨기 때문에 (동영상을) 공개하면 큰일 난다고 하셨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분들이 몇 분 있었어요.

그럼에도 얼굴과 이름을 가리는 조건으로 공개했습니다. 그 당시 상황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느냐? 어쩔 수 없이 (배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었느냐? 그건 아니라는 것이죠.

이 동영상은 단원고 2학년 3반 아이들 것입니다. 제 아이도 3반이어서 동영상에 나오는 다인실에 있었어요. 딸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직 안 봤어요.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헛웃음). 아이들 모습이 많이 나오니, 한 번쯤은 찍혔겠죠.

근데 동영상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이들이 너무나 천진난만하잖아요. 위협을 느끼지만 '당연히 구조해 줄거야, 우리 살아서 만나자'라고 해요. 심지어 어떤 아이는 배가 기울어진 걸 보고 '우리 (수학 시간에) 기울기 배웠잖아,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하지?' 이런 얘기도 하고. 한 아이는 선생님 걱정을 하고 있고요. 이렇게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아이들이었어요. 당시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인지시켜주지도 못했고, 영문을 모른 채 죽음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장면들이었거든요. 너무나 통탄할 노릇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같이 보면서 이 사고가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를 공유하기 위해 공개를 한 겁니다."

- 그리고 어제 사조직이나 시민단체에서 진행 중인 성금 모금은 우리 의사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일반 국민들은 뭐라도 동참하고 싶어 할 텐데, '이건 우리 의사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말씀하셨는데요.
"사실은 저희가 하지 마시라고 명령할 권한도 없고, 국민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하시는 걸 싫다고 할 이유도 없습니다. 감사한 뜻을 잘 받아서 의미 있는 데에 사용하면 되겠죠.

그런데 유가족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으셨어요. 좀 안 좋은 이야기도 듣고…. 길거리에서 모금 활동하는 이들한테 직접 '어떻게 진행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정확히 답을 안 해주고 꽁무니를 뺐다더라고요. 성금 모금을 하면, 결국 가족들에게 돈이 돌아가는 것이니 그 부분을 비꼬고 비아냥거리는 듯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그래서 더 상처를 받았습니다.

아직까지 유가족들 중에 보상이니 돈이니 얘기 꺼낸 분이 아직까지 한 명도 없어요. 그러다보니 강한 표현을 썼습니다. 유가족들은 '어떤 방식이든 간에 모아진 성금을 전달받으면 우리가 나눠갖지 않는다'에 이견이 없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희생됐으니 우리 아이들을 대신해서라도 다른 학생들이 잘 자라도록 쓰였으면 좋겠다는 쪽으로 뜻이 모아졌어요. 그걸 강력하게 전달하려다보니 표현이 미숙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 왜 이런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는가를 두고 많은 분들이 진단을 내놓고 있습니다. 경황 없으셨겠지만, 우리 사회가 선진국 문턱에 왔다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요. 
"아이고 제가 그걸 알면 대통령을 하겠죠. 답답합니다. 한때는 나라의 기틀이나 체계가 잘 잡혀나가는 것 같았는데…아, 이번 일 겪으면서는 '이게 참 문제 많구나' 생각했어요.

특히 팽목항에서 만난 공무원들, 개인적으로는 참 좋은 분들이었지만 정작 필요한 일들을 진행하려 할 때는 답답한 면들이 많았어요. '왜 이렇게까지 됐지? 공무원사회가 이런 건가?'라는 비약적인 생각도 했고요. 이걸 정말 좀 바꿔나가면 좋겠는데, 아직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고요. 그런 것을 많이 느끼다보니, 지금도 여전히 답답하죠."

- 유가족 대책위가 앞으로 어떤 활동을 벌일지 방향은 정해졌습니까.
"내일 팽목항에 많은 가족들이 내려갑니다. 아직도 그곳에는 아이들을 찾지 못해서… 후우… 거기에 계신 가족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그분들한테 사실 전화도 못 드립니다. 미안해서. (제 자식이) 죽었지만, 어쨌든 온전한 상태에서 시신이라도 찾았다는 점이 그분들한테는 너무나 미안하고 죄송해서 연락도 못 드리는 상황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지금 (팽목항 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또 제대로 (현장을) 지휘·통솔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으니 그분들에게 힘을 실어드리려고요. 저희는 적어도 구조작업이 완료될 때까지는 팽목항에 남은 가족들과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싶습니다. 거기에 모든 가족들이 함께 하고 있고, (우리에겐 실종자 수색작업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분들에게 힘을 실어드리고, 같이 공감하고 싶어요. 또 그게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런 질문 드리기 죄송스럽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 사건을 겪으면서 희망의 단초라도 발견해야 하지 않냐'고 할 때, '어디에서도 발견 못했다'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이 아픔의 터널을 지나고 계시지만, 그래도 희망의 단서는 있는 것 같으신지.
"같이 계시는 부모님들 중 상당수가 진지하게 '난 이민 가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희망이 없다는 얘기죠. 저도 같은 심정입니다. 정말 여기 있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모든 분들이 그렇게 할 수는 없겠죠. 어쨌든 이 땅에서 살아가야하는 분들 더 많을 테니까….

희망이 없어 보이는 건 맞지만, 결국 어디서 그 희망을 찾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 희망이 될 수 있느냐?' 이렇게 생각해야하지 않을까요. 내 아들딸들이, 후손들이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데 어디에도 희망이 없다… 저도 똑같이 생각하지만 그래도 굳게 마음을 먹고, 그래도 내가 희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만일 이것까지 꺾어져버린다면 저도 떠나는 길을 선택할지도 모르죠. 그래도 그 결정을 하기 전까지는 제가 할 수 있는 몫은 최대한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 아이 찾으러 가서 첫날 새벽에 한 번 펑펑 울었어요. 그리고 우리 아이를 지난 수요일에 만났을 때… 한 1시간 정도 펑펑 울었습니다. 그 뒤로도 눈물은 나는데, 울지 않아요. 참 힘듭니다. 혼자 있으면 울고 싶고요. 주변에선 그냥 울어버려라, 못 견딜 것이라고도 해요.

저는 모든 과정이 바른 모습으로 되돌려질 때까지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장례식 때도 울어본 적 없고, (딸을) 발인하고 안치할 때에도 눈물은 났지만 억지로 참았고요. 국민 여러분께서도 그만 눈물 흘리시고, 함께 희망을 만들어나가는 것에 동참해주시고,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크든 작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위치에서 해주셨으면 하는 게 제 개인적 바람이고, 동시에 모든 유가족들의 바람입니다."

- 소중한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저희가 특별방송을 한 것도 온 국민이 상주가 된 상황에서 뭔가 힘을 합쳐야 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래도 초대에 응해주시고, 희망을 일궈야 한다고 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저희 유가족들은 많은 국민 여러분이나 네티즌 여러분들이 예상하시는 것보다 더 많이 힘이 듭니다. 참 힘이 많이 듭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고, 또 우리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더 나아가 또 다른 우리 자녀들이 똑같은 일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정신 차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많이들 응원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저희가 한풀이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정말 꽃도 못 피우고 스러져간 우리 아이들이 저 세상에서 가장 바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들의 뜻을 부모들이 이제라도 이루어줘야 하지 않겠나'하는 생각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굳건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응원해주시고 도와주시면 더 힘을 내서 좋은 나라, 안전한 나라, 행복한 나라 만들어가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 세월호 희생자 고 유예은양 부친 유경근씨 심경토로 이 동영상은 30일 유경근씨의 스튜디오 인터뷰 전체다.
ⓒ 오마이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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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경근씨 인터뷰①]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저기 아이가 있는데..."
☞ [유경근씨 인터뷰②] "대통령 사과 원하는 이유? 우리가 기대야 하잖아요"
☞ [유경근씨 인터뷰③] "세월호 사고로 희망 잃었지만, 제가 희망 될 것"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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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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