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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한숨이 끊이질 않았다. 그럼에도 유경근씨는 말을 이어갔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딸 예은이를 잃었지만, 그는 단원고 유가족대책위에서 활동하며 눈물을 참고 있다. 또 깊은 슬픔을 견뎌가며 희망을 말하고 있다. 30일 <오마이뉴스> 특별생방송 '세월호 참사 15일째 - 국민은 말한다'에서 이뤄진 이 인터뷰는 유경근씨가 스스로 희망이 되어가는 기록이자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인터뷰 진행은 오연호 대표기자가 맡았다. [편집자말]
30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진행된 '세월호 참사 15일째 국민은 말한다' 오마이TV 특별생방송에 단원고 2학년 고 유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씨가 출연하고 있다.
▲ 오마이TV 특별생방송 '세월호 참사 15일째, 국민은 말한다' 30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진행된 '세월호 참사 15일째 국민은 말한다' 오마이TV 특별생방송에 단원고 2학년 고 유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씨가 출연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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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약했지만 당차고 예쁜 아이였다. 부모에게 감동을 주는 딸이었다. 그런 예은이가 세월호와 함께 사라졌다. 30일 아버지 유경근(46)씨는 차분함을 유지하면서도 딸을 떠올리는 순간 순간 힘들어했다. 한숨이 깊어지고, 입술을 깨무는 일이 잦았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에 재학 중인 예은이는 지난 15일 친구들과 깔깔 대며 세월호에 올랐다. 하루 뒤인 16일, 딸은 침몰하는 배 위에서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구조순서를 기다리고 있어요'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유씨는 '전원 구조'란 방송까지 본 터라 '별 것 아니구나' 싶었다. 그러나 예은이는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지난 23일 차갑게 식어서 돌아왔다. 30일은 아이의 삼우제 날이었다.

"(사고 당일 오전 예은이에게) '선생님이 같이 계시니 말씀 잘 듣고, 방송 지시 잘 따라서 안전하게 나오라'고 하는 순간 통화가 끊어졌어요. 문자를 보냈더니 답이 왔어요. '지금 해군이 우리 구조하러 왔어요. 곧 구조되어서 나갈게요.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또 한 번 더 '우리 층 구조하고 있어서 순서 기다리고 있어요'란 문자가 왔어요. 그걸 받자마자 답장을 보냈는데 그 문자부터……. (고개 숙임)"

아이를 기다리며 찾은 팽목항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정부 관계자들에게 사정해봐도 돌아오는 것은 '구조 중'이란 대답이었을 뿐,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무력감은 끝이 없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아빠는 차마 딸의 영정 사진조차 쳐다볼 수 없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지금 해군이 우리 구조하러 왔어요"... 딸아이의 문자

유예은양은 저렇게 환한 미소를 남기고 지상의 가족의 품을 떠나 천상의 가족에게 안겼다.
 유예은양은 저렇게 환한 미소를 남기고 지상의 가족의 품을 떠나 천상의 가족에게 안겼다.
ⓒ 유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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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보니까 예은이는 참 예쁘던데요,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하아…(고개 숙임)…. 죄송합니다. 음, 하아… 뭐라고 한 마디로 얘기할 수가 없네요. 우리 예은이…. (한숨) 태어날 때도 좀 약하게 태어나서….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좀 작게 태어나서 큰 아이는 집으로 왔지만 예은이는 병원 인큐베이터에 일주일 동안 있었어요. 처음 낳은 아이라 어찌할 줄 모르고 왔다갔다 쫓아다녔던 기억도 나네요.

어렸을 때는 겁도 많고 많이 약했는데, 그래도 당찬 모습이 있었습니다. 자라면서 자기 주관이 뚜렷해지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선 불평불만 없이 스스로 찾아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고요. 처음에는 '어떻게 하나 보자' 했는데, 1년, 2년이 지나니까 내 딸이지만 아빠 엄마한테 감동을 주더라고요. 자기 꿈을 위해 어린 나이에도 열심히 노력하는… 그런 딸이었습니다."

- 수학여행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예은이와 무슨 대화를 하셨는지.
"수학여행 갈 때 제가 태워다 줬습니다. 책가방하고 여행 가방을 갖고 갔는데 차에 박스가 여러 개 있더라고요. 당연히 아이 짐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릴 때 그 박스도 내려 달라고 했어요. 아이들과 분담해서 먹을 과자 사간다고. '여기서 사야 싸게 사지'하며 아이들끼리 조금씩 나눠서 샀다고 했어요. 종이 상자랑 여행 가방 내려주고 책가방 메고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와' 한 뒤 아이들하고 깔깔 거리며 올라가는 모습 보고 헤어진 게 마지막이었죠."

- 수학여행 출발 후에도 연락은 주고받으셨지요.
"제가 (15일) 저녁 때 문자를 보냈어요. '잘 가고 있니?'라고. 친구들하고 놀고 있으니까 금방 답이 안 오더라고요. 한참 뒤에 '잘 가고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 사고 소식은 어디서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후.... 16일 아침에 사고 소식은 9시 30분 지나서 들었습니다. 그때 집에 있었습니다. 방에 있는데 갑자기 집사람이 (얼굴이) 사색이 돼 뛰어오더라고요. 얘기를 듣고 곧바로 (딸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가 됐습니다. 근데 자꾸 끊어졌어요. 도저히 안 되겠어서 문자 메시지를 보냈죠.

통화할 때 '어떻게 됐냐'고 물었더니 '배가 기울었는데 방송에선 가만히 있고 빨리 구명조끼 입으라고 해서 입고 대기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마침 그 시간에 텔레비전을 보니까 '전원구조'라고 나와서 '별 것 아니구나, 큰 배니까 (빨리) 조치 취했구나.' 생각했죠. 많은 아빠들이 똑같은 얘기합니다. '그때 왜 나오라고 안 했을까.' 모두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예은이에게) '선생님이 같이 계시니 말씀 잘 듣고, 방송 지시 잘 따라서 안전하게 나오라'고 하는 순간 통화가 끊어졌어요. 문자를 보냈더니 답이 왔어요. '지금 해군이 우리 구조하러 왔어요. 곧 구조되어서 나갈게요.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또 한 번 더 '우리 층 구조하고 있어서 순서 기다리고 있어요'란 문자가 왔어요. 그걸 받자마자 답장을 보냈는데 그 문자부터……. (고개 숙임)"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도대체... 너무나 무력감"

'세월호 침몰사고' 6일째인 21일 오전 실종자 생존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 가운데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바다를 바라모며 슬픔에 잠겨 있다.
▲ '세월호 침몰' 6일째 애타는 가족들 '세월호 침몰사고' 6일째인 21일 오전 실종자 생존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 가운데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바다를 바라모며 슬픔에 잠겨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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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은이가 차가운 몸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진도 팽목항과 체육관에서 초초하게 기다리셨을 텐데, 정부와 해경의 구조과정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어떤 걸 느낀 게 아니고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내 아이는 저기서 지금 살려달라며 친구들과 부둥켜안고 울고 있을 텐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너무나 무력감 느꼈습니다.

해양경찰, 해양수산부 등 담당자들에게 수차례 사정하고, 부탁하고, 읍소했습니다. '제발 지금 들어가서 구해달라'고. 그때마다 '현재 구조작업 진행 중이다, 열심히 하고 있으니 기다려주십시오'란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그 말만 있고 소식이 없어요.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면 (아이들이) 살았든 죽었든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소식 없어요.

'(구조) 하고 있는 거 맞냐, 정말 하고 있느냐' 해도 '맞다'고만 하고. 제가 사고 현장에 16일 오후 2시 도착했는데도 밤 9시, 10시까지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라 '안 되겠다, 정말 구조작업을 하고 있는지 확인을 하러 우리가 나가자, 만일 안 하고 있다면 우리가 들어가서 구하자' 했어요. 그래서 늦은 시각에 배를 요청해서 (침몰지점으로) 나갔습니다."

- 오늘 예은이 삼우제날이었다고….
"네…. 지금 치르고 오는 길입니다."

- 같이 희생된 아이들이 많아서 정작 친구들은 많이 오지 못했겠네요.
"하아…."

그는 여러번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말씀을 좀 드려야겠는데요. 제가 진도에 내려가고 나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잘 하지도 않았고, 그때 사실 제정신이 아니었는데요. '이 답답한 현실을 알리면, 우리만 울부짖는 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함께 외쳐주면 조금 더 구조작업이 빨라지지 않을까?' 그것 때문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토요일(19일) 저녁 때는 부모들이 남아있던 희망을 어쩔 수 없이 놓았습니다. 배가 다시 뒤집어졌죠. 가라앉기 시작하고, 그러다 못해 거꾸로 침몰했던 배가 옆으로 누워버리고 바다에 가라앉았습니다. '아, 희망이 없겠다...' 그때부터는 우리 예은이랑 친구들, 억울하고 영문도 모르고 가는데 페이스북 등으로 알리면 덜 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장례기간에 저는 예은이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영정도 마찬가지고, 예은이 사진을 여러 장 재생시킬 수 있도록 해놨는데 그걸 도저히 못 보겠더라고요.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고… 아빠가 평소에 너희들을 끝까지 책임진다고 했는데 아무 것도 못해서, 제대로 못해서…. 조문객들 오시면 인사해야 해서 (분향소 안으로) 들어갔지만 (영정 사진이 보이지 않도록) 돌아서 있었고, 조문객 없을 때는 나와 있고 그랬습니다."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아이들이 너무나 천진난만하잖아요"

30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진행된 '세월호 참사 15일째 국민은 말한다' 오마이TV 특별생방송에 단원고 2학년 고 유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오른쪽에서 두번째)씨가 출연하고 있다.
▲ 오마이TV 특별생방송 '세월호 참사 15일째, 국민은 말한다' 30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진행된 '세월호 참사 15일째 국민은 말한다' 오마이TV 특별생방송에 단원고 2학년 고 유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오른쪽에서 두번째)씨가 출연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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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단원고 학생이 찍은 사고 동영상을 공개하셨습니다. 가족들이 이 영상을 보는 일도 무척 고통스러웠을 텐데….
"후... 사실 유가족들 사이에서도 공개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아이들 모습이 그대로 다 드러날 텐데 가슴이 아파서 어떻게 보냐고요. 한 어머니는 아프신 아이 할머니가 충격을 받을까봐 아직 얘기를 못했다더라고요. 분향소에 사진을 걸어놓긴 했지만 이름을 빼놨기 때문에 (동영상을) 공개하면 큰일 난다고 하셨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분들이 몇 분 있었어요.

그럼에도 얼굴과 이름을 가리는 조건으로 공개했습니다. 그 당시 상황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느냐? 어쩔 수 없이 (배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었느냐? 그건 아니라는 거죠.

이 동영상은 단원고 2학년 3반 아이들 것입니다. 제 아이도 3반이어서 동영상에 나오는 다인실에 있었어요. 딸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직 안 봤어요.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헛웃음). 아이들 모습이 많이 나오니, 한 번쯤은 찍혔겠죠.

근데 동영상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이들이 너무나 천진난만하잖아요. 위협을 느끼지만 '당연히 구조해 줄거야, 우리 살아서 만나자'라고 해요. 심지어 어떤 아이는 배가 기울어진 걸 보고 '우리 (수학 시간에) 기울기 배웠잖아,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하지?' 이런 얘기도 하고. 한 아이는 선생님 걱정을 하고 있고요. 이렇게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아이들이었어요. 당시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인지시켜주지도 못했고, 영문을 모른 채 죽음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장면들이었거든요.

너무나 통탄할 노릇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같이 보면서 이 사고가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를 공유하기 위해 공개를 한 겁니다(관련 동영상 : 단원고 아이들이 남긴 마지막 15분)."

☞ [유경근씨 인터뷰②] "대통령 사과 원하는 이유? 우리가 기대야 하잖아요"
☞ [유경근씨 인터뷰③] "세월호 사고로 희망 잃었지만, 제가 희망 될 것"
☞ 유경근씨 인터뷰 동영상과 전문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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