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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국민행동'과 '참여연대' 회원들이 4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장 앞에서 김한길 공동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를 향해 국민연금과 연계된 정부의 기초연금안 수용반대를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반서민 기초연금 법안 절대 반대" '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국민행동'과 '참여연대' 회원들이 4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장 앞에서 김한길 공동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를 향해 국민연금과 연계된 정부의 기초연금안 수용반대를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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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 지도부가 박근혜 정부가 제안한 기초연금안을 수용하려 하고 있다. 이는 지난 몇 년간 민주진보세력이 추구해 온 복지국가 노선을 실질적으로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이 결정으로 인해 이제 한국사회는 유럽식 복지국가라는 꿈을 완전히 접고 자유주의적 복지체제에 투항해야 할지도 모른다.

도대체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본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이번 결정이 가져올 역사적 파장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유럽식 복지국가의 핵심은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노후연금과 건강보장을 공공의 책임으로 제공하는 것이며 민간보험의 역할은 극히 미미하다. 2009년에 OECD 선진국들은 공적연금으로 GDP의 10%를, 공공의료비로 GDP의 6.6%를 지출했는데 이는 전체 공공복지비 지출의 40%와 29%를 차지하는 높은 비중이다. 즉, 연금과 의료에서 공공부문이 제공하는 복지 수준이 매우 높아 민간보험의 역할이 미미한 것이 유럽 복지국가의 특징이다.

박근혜 정부안 기초연금 20만 원이 위험한 이유

박근혜 정부안이 시행되면 당장은 기초연금이 20만 원으로 올라 노후보장에서 공적연금의 역할이 커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반대이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액이 삭감되서 현재 가치로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받는 사람이 점차 줄고, 기초연금액이 물가에 연동되어 급여율도 10%에서 점차 하락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하면 기초연금이 삭감되기 때문에 장기가입을 꺼리게 되고 이는 낮은 국민연금액으로 이어진다. 결국 '박근혜 안'은 세금이 들어가는 기초연금은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국민연금의 노후보장은 약화되는 효과를 가져 온다. 노후소득보장에서 공공부문의 역할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박근혜 안'의 본질적 측면이고 이는 보수가 열심히 추구하는 연금개혁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국민연금이 처음 도입될 때는 소득대체율이 70% 수준으로 매우 높아 국민연금 하나만으로도 품위있는 노후가 가능했다. 그러나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제1차 연금 '개악'으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60%로 낮아졌다. 그리고 국민연금과 연계되어 있던 퇴직금을 분리시켰고, 이것이 나중에 기업연금(퇴직연금)으로 전환되어 시장의 역할이 강화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현재 보험회사와 은행에 적립되어 있는 근로자들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83조 원인데 이중 삼성생명 등 삼성계열회사가 약 20%에 달하는 16조2000억 원을 갖고 있다. 즉 노후소득에서 공공부문의 역할이 축소된 것이 김대중 정부의 제1차 연금개혁의 결과이다.

진보정부를 자처했던 노무현 정부의 제2차 연금 '개악'은 국민연금을 더욱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급격히 낮추는 안을 참여정부가 강행한 것이다. 이로 인해 국민연금은 최저생계비 수준도 안되는 '용돈연금'으로 전락했고, 공적연금을 통해 품위있는 노후를 보낸다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역설적이게도 그 당시 기초노령연금 도입을 주장한 것은 보수인 지금의 새누리당이었다. 노후보장에서 공공의 역할을 무력화시키려는 보수의 임무를 진보를 자처한 정권이 총대를 메고 한 것이다.

그 결과는 뻔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후불안을 걱정하며 개인연금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즉 노후책임을 공공부문에서 시장 쪽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아마도 한국 진보세력 최대의 역사적 실책 중 하나가 바로 노무현 정부의 국민연금 '개악'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처럼 구 민주당, 친노 등 새정치연합의 주축세력들은 적어도 연금문제에 관한 복지국가 노선과는 정반대로 공공의 역할을 축소하고 개인과 시장의 역할을 강화하는 퇴행적 결정을 한 것이다. 진보의 뼈아픈 역사적 과오이며 자기반성이 필요한 결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새정치연합이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안을 수용하면 이는 진보세력이 국민의 등에 비수를 꽂는 제3차 연금 '개악'이 될 것이다. 노후소득보장에서 앙상하게 남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비중을 더욱더 약화시키는 것이 박근혜의 연금안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유럽식 복지국가는 공공부문에 의한 복지공급 비중이 크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사회체제이다. 가장 비중이 큰 연금에서 공공부분의 비중이 극히 작은 나라는 유럽식 복지국가가 될 수가 없다. 새정치연합이 박근혜 정부안을 수용하면 복지국가 노선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필자의 주장은 바로 이점에 근거한 것이다. 이미 재벌 보험회사와 은행이 차지한 민간연금보험 시장을 다시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유럽식 복지국가의 꿈이 사라지는 것이다.

새정치연합, 역사의 죄인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반서민 기초연금법안 입법 저지 기자회견'이 4월 3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정의당, 국민연금바로세우기국민행동 주최로 열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반서민 기초연금법안 입법 저지 기자회견'이 4월 3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정의당, 국민연금바로세우기국민행동 주최로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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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연합이 민주화, 인권, 복지국가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되려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이루어진 연금 '개악'을 정치적으로 사과하고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역할을 더 강화하는 정책대안을 관철시켜야 한다. 그런데 복지국가 노선과는 정반대의 철학이 담긴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안을 수용한다고 하니, 도대체 이 정치집단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새정치연합의 주요 정치세력들은 역사적으로 보면 '친복지세력'이었다.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만들었고, 의료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고 의료보험을 통합했으며 아동보육을 획기적으로 확대했다. 그리고 무상급식 등 무상복지의 새 장을 열기도 했다.

역사적으로도 구 민주당이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당이라는 칭호를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 스스로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는 점을 당 강령에 포함시키기도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연금에서 공공의 책임을 더 약화시키는 정치적 결정을 하면 이 모든 역사적 성과가 사실상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한국이 복지국가로 전진해 가는 길에 만리장성같은 큰 장벽을 놓는 역사의 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새정치연합 지도부에게 연금문제에 관한 인식의 대전환을 촉구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입니다.



태그:#기초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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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입니다. 관심 분야는 복지국가, 공적연금, 동아시아복지 등입니다. 시민단체에서 오랜 동안 복지운동을 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국민연금바로세우기 국민행동'(약칭 연금행동) 정책위원장을 맡아 국민연금개혁운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 특히 연금에 대한 오해가 많아 시간되는데로 제 생각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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