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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대한민국이 이것밖에 안 돼? 국민 300명이 저기 있다는데!"

자신의 아이를 가둔 채 거꾸로 가라앉는 배를 바라보며, 어머니는 절망스럽게 외쳤다.

그렇다. 그곳에 갇힌 건 '국민'이었다. 세금을 내고, 노동력을 공급하고, 정치인들에게 표를 주고, 무엇보다 나라를 나라로 만들어주는 사람 말이다. 정치인 없이도 나라는 존재할 수 있지만, 국민 없는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

선거가 다가오면 정치인들은 '국민은 위대하다'고 칭송해마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세월호를 탔다면 글을 쓰는 나도, 읽는 당신도 피해자들과 똑같은 운명을 겪었을 것이다. 살아남았다고 안도할 수도 없는 까닭은, 한국사회에선 생사를 가르는 위험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정부는 희망이 되어주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평범한 국민이라면 말이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 우리가 지켜보아 온 바다. 여기서 '평범한' 국민이란 '힘없는 국민'을 말한다. 정계나 재계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과 핏줄로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 말이다.

딸의 생사를 모르는 아버지는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통곡했다. 배가 침몰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정부가 딸을 구하기는커녕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자 그는 이렇게 절규했다.

"내가 참 못난 부모구나, 자식을 죽인 부모구나. 이 나라에서는 나정도 부모여서는 안 돼요.대한민국에서 내 자식 지키려면 최소한 해양수산부 장관이나 국회의원 정도는 돼야 해요. 이 사회는 나 같은 사람은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는 사회예요."- <노컷뉴스> 4월 23일자 기사 <"학부모의 절규 '떠날 거예요…나 대한민국 국민 아닙니다'"> 중

'복지부동'과 '안전불감증'이 문제라고?

지난 달 16일 오후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인천발 제주도행 여객선 '세월호' 주위에서 수색 및 구조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 침몰한 '세월호' 지난 달 16일 오후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인천발 제주도행 여객선 '세월호' 주위에서 수색 및 구조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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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후 대통령은 '복지부동'을 질타했고, 언론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비판했다. 너무나 상식적이고 타당하게 들리는 평가이자, 국가적 재난 후 어김없이 되풀이되어 온 말이기도 하다. 타당한 분석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 공무원들은 '복지부동'은커녕,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알아서 하는 사람들이다.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라면 말이다. 사고현장을 찾았던 대통령이 떠나고 나서 구조작업이 진척이 되지 않자, 실종자 가족들은 대통령을 만나겠다며 길을 나섰다. 경찰은 혼비백산해서 이들의 행진을 막았다. 청와대와 천 리 넘게 떨어진 곳에서 말이다. 

한국사회는 결코 '안전불감증'의 사회가 아니다. 힘 있는 사람들은 신체의 안전은 물론, '심기'의 안전까지도 완벽히 보장된다. 예컨대 지난달 28일, 구조 상황을 지켜 본 윤부한 목포시 특전예비군 중대 중대장은 믿기 어려운 말을 했다. 사고 첫날인 16일,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서 장관이 민간구조단의 출항을 지체시켰다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은 윤 중대장이 지목한 사람이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강병규 장관이 구조 현장을 방문했고, "격려를 한다고 급박한 시간에 장관이 배를 멈춰 세우고 악수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연됐다"는 것이다. 수백 명의 목숨이 사라져 가는 순간에도, 장관이 나타나 손을 내밀면 달려 나가던 구조대도 멈추고 경의를 표해야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뿐 아니다. <JTBC>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구조업체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는 다른 민간잠수부가 발견한 시신을 자기들에게 '양보'하라고 요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요구로 인해 생존자를 구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다.

그 당시 '조류가 빨라 구조가 어려웠다'던 정부측 발표나 언론 보도와 달리, 한 민간잠수사에 따르면 "작업은 언제든지 가능하고 일단 유리창을 파괴하고 들어가면 그때부턴 얼마든지 살아있는 학생들을 찾기만 하면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언딘측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이런 일을 다른 업체에 뺏기게 되면 내가 회사 사장으로부터 굉장히 실망을 얻는다, 당신도 회사생활을 해봤는지 몰라도 이런 경우 내가 뺏기게 되면 얼마나 큰 손실이 있겠느냐."

위계적 권력과 탐욕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한국정부의 사악한 전통

무소불위의 권력과 탐욕. 한국사회가 이처럼 처참하게 망가진 이유일 것이다. 이 둘 앞에서 국민의 목숨은 그저 하찮게 보일 뿐이다.

세월호 사건은 '복지부동'이나 '안전불감증'보다는, 권력이 국민을 천대하고 국민의 목숨을 무시하는 탓에 발생한 일이다. 그런 탓에 쉽게 바뀌거나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불행히도, 국민 목숨을 함부로 다루는 이 사악한 전통은 초대 정부부터 21세기 현 정부에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승만 정부는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다'며 국민 수천 명을 살해했고(보도연맹사건), 박정희 정부는 유신에 반대하는 국민을 간첩으로 몰아 18시간 만에 사형했으며(인혁당사건), 전두환 정부는 자신의 집권 반대 운동을 막기 위해 수천 명을 학살했다(광주민주화운동). 정권은 모두 '안보'를 내세웠으나, 정작 지키려 했던 것은 국민의 안위가 아니라 권력의 안위였다.

권력만 지킬 수 있다면 국민 목숨쯤은 간단히 저버릴 수 있다고 여겨 온 것이 한국 정부였다. 그리고 이 야만적 행위에 정부부처, 국정원(안기부), 검찰, 법원, 경찰, 군대, 언론, 관변단체 등이 수족이 되어 거들었다. 한국의 통치세력, 공무원, 친정부 언론에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생명경시 유전자'가 남아있는 셈이다.

민주화 운동 이후 정부가 저지른 학살과 사법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정부의 '체질'이 바뀌는 듯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어두운 과거의 복권'이 시작되었다. 대선여론조작 사건에서 보듯, 정부와 국정원, 군대, 경찰, 법원의 음습한 거래가 다시 시작되었고, 언론은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선전매체로 전락했으며, 정부는 교과서까지 손보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의 탄생은 '과거 복원 작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음을 의미한다. 과거 권위주의적 국가로 회귀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이후 공무원들의 '눈치 보기'를 비판했지만, 공무원들의 눈치 보기가 가장 심해진 것이 현 정부 출범 이후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때 대통령과 '맞짱토론'까지 하던 검찰이 정부 지시를 묵묵히 따르는 '순한 양'이 된 게 언제부터인가. 

한국정부의 비인간적 유전자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8일째인 지난 달 2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사고해역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 기다림에 지친 실종자 가족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8일째인 지난 달 2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사고해역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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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탐욕에 집착하는 정부의 '비인간적 유전자'가 어떻게 국민의 목숨을 위협하는지 살펴보자. 인명을 경시하는 권력은 국민 목숨을 기껏 '비용'의 차원으로 다룬다. 이명박 정부에서 해운업체 부담을 줄여주겠다며, 선령 제한을 30년으로 연장해 낡은 배를 대폭 늘려놓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박근혜 정부도 만만치 않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현 정부 출범한 이후 '기업 부담 완화'를 이유로 이미 완료했거나 진행중인 안전규제 완화는 선박·해운 관련해서만도 20건을 넘어선다. 박근혜 대통령은 "불필요한 규제는 원수이자 암덩어리"라고 주장하며, 철도교통, 공산품 위험 관리, 위험시설물 관리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안전규제를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불과 한 달 전, 정부는 제품안전기본법을 개정해 위해제품에 대한 '자발적 수거(리콜)' 규제를 대폭 완화한 바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정부가 소비자에게 피해가 우려되는 제품에 대한 업체의 자발적 수거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에 따르면, 자발적 수거 기준이 '중대한 결함'에서 '결함으로 인한 중대한 사고'로 바뀐다. 다시 말해, 사업자가 제품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소비자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수거할 의무가 없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정부는 수명이 다 한 고리 1호기 원자력 발전소를 계속 연장 운영하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다. 그 이유 또한 '비용'때문이다. 이미 수많은 고장과 오작동, 사고은폐, 비리로 누더기가 된 불안한 핵발전소를 말이다. 정부는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사고가 날 가능성은 통계적으로 희박하다는 것이다. 여객선은 통계적으로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다. 세월호 같은 참사가 날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는가.

정부는 눈에 뻔히 보이는 배 속에서조차 국민 한 명을 제대로 구하지 못했다. 이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피해도 전국에 이르는 방사능 피해로부터 국민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으란 말인가. 대체 무엇을 보고 믿으란 말인가.

'국가개조'? 권력의 악습부터 뜯어고쳐라

세월호 침몰사고 8일째인 지난 달 23일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학생들이 찾아와 조문을 하고 있다.
▲ '누나 울지마' 세월호 침몰사고 8일째인 지난 달 23일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학생들이 찾아와 조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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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인적자원'이자 '표밭'이기 이전에 소중한 생명체다. 목숨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상을 인식할 주체도 없기에,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하나의 세상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 한국의 권위주의적 권력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 바로 생명체로서의 국민이고, 인격체로서의 국민이다.

세월호 사고가 터진 후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안전처(가칭)'를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국민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정부의 고질적 병폐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국가안전처를 청와대 안방에 들여놔도 국민들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우선 대통령 자신부터 권위주의적 '보스형' 리더십을 청산해야 한다. 스스로 독단적으로 행동하면서 공무원들이 국민을 존중하기를 기대하는가.

박 대통령은 '국가개조'를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권력이 국민과 나라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또 다른 폭력적 발상일 뿐이다. '개조'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국민 목숨을 함부로 여기는 권력자의 사고구조와 이를 두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기관, 그리고 무비판적 언론의 구멍 난 양심뿐이다.


태그:#세월호, #안전, #규제완화,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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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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