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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기황후>가 지난 29일 51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기황후>는 방영 전부터 역사왜곡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드라마다. 고려의 독립을 방해하고 토벌군까지 보낸 기황후를 미화하고 폭군 충혜왕을 개혁 군주로 묘사한 등의 이유에서다. 논란이 일자 제작진은 충혜왕을 가상의 인물인 왕유로 바꾸고, 드라마 시작 전에 드라마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뜻하는 자막을 삽입하는 등의 절충안을 냈다. 그럼에도 기황후 인물에 대한 왜곡이 여전한 탓에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방영 전부터 구설에 오른 <기황후>의 전망은 불투명해 보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1화 때 11.1%의 시청률을 기록한 <기황후>는 가파른 시청률 상승세를 보여 평균 20% 시청률을 유지한다. 50화의 시청률은 26.2%였다. 시청자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오른 것이다.

<기황후> 흥행 서사 집대성으로 역사왜곡 논란 딛다

역사왜곡 논란은 분명 <기황후>에 악재였다. 역사 문제에 민감한 국민정서를 고려할 때 그렇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후쇼사 교과서 논란, 그리고 지난 교학사 교과서 사태 때의 여론이 이를 증명한다. 누리꾼들은 이완용의 드라마화와 무엇이 다르냐며 비판했다. 방영 금지를 위한 서명운동이 이뤄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드라마가 성공을 한 까닭은 역사왜곡 논란을 덮을 만한 강점이 있음을 시사한다. 바로 각본의 힘, 달리 말해 서사적 매력이다. <기황후>는 흥행 코드를 집대성한 서사구조를 통해 문제작에서 매력적인 이야기로 거듭났다.

JTBC <썰전>에서 <기황후>를 비평하며 '아침 드라마형 사극'이라 정의했다. 실제 <기황후>에서 아침 드라마의 서사구조가 갖는 자극적 요소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물관계 측면에서 '삼각관계'가 대표적이다. <기황후>에서는 타환(지창욱 분), 왕유(주진모 분)가 기황후(하지원 분)와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한편 타나실리(백진희 분)와 기황후(하지원 분)가 왕유(주진모 분)를 둘러싸고 삼각관계가 중첩된다. 이중의 삼각관계인 셈이다. 이 관계를 기반으로 아침드라마에서 흔히 살펴볼 수 있는 '불륜'과 '음모', 암투'가 벌어진다. 그리고 이는 타환(지창욱 분)과 타나실리(백진희 분)의 아들인 마하황자(김진성 분)가 알고 보니 왕유(주진모 분)와 기황후(하지원 분)의 친자라는 '출생의 비밀'이 등장하며 이른바 막장 드라마적인 요소까지 갖춘다.

등장인물의 끊이지 않는 죽음도 막장드라마와 다를 바 없다. MBC <오로라공주>처럼 말이다. 이는 자극성 전개라는 점에서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요소가 된다. <기황후>에 출연한 대부분의 주연 및 조연이 죽음을 맞는다. 특히 극 후반부에서 등장인물의 죽음은 '떼죽음' 수준이다. 50화와 51화 두 화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50화에서는 당기세(김정현 분), 서상궁(서이숙 분), 왕유(주진모 분), 점박이(윤용현 분), 최무송(권오중 분)이 죽는다. 마지막화(51화)에서는 타환(지창욱 분), 탈탈(진이한 분) 골타(조재윤 분), 황태후(김서형 분), 염병수(정웅인 분), 장순용(김명국 분), 나무(김무영 분), 조참(김형범 분) 등이 최후를 맞는다.

<기황후>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은 죽음을 맞는다. 특히 종영되는 주에 방영된 50화와 51화에 죽은 등장인물만도 12명에 달한다. 이는 자극적 스토리이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사례로 일본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시리즈 방영 당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등장인물을 몰살시킨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 <기황후> 50, 51화의 등장인물의 연이은 죽음 <기황후>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은 죽음을 맞는다. 특히 종영되는 주에 방영된 50화와 51화에 죽은 등장인물만도 12명에 달한다. 이는 자극적 스토리이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사례로 일본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시리즈 방영 당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등장인물을 몰살시킨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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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전반을 아우르는 서사구조에서도 기존에 흥행한 코드의 차용이 엿보인다. 전반적 이야기 흐름은 '신데릴라 서사'의 전형이다. 여성이 신분상승을 통해 사랑과 권력을 차지한다는 욕망과 맞닿은 이야기로 많은 서사에서 활용된 구조다. 또, 기황후(하지원 분)가 극의 3할 가량을 남장 여자로 출연하는데 이 역시 '남장여자' 공식을 충실하게 따른다.

'남장여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같은 고전에서 등장할 뿐 아니라 MBC <커피프린스 1호점>, MBC <선덕여왕>, SBS <바람의 화원>, KBS <성균관스캔들> 등 많은 드라마에서 차용된 코드다. 이는 시청자와 주인공이 상대역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공유하는 공모자적 위치를 형성해 극의 몰입을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

기황후 역의 하지원은 극 초반부에 남장여자로 등장한다. '남장여자' 활용을 통한 전개는 기존 드라마에서도 많이 활용된 바 있다.
▲ <기황후>의 남장여자 하지원 기황후 역의 하지원은 극 초반부에 남장여자로 등장한다. '남장여자' 활용을 통한 전개는 기존 드라마에서도 많이 활용된 바 있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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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이 아니다. 극의 곳곳에 흥행코드가 숨어 있다. <기황후>는 큰 이야기 아래에 여러 작은 이야기가 합쳐진 구조다. 한 회 혹은 두 회에 걸쳐 독립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위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주어진 미션을 수행해 난관을 극복한다. MBC <대장금>에서 정형화되고 <선덕여왕>에서도 선보였던 '미션사극'적 요소다.

이는 빠른 전개와 맞물려 극의 긴장감을 형성 시킨다. 시청자가 극의 흐름을 놓치더라도 줄거리 이해에 지장이 없다는 장점도 있다. '미션사극' 서사 진행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진실게임'과 '반전요소'도 발견할 수 있다. 추리물이나 법정공방형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극의 몰입감을 높여준다.

<기황후>는 이처럼 흥행서사의 공식들을 집대성하며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 토대 위에 지창욱, 하지원, 주진모, 전국환, 이문식 등 명배우들의 열연이 펼쳐짐으로써 그야말로 매력적인 드라마가 됐다.

<사극>, '재미'냐 '역사'냐

"역사적 사실로만 만들 거면 다큐를 만들지 왜 드라마를 만드나."

<기황후> 역사왜곡 논란 당시 왕유 역의 배우 주진모가 했던 말이다. 실제 <기황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사극보다 드라마에 방점을 찍는다. 그러나 사극은 일반 드라마이기 이전에 역사를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사실 구현의 책무가 있다. 드라마를 통해 역사적 팩트와 픽션이 혼동되는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팩션사극 특유의 재해석이나 극적 상상력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기황후>는 역사의 재해석이나 극적 상상력으로 치부하기엔 매우 민감한 사안을 심각하게 왜곡했다는 점에서 문제다. <기황후>를 통해 역사적인 '폭군'이 '개혁군주'로, '매국노'가 '애국자'로 둔갑했다. 같은 논리라면 친일파를 정당화할 수도 있다. 많은 누리꾼들이 비판했듯, '불꽃남자 이완용'이라는 작품이 방영된 것과 다를 바 없다.

더욱이 기존에 자주 극화되지 않은 인물과 사건의 경우 첫 흥행작의 캐릭터는 매우 중요하다. '초두효과'가 작용해 시청자에게 오랫동안 각인되는 이유에서다. 흔히 후삼국 시대의 역사인물 궁예와 견훤을 떠올릴 때 KBS <태조왕건>에 등장한 김영철과 서인석의 캐릭터가 떠오르듯 말이다.

앞으로 기황후와 충혜왕을 떠올릴 때 대중은 역사적 본질에 앞서 하지원과 주진모가 보여준 애국자와 개혁군주의 모습을 떠올리기 쉬울 것이다. 이뿐 아니라 <기황후>는 복식과 소품, 세트장의 고증 수준 또한 매우 낮아 비판받기도 했다. (관련기사: '막장사극 <기황후>, 일본인들 보면 비웃겠네')

<기황후>에 등장하는 대승상 연철의 집이다. 한옥 세트장을 원나라 대신 의 집으로 둔갑시켰다. 또, 연철의 집에 실제 임진왜란 당시 아리마 가문의 문양이 등장한다. 이는 <불의여신 정이>에 등장한 소품을 무분별하게 재황용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해프닝이다.
▲ <기황후>의 고증오류 <기황후>에 등장하는 대승상 연철의 집이다. 한옥 세트장을 원나라 대신 의 집으로 둔갑시켰다. 또, 연철의 집에 실제 임진왜란 당시 아리마 가문의 문양이 등장한다. 이는 <불의여신 정이>에 등장한 소품을 무분별하게 재황용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해프닝이다.
ⓒ 금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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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기황후>가 한류수출작으로 자리매김하는 현실이다. <기황후>는 현재 일본 CS방송 '위성극장'에서 방영 중이다. 중국에서는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인기드라마 순위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중남이 3개국의 수출계약도 완료된 상태다. MBC <선덕여왕>이 17개국에 수출한 사례를 비춰볼 때 앞으로 더 많은 국가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 원 간섭기라는 통한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매국노를 애국자로 둔갑시킨 드라마가 한류 콘텐츠가 된 것이다.

<기황후>는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좋은 작품은 아니다. 엄밀히 따져 <기황후>는 사극의 사건과 인물, 복식과 세트 등의 전반적 고증에서 기본요소조차 갖추지 못한 문제작이다. 일각에서는 '극적 흥미'와 '역사 구현'를 상충되는 가치로 보며 기황후가 '극적 흥미'에 방점을 찍은 작품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정통사극을 표방한 KBS <정도전>처럼 '역사 구현'과 '극적 흥미'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경우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기황후>의 성공은 매력적인 서사와 배우들의 성공일 뿐 역사왜곡 사극의 성공도, 대중의 역사왜곡 용인도 아니다. <기황후>의 사례가 고증을 게을리 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사극 제작자들의 합리화 수단이 되지 않길 바란다.


태그:#기황후, #역사왜곡, #팩션사극, #MBC, #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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