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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개항도시다. 1883년 개항 이후 서구의 근대문화가 인천을 거쳐 들어왔다. 인천은 항구도시다. 인천항으로 많은 물류가 드나든다. 인천 개항장 주변에는 100년에 가까운 세월을 버텨낸 창고들이 많이 남아있다. 한국근대문학관(관장 이현식)은 이런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시설이다. 작년 9월 문을 열었다.

한국근대문학관 이현식 관장
 한국근대문학관 이현식 관장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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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놀이터를 만들다

"7년 전인가? 큰딸이 중학생이었는데, 국어 문학사를 공부하는데 근대문학 작품을 열심히 외우기만 하는 거예요. 사실 우리 때도 그랬어요. 맥락도 모른 상태에서 그냥 외우기만 했어요. 그러니까 재미도 없고 지겹다고 느꼈죠. 문학관을 생각한 건 그때예요."

이현식(49) 관장은 근대문학을 쉽게 통시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문학관을 만들었다고 했다. 한국근대문학관에는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이광수·최남선·한용운·김소월 등 근대문학 작가들의 초판본이 전시돼있다.

또한 사진과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한 근대문학 작품과 영상과 음악을 결합한 전시로 입체감을 살렸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도 '근대로의 여행'을 하게 했다. 문학놀이터인 셈이다.

"이런 식의 문학관을 만든 경험과 참조할 사례가 국내에 없어서 어려웠어요. 모든 게 처음이고 새로 시도하는 것이어서 지역 예술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이해를 못하기도 했죠."

국제도시 인천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이 관장은, 인천은 식민지 시대에 오랫동안 제국주의를 경험했고, 전쟁을 겪고 지금도 여전히 분단에서 자유롭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그는 인천이 국제도시가 되기 위해 어떤 지향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했다.

"파리·런던 등 기존 도시를 따르는 게 아니라 우리와 감정을 공유하고 공감을 확산하는 국가와 연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문학관 개관을 예정하고 '인천AALA문학포럼'을 기획했는데, 왜 돈을 들여 그런 사업을 하는가라는 회의적 시각도 있었죠. 성숙한 도시가 되려면 개방적이어야 하는데 보수적이에요. 사업을 추진하면서 보수적인 사고와 만나면 어렵습니다."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문학포럼은 많다. 그러나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인들이 모여서 하는 토론은 인천AALA문학포럼이 유일하다.

"인천이 국제도시를 지향하잖아요. 국제적이라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이 중요하죠. 더 중요한 건 이른바 서구로 대표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들을 고려하는 거죠. 서구 문화는 우리한테 지나치게 많이 들어와 있어요. 인천에는 국제공항도 있고, 이주노동자도 많습니다. 우리가 취해야할 다양성은 열려있어야 해요. 이 포럼을 기획한 의도입니다."

이 관장은,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가 문명이 발달한 서구보다 오히려 진지하고 문학 본연의 정신을 더 지키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책의 수도로서 면모 갖출 때

인천은 '2015년 세계 책의 수도'로 지정됐다. 인천이 책의 수도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책의 수도는 한순간에 되는 건 아닙니다. 책을 읽게 만드는 문화는 책으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라, 사회 분위기가 달라져야죠. 세월호 침몰 사고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근본적이고 본질적이기보다는 성과위주의 '빨리빨리'문화가 만연해요. 문화행사를 하다보면 본 행사보다는 개막식 의전을 중요시하는 관행이 있어요."

우리는 압축적 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를 체득하지 못했다. 빨리 성과를 얻고 빨리 돈을 벌기 위해 변칙적 방법이 통용되는 사회라, 책을 읽는 분위기와 멀다고 이 관장은 진단했다.

"전반적으로 문화의 변화가 필요해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는 돌아봐야합니다. 그것의 강력한 무기가 독서라고 생각해요. 책을 읽으면서 나를,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되지요. 이번 사고는 안타깝지만 근본적 반성이 필요해요. 책 읽는 도시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문학

"문학과 인문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입니다. 인간과 인간이 함께 사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학문이지요. 공학은 기능적 연구를 하는 학문이라면, 인문학은 훨씬 근본적인 것을 공부합니다. 과연 무엇이 진리인지를 고민하죠.

나에게 이익이 되지만 선한 행동이 아니면 거부할 줄 아는 게 인간인데, 요즘은 옳지 않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면 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문학은 그런 걸 반성하는 기제를 갖고 있어요. 문학관을 만든 것도 문학에 관심을 갖고 책을 읽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런 분위기의 확산이 국제도시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요?"

한국근대문학관은, 이름은 근대문학관이지만 문학·인문학·출판 등의 허브기능을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개항도시 인천을 책이나 출판으로 디자인하고, 전문가나 시민들에게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는다면 과거의 도시 기억을 재창조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근대문학관 내부
 한국근대문학관 내부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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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장르와 결합한 문학관 활동

한국근대문학관은 개관이후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개관 일에는 특별전시전으로 '기형도-입속의 검은 잎'을 진행했는데, 미술가들이 시(詩)의 내용을 미술로 표현한 작품을 전시했다.

"개관 전시는 의미있어요. 시인 기형도는 연평도 출신인데 현대문학에 속하는 1980년대에 활동했죠. 근대문학관이지만 현대문학에도 열려있다는 걸 보여주고, 문학관이지만 문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장르와 결합해 공동작업을 한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개관 행사로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을 상영하기도 했는데, 어린 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문학관에는 중학생 이상의 학생들이 오는데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필요하겠다고 생각해 기획했다.

또한 '낭독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인천의 소설가 조혁신의 <뒤집기 한 판>을 배우들이 낭독하며 연극으로 각색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배려하는 차원이자 앞으로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준 것이다. 10월에는 세계문학특강을 진행했는데, 한국문학이지만 세계문학에도 열려있다는 의미를 두기도 했다.

"세계문학특강은 한 출판사에서 3월에 신간으로 발행했는데 재판을 찍었을 정도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EBS와 공동으로 책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 게 있어요."

올해 하반기 계획을 물었다.

"인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학인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천에는 문인협회나 작가회의, 다양한 동인들의 활동이 활발한데 어떤 책들이 출판됐고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를 보여줄 예정입니다. 지역의 문인들과 함께 하는 행사는 매해 개최할 생각이에요."

한국근대문학관 외부 일부 모습
 한국근대문학관 외부 일부 모습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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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식 근대화에 대한 생각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한때는 비정상이라고 얘기했다. 정상적 근대국가를 수립하지도 못했고 여전히 분단국가다. 1990년대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현됐다고 하지만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고도 볼 수 없다. 우리나라의 근대화와 민주주의는 기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럴까?

"모범적인 근대화가 있고, 우리는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는 시각이 있어요. 모범적 근대의 모델로 서구를 얘기하는데 사대주의 시각이 아닐까요? 최근 연구자들은 한국사회가 만든 것도 다른 의미의 근대인 것이지 서구의 기준으로 부족한 게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한국문학도 근대성을 얘기할 때 오히려 한국문학이 갖고 있는 독자적 정체성이 있는 거죠."

지금 '한류'라고 얘기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기초는 근대문학에 있다고 이 관장은 말했다.

"기본적으로 문학은 어떤 장르보다 민주적입니다. 영화·음악·미술 등은 돈이 있어야 하지만, 문학은 큰 비용을 요구하지 않아요. 할리우드의 영화적 기술력은 쫒기 어려워요. 하지만 문학은 가능하죠. 문학은 식민 지배 아래에서도 자기 혼자의 상상력만으로 가능했기 때문에 작품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 예술의 뿌리가 근대문학에 있어요. 우리 문학은 전 세계 어느 선진국과도 대등하게 견줄 수 있습니다."

하루 평균 100명의 관람객 유지

한국근대문학관을 찾는 관람객은 하루 평균 100명 정도. 주말에는 더 많은데, 개관 이후 평균 관람객 수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다른 문학관과는 비교할 수 없어요. 초유의 일이지요. 다른 전시관이나 문학관에서 깜짝 놀랍니다. 전국에 문학관이 많은데 보통 10명 안팎인 곳이 많습니다."

상설 전시뿐 아니라 기획 전시와 강좌 등, 개관 초기부터 다양한 시도가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또한 인천 고유의 특성을 살리되 최고의 강사진으로 구성한 경쟁력 있는 기획이나 행사를 유치한 게 가져온 결과다.

"다른 문학관과 다르게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으니 관심 있게 지켜봐주세요.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문학으로 치유받기도 하고 근본적으로 반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에 인천이 세계 책의 수도로 지정됐으니까 문학관에 오셔서 좋은 책 많이 만나고 가세요."

덧붙이는 글 | 이번주 <시사인천>에 실렸습니다.



태그:#한국근대문학관, #이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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