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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의 슬픔'이라는 말

어느 분의 글인지 그 출처를 메모해 두지 못했으나, 아무튼 옮기면 대략 다음과 같다.

"연구 결과 육체적으로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 중 으뜸은 몸이 불에 탈 때의 고통이다. 심리적으론 사랑하는 대상이 눈앞에서 죽어가는데 어찌해볼 수 없을 때의 고통이 그것과 맞먹는다.

실제로 새끼가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광경을 본 어미 염소는 창자가 새까맣게 타들어가 죽었다. 잡혀가는 새끼를 쫓아 사흘 밤낮을 뱃길로 내달린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죽었다는 고사에서 비롯한 '단장의 슬픔'은 괜한 꾸밈말이 아니다."

세월호 침몰사고 13일째인 28일 오전 비 내리는 팽목항을 뜨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이 사고해역을 바라보며 소리없이 울고 있다.
▲ 사고해역만 바라보다 세월호 침몰사고 13일째인 28일 오전 비 내리는 팽목항을 뜨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이 사고해역을 바라보며 소리없이 울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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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어이없는 참극,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겪는 아픔이 그러할 터이다. 가족이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비탄과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왜 구조는 그처럼 더뎠고 당국의 대응은 오락가락했는지, 무엇을 감추고자 하는 것인지 차마 입에 꺼낼 순 없지만, 우리는 그 모든 게 다 궁금할 뿐이다.

비탄과 분노란 그래서 이게 과연 정상적인 국가인가 하고 물으면서, 이것은 결국 국가에 의한 죽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서로에게 묻고 있다. 이것은 결코 선동이나 유언비어가 아니라 민심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꿈은 일상을 이기지 못한다. 너무나 비정한 말인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런데 정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사법적 권한을 갖는 범사회적진실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논의해 볼 만하다. 그래서 그 누구든 성역 없이, 그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의혹을 해소할 것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그런데 특검을 발의해서 진실을 규명하고 관련된 자들을 모조리 사법처리하는 데 앞장서야 할 야당이, 어이없을 만큼 무기력하고 무능력하다.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댓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그것의 책임을 묻고자 했던 시민사회의 염원을 깔아뭉개 버린 게 지금의 야당이다.

그들을 압박하고 견인해낼 시민이나 민중조직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런 활동 경력을 훈장 삼아 정치권으로 갔거나 기웃대고 있으니 시민들의 비탄과 분노를 오롯이 담아낼 조직이 이제는 아예 없는 거다. 오직 시민들 개개인이 슬픔과 분노를 삼키면서 무엇인가 어디선가 폭발의 계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진실이 이긴다

'세월호 침몰사고' 14일째인 29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다.
▲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조문 행렬 '세월호 침몰사고' 14일째인 29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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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일상을 살아낸다. 이게 현실이다. 가난은 한갓 남루가 아니듯이 육체적 폭력은 우리의 영혼마저 파괴하는 악마 그 자체다. 우리가 겪어야 했던 저 1980년대의 폭력이 그랬다. 그랬어도 시간이 흘러가면 그저 자기이해에 함몰되어 현실을 살아낼 뿐이다.

이게 우리의 삶이다. 너무 슬픈가? 젊은 넋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대통령 직선제 만들어 놓았다. 그랬더니 독재자의 딸이 그 직선제 헌법으로 대통령이 된 게 이 나라다. 그러니 사실 시민들, 민중, 그런 거 너무 믿을 게 못된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비탄에 잠겨 있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세상은 딴청을 부릴 것이다. 자신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면 전두환이 다시 대통령에 나온대도 슬그머니 외면할지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 말마따나 댓글 때문에 대통령 된 것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선, 비를 맞으며 저 분향소에 줄지어선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가 활화산처럼 폭발할 수 있는 어떤 계기가 어디선가 분명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지 우리 건강하게 잘 살고 있어야 한다. 너무 슬퍼서 자신을 학대할 것 없다. 모두 우리의 탓이라고 할 것 없다. 그게 바로 가짜고 선동이다.

눈 똑바로 부릅뜨고 이 참극의 원인을 제대로 밝혀내면 된다. 죽은 아이들이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올 수야 없겠지만, 다시는 우리의 아이들이 그처럼 죽어가게는 말아야 한다. 오늘, 창자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죽어가는 희생자 유가족들도 있으니까. 그분들에게도 하루 세끼 꼬박꼬박 잘 먹고 건강 잘 챙기라고 전해주고 싶다. 그래야 진실이 이긴다.


태그:#세월호 참극,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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