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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길 어머니의 길 판화
▲ 어머니의 길 어머니의 길 판화
ⓒ 홍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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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이 오면 색시 집에서 날짜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어머니가 날을 받았다. 날은 구월 스무날이다.

혼인날짜가 잡히고 혼인 준비를 한다고 야단법석이다. 그런데 정작 소선의 마음은 너무 시집가기가 싫다. 심지어 어디로 도망가서 죽고 싶을 정도로 가기가 싫었다. 요즘 시대 같으면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어머니 아닌 다른 사람한테 불만을 말할 수도 없고 그럴 처지도 아니었다. 그러니 혼자서 낑낑거리기만 했다. 중매한 올케한테 "언니야, 나 시집 안 갈란다"고 말하면 언니는 부끄러워서 공연히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럭저럭 날짜가 가까워졌다. 어떻게 하면 시집을 안 갈까 하고 생각한 끝에 소선은 굶기 시작했다. 계속 굶어도 식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인준비를 계속했다.

시집을 가야 할 날짜가 닥쳐왔다. 며칠을 굶어서 일어날 수도 없을 정도인데 억지로 소선을 일으켜서 결혼식을 한다고 머리를 빗기고 옷을 갈아 입혔다. 날이 밝아오자 온 집안이 떠들썩했다. 바깥을 내다보니 온 집안을 흰 천으로 깔아놓고 차일을 쳐놓았다. 벌써부터 큼지막한 상을 놓고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드디어 내가 할 수 없이 그 집으로 시집을 가는구나. 그렇게 안 가려고 내색도 했고 싫다고도 했는데 억지로라도 가야 한다면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닥치는 대로 하고 시집에 갈 때 도망이라도 가야지.'

소선은 얼굴에 연지곤지를 찍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야,이제 이것도 바르고 진짜로 시집을 가는구나.'

굶어서 허우적거리는 소선을 양쪽에서 붙들고 머리에 족두리를 씌워놓고 있는데 밖에서 소리가 났다.

"주인 출영."

마당에 깔아놓은 하얀 베를 밟고 초례청으로 가서 신랑 얼굴도 못 본 채 예를 지냈다. 초례 청에서 시아비지한테 인사를 올리기로 어른들끼리 합의가 되었는지 시아버지한테 절을 올리는 순시가 있었다. 시아버지께 절을 올리고 술을 따라 올릴 때 소선이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다 보았다. 그랬더니 올려다보는 새색시 눈과 시아버지의 눈이 마주쳐 버렸다. 새색시 소선은 그동안 신랑 될 집안에서 시아버지가 될 영감이 선 본 색시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강력하게 혼사를 주장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궁금하던 터였다. 시아버지와 예를 올리는 중에 눈이 마주쳤으니 새색시는 겁이 났다.

식이 끝나고 모두들 술과 음식을 먹느라 정신이 없다. 새색시는 이 틈을 이용해서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뒤란으로 해서 어둠 속으로 산길을 마구 달려갔다. 한참을 달려가다 이르게 된 곳은 소선의 아버지 산소였다.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 산소까지 온 것이다.

조금 있다가 색시가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 식구들은 난리가 났다. 신랑 쪽 사람들이 눈치 채기 전에 빨리 색시를 찾느라고 온 식구가 등불을 들고 나섰다. 남자들은 신랑을 비롯해서 신랑 쪽에서 온 사람들한테 술을 한정 없이 권해 시간을 벌었다.

소선은 아버지 산소에서 엎드려 울었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어머니 소리가 났다.

"아이고, 우리 소선이가 도망 가면 어쩌노. 아이고 내 팔자야!"

어머니 우는 소리가 너무나 처량했다. 소선은 어머니를 생각하니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다. 온갖 구박과 고생 속에서 언제 한번 마음 펴고 살아보지 못한 어머니. 내가 이대로 도망가서 오늘의 결혼이 깨져버리면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세월을 한과 원망으로 살아가실까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잦아들었다.

"어무이,나 여기 있어."

갑자기 딸의 소리가 들리니 어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소선은 부랴부랴 옷들을 챙겨 입고 첫날밤 을 치러야 할 방으로 들여보내졌다. 색시가 들어와야 할 시간이 지났음에도 색시는 들어오지 않고 이사람 저사람 술만 먹으라고 권하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고 신랑은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느즈막히 방으로 들어가니 신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색시를 쳐다보는 신랑이 무섭다고 소선은 생각했다. 신랑은 너무 더워서 못 견디겠는지 두루마기도 벗고 바지도 벗고 속적삼만 입었다. 그 속적삼을 약간 걷었는데 다리에 짐승같이 털이 나 있었다. 색시는 미칠 것만 같았다. 어떻게 저렇게 생긴 사람한테 시집가라고 했는지 어른들이 야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문 밖에서는 문구멍을 뚫어놓고 야단법석이다.

야물상을 받아놓았는데 신랑이 밤을 집어서 치마에 던져준다. 색시는 치마에 밤이 떨어지든 말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왜 밤을 안 줍는 거요?"

신랑은 밤을 주워 잘 간직하라고 했다. 색시는 밤을 집어서 그냥 옆에다 놔두었다.

이번에는 술을 따라서 색시한테 받으라고 한다. 그 정신에 도저히 술잔을 받을 기분이 아니다. 가만히 있었다. 그랬더니 술잔을 색시 무릎에다 놓으려고 한다. 술이 쏟아져 옷을 버릴 것 같아서 잔을 받아 방바닥에 그냥 놓았다. 신랑은 이 술잔을 자기가 가져가 홀랑 마셔버린다. 자기가 따라줬으니 이제 색시한테 술을 따르라고 한다. 색시는 에라모르겠다 하고는 주전자를 들어서 조그만 잔에다 계속 부어주니까 술이 줄줄 넘친다. 술이 넘쳐서 그만 따르라고 할 때까지 부었다.

신랑이 술을 마신 뒤 머리를 푼다고 단단하게 매어놓은 족두리를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들어 봐도 족두리가 벗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들쑤시고 다니는 것이다. 비녀를 꽂은데다가 새까만 끈으로 족두리 있는데서 묶어 놓았으니 그것을 건드리면 쉽게 풀어질 텐데 …….

'이이고 저렇게도 못하는가.'

색시는 신랑이 하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답답하기만 했다. 할 수 없이 색시가 족두리를 벗어서 방바닥에 놓았다.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더니만......"

색시가 족두리를 빗어놓으니까 이제는 자기가 벗어 놓았던 옷을 다시 입기 시작한다. 밖으로 나가려나보다 했더니 옷을 다 입은 다음 얌전히 앉아서 색시한테 옷을 풀어달라고 한다.

'아까는 자기가 다 벗어놓고는 또 나한테 풀어달라고 하는가.'

색시는 오기가 생겨서 가만히 있었다. 그랬더니 여자가 풀어야 한다면서 계속 풀어달라고 재촉한다. 색시는 이쪽 것을 풀어서 훽 던져버리고 저쪽 것도 풀어서 홱 던져버렸다. 신랑은 기가 차서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옷을 벗고 나서는 또 상에 차려놓은 것을 집어먹으라고 한다. 간장부터 먹고 차린 것을 먹어야 하는 법이라고 어머니가 말했다고 한다. 색시가 안 먹고 가만히 있으니까 자꾸 먹으라고 한다. 색시가 안 먹고 가만히 있으니까 너무도 답답했던지 부엌 쪽 창문에서 문에 구멍을 뚫고 들여다보던 올케가 나직하게 말했다.

"간장부터 떠먹고 무엇이라도 하나 집어먹어 감주라도 마셔."

색시는 창문 옆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작지만 그 소리가 다 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올케가 중매를 해서 미워하고 있었다.

"갑갑하면 니가 와서 해라."

색시는 톡 쏘아 붙였다.

'갑갑하면 니가 해라'라는 말을 신랑은 자기한테 하는 소리로 들었나보다. 신랑은 저쪽에 앉아 있으니까 색시 올케가 색시한테 한 소리가 안 들렸을 것이다.

"갑갑하면 니가 해라? 여자가 남자한테 갑갑하면 니가 해라라고 해?"

신랑은 색시를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안 하고 계속 그 소리만 되풀이하고 앉아 있다. 그래도 색시는 올케한테 한 말이라고 신랑한테 변명하지 않았다.

이 일 때문에 나중에 살면서도 싸울 때면 "갑갑하면 니가 해라? 아니 남자보고 니가 라고 해? 그래도 가문이나 뼈대를 생각하고 장가를 들었는데 남자보고 갑갑하면 니가 해라?" 하며 트집을 잡았다.

이렇게 해서 소선은 나이 19살 때, 1924년 12월 7일생인 전상수와 결혼을 했다. 남편 전상수는 낙천적인 기질에 성격이 쾌활하였으며 튼튼한 골격에 고집이 있는 편이다. 그리고 말술을 마시는 남자였다.

소선은 전상수와 살면서 부부로서 도타운 정을 가지고 살아보지 못했다. 살아야 된다고 하니까 그저 살았던 것 같다. 그 이유는 가기 싫은 시집을 억지로 간 것이 가장 큰 이유 일 것이다.

이들은 대구에서 집에다 미싱을 들여놓고 흠스펀 기지로 오바코트,양복 윗저고리 등을 만드는 옷 공장을 꾸려갔다.

전태일이 태어난 터 대구 계산 오거리 로터리. 전태일이 태어난 곳을 가리키는 전태삼씨(이 길 거너편에는 민족시인 이상화 생가가 있다)
▲ 전태일이 태어난 터 대구 계산 오거리 로터리. 전태일이 태어난 곳을 가리키는 전태삼씨(이 길 거너편에는 민족시인 이상화 생가가 있다)
ⓒ 민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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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색시 소선은 어릴 때 뛰놀던 달성군 성서면 감천리 친정집에서 아직도 산설고 물설은 시집 대구로 가는 길이었다. 대구로 갈려면 금오강을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늦가을이지만 반짝이는 햇살아래 강바람은 사뭇 부드럽고 강물 또한 명경 같이 맑다. 어디서 어렴풋이 청아한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더니 뱃머리 앞에서 커다란 물고기가 솟아오른다. 물고기는 제법 기품이 있는 잉어인지 아니면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고기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 고기는 소선을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물속으로 들어 가버린다. 그러더니 다시 솟아오르더니 이번에는 그 물고기가 맑고 또렷한 눈을 크게 뜨고 소선을 쳐다본다.

소선은 물고기와 눈을 맞추면서 이상하다. 저 물고기가 왜 나를 빤히 쳐다보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자 물고는 입에서 커다란 구슬을 뱉더니 그 구슬을 소선의 젖가슴에 안겨준다. 엉겹결에 구슬을 받은 소선은 큼지막한 구슬을 내려다본다. 그 말로만 듣던 여의주 같은 구슬은 일곱 빛깔 무지개 색으로 둘러쳐져 반짝인다.

소선은 이 귀한 구슬을 젖가슴 속에 넣고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봤다. 이번에는 이글거리는 커다란 태양이 점점 소선을 향해서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소선은 저 뜨거운 해가 나한테로 오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태양은 순식간에 소선이 간직하고 있던 구슬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닌가!

뜨거운 태양이 소선과 구슬을 한꺼번에 내리치니 이들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 산산조각은 하늘 가득 퍼지더니 조각 하나하나 영롱한 빛을 발하면서 온 세상을 아름답게 비춰주는 것이 아닌가! 정신을 차린 소선은 사방을 둘러봤다. 어디를 둘러봐도 작은 알갱이들이 형형색색 빛을 비추면서 커다란 빛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소선은 설핏 잠에서 깨어났다. 태몽이었다. 그로부터 열 달 뒤 소선은 전태일을 낳았다. 그 날이 1948년 음력 8월 24일이었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식민지 백성의 노예노릇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 이름을 태일이라 지었다. 클 태(泰)에 한 일(一),全泰一.

막상 이름을 정해놓고 보니, 문자 그대로 그것이 너무 완전하게 크고 제일이어서 소선은 속으로 걱정되는 바가 없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이름값을 해내려면 이 녀석이 앞으로 힘들게 살아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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