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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공도읍 웅교리 들녘에 자리 잡은 야생화농장(하우스 6동)엔 강종삼·이경부 부부와 그들의 자녀들(중3 아들, 중1 딸)이 산다. 이들 가정은 4년 전만 해도 서울의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런 그들이 안성 들녘에 보금자리를 잡은 건 남편 종삼씨의 야생화 사랑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4젼 전, 안성으로 귀농해서 야생화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4년이 지난 지금, 이들 부부는 야생화 일상에 맞춰 사는 농부가 다 됐다.
▲ 강종삼 이경부 부부 이들 부부는 4젼 전, 안성으로 귀농해서 야생화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4년이 지난 지금, 이들 부부는 야생화 일상에 맞춰 사는 농부가 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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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 귀농, 바로 이런 것

서울에서 14년 전부터 화원에서 야생화 판매를 하던 종삼씨. "야생화 새싹이 피는 게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더라고요"라며 야생화 사랑의 첫 느낌을 말해온다. 그후로 야생화에 대해 이런 공부 저런 공부를 했다. 사랑은 전염된다고 했던가.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도 야생화에 마음을 뺏겼다.

이들 부부는 처음부터 안성으로 귀농을 생각한 건 아니다. 서울에 살면서 서울 근교에 농장을 경영하며 출퇴근하려고 했다. 경기도 양평 등에 농장과 땅을 알아보았지만, 가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결국 아내 경부씨의 고향 안성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유는? "땅값이 비교적 싸니까"라며 부부가 웃는다.

4년 전, 지금의 자리에 하우스를 치고 농장을 시작한 이들 부부. 초창기 2년은 공도 읍내의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농장으로 출퇴근을 했다. 2년 전엔 종삼씨가 건축업자와 함께 직접 그들의 집을 지었다. 바로 이들의 농장에다가.

이들 부부의 귀농은 단박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서울에서 10년 동안 야생화 판매를 하며 야생화와 이미 친해졌고, 안성에 농장을 짓고 농장 일을 하면서 공도읍내 아파트에 살다가, 이젠 자택과 농장이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들 부부와 자녀들은 '귀농 충격'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듯 보였다.

화면 왼쪽에 보이는 하우스 6동은 강종삼 이경부 부부가 4년 전에 지은 야생화농장이고, 화면 오른쪽은 2년 전에 지은 이들 부부의 자택이다. 여기에 이들 부부와 자녀 두명(중3아들, 중1 딸)이 함께 살고 있다.
▲ 농장과 자택 화면 왼쪽에 보이는 하우스 6동은 강종삼 이경부 부부가 4년 전에 지은 야생화농장이고, 화면 오른쪽은 2년 전에 지은 이들 부부의 자택이다. 여기에 이들 부부와 자녀 두명(중3아들, 중1 딸)이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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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부부, 진짜 농부 다 된 거 맞죠?

이들 부부, 이구동성으로 "농장이 가까워서 정말 좋아요"란다. 일터가 가정이고, 가정이 일터가 된 셈이다. 하루 종일 아내와 남편은 야생화에 파묻혀 산다. 야생화를 돌보느라 하루해가 늘 짧다.

"우리가 어느새 시골노인네들이 다 됐다"는 이들 부부. 무슨 말이냐고. 서울에선 상상도 못하던 잠자기 습관이 들었다. 새벽 5시면 일어나서 농장 일을 하고, 저녁 9시 뉴스를 보고나면 저절로 잠에 곯아떨어진다고 했다. 이런 모습은 시골가면 농사짓는 어르신들의 일상이다. 그렇다. 이들 부부 이제 진짜배기 농부가 다 됐다.

부부에겐 따로 쉬는 날이나 쉬는 시간 없다. 알아서 쉬면 쉬는 거고, 일하면 일하는 거다. 겨울에도 일거리가 많다. 오히려 여름에 쉬는 시간이 더 많다. 더위 때문에 사람도 지치지만, 꽃들이 지친다. 여름에 야생화를 건드리면 죽기 십상이라 했다. 분화된 야생화는 뿌리가 많지 않아서 여름엔 가만히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란다.

시기를 놓치면 야생화 농사는 힘들다. 이 농장에서 자라는 120여 종의 야생화들은 각자 손이 가야할 시기가 다르다. 야생화의 생태 주기를 잘 알아야만 알 수 있는 농사 노하우다. 이런 노하우도 시기를 잘못 맞추는 바람에 야생화를 1만~2만 송이 정도를 몇 차례 버리고 나니 알게 된 거라고 했다. 

강종삼 이경부 부부가 4년 동안 땀흘려 일구어온 농장 내부 모습이다. 한 눈에 봐도 이들 부부의 평소 부지런함이 엿보인다. 이 농장은 올해 교육농장으로 지정받았고, 내년 부터 본격적으로 교육농장을 가동할 계획에 있다.
▲ 농장 내부 강종삼 이경부 부부가 4년 동안 땀흘려 일구어온 농장 내부 모습이다. 한 눈에 봐도 이들 부부의 평소 부지런함이 엿보인다. 이 농장은 올해 교육농장으로 지정받았고, 내년 부터 본격적으로 교육농장을 가동할 계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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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부부의 일상도 야생화의 생태주기에 맞춰져 있다. 서울생활과 달리 자기관리가 잘 된다고 했다. 야생화의 일상에 따라 살다보니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야생화의 삶이 곧 이들 부부의 삶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자신들이 키우는 야생화가 시들해져도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어떡하든 그 야생화를 되살려서 자기자리에 갖다 두어야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자신들이 추천한 야생화가 어느 집 정원에 심어졌을 때, 그 야생화 덕분에 향기도 좋고 정원이 확 산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부부는 그렇게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이 농장, 지금보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이유

"농민에게 배움의 기회와 혜택이 이렇게 많은 줄 여기 와서 알았어요"라는 경부씨. 이들 부부는 일주일에 1회는 배우는 데 투자한다. 각종 농민교육 등에 쫓아다닌다. 농사만 주구장창 지었다면 모를 배움의 즐거움에 맛이 들었다.

처음엔 몰랐지만, 농사를 지으며 농민교육을 받다보니 길이 보이더라는 부부. 이들의 농장은 올해 초 정부로부터 '교육 농장'으로 지정받았다. 올해 준비해서 내년이면 '교육 농장'이 시작된다. 농민이라도 농사만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도 이웃과 나누며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이들 부부는 주변과 상생하는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강종삼 이경부 부부가 운영하는 야생화농장에 핀 화초 사과가 이들 부부의 삶처럼 닮아 있는 듯 보인다. 앞으로도 이런 열매가 이 농장에 자꾸 많이 열려 주위와 더불어 나누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 화초 사과 강종삼 이경부 부부가 운영하는 야생화농장에 핀 화초 사과가 이들 부부의 삶처럼 닮아 있는 듯 보인다. 앞으로도 이런 열매가 이 농장에 자꾸 많이 열려 주위와 더불어 나누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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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현재 중3인 아들만 원한다면 아들에게 대를 이어 야생화 농부가 되라고 권유하겠다는 부부. 아들이 농수산대를 졸업하면 아들에게 야생화를 분가시켜 스스로 키워가게 하겠다고 했다. 한 농장에서 '아버지 야생화 따로, 아들 야생화 따로'의 구조로 가겠다고 했다.

우리는 대를 이어 운영하는 프랑스 농장의 전통을 이야기하며 웃었다. 이 농장이 지금보다 앞으로가 훨씬 기대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24일, 강종삼 이경부 부부가 운영하는 야생화농장에서 이루어졌다.



태그:#귀농, #야생화, #교육농장, #야생화농장,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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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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