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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남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실수에서 교훈을 얻어 문제를 바로잡고, 그로써 우리가 사는 곳을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제가 남 탓을 할 수 없는 까닭은, 제가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나라와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안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우리는 본능으로 안다. 누구 말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한 말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 대통령은 '진노'하고 '질책'할 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의 말을 한 사람은 미 대통령 버락 오바마다. 그는 대통령 취임 1년여 만에 큰 정치적 위기에 빠진다. 2009년에 발생한 '성탄절 테러 미수사건' 때문이다.

테러 용의자는 암스테르담을 출발해 미국 디트로이트로 들어오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문제의 노스웨스트 항공편이 착륙하기 직전, 그는 정체불명의 폭발물에 불을 당겨 터뜨리려 했다. 비록 불발에 그쳤으나, 비행기 안에는 278명의 승객이 타고 있어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자신의 책임이라는 오바마, 그렇지 않은 박근혜

'세월호 침몰사고' 10일째인 25일 오전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임시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영정 앞에 헌화하며 애도하고 있다.
▲ 세월호 침몰사고, 안산 분향소 애도 물결 '세월호 침몰사고' 10일째인 25일 오전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임시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영정 앞에 헌화하며 애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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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테러 미수사건과 한국의 세월호 침몰 사고는 크나큰 차이를 보여준다. '미수'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그 사건으로 인해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이 처한 상황은 '위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당시 노스웨스트 탑승객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실종된 상황에서도 말이다.

한국의 다수 언론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여전히 견고하다고 말한다. 미흡한 사고대처로 지지도가 '폭락'했다고 하나, 여론조사 결과는 여전히 국민 과반 이상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건을 둘러싸고 드러난 두 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지도자가 사고에 대처하는 방식이었다.

앞의 발언에서 보듯, 오바마는 사건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한 개인이나 조직의 잘못보다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리고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혁명적인 시스템 정비를 약속했다.

당시 보수 정치권과 언론은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고 있었고, 공무원 몇 명을 잘라내는 것은 자신의 책임을 벗고 여론을 잠재우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책임 전가보다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하다"며 손쉬운 선택을 거부했다. 대신에 그는 한국 돈으로 1조 원 이상을 들여 국내 공항은 물론, 미국과 연결되는 전 세계 주요 공항에 전자 장비를 설치하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질책'만 되풀이하는 '대책' 없는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달랐다. 그는 사건에 대해 '진노'하면서, '질책'과 '문책'으로 일관했다. 그는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 속에 자신은 들어가지 않았으며, 사고재발을 막을 어떤 현실적인 방안이나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안전사고의 재발 방지"를 지시했을 따름이다.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국의 신문은 '대통령 진노' 또는 '대통령 질책'이라는 표제어를 즐겨 싣는다. 그리고 기사에는 '관계당국자들은 침통한 표정이었다'는 내용이 단골로 따라 나오곤 한다. 다른 나라의 언론보도를 주의 깊게 살펴 온 사람이라면, 이런 표제가 얼마나 특이하고 '한국적'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가을이면 모든 사회적 이슈를 제쳐놓고 텔레비전 뉴스 첫머리에 등장하는 단풍 소식처럼 말이다.

물론 메시지는 분명하다. '대통령은 현 사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 정부와 언론 모두 이 말이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국가적 재앙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진노'와 '질타' 보도에는 정부와 언론의 무능과 비겁함이 뒤섞여 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고 체계적인 방안을 요구해야 한다. '진노'는 '분개'에 왕조적 전통의 경외감을 섞은 말이다. 대통령의 분노와 측근의 '침통한 표정'이 무엇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이처럼 구체성이 결여된 감성적 언어는 성난 여론을 누그러뜨리는 일시적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대책 마련을 회피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정부는 언론을 이용해 '대책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뒤 국민들이 잊기를 기다리고, 같은 사고는 잠시 과거가 되었다가 다시 현재와 미래로 되풀이된다.

다른 참사 때도 똑같은 '질책'과 '근본적 대책' 주문

지난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관련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관련 사실을 보도한 KBS 뉴스 화면
 지난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관련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관련 사실을 보도한 KBS 뉴스 화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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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전남 진도 앞에서 대형 화물선이 어선을 들이받고 도주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고로 고깃배는 두 동강이 난 채 침몰했고, 타고 있던 선원 7명 전원이 실종되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나서서 관련자들에 대한 '문책'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같은 해 여름, 배수지 수몰 사고와 해병캠프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박 대통령은 "관리 감독 소홀로 국민 안전에 문제가 생겼을 시에는 엄중문책" 하겠다고 경고하며, "안전사고의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지난 2월 경주 리조트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대통령은 "근원적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책"을 주문했다.

이번에도 재방송처럼 똑같은 경고와 주문이 되풀이됐을 뿐이다. 특별히 강력했다는 대통령의 이번 '진노'는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까? <경향신문>의 23일자 사설이 답해준다. 대통령의 질책에 혼비백산한 해양수산부가 해경 등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현재 운항중인 연안여객선에 대한 긴급 안전점검에 들어갔으나, 그마저 형식적 절차에 지나지 않는 "부실투성이"였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자리 보전을 위해 눈치만 보는 공무원들은 반드시 퇴출시킬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대통령의 '진노'가 뉴스거리가 되는 것은 권력자 눈치를 보는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진노'는 머잖아 잊히고, '침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쾌활한 기분으로 바뀔 뿐이다. '진노'와 '질책'이 물처럼 아래로 흐르기만 할 뿐,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경주 리조트 참사 후 대통령이 "철저 조사"와 "재발 방지"를 주문했을 때, 정홍원 국무총리는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그는 이틀 뒤 "사고원인을 명확하게 밝혀 책임자를 엄정 조치하라"는 또 다른 지시를 내렸을 뿐이다. 얼마 후 경찰청장은 "책임자에게 엄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라"는 지시를 전했다. 같은 지시는 표현만 바꾸어 '더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갔을 것이다. 그리고 두 달 뒤 국민 수백 명이 수몰되거나 실종되는 비극이 일어났다. 

책임 없이 권리만 갖는 지도자

영국 신문 <가디언>은 지난 21일자 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처방식을 문제 삼았다. 절차나 제도상의 허점을 지적하고 개선하기보다 개인(선장과 선원들)을 비난하는 모습이 기이해 보인다는 것이다. 글은 한국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가 '문화적 차이'에서 온 게  아닌가 반문한다. 적어도 "서구사회였다면, 국가적 재앙에 그처럼 늑장대응을 한 지도자가 무사하기 어려웠으리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지지도는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 자리마저 위태로운 상황이 됐을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나는 이 글이 몹시 불쾌했다. 한국의 '절대존엄'을 모욕해서가 아니라, 지도자의 무능과 무책임에 눈을 감는 것이 '아시아적 가치'라도 되는 양 써놓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한국의 대통령은 무제한의 권리와 권력을 누리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희한한 자리가 된 것일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본래 한국인이 대통령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어, 그저 이따금씩 '용안'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는 것만도 황송하게 여길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정보가 없을 가능성이다.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나는 두 번째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어떤 국민도 대통령이 하는 일을 직접 볼 수 없다. 언제나 방송 카메라로, 신문의 글을 통해 만나게 된다. 언론의 역할은 전통적으로 '감시견'에 비유되어 왔다. 언론이 권력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권력의 무능과 부패는 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내보낸 TV 홍보영상 중 한 장면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내보낸 TV 홍보영상 중 한 장면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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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던 2년 전 일이다. '위기에 강한 글로벌 리더십'이라는 제목의 광고가 텔레비전에 등장했다. 공교롭게도 광고에는 풍랑 속 배가 등장한다. 천둥번개가 치고, 배가 맹렬한 바람과 파도 속에서 위태롭게 나아갈 때 이런 글귀가 화면에 새겨진다. 

경험 없는 선장은 파도를 피해가지만
경험 많은 선장은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만이 파도를 이기는 방법임을 알기에...
지금 대한민국엔 위기에 강한 대통령이필요합니다
앞으로의 5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준비된 여성대통령 기호 1 박근혜

나는 알지 못한다. '파도를 피하는 것'과 '파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 중 어떤 것이 현명한 위기 대처법인지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대통령이 한국사회를 덮친 풍랑에 당당히 맞서기는커녕, 비판적인 여론의 입김조차 회피하려 한다는 사실 말이다.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지도자가 책임 회피로 시간을 보내고, 국민이 이에 침묵할 때 한국사회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재난 속에서 침몰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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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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