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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아했던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원체 성실한 데다 일처리가 꼼꼼해 배울 점이 많은 선배였다. 그는 근무 중에 틈틈이 공부해서 대학원에 진학할 만큼 열성적인 학구파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교사의 뒷모습을 통해서도 배운다고 했던가. 아이들에게는 그의 열정적인 삶 자체가 교육이었고, 많은 후배 교사들의 귀감이 됐다.

교육정책 전문가가 되기 위한 포부가 있었던지, 십여 년 간의 교직을 뒤로 하고 몇 해 전 교육전문직의 길로 들어섰다. 흔히 말하는 교육청 장학사가 된 것이다.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하고 실효적인 교육정책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역할을 하는 핵심적인 자리다. 그런 까닭에 장학사를 '교육의 미드필더'라고 칭하곤 한다.

그런데, 교육청에 들어간 뒤로 그의 존재감은 사라졌다. 그의 경험과 소신, 식견으로 미루어, 교육청의 해묵은 관행을 뜯어고치는 등 '한 몫' 제대로 해낼 줄 알았는데, 변화나 개혁은 고사하고 이따금 공문 아래 담당자란에서나 그의 이름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불과 한두 해만에 그의 '열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름'만 덩그러니 남은 것이다.

이태 전 교육청에서 실시된 교사 대상 연수회 때 그를 다시 만났다. 마이크를 들고 그 넓은 강당을 바삐 뛰어다니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본 것이다.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질문자에게 무선 마이크를 나르는 역할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일 테지만, 고작 그런 일 하기 위해 장학사가 됐나 싶어 괜히 씁쓸했다.

사실 그 연수회 시작 전에 황당한 일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수업 결손까지 감수하고 참석한 수백 명의 교사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서론'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국민의례와 식순 소개는 그렇다 치자. '그 자리를 빛내기 위해 바쁘신 중에도 함께 해주신' 내빈들을 일일이 소개하고 박수를 치도록 했다. 정확히 헤아려보진 않았지만 족히 열 명은 넘었다.

담당 실무자라면 마땅히, 모든 참가자가 혀를 끌끌 차는 연수회의 낡은 관행을 개선하려 노력해야 옳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고작 마이크에 잡음이 날까 노심초사하며 행사가 끝날 때까지 이리저리 땀 흘려 뛰어다니기만 했다. 물론, '신참'이라 그랬을 테지만, 솔직히 상급자에게 연신 굽실거리는 모습이 안 좋아 보였다.

갑자기 장학사로 '승진한' 선배 교사를 떠올린 건, 이번 세월호 참사 수습 기간 중에 교육부와 교육청 관료들이 보여준 '개념 없는' 행태들 때문이다. 교육부는 물론, 교육청과 일선 학교에까지 관료주의의 병폐가 뿌리 깊게 퍼져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멀쩡했던 교사도 학교 현장을 떠나 교육청에만 들어가면 '맛이 간다'는 말이 이젠 더 이상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일로 교육부 장관은 우리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에서, 졸지에 일선 교사들은 물론 아이들조차 비웃는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황제 주차'에서부터 '장관님 오십니다'와 '황제 라면'의 오명을 썼다. 어떻게 보면 대수롭게 생각해 오던 관행이 지금껏 우리 교육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혀 왔는지 여실히 드러냈다.

장관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지 몰라도 우리 국민들은 거기에서 무능하면서도 권위주의적인 관료들의 민낯을 똑바로 보게 된 것이다. 하물며 그것을 지켜본 죽거나 실종된 아이들의 유가족들임에랴.

관행과 관료주의에 대한 장관의 무감각은 튼실한 숙주가 되어 교직 사회 전체를 상명하복과 무사안일, 복지부동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환자'로 만들어 버렸다. 현직 교사로서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상급 관청이 내린 공문이 아니면 결코 움직이지 않는 곳이 바로 미래세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학교다. 공문만 충실히 따르면, 적어도 학교가 책임질 일은 없으니까.

'입'은 아이들, '눈'은 교육부에 쏠린 학교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입'은 아이들을 향해있지만, '눈'은 늘 교육부와 교육청을 바라보는 학교의 기형적이고 퇴행적인 구조는 그렇게 굳어진 것이다. 우리의 교육 현실이 이럴진대, 장관이 취임 당시 거창하게 내세운 '꿈과 끼를 두루 갖춘 창조적 인재 육성'이란 구호가 어디 가당키나 한가.

아이들 사이에서 '선장스럽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인면수심의 파렴치한 극단적 이기주의를 일컫는 '신조어'다. 이와 함께 '장관스럽다'는 표현도 떠도는데, 무능하면서도 권위주의에 찌들어 있는 어른들을 위한 조롱이다. 연이어 터진 교육부 장관의 경솔한 행동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우리 교육,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를 향한 아이들의 '쓴 소리'이기도 하다.

해바라기처럼 그런 '장관'만 쳐다봐서는 교육 개혁은 백년하청이다. 몇 해 전 어느 TV 광고의 카피처럼 '모두가 YES라고 답할 때 NO라고 외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 무릇 교사라면 상급 관청의 관료들보다 아이들을 훨씬 더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하물며 상급 관청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맹목적인 기계여서는 곤란하다.

압권은 사고 발생 사흘째인 18일, 구조 작업에 혼선이 빚어지며 온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를 때 터진 '교장 승진 대상자 해외 연수 추진 공문'이 그것이다. 그것도 주무 관청으로서 피해 수습에 온 힘을 다해야 할 경기도교육청이 내려 보낸 것이라 더욱 충격이 컸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죄 없이 죽어가는 국가적 재난이 닥쳤는데, 어떤 교장이 나 몰라라 해외 연수를 가겠다고 나서겠는가.

교육청 담당자는 자신의 업무 달력에 적힌 공문 발송 일정대로, 그저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더욱이 전국 단위의 예정된 사업이었으니, 자칫 제때 발송하지 않는다면 문책을 당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음직도 하다. 그 역시 참사 소식에 안타까웠을지언정 그럼에도 정작 중요한 건 오래 전 부여된 상급자의 명령이었던 것이다.

앞서 살펴본 '충실한' 관료들의 행태를 통해 '아이히만'의 모습을 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충직한 부하로서, 명령에 따라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나치 독일의 군인. 그는 굉장히 평범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으나,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으면서도 그저 상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저 유명한 '악(惡)의 평범성'이라는 개념도 그의 삶에서 비롯됐다. 거친 비유일 뿐만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나라의 '개념 없는' 관료들과 히틀러의 충직한 부하였던 아이히만의 태도가 과연 다르다고 누가 말할 수 있나. 적어도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는 누가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렵다.

관행에 오랫동안 젖어있다 보니, 공문을 받아든 학교도 그 내용에 있어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거나 판단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냥 적혀있는 그대로 일선 교사들과 학생, 학부모에게 전달할 뿐이다. 교육부의 '수학여행 금지' 공문에 이어, 교육청으로부터 '학교의 대내외 행사를 지양하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이 공문에 따라 수학여행은 물론, 소풍과 체육대회, 교외 체험활동과 동아리활동, 심지어 교사들끼리의 협의회조차 줄줄이 취소됐다.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교육활동이란 오로지 교실수업뿐이다. 어디까지나 공문에서는 '지양'이고 '자제'이지만, 학교 입장에서는 꼼짝달싹도 하지 말고 교실 안에서 모든 교육활동을 하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인다.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나라에 살고 있고, 이런 학교에서 미래세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자꾸만 자괴감이 든다.


태그:#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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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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