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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청소년 특별면 '너아니'에 실렸습니다. '너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세월호 침몰사건' 6일째인 21일 오후 어둠이 내린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이 부두에 나와 구조작업을 위해 투여된 조명탄을 바라보고 있다.
▲ 팽목항에서 본 구조작업 현장 조명탄 '세월호 침몰사건' 6일째인 21일 오후 어둠이 내린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이 부두에 나와 구조작업을 위해 투여된 조명탄을 바라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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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내 친구라고 부르고 싶어. 온 나라가 힘들어하던 IMF 한가운데에 태어난 우리. 너도 엄마아빠 손잡고 대형TV 앞에서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치던 기억, 손에 200원짜리 떡꼬치 들고 유희왕 카드게임을 하던 기억이 있겠지?

요새는 대학은 어디로 갈지, 뭐 하면서 살지 항상 고민하고(근데 시험점수는 늘 노력한 만큼 안 나와서 짜증나고) 말야.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겪으며 같은 고민을 하는 우리가 가까운 사이처럼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 같아.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는 이름으로 공부하랴 엄마 눈치보랴 피곤했을 너에게, 간만에 떠나는 수학여행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쳇바퀴 돌듯 하던 생활에서 며칠간이라도 벗어나는 순간이 얼마나 설렜을지 나도 잘 알지.

그런데 이렇게 같은 추억과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던 우리가, 왜 두 시간 만에 다른 곳에 서게 된 걸까.

16일 오전 아홉 시, 네가 침몰하는 배 위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내가 평소처럼 수업을 듣고 있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어른들 말 잘 들으면 '칭찬스티커'를 받곤 했는데, 그래서 늘 그렇듯 어른들의 말을 믿었을 뿐인데 왜 너만 그런 벌을 받게 된 걸까.

"살려달라"고 최초 신고한 친구의 다급한 전화가 오히려 "움직이지 말라"던 선원들만 살렸다는 사실이 너무 역겨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해경도,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을 후벼판 언론도, 배를 버린 선원들도 모두 원망스러워.

제일 화가 나는 건, 네 친구로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야. 여기서 아무리 분노한들 너를 그곳에서 꺼낼 수 없다는 사실이 정말 절망스럽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들리지 않는 인사를 건네는 것뿐이라는 게.

세월호 침몰사고 8일째인 23일 오후 수학여행에 나선 2학년 학생들 다수가 희생된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의 모습이 한 시간 가량 언론에 공개됐다. 희생된 학생들이 수업하던 교실을 비롯해서 교내 곳곳에는 무사귀환을 바라는 선후배와 친구들이 가져온 꽃, 사탕, 빵, 음료수 등이 메모와 함께 놓여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8일째인 23일 오후 수학여행에 나선 2학년 학생들 다수가 희생된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의 모습이 한 시간 가량 언론에 공개됐다. 희생된 학생들이 수업하던 교실을 비롯해서 교내 곳곳에는 무사귀환을 바라는 선후배와 친구들이 가져온 꽃, 사탕, 빵, 음료수 등이 메모와 함께 놓여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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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도도 안 되는 차가운 바닷속에서 일주일 넘게 버티고 있는 넌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저버리진 않았을까. 점점 차오르는 물에 체온을 잃어가고 있진 않을까. 왜 우리는 만나지 못하는 걸까. 시험이 코 앞이지만 네 걱정에 도저히 펜을 잡을 수가 없어.

지금 육지는 온통 너희 이야기로 가득해. '이게 다 우리 잘못이다'라며 눈물 흘리는 어른들, 정부의 늑장 대응을 욕하는 친구들, 거액을 선뜻 내놓는 연예인들, 행사를 줄이는 기업들. 그런데 중요한 건, 다들 네가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는 거야.

모두 네가 아직 어딘가에서 숨쉬고 있다고, 분명히 TV 오른쪽 구석의 '구조 175'가 늘어날 거라고 믿고 있어. 그러니 제발 조금만 더 버텨! 꼭 네가 살았으면 좋겠어. 네가 꼭 살아남아서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줬으면 좋겠어. 그 속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그 차디찬 바닷속에서 가장 냉혹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분당 이우고등학교 3학년
채운 씀.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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